소설리스트

110화 (110/1,009)

실신한 프랑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침대에 누웠던 나는, 깨닫고 보니 어느 풀밭에 있었다.

그것도 잠들기 직전처럼 알몸으로 말이다.

“이, 이게 도당체 머선 일이고?”

“……아무래도 여기는 그대의 꿈 속인 모양이다.”

황당무계한 사태에 나는 당황해서 중얼거렸는데, 놀랍게도 바라지도 않던 대답이 들어왔다.

그 대답을 한 사람은 긴 머리카락과 2개의 양뿔이 달린 여성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랑 똑같이 알몸뚱이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서 가슴과 음부를 가리며, 내게 기다란 속눈썹이 붙은 눈을 부라렸다.

“이쪽을 보지 말아라, 멍청한 것!”

아니 존나 뉘시길래 그러세요.

나는 뜬금없이 소리를 지르는 펠라핸들녀를 경계하면서 내 뺨을 당겨봤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꿈이 맞긴 한가 보다.

“이, 이쪽을 보지 말라고 했잖느냐! 고개를 돌려라! 아니, 몸을 돌려서 반대 방향을 보란 말이다!!”

펠라핸들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나는 일단 시키는대로 몸을 돌렸는데, 쥬지에 약간 위화감이 있었다.

“오우 쉣.”

내 쥬지는 프랑과의 정사를 치루며 얻은 애액과 정액을 훈장처럼 휘감은 상태였다. 적당히 닦기는 했는데 그래도 쿠퍼액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미안합니다. 뉘신진 모르겠지만 혹시 닦을 거 없나요? 수건이나 뭐 그런 거요.”

“있을 리 없잖느냐! 그런 게 있었으면 내 몸부터 가렸다!”

“그거 참 맞는 말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여성에게 알몸을 보여도 딱히 수치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꿈이라서 그런가?’

약간 모든 광경이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이곳의 초원부터 뭔가 느낌이 몽환적이다. 푸른 초원은 지평선이 빛으로 희끄무레했다. 그려지다가 멈춘 풍경화 같다.

여기가 내 꿈이라고 했으니 저기까지는 풍경이 로딩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대충 그렇게 퉁쳐 버리기로 했다.

“뤠헤에엥.”

사고방식도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옮긴 것만 같다.

그 왜, 있잖은가. 꿈을 꿀 때는 지리멸렬한 생각이나 상황변화를 존나 쌉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 말이다.

갑자기 저기 구석에서 좀비떼가 몰려오다가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가도 숨어야 햇! 하면서 수풀 사이에 숨게 될 듯한 느낌적인 느낌.

나는 멍한 머리를 헤드뱅잉하면서 다시 여성을 돌아봤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일단 움직여 보지 않겠습니까?”

“꿈이라고오!! 했잖느냐아아──!!”

펠라핸들녀는 목청껏 외쳤다.

“여기를 돌아다녀봤자 그대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더러, 부탁이니까 이쪽 보지 마라! 인간의 몸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부끄럽단 말이다!!”

“인간의 몸?”

오랜만?

“아하! 야생의 야외노출녀인 줄 알았는데, 너 임마! 바이콘이었구나!”

“야, 야외노출녀라고?!”

경악하는 펠라핸들녀. 그녀의 정체는 무려 바이콘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이세계의 신비에 깜짝 놀라서 바이콘한테로 달려갔다.

“우와, 이 시발! 너 쑥과 마늘의 시련을 통과했나 보구나! 근데 뿔은 남았네! 99일 쯤에 동굴에서 면회 나갔니?!”

─터덥! 존나 의문의 텐션으로 나는 바이콘의 뿔을 쥐었다. 비싼 자전거 핸들을 거꾸로 쥔 듯한 감촉이었다.

“새애끼! 뿔 튼실한 것 봐라! 장군감이내!”

“내, 내내내! 내 얼굴 앞에서 그 흉물스러운 걸 치워라!!”

바이콘은 애액정액이 애애액 떨어지는 쥬지가 눈앞에 들이닥치자 손으로 얼굴을 지키면서 기겁을 했다.

“아, 쏘리. 닦는 거 깜빡함.”

나는 초원을 뒤지다가 마침 프랑의 팬티가 있길래 그걸로 쥬지를 닦았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 팬티를 넣었다.

근데 나 알몸인데 어떻게 넣은 것?

“으으으……. 이, 이러니까 인간의 꿈은 싫다. 이 놈들의 무의식은 광기로 가득 차 있어…….”

바이콘은 다시 쪼그려 앉아서 몸을 가렸다.

그 머냐, 야외노출물 야동에서 코트까지 뺏긴 여배우가 취할 법한 포즈였다. 이상하게 꼴리지는 않았다. 젖도 빵빵하고 빵댕이도 탱탱한데 대체 왜지?

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야, 바이콘. 바이콘아. 너 담번에 나랑 만나면 이름 알려주고 은혜 갚는다지 않았냐? 나 룬 알려줘, 룬.”

─찰싹! 찰싹!

나는 바이콘의 등을 찰지게 치면서 물었다.

“이럇!! 너희 비밀기지의 위치를 말해라!!”

“때리지 마라! 무슨 소리인지 이해도 안 가고, 애시당초 우리는 지금 나신(裸身)이다! 옷도 안 입고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제(師弟)가 어디 있느냐!!”

“얼스터 인들은 가르치지 않음?”

“맞다. 에린의 후예, 알몸으로 교육한다.”

셈무스가 대답했다. 이 새끼도 알몸이었다.

“쉬아악(섹스).”

셈무스의 고간에서 쥬지-살무사가 말했다. 이 시발 머야!!

“으아악 씨이발!! 혐짤 밴!!!”

─뻐엉!!

나는 축구공을 독수리 슛으로 쏴서 셈무스를 저 하늘의 별로 만들었다.

함께 날아간 쥬지콘다는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

이것이 뱀 자리의 유래였다.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바이콘은 이해 못 할 광기에 직면한 소녀처럼 떨면서 그리 말했다. 옷이 없어서 계속 쪼그린 상태로 말이다.

나는 그런 바이콘을 위로했다.

“포기해라. 여기 옷은 없다.”

대신 좃은 있다.

“히이익!! 파, 팔을 T자로 벌리고 날아오지 말거라!! 상식은 지키지 않아도 되니까 최소한 물리법칙은 준수해 다오!!”

“존나 마음의 상처네.”

그래서 무슨 말을 했더라?

아, 그래. 맞아. 룬.

“야, 바이콘. 나 룬 알려주라. 그거 꽤 쓸모가 많더라.”

“제길… 더 이상의 미친 짓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는가.”

바이콘은 중얼거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 보아라. 그대여, 뭐가 궁금하지?”

“너는 왜 내 꿈 속에 있는 건데?”

“뭐? 아까는 룬을…… 아니, 됐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든 내가 바보지.”

왜인지는 몰라도 고개를 저은 바이콘이 말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대와 저번에 룬으로 의식을 연결했던 것이 원인이 아닐까 짐작은 가지만, 이렇게 저주가 풀린 몸으로 오게 된 이유는…… 모르겠다.”

“의식을 연결해?”

아아, 그때 그건가. 말 언어로 대화하다가 지쳐서 룬으로 의식을 연결했던 그거.

“그래. 그거 이상하더라. 어떻게 룬으로 그런 게 되냐? 너 도시를 빠져나갈 때도 룬 마법으로 탈출했을 거 아냐.”

내가 물었다.

바이콘이 쓰던 룬 마법은 인간 사회에 전파된 룬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게 유용하고 즉효성 있는 마법이었다면 사장되지 않고 현대에서도 쓰였을 텐데.

수련이 어려워도 응용성이 높으니까 룬을 연구하는 마법사 학파 정도는 남았을 것이었다.

“……인간들은 룬 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이콘은 내 쥬지를 힐끔거리면서 말했다.

“언어의 역할은 말하고, 듣고, 쓰고, 전하는 것. 그러나 그대들 인간에게는 룬 어의 신비가 허락되지 않았다. 오직 쓰고 읽는 것만이 허락되었을 뿐. 때문에 룬의 참된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참된 힘?”

“말(言)이라 함은 서로 간의 소통이다. 룬의 진언(眞言)을 다룰 줄 안다면 그대들처럼 매개체 없이도 하나의 룬으로 수많은 효과를 낼 수 있지.”

매개체라. 그 말대로 바이콘은 뿔 사이에서 룬을 띄우고 주문을 외웠다. 매개체로 쓸 물질 없이 말이다.

“차이가 크네.”

“그렇다. 그래서 그대들 인간의 룬 마법은 매개체라는 ‘부연 설명’을 통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한정된 사용법으로밖에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라.”

“뭐야. 그럼 내가 단련해도 너처럼은 못 쓰겠네.”

“그건…… 아마 그럴 것이다. 고대문명 시대 이후, 인간은 룬의 진언을 허락받지 못했다. 신화시대에서는 쓸 수 있었던 모양이다만.”

“실망이구만.”

내가 혀를 찼다. 평범한 룬 마법은 쓸 수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서포트 마법이다. 결국 평소처럼 야수회귀를 단련하는 편이 강해지는데는 효과적일 듯 했다.

“어? 근데 바이콘아. 너희는 어떻게 룬을 쓰냐? 인간인 거 아냐?”

나는 그게 이상해져서 물었다. 저주가 어쩌구 했던 것을 보면 얘네도 원래 인간이었다가 저주를 받아서 말이 되거나 한 것 아닌가?

바이콘은 내 물음에 말을 정리하다가 대답했다.

“우리 바이콘은 애시르(Æsir)의 후예인 신족(Ása)이기 때문이다. 아니, ‘신족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옳겠군.”

“신족?”

애시르라고 하면── 게르마니아의 신들인가?

북유럽의 신들과 똑같은 신들! 그들은 내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줬던 첫 계기였다.

바이콘들의 고향도 거기이고 룬의 유래도 거기다.

‘애시르라는 말도 어디서 들어봤는데?’

꿈 속이라서 제대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어디 유적에서 발견된 말이라 했었던 것 같다.

“그러하다. 우리는 에인헤리와 발키리를 태우지 못하도록 저주받은 유희신의 후예. 신들에게 버림받고 순결한 전사를 섬기지 못하게 태어난 몸. 허나 몸에 흐르는 신의 피는 아직 흐려지지 않았느니라.”

한숨을 쉬고서 그렇게 말하는 바이콘.

“이렇게 말하는 나도 다른 동족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다만…….”

“……아니, 근데 야. 방금 뭐랬어? 유희신?”

익숙한 명명법이다. 비현실적이었던 공간이 선명해지고 잠이 싹 달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바이콘. 너 혹시 구신(九神)이나 ‘천공신(deiwōm dyēus)’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냐, 라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의식이 선명해진 탓이었을까. 꿈 속의 몽환적인 광경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내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

─둥실.

몸이 떠올라서 말을 하다가 멈췄다. 중력이 사라져서 하늘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 의식이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시발, 여기서 끝난다고?

뭔 존나 구조가 이따위야! 정신을 차리면 꿈에서 깨어나서 제대로 뭘 묻질 못하고, 비몽사몽한 상태에서는 의식의 흐름으로밖에 지껄이지를 못 한다니!

오랫 동안 궁금하던 야수회귀의 비밀을 물을 기회였는데!

다시 물어보래도 대답을 듣기 전에 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천지가 뒤집힌 땅에 서 있는 바이콘에게 물었다.

“야!!! 니 어디 사냐!!!! 이름이라도 까!!!!”

저 녀석의 신상을 알면 찾아가서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물은 내 질문에 바이콘은 안심한 듯이 대답했다.

“개의치 말거라. 같은 날 꿈을 꾼다면 다시 만나겠지.”

그러고는 떨어지는 나를 배웅하듯이 손을 뻗었다.

양뿔이 달린 악마 같은 모습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얼굴은 연약하고 다소곳해 보였다. 그 얼굴에 잘 어울리는 미소마저도 말이다.

“또 만나자꾸나, 그대여. 다음 번에는 부디 제정신으로.”

─투화아아아악!!

바이콘의 작별인사를 끝으로 나는 청소기에 빨려들어가는 털뭉치처럼 하늘의 구멍으로 말려들어갔다.

갸아아아악!! 존나 슬랩스틱 롤러코스터에 한쪽 발만 묶인 것 같아!!! 내 목이 사방으로 휘둘리면서 비명처럼 외쳤다.

“시발 어디 사냐니까 왜 딴소리여!!!!!”

그렇게 합당한 항의를 끝으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침대에서 떨어져서 바닥에 머리를 박은 상태였다.

존나게 개운한 아침이었다.

****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깨어난지 5분 뒤.

일어나서 기지개를 펴고, 프랑이 아직 잠든 것을 확인하자 나는 다소 여유롭게 방금 전의 꿈을 평가할 수 있었다.

“꿈 속에서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네.”

시발. 내가 멀쩡한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한 상대에게 펠라핸들녀라는 소리를 했다니?

존나 꿈 속이라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프랑과의 거친 섹스와 불안한 교미가 꿈에도 안 좋은 영향을 남긴 모양이다.

‘다음에 만나면 사과하자.’

바이콘 본인이 또 만날 수 있다고 했으니까 어떻게든 만날 기회가 있겠지.

다시 떠올려 보니 바이콘 본인은 시종일관 당황하면서 정신을 못 차렸었다. 아마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저 꿈에 끌려나온 모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은혜를 갚은 망아지 모드가 되서 나를 찾아와 이름을 밝힐 생각이었던 거겠지.

그런데 내 꿈에 강제 게스트 초청을 받아서 알몸으로 던져진 것이다. 그건 시발 프로이트가 되살아나서 같은 꼴을 겪더라도 당황한다.

‘그냥 개꿈은 아닐 거고.’

쭉쭉빵빵 여자 버전 바이콘이 나한테 야수회귀의 비밀을 알려줄 뻔 했던 꿈이라.

이게 단순한 개꿈이라면 내 뇌는 대체 어떤 기억을 정리하다가 저딴 꿈을 자아낸 것이란 말인가. 설사 사실이더라도 믿고 싶지 않아지는 꿈이었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 프랑도 일어났다. 나는 턱을 쓰다듬던 것을 멈추고 프랑에게 다가갔다.

“프랑. 잘 잤어?”

“응……? 아, 노르. 별 일이네. 나보다 일찍 일어나고.”

“이상한 꿈을 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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