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내 정체를 알아채는 건 아니겠지? 나는 땀이 폭포수처럼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평범한 가면에 로브만 쓰고 있었으니 눈치를 깔지도 모른다. 티르시도 쉽게 알아보지 않았던가.
“저희가 탐색했던 흑마법사의 은신처에서도 저것과 같은 유형의 파워스톤이 발견됐었죠. 그렇기에 저희는 두 은신처의 주인이 동일인일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습니다.”
마법사 길드의 대표는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나는 갈 데 없는 손을 턱으로 가져가서 쓰다듬었다. 존나 골렘이랑 흑마법사랑 무슨 상관인지는 몰라도, 그딴 걸 물을 시간에 빨리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고드릴 수 있는 점은 전부 보고 드렸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제 보고에 미비된 점이라도 있었습니까?”
이 질문은 아우둠라 길드의 대표에게 했다. 그는 활을 맨 젊은 남자였다. 골드 클래스의 플레이트가 번쩍거리는 것이 잘 나가는 모험가 같았다.
“하아. 가장 중요한 은신처의 위치를 말 안 했잖아요?”
40대 정도의 원숙한 미녀가 말했다. 길피 길드의 대표다.
근데 질문은 저 사람한테 했는데 왜 댁이 대답하쇼. 나는 마법사 모험가 같은 여자를 쳐다봤지만 그렇게 따질 용기는 없었기에 온순하게 대답했다.
“알지 못해서 보고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동료와 의뢰를 수행하다가 홉 고블린으로부터 저 물건을 얻었을 뿐이므로.”
관점에 따라서는 내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과는 안 했다. 이런 자리에서 생각없이 가볍게 사과하고 ‘그러면 니가 책임져’ 같은 개소리를 들었다가는 내 모험가 인생이 개꼬이고 만다.
그래도 시발거, 나 말고 누가 고블린 어를 원어민 급으로 구사해서 홉 고블린이랑 리스닝&토킹할 수 있겠는가.
여기 있는 자리의 누구도 몬스터를 잡던 중에 갑자기 이 놈이랑 대화해서 아이템의 출처를 물어야지! 하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 이걸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은 억지 트집이었다.
“어쩔 수 없구려. 적어도 파워 스톤을 얻기까지의 정확한 과정을 들려 주시겠소?”
경비대장이 물었다. 나는 그 말에 책임 회피를 최우선으로 하며 중언부언 설명했다.
받아랏! 21세기 공무원식 화법!!
“에- 그렇군요. 어디까지나 제 주관입니다만──”
근처 마을에서 보내온 고블린 토벌 의뢰를 나간 것.
버려진 신전에 숨어 있던 홉 고블린을 퇴치한 것.
홉 고블린 치고는 강했기에 원인을 생각해 보니 지팡이가 의심스러웠던 것.
지팡이의 돌에서 마나가 느껴졌으므로 회수한 것.
이상의 설명을 간략하게 마쳤다.
고블린이랑 대화했다는 내용은 뺐다. 내가 병신도 아니고 그딴 얘기를 왜 하겠는가.
“이상입니다. 질문하실 분 계십니까?”
내가 지껄여놓고 후회했다. 시발 대학교 PPT 갬성을 너무 살렸다!
제발 암것도 물어보지 마라……!
“홉 고블린이 있었다는 신전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내 필사적인 기도는 개무시를 당했다. 마법사 길드의 대표가 그리 지껄이며 히히 못가를 시전한 것이었다.
‘시발. 착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역시 세상은 나쁜 놈들만 잘 먹고 잘 사는 모양이었다. 난 이성 수치가 깎이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말로 설명드리긴 어렵군요. 여기 지도는 있습니까?”
“가져다 드리겠소. 이봐!”
경비대장의 말에 화이트보드 비슷한 것을 가져오는 경비병이었다. 바퀴는 없었기에 경비병 둘이서 열심히 들고 온다.
놓여진 화이트보드에는 브리타니아 지도가 걸려 있었다. 나는 페르포트 마을을 찾아서 압정으로 위치를 표기했다.
“이쯤에 있던 방치된 신전이었습니다. 양식으로는 옛 브리타니아의 민간 신앙인 듯 했고, 고블린의 둥지로 이용될 가능성이 컸기에 마을 촌장에게 대처를 권하고 왔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질문이 안 나오도록 열심히 설명했다.
“우선 염두해 둘 것은, 고블린의 서식처나 행동방식을 생각하면 강은 건너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고블린들은 키가 작고 머리도 나빠서 강을 건너는 방법을 모른다. 고양이처럼 생리적으로 물을 극혐하고 무서워하기 때문에 다리가 있어도 건너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잡은 놈들도 페르포트 마을 뒤편에서 강을 건너와서 둥지를 만든 놈들은 아닐 것이었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둥지를 꾸렸으니 관심도 마을에 집약되었을 텐데, 홉 고블린의 지시에 따르는 고블린들이 중간에 다른 길로 셌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게 어쨌단 거죠?”
길피 길드의 대표가 머리카락을 꼬면서 물었다. 나는 빨리 돌아가려는 생각에 대충 대답했다.
“홉 고블린은 부하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블린들도 힘에 굴종(屈從)하는 몬스터이기에 게으름을 피우긴 해도 명령에는 복종하죠. 부하들이 있는데 홉 고블린이 성실하게 직접 움직였을 리는 없고, 중간에 고블린들이 빠져나갔다는 케이스도 없다면──”
사르가디스와 페르포트 마을을 잇는 숲에 압정을 찍었다. 말하느라 바빠서 숲 이름을 못 찾겠다. 아아악! 이세계 지도 축적 존나 좆 같애!
“──홉 고블린은 이 숲에서 파워 스톤을 얻었을 공산이 큽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흑마법사의 은신처도 이쪽에 있을지 모릅니다.”
“……다른 방향에서 왔을 가능성은?”
아닥하고 있던 아우둠라의 골든-활쟁이가 물었다. 그런 거 묻지 마 시발아. 그, 그렇군요 소리밖에 안 나오잖아.
나는 엘리트 대갈통을 풀가동해서 답했다.
“아우둠라 길드의 선배님이라면 기억하실 겁니다. 일주일 쯤 전에 저 숲 주변에서 고블린이 범람했던 것을. 저희 길드에서 발견한 유적도 저쪽이었습니다.”
“그랬지.”
“익히 알려졌듯이, 고블린 둥지는 1마리의 보스 아래에 부하 집단이 모이는 구조입니다. 당시 고블린들의 수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모두 같은 소굴에서 넘쳐난 거였다면 보스는 상당히 강력한── 아. ‘고블린 기준으로’ 강력한 개체였을 겁니다.”
“고블린 킹.”
그때까지 아무 말도 않던 네페르티티가 말했다. 시선을 어따 두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공중을 멍하니 쳐다보는 고양이 같았다.
“우리 길드의 브론즈 클래스. 킹만 잡고 죽어버렸어. 남은 고블린들은 전부 도망쳤고…… 그래서 내가 뒷수습했어.”
“그렇군요. 킹은 홉이었습니까?”
“홉?”
날 보며 갸웃거리는 네페르티티. 뒤에서 세크메트 길드원이 뭐라고 속삭여주자 고개를 까딱였다.
“응. 홉.”
“그러면 이 가설의 신빙성은 조금 더 높아집니다.”
─툭툭. 나는 손으로 내 심장을 쳤다.
“미스릴 클래스 분의 추적에서 벗어난 놈이라면 제가 그놈한테 백 번도 더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잡은 홉 고블린은 고블린 킹과의 영역 다툼에서 밀려난 개체로 봐도 될 듯 합니다.”
아, 여기서 말한 백 번 죽는다 어쩌고 하는 것은 과장이다.
고블린 킹보다 강했어도 프랑이랑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했을 것이었다. 그걸 말했다가 쓸데없이 고평가를 받으면 일만 빡세질 것 같아서 구라를 깠을 뿐.
“제가 홉 고블린을 잡은 것은 사건이 처음 발생한지 약 7일 전후입니다. 세크메트 길드에서 고블린 소굴 던전을 발견하기 전에 이동을 개시했다면, 고블린의 보폭으로는 중간에 은신처를 발견하고 페르포트 마을에 정착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죠. 그렇기에.”
사르가디스와 페르포트를 잇는 산림 표기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었다. 룬 마법의 요령으로 새긴 녹색의 선이 알기 쉽게 예상 이동경로를 표시했다.
“영역다툼에서 패배한 홉 고블린이, 자신을 따르는 고블린들을 데리고 이동했을 확률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만 고블린들이 페르포트 마을 뒤에서 강을 건너왔거나 먼 거리를 우회했다는 가설보다는 합리적입니다.”
나는 PPT 발표를 할 때도 느껴지던 가슴의 갑갑함을 억지로 쥐어내서 추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숲에 흑마법사의 2번째 은신처가 있다면, 길피 길드에서 발견한 은신처와도 크게 떨어져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공무원식 아 몰랑 화법을 더해서 피니시.
시발 끝났다. 이제 집에 갈 수 있겠지?
……근데 분위기 무엇?
얼른 돌아가서 쉬다가 내일 골렘이나 잡으러 가야지~ 하고 생각하던 나는 갑분싸가 된 회의장의 분위기에 존나 불안해지고 말았다.
머지? 내가 무슨 터부라도 잘못 건드렸나?
이세계의 문화는 4년 가까이 살아온 나도 완전히 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방금 존나 열심히 설명하느라 이상한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지도에 룬 마법으로 선을 그으면 안 된다는 암묵의 룰이라도 있나? 나는 전입신고 중에 요 자를 내뱉은 이등병처럼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짝짝짝.
그때였다. 네페르티가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은.
아니, 저걸 박수라고 해도 되나? 두 손을 세우고 사이에 들어온 모기를 때리는 것 같은 박수였다.
하지만 그 독특한 박수에 호응이 일었다.
경비대장이 존나 흐뭇하게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아우둠라의 골-든 활쟁이와 마법사 길드의 대표도 박수를 쳐댔다. 벌레 씹은 표정으로 길피 길드의 아줌마도 어울려줬고 말이다.
“훌륭하오. 아주 멋진 추리였소!”
경비대장이 내 등을 두들기면서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저 사람들이 축하해 모드를 켠 이유를 눈치깠다.
‘시발!! 너무 나댔다!!’
적당히 대답이나 하고 튀면 됐을 건데, 나한테 몰려드는 시선에 그만 발표 모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갸아아악!!! 선택지 잘못 골랐다!!!!!’
장학금 타느라 노력했던 대학 시절의 여파가 이런 곳에서 나올 줄이야!
강북호 이 개새끼야! 니가 셜록 홈즈냐 시발아!!!
조졌다. 다들 내 개소리에 납득해버린 상태다. 그리고 그 개소리를 지껄인 나를 똑똑한 참모라도 보는 것처럼 보는 사람들마저 생겼다. 티르시 씨. 그 눈빛 존나 부담돼요 시발.
“노르드 씨의 의견을 마저 들어보고 싶은데, 불만 있는 분 혹시 계시오?”
그리 지껄이는 경비대장의 말에 반론이 없었다. 않이 염병 왜 없냐고. 반론해 시발.
추리 소설도 없는 세상이지만 당신네들 가끔씩 나보다 훨씬 머리 좋고 그러잖아. Stay……. 짬도 많이 먹은 인간들이 모험가 짬찌의 의견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줘…….
“저희는 이번 골렘 소동을 일으킨 사람이 예의 흑마법사가 아닐지 생각 중입니다.”
이제는 완전히 내 의견을 요구하는 태도가 된 마법사 길드 대표가 그렇게 말했다.
“저 골렘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골렘이지만, 논밭에 영양을 줘서 성장을 재촉하듯이 자연적인 발생을 ‘촉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죠.”
─슈화아아악. 그의 손 위로 구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 말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임에도 호툴루실이 썼던 마법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그니까 시발 저 골렘들이 생겨나는 것을 유도한 사람이 있다구요?
그것도 댁들이 열심히 쫓아도 어딨는지 추격도 못 하고 있는 능력 개쩌는 그레이트 씹새끼가요?
‘그른데 그걸 웨…… 져한테 말하시져…….’
아까까지는 물어볼 것만 묻고 쫓아낼 분위기였자너. 왜 갑자기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대. 저어는 그냥 멍청한 키타이 유목민이애요. 말 빵댕이 찰지게 때리는 법바께 몰라여…….
마법사 길드의 대표는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존나 개쌉진지하게 고민하고서 대답했다
“모르는레후.”
나의 지적인 답변에 넋이 나가버렸군. 입 안에서 욕을 10번 정도 반복한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고민하느라 혼잣말로 고향의 표현이 나와버렸군요. 실언이었으니 넘어가 주시겠습니까?”
“아, 그러죠. 유창한 발음이셔서 외국 분이시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운레후. 마법사 길드 대표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계속 쳐다봤다.
뭘 봐 시발. 모른다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지금 일어난 일의 추이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질문에 질문을 돌려드려서 정말 죄송하게도, 어째서 골렘과 흑마법사에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르겠군요.”
흑마법과 흙 골렘의 궁합이 좋은 건 맞다.
마법적으로 ‘흙’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상징하는 희귀한 소재였다. ‘백골이 진토되다’라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흙이란 생명이 태어나는 장소이면서 한편으로는 목숨을 잃은 생물이 되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둠과 음(陰)의 마나를 다루는 흑마법사들에게도 흙은 좋은 마법 소재였다. 카레에 김치, 라면에 김치, 그리고 김치 볶음밥에 김치처럼 서로 간에 호궁합인 것이다.
그래서 흙 골렘을 데리고 다니는 흑마법사도 많다.
이 골렘 제조 기술을 발전시킨 누더기 골렘 같은 것도 종종 있다는 모양이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골렘이 대량 발생=흑마법사가 원인임 이론은 너무 막 때려맞추는 느낌인데.’
뭔가 증거라도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물어보자 길피 길드의 아줌마가 말했다.
“저희가 저번에 발견한 은신처에서 골렘이 출몰했거든요. 그 흑마법사가 골렘 제작의 달인이라는 건 확실해요.”
“아아. 저도 시민들 사이의 소문이라면 들어 봤습니다.”
내가 솔로였던 시절에 도르카가 말했던 것도 같다. 고블린 소굴이랑 흑마법사의 은신처에서 몬스터가 나왔다고 말이다.
정작 나는 몬스터가 안 나온다던 유적에서 이세계 그린 잼민이들과의 랑데뷰를 벌였었지만.
“그렇군요. 여러분처럼 공사 다망하신 유능한 분들께서 어째서 골렘들 따위를 대처하기 위해서 모이셨나 했습니다만, 다 사르가디스의 평화를 위해서 힘 쓰고 계셨던 거였군요. 이거 참. 저도 사르가디스의 시민으로서 존경스럽습니다.”
감탄했다는 느낌으로다가 그렇게 아부를 해 줬다. 군대와 사회생활에서 습득한 21세기의 후빨을 받아랏!
내 아부에 일부 연합원들은 흐뭇해 하거나 으쓱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뽐내며 잘난 체를 해대는 것은 입꼬리가 귀에 걸린 길피 길드의 아줌마였다.
“잘 아시네요. 맞아요. 저희 연합은 이것이 흑마법사의 음모일 가능성에 대비해서 모인 집단이랍니다. 아, 발족은 당연히 저희 길피 길드였고 말이죠.”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헤이스벤트에서 듣기로는 이 사태는 고대유적에서 골렘들이 나타난 사건으로 알려져 있던 듯 합니다만?”
“허허.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발표했소이다. 흑마법사 놈이 눈치채면 곤란하지 않겠소? 실제로 골렘을 이루는 흙이 꽤 깊은 지층의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고.”
“그, 그렇군요.”
대외적이라니? 대외적이라니 시발 그게 뭔 소리여요?
그렇다면 지금 나한테 하고 있는 얘기는 대외적이지 않은 기밀사항이라는 거잖아 십새들아. 아니 왜 이제 막 일병으로 진급한 브딱이 짬찌쉑한테 기밀을 까발리고 앉은 것이지?
이런 시발. 속절없이 사건의 핵심부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에 나는 약간 오한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되나. 조폭하고 엮여가지고 형사들이랑 같이 경찰차에 타서 마약 사범 체포 얘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존나 나는 어쩌다 이런 뒤숭숭한 곳에 있게 된 걸까. 오늘은 푹 쉬고 프랑이랑 분수쇼나 퓻퓻 하면서 놀 생각이었는데.
인생이란 정말이지 앞날 일을 알 수가 없는 거구나.
“크흠. 그래서 이번 사건이 흑마법사의 짓일지도 모르니 저 같은 3류 모험가에게도 의견을 타진하셨던 거군요.”
“겸손하실 것 없습니다. 그래서── 노르드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좆도 겸손이 아닌데요. 나는 공무원식 화법을 사용해서 시간을 끌면서 오뇌했다.
‘그냥 잘 모루겠소요 거리다가 도망갈까?’
아니, 이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닐 것 같다.
방금 전까지 잘만 떠들던 새끼가 갑자기 헤헿 모르겠는대오 같은 소릴 해 봤자 의심만 살 거다.
그렇지 않아도 ‘용의자는 일단 패놓고 생각하자’는 또라이 경비대의 대표가 바로 옆에 있는 상황! 불온분자 빨갱이 낙인이 찍히면 앞으로 살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진짜 흑마법사의 음모가 연관되어 있다면 사르가디스가 좆될 수도 있다.
여기서는 나도 진지하게 대답해 두자.
“추리에 앞서서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흑마법사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가에 대해서죠.”
“동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저 같은 일반인이나 여러분들과 같이 뛰어난 영웅호걸께서는 저열한 범죄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정녕 옳은 말씀이시오.”
경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누이 말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짓은 이해 못할 놈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몸에 장수풍뎅이 유충이나 길러대는 휴먼-부엽토 새끼들의 개똥철학을 이해했다간 내 범죄계수만 조져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