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나도 눈치를 챘다.
저 팀은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과 더불어서, 네페르티티와 칼라일이 찾아낸 마법진을 해체하기 위해서 온 인력이었던 것이다!
“시발!”
하지만 내가 욕을 내뱉은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쿵쿵쿵!!
“이거 열어!! 내보내 달라고!!”
우리가 달려가는 곳에 결계를 통과하지 못한 모험가들이 잔뜩 있었던 것이다. 이 결계는 역시 안에 갇힌 사람을 가두는 결계였다!
‘뭐야?’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일부 모험가들은 벌써 결계의 바깥으로 빠져나간 것이 아닌가!
처음부터 결계 바깥에 나가지 못한 거라고 보기에는 아예 결계를 왔다갔다 하면서 조급해 하는 사람도 많았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왜 나만 빠져나갈 수 있는 건데!!”
“크레이시!! 힘내!!”
빠져오지 못하는 동료들을 보며 모험가들은 동료를 밖에서 잡아당기거나 안에서 밀면서 발버둥을 쳤다.
안에 갇힌 모험가들도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계를 뚫지는 못하는 듯 했다.
─꾸구구국!
그들은 판토마임을 방불케 하는 몸짓으로 푸른 결계의 벽에 가로막혔다. 그 코앞에서 결계에 반쯤 몸을 통과한 동료가 있는데도 말이다!
─치이익!
우리 파티도 결계의 끝에 도착했다. 나는 우선은 다짜고짜 검을 결계에 휘둘렀다.
─부우웅! 바람을 가른 검은 결계를 홀로그램 영상처럼 통과했다. 칼날을 확인했지만 날이 상하거나 고장난 부분은 없었다.
“……젠장.”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내 손은 결계의 푸른 막에 닿자마자 굳건한 성벽이라도 밀고 있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마법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티르시가 다가와서 물었다. 나는 마법사인 그녀가 나한테 마법에 대해서 묻는 것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저번에 보여준 추리쇼 흉내가 상당히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위험한 결계로는 안 보입니다. 저기서도 계속 오가면서 통과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요.”
결계 안팎을 왕복하는 모험가를 가리키는 나.
저 사람들이 멀쩡한 것도 그렇고, 땅에서 느껴지는 사악한 마나와는 달리 결계에서는 신성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아마도 이것은 광범위의 실드 마법과 비슷한 물리적인 결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 결계로 사람들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골렘으로 때려 죽이려는 목적이겠지.
“나도 만져볼게.”
프랑이 링링이 3호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해.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후후. 걱정도 많다니까.”
긴장을 웃음으로 숨긴 프랑이 결계를 만졌다. 통과는── 되지 않는다.
혀를 찰 뻔 한 것을 참고 다른 일행을 보았다. 결계에서 더 가까운 곳에 있던 티르시가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꺗, 앗!”
아무런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는지 티르시는 발을 헛디디며 결계 밖으로 빠져나갔다. 당혹스런 눈치로 다시 손을 뻗지만 이번에도 쉽게 통과했다.
“제 차례네요.”
라리루라가 링링이 3호를 전진시켰다. 통과한다. 다음으로 라리루라 자신도 시도하고, 거짓말처럼 쉽게 통과했다.
“나랑 노르만 남았네.”
프랑이 그리 중얼거리자 라리루라는 고민하더니 다시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너 임마. 왜 다시 들어와?”
“후후. 여기서 안녕히 계세요~ 하는 취향은 없어서요! 저 골렘들을 다 처리하고 마법진인가 뭔가 하는 걸 지워버리면 탈출 대성공이잖아요♡?”
“라리루라 씨라고 하셨나요? 좋은 의견이에요.”
─스윽. 티르시도 결계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의리가 있는 건 좋지만 무모한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골렘들이 접근해오는 것을 깨닫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대갈통을 풀가동해서 옆에 있는 모험가들에게도 소리쳤다.
“거기 못 빠져나가신 분들!! 이리로 오십쇼!!”
“뭐, 뭐?”
“어차피 빠져나가지도 못하니 저것들부터 해치웁시다!! 다른 뾰족한 수단이 없으면 오십쇼! 떨어져 있으면 죽습니다!”
저 안쪽에서 골드 클래스 모험가 팀이 골렘들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저들이 해결할 때까지만 버티면 될 일이었다.
“티자일! 너는 사르가디스에 알리러 가!”
“이, 이보게! 자네들도 안에 들어와서 같이 싸워주── 이 씨발!! 도망치지 마, 개새끼들아!!”
모험가들은 각자 파티원들과의 신뢰를 확인한다는 과정을 거치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모였다.
동료들이 같이 싸우려 들어와 준 사람들, 동료들에게 버려진 사람들, 동료를 보낸 사람들.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우리 파티를 빼고도 10명의 인원이 늘어났다.
그리고 나는 100미터 정도 바깥에서 뛰어오는 골렘들을 보면서 연거푸 머리를 굴려대고 있었다.
‘이건 함정인가? 함정이라면 무슨 목적이지? 우리 중에서 노리는 사람이 있나?’
아니, 그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모험가다. 몇몇 사람만 노릴 생각이었다면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었다.
고작 골드 클래스 이하의 모험가를 낚으려고 이렇게 거창한 함정을 깔았겠는가? 그건 시간과 인력의 낭비였다.
그렇다면 뭐지?
‘뭐가 목적이어서 이런 함정을 팠지?’
그렇게 내가 몰려드는 강화 골렘을 경계하기보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 더 머리를 쓰던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결계의 정중앙에서 ‘흙더미가 일어섰다’.
그렇게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쿠우웅!! 쿠우웅!! 쿠우우우웅!!!
그 흙더미는 골렘들이 나오던 구덩이에서 무슨 좁은 개구멍에서 빠져나오기라도 하듯이 천천히 벗어났다.
내 눈에 그것은── 신장 30미터를 넘는 거대한 골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 아. 안녕들 하신가. 우매한 인간 여러분.”
그 골렘의 어깨에 탄 로브의 남자가 말했다. 결계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커다랗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아비두스-누비. 흑마법사다.”
그 이상의 표현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결한 자기소개였다.
─쿠우웅!! 쿠우웅!!
흑마법사 놈은 그렇게 말하고 골렘을 전진시켰다. 나는 그 미치도록 큰 골렘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왜 사르포트 숲에 있다는 흑마법사가 여기 튀어나오고 지랄이라는 말인가!
‘그 병신 같은 촌구석 길드장 새끼들!!’
잘난 척은 다 하면서 호기롭게 지껄이더니만,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저 놈한테 그대로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공간이동 마법이 고대의 유산으로 취급되는 이세계다. 저 새끼가 포위망을 뚫고 여기로 왔겠는가? 그도 아니면 북괴 빨갱이들 마냥 땅굴이라도 팠겠는가?
전부 개소리다. 저 흑마법사 놈은 처음부터 여기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였나! 그래서 실버 클래스 팀의 생존자가 살아 돌아왔던 건가!’
─콰과광!!
뇌리에 번개가 치면서 의문이 풀리는 감각이 들었다.
실버 클래스 팀의 생존자는 죽은 척을 해서 흑마법사와 조우하고도 살아 돌아왔다고 했다. 그 모험가의 목격 증언을 바탕으로 연합은 사르포트 숲을 타겟으로 한 기습작전을 설립했고 말이다.
그런데 그건 존나 얼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소리였다.
흑마법사가 암만 병신이어도 자신을 추격하는 모험가들의 존재는 눈치를 깠을 것이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새끼라면 그들을 피해서 숨을 죽이는 것이 보통이다.
만에 하나 목격당해도 도망치든가 숨고 말았지, 추격팀을 죽여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 추격팀이 죽으면 사르가디스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되니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했다면, 자기 부랄의 수술을 직접 집도하는 모태솔로 외과의사처럼 신중하고 확실하게 후환을 제거했을 것이다.
싸움에 몸을 두는 사람들에게 확인사살은 기본!
저런 범죄자 새끼가 흔적을 지우고 시체를 숨기는 등의 증거인멸을 깜빡했을 리가 없다!
‘──일부러였어.’
사고가 번뜩였다. 나의 엘리트-대갈통이 부족한 정보를 조합하여 퍼즐의 일부를 완성한 것이었다.
‘일부러 살려서 보낸 거야! 전부 함정이었어!’
그게 확인사살을 안 한 이유였다.
안 한 거다. 흑마법사 새끼는 확인사살을 못한 것도, 깜빡한 것도 아니고, ‘안 했던’ 것이다!
자신의 정보를 가지고 돌려보내는 것으로, 사르가디스의 주 전력을 사르포트 숲에 집결시키기 위해서!
‘이쪽이 함정인 게 아니야! 사르포트 숲과 골렘의 발생지, 양쪽 모두 함정이다!’
아마 목격됐다는 흑마법사도 가짜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까짓 거, 적당하게 작은 골렘에다가 로브를 씌워서 피부만 가려도 되니까.
자율이동 기능을 붙인 골렘에 더미 인형을 태우면 수준이 낮은 모험가들은 그것을 ‘골렘을 조종하는 흑마법사’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저 놈은 그것까지 감안해서 가짜에게 실버 클래스 팀을 습격시킨 것은 아닐까?
그게 사실이라면 숲 방면에도 모종의 함정을 깔아놨겠지. 이 결계처럼 사르가디스의 주 전력을 가둬놓고 사르가디스를 습격하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POOOOO──!!”
그렇게 추리하기까지 약 10초 정도 걸렸을까. 강화된 골렘들이 우리들의 10미터 앞까지 접근했다. 나는 당장 도움이 안 될 추리를 때려치고 전투에 집중했다.
“<응집 탐지(Detect Coagulation)>!!”
─휘이잉!! 티르시가 주문을 외자 빛무리가 몰아쳤다.
바람처럼 분 빛의 가루는 골렘들에게 달라붙었다. 그러자 놈들의 몸통에서 동그랗게 빛나는 부분이 생겨났다!
“빛나는 곳이 마나가 응집된 부분이에요! 거기가 코어일 가능성이 큽니다!”
“고맙소이다!!”
“저길 노려!! 화살을 쏴!!”
모험가들은 팀 단위로 진형을 짰다. 나는 검으로 상단세를 잡았다. 굳어서 돌멩이처럼 변했으니 <얼어붙는 손길>은 생략해도 될 것이었다.
“시발 내 앞에서 꺼져!!”
─투콱!!
내 완력을 실은 검은 바위를 베어가르고 코어를 박살냈다. 씹창난 전리품을 아깝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목숨보다 귀한 돈은 없으니까.
“에잇!!”
라리루라도 링링이 3호의 손가락으로 <마법의 화살(Magick Missile)>을 쐈다. 프랑은 나이프를 던져보고 골렘의 피부를 뚫지 못하자 망치로 무기를 바꿨다.
“<화염구(Fireball)>!!”
“도끼 나가신다!!”
─퍽!! 투퍼퍽!!
모험가들도 각자 활약하고 있다. 강화된 골렘은 어떻게든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쿠우웅!! 쿠우우웅!!!
문제는 저 골렘이다. 나는 접근해 오는 골렘의 덩치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씨이이발! 존나 크네!!”
높이 30미터.
대충 감으로 찍은 거지만 대충 그 정도였다.
개씨발 30미터라니? 존나 그게 얼마나 커다란 크기인지 상상이 가는가? 나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짐작 못 했었다.
사실 나는 지구에 살던 시절에는 소설 등에서 30미터니 50미터니 하는 크기의 적이 나와도 좆도 커다랗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고등학교 운동장도 기본 200미터는 한다. 50미터 달리기 측정도 해 본 나로서는 ‘에게? 고작 30미터?’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데 시발 직접 보니까 또 다르네요!’
개 크다. 존나 크다. 저 미친 사이즈감 때문에 원근감에게 뇌를 강간당하는 기분이었다.
3층짜리 고등학교 3배를 넘는 크기!
가로로도 어지간한 체육관보다는 큰 것 같다!
그런 빅-사이즈 골렘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다.
존나 과장 하나도 안 하고 앞으로 3분 쯤 지나면 이 결계 안에는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사람밖에 안 남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저것이 여기로 달려오면 아마 거의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었다. 시발 이렇게 말하는 나도 당장 튀고 싶을 정도니까 말이다.
“팀 비리디언!! 3번 진형!!”
그때 골드 클래스 모험가가 외쳤다. 마법사, 도적, 그리고 아까 전까지는 브딱이들을 치료하느라 후방에 있던 사제까지 4명의 팀이 흑마법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흑마법사는 그들을 굽어보면서 멀리 울려퍼지는 목소리로 클클거렸다.
“좋군. 새로 만든 크누무트의 스펙을 시험하게 해 다오!”
거대 골렘이 주먹을 들었다. 덩치에 어울리는 느릿느릿한 움직임!
그래도 크기가 크기였기에 속도는 빠른 편이었다. 키가 큰 사람은 보폭이 길어서 발이 빠른 것과 같은 이치다.
“산개! 보조! 탐색!”
리더의 지시어에 반응하면서 골드 클래스 모험가 팀은 저 미친 초대형 골렘을 상대로 주눅들지 않고 맞섰다! 시발럼들 존나 믿음직스럽네!
“노르! 결계가 움직여!”
망치로 골렘을 두들기던 프랑이 외쳤다. 결계가? 나는 그 말에 하늘과 땅의 마법진을 번갈아 보았다.
아까까지 우리 등 뒤에 있던 푸른 막이 30미터 넘게 뒤로 후퇴해 있었다. 엄청난 이동속도였다.
“결계의 중심은 저 거대 골렘이에요! 골렘이 전진해 올 때마다 결계가 후퇴했어요!”
뛰어난 관찰력으로 설명하는 티르시. 주의 깊게 보니까 그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골렘 놈의 움직임에 호응하듯이 하늘과 땅의 결계가 움직였다!
‘아니,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푸른 막의 결계에서는 신성마법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이건 어딜 어떻게 봐도 흑마법과는 거리가 먼 마법이다.
마법에는 적성이라는 게 있다. 프랑이 <얼어붙는 손길>을 배우지 못했고, 인간이 흑마법을 배우면 부작용으로 몸이 벌레 먹히거나 살이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그런데 또 땅의 결계는 틀림없이 흑마법이야.’
지면을 꿈틀거리는 사악한 마나는 잘못 볼 여지가 없었다.
신성마법과 흑마법! 그 2개를 동시에 쓰다니?
그런 건 흑마법사 할애비가 와도 불가능하다! 부패한 대사제가 애미애비를 악마한테 선제시 급매로 팔아치우고 흑마법을 배웠어도, 성향이 정 반대인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