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따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마찬가지인 모순이다!
그러므로── 이 모순을 해결하는 원리에 저 흑마법사 놈의 약점이나 파훼 패턴이 있을 것이다!
“열려라, 벡안!!”
나는 골렘을 상대하면서 거대 골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지구용사 벡터맨의 힘이 깃든 안력은 나를 매의 눈으로 만들어 주었다. 골드 클래스 모험가 팀의 전투가 잘 보였다.
“<대화재(Tremendous Fire)>!!”
마법사가 불꽃 마법으로 흑마법사를 공격했다. 골렘 위에 무방비하게 올라타고 있는 술사를 노린 것이었다.
화염방사기처럼 뿜어진 시뻘건 불꽃의 혀가 흑마법사를 집어삼키기 전에, 흑마법사가 기다란 지팡이를 흔들었다.
《나는 나의 집을 황금으로 꾸몄노라(iw ir.n.i n.i pr sXkrw m nbw).》
나르메르-나일의 언어였다.
─키이잉!! 구(球)형의 황금색 실드가 나타나서 불꽃으로부터 놈을 지켰다. 털 한 올 타지 않은 흑마법사가 입꼬리를 비트는 것이 보였다.
“인간의 수준 낮은 마법이로군. 네놈부터 죽여주마.”
“벌레먹이 새끼한테 뒤질 쏘냐!”
마법사가 골렘의 주먹을 피했다.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인지 상당히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거기까지 지켜보다가 눈치챘다.
‘알았다! 결계의 기점이 달라!’
하늘과 땅, 2개의 결계는 그 움직임에 아주 약간 오차가 있었다. 거의 미미한 차이였지만 내 눈은 그 차이를 간파해냈다.
‘하늘의 결계는 흑마법사가, 땅의 결계는 골렘이 주체다!’
나는 골렘 1마리의 코어를 때려부수며 티르시에게 물었다.
“티르시! 골렘이 마법을 쓸 수도 있습니까?! 술사로부터 마나를 받지 않고요!”
“상당히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지만, 가능은 해요!!”
빠른 대답에 감사하며 결론을 내렸다.
저 흑마법사 새끼는 신성마법에 적성이 높은 마법사다.
이 넓은 범위를 결계로 덮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
저번에 하수도에서 티르시가 펼쳤던 방어마법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그때 티르시는 마법의 범위를 넓히느라고 유지시간이 대폭 깎였었는데, 저 놈은 황야를 뒤덮는 결계를 이 긴 시간 동안 지속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흑마법의 부작용을 더욱 강하게 받을 거야!’
마법의 적성이 신성마법 쪽에 있다면 정 반대 성향인 흑마법의 부작용은 몹시 커다랄 것이었다.
놈은 그런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거대 골렘에게 자기 대신 흑마법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저 골렘은 외형은 커다란 흙 골렘에 불과하지만 그 정체는 특제품인 마법 발생장치였다.
흙은 죽음을 상징하는 매개체! 저 새끼가 직접 흑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부작용도 없고 위력도 강해진다!
“근데 시발 이건 약점이 아니잖아!!”
밀려드는 빡침에 골렘을 쓰러트리며 외치는 나였다.
아니, 따지고 보면 이것도 분명 약점이긴 하다. 그치만 이것만 가지고는 해결책이 못 된다.
거대 골렘을 쓰러트려버리면 흑마법사 놈이 흑마법 고자가 되긴 할 것이다. 존나 시발 쓰러트릴 수 있으면 말이다.
높이 30미터에 떡대도 우람한 흙 골렘을 무슨 수로 해치우라는 말인가. 저건 미사일이라도 맞추지 않고서는 못 잡는다!
“애1미 시발!! 니들 애비는 인성이 개터졌구나!!”
─퍼석!! 나는 분개하며 잡몹 골렘을 쓰러트렸다.
코어가 박살나자 무너지는 돌멩이 골렘. 남아있던 골렘의 숫자가 적었기에 이 새끼로 땡이었다.
우리 파티 말고도 다른 모험가들이 어그로를 분산시켜 줬기에 꽤 어렵지 않게 버텨낸 것이었다. 나도 3마리의 코어를 직접 부섰다.
─슈와아아아악!!
마나 계승이 일어나서 약 20%의 숙련도가 찼다.
룬 마법을 하나 더 배운다고 이런 좆망한 아수라장에서 무슨 보탬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이걸로 당장 죽을 일은 없어진 건가?”
동료에게 버려졌던 모험가가 읊조렸다. 안쪽에서 벌어지는 거대 골렘과의 레이드 전투를 의식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나는 마나 포션을 마시면서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쉬고 있어. 저 골렘이 다가오면 도망쳐야 돼.”
“결계는 어쩌구?”
“이 결계는 저 놈들이 움직이는대로 이동하니까, 거기에 맞춰서 도망칠 수는 있어.”
빠져나가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포션에서 입을 떼고 라리루라한테 줬다.
“라리루라. 너도 이거 마셔둬.”
라리루라가 반 병 남은 포션을 원샷했다. 꼭두각시의 조종에는 마나를 쓴다. 티르시는 자기 몫을 마시고 있었고, 프랑은 마나를 못 쓰니까 마시지 않아도 됐다.
‘사르포트 숲 쪽은?’
반투명한 결계 바깥을 내다보면서 나는 안력에 마나를 집중했다. ᚲ(Kenaz)의 룬으로 오감까지 강화했다.
보였다.
너무 멀어서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무가 울창한 숲에도 푸른 결계가 있었다.
‘역시 저쪽도 함정에 걸렸나.’
아마 우리보다 더 악랄하고 강력한 함정이 아닐까. 저기에 갇힌 길드장들도 쉽게 빠져나오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때였다. 아까 골드 클래스 모험가에게 불평을 하던 마른 모험가가 숨을 들이켰다.
시발 또 뭐야! 뒤를 확인한 나는 우리와 거대 골렘 사이에 날아오는 무언가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공격용 무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는 마법사! 거대 골렘과 싸우던 골드 클래스 팀의 한 사람이 공격에 맞아서 날아간 것이었다!!
“크하하하하!! 누가 벌레인지 모르겠군! 발에 차인 풍뎅이 같구나!!”
“이 개자식이!!!”
팀의 리더가 포효하면서 거대 골렘의 다리를 베었다. 그의 검은 골렘의 다리를 잘라냈지만 거대 골렘은 재생기능까지 있는지 금방 회복해버리고 말았다.
─푸슛!
뒤로 돌아간 도적이 화살을 쐈다. 흑마법사가 리더의 분노에 시선이 끌린 틈에 기습을 가한 것이었다.
─태앵! 튕겨나가는 화살! 도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흑마법사를 지킨 것은 푸른색의 신성마법 결계였다. 아까 전과 같은 황금색 실드가 아니라, 패시브로 발동해 놓은 방어마법인 듯 했다.
“크하하하하하!! 크누무트여!! 준비해라!!”
쿠르르르륵─!
거대 골렘이 주인의 지시에 따라서 자신의 가슴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커다란 손이 휘둘러지자 검은색의 자갈이 황야에 쏟아졌다.
─우수수수수수!!
“어어어어억!!”
나는 그 돌멩이의 정체를 깨닫고 기절할 뻔 했다!
개씨발!! 땅에 쏟아진 돌멩이는 모두 골렘의 코어였다!!!
《태양신의 아들, 아메넴헤트의 진성(眞聲), 진리의 계시를 통해 선언한다(sA ra imn-m-Hat mAa-xrw Dd.fm wpt mAat).》
흑마법사는 우리더러 들으라는 듯이 주문을 외웠다.
《──신으로서 일어나라(Dd.f xa m nTr).》
─퍼서서석!!
수십 마리의 바위 골렘이 지면에서 피어났다.
흙 골렘보다 훨씬 강해 보이는 골렘이었다. 그 놈들은 태어나자마자 거대 골렘이 내뿜는 흑마법 오라에 버프를 받아서 변화를 일으켰다.
“GOGOGOGOGOGO──!!!!”
“Goooooooooooooooo!!"
─우드드득!!
까맣게 물든 골렘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바위 골렘의 소대가 완성된 것이었다.
흑마법사는 지팡이를 들고 홍소를 울렸다.
“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 광역공격이 가능한 마법사는 남아 있는가! 만약 남았다면 시도해 봐라! 나와 크누무트가 친히 죽이러 가 주마!!!”
“저 시불쟝 새기가.”
잔혹한 선언에 나는 욕밖에 돌려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저 똑똑한 씹새끼는 자기 군대를 1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마법사를 처리할 때까지 병력을 아껴둔 모양이었다.
흑마법의 부작용으로 미쳐버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존나 애미 애미도 없는 흑마법사 새끼답지 않은 작전 설계였다. 나로서는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노르.”
─멈칫.
나는 프랑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말 한 마디 않고도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남아준 걸로 충분하다. 이 이상의 의리는 프랑도 나도 바라지 않았다.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한테 같이 죽어주길 바라는 것은 너무 염치 없지 않은가.
“──티르시. 라리루라.”
나는 그들에게 먼저 도망가라고 말하려고 했다.
아마 프랑이랑 눈이 마주친 것이 몇 초만 더 빨랐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쐐애애애애액!!!
하지만 그 말이 내 입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없었다. 결계 밖에서 빠르게 접근해 오는 거대한 마나에 내 머리는 나도 모르게 그쪽을 쳐다봤다.
─타앗!!
미사일을 방불케 하는 기세로 달려온 인물은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발치에서 지뢰가 폭발해도 저렇게 높이는 못 뛸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엄청난 도약이었다.
《사막의 뱀과 같이(r-Hr.i ir.kwi mi sA-tA n smt).》
짧은 나르메르-나일 어! 흑마법사의 음산한 주문과는 느낌이 전혀 다른 주문을 외우며 그 여성은 손에 든 채찍을 휘둘렀다.
─촤라라락!! 뱀처럼 춤을 추는 채찍은 엄청나게 길어져서 하늘색의 오러를 뿜었다!!
─투콰콰콰콰쾅!!!
내 허리 굵기의 빛을 휘감은 채찍이 4번 번뜩이자 황야에 태어난 바위 골렘들은 폭격에 맞은 것처럼 터져나갔다.
터무니없는 위력! 하지만 어딘가 낯익은 공격이기도 했다. 내 눈이 안와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착지하는 하늘색 머리의 여성. 향년 2분 정도였던 골렘들의 주위에 내려선 그녀는 멀리 보이는 흑마법사를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찾았다.”
─짜아악! 내려진 채찍이 바닥을 헤집었다.
사르가디스 최강의 모험가가 등장한 것이었다.
세크메트 길드는 나르메르-나일에서 시작된 모험가 길드다.
나르메르-나일은 예로부터 풍족한 자원과 넓은 평야를 가진 나라였다. 그 지리적 이점은 나르메르 인들의 국가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되었다.
문제는 살기 좋은 땅에 몰려드는 것은 선량한 인간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국토 곳곳에 암약하는 흑마법사들과, 수많은 몬스터!
나르메르-나일의 역사는 평화를 위협하는 적들에게 맞서서 나라를 지키는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세크메트 길드는 그렇게 핏기가 많은 나라에서 발족한 모험가 길드.
그런 그들이 몬스터 퇴치를 전문으로 삼게 된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거지가 있는 나르메르-나일까지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미스릴 플레이트를 몸에 대는 것을 허락받은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
자신의 길드를 창립할 자격이 생기는 ‘마스터 클래스’의 바로 아랫 단계!
미스릴 클래스란 그런 위치였다.
─쐐애애액!!!
그래서 나는 놀라지 않았다.
미스릴 클래스 모험가인 네페르티티가 단신으로 흑마법사의 함정을 빠져나온 것에도, 저 거대한 골렘에게 아무렇지 않게 달려든 것에도 말이다.
─슈르르르르르륵!!!
승마 채찍처럼 짧은 네페르티티의 무게는 휘두를 때마다 무시무시하게 신축했다. 두꺼운 오라를 감은 채찍이 미쳐 날뛰는 이무기처럼 흑마법사를 쳤다.
─투콰아아아아앙!!
제트기가 추락하는 것만 같은 굉음!
오러의 이무기는 흑마법사의 몸을 두들겼지만 놈은 골렘의 어깨에서 떨어지지조차 않았다. 도적의 화살을 막은 것과 똑같은 푸른 막의 결계가 발동한 것이다.
《왔구나!! 네페르티티──!!》
흑마법사는 채찍의 공격을 막고서 광소를 터트렸다. 로브의 후드가 벗겨져서 그 새끼의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났다.
‘씹새가 존나 못생겼네.’
이마에는 혹인지 뭔지가 커다랗게 났고 얼굴의 절반은 무너진 것처럼 흉측했다. 네페르티티는 채찍을 되돌리며 눈을 반개했다.
《아비두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아.》
《해 봐라!! 오늘이야말로 네년이 내 골렘이 되거나, 내가 네년의 뱀에 잡아먹히는 날이다!!》
흑마법사가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이 크게 외치던 방금 전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빠르고 조용한 영창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주문을 영창한 흑마법사가 결계를 바꿨다.
하늘의 결계가 붉은색으로 바뀌고 땅의 결계가 꺼졌다. 거대 골렘의 몸이 검게 물들고 주둥이가 벌려졌다.
그 모습은 마치 배에 올라타서 처음 보는 밤바다처럼 막연한 불길함과 오한을 일으켰다. 생물로서의 본능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사악한 마나! 흑마법이었다.
“FOOOOOOOOOOOOOOOO──!!”
거대 골렘이 포효했다. 골렘을 강화하던 마나를 전부 흡수한 듯한 모습이었다.
파아아아아앗─!!
“시발?!”
결계의 변화는 멍청하게 지켜보던 브딱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붉게 변한 결계는 범위가 축소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휘말려들게 만든 것이었다!
“와와와와왓!!”
“꺄아아아앗?!”
푸른 결계는 빠져나갈 수 있었던 라리루라와 티르시마저 이 결계는 통과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우리는 그야말로 좁혀드는 모기망에 속절없이 밀려나는 모기들과 같은 추태를 뽐내며 거대 골렘 주변의 100미터까지 굴러가고야 말았다.
─촤아아악!
골렘을 올려다보게 될 거리까지 끌려온 브딱이들! 그것을 지켜본 네페르티티가 골드 클래스 모험가들을 쳐다봤다.
“미안. 방해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