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장애물 취급을 받은 그들은 전혀 분한 기색 없이 후퇴했다.
“필립스!! 잭슨의 상처를 봐 줘!! 너희는 날 따라서 멀리 물러선다!! 네페르티티님의 전투를 방해하지 마!!”
우렁차게 대답한 브딱이들은 허겁지겁 후퇴했다. 우리 파티도 거기에 껴 있었고 말이다.
저 전투를 직관하고서 명령에 불복종하는 병신은 없었다.
─투쾅!! 쿠르르르릉!!
거대 골렘이 폭주트럭처럼 고속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30미터의 크기가 있음에도 주먹의 끝이 흐릿해질 정도의 초고속 펀치였다. 질량과 속도의 조합은 네페르티티가 피한 지면을 크레이터처럼 갈아엎었다.
─슈르르르르륵!! 쩌어억!!
반격하는 네페르티티. 오러의 이무기가 번개처럼 번쩍여서 골렘의 팔꿈치를 두들겼다.
폭발사산하는 팔! 하지만 무표정하던 네페르티티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박살난 거대 골렘의 팔이 2초도 안 되는 순간에 재생한 것이었다.
흑마법사는 재생한 골렘의 팔로 공격을 날리면서 조롱하는 것처럼 소리쳤다.
《크하하하하!! 마음에 드나, 네페르티티!! 크누무트는 오직 너만을 위해서 새롭게 만든 특제품이다!!》
《……쓰러질 때까지 공격할 뿐.》
네페르티티는 한손의 채찍을 연속해서 휘둘렀다. 맹렬한 채찍 세례가 거대 골렘의 전신을 두들겼다.
─쿠르르르르릉!!!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무너지는 듯한 공방이었다.
공기를 찢는 채찍의 파공음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고 쓰나미처럼 날뛰는 30미터의 골렘은 원근감을 무너트릴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다른 모험가들이랑 같이 뒤로 물러난 나는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흑마법사 본인은 공격하지 않는 건가?’
떠오르는 것은 아까 전에 공격당한 마법사였다.
그는 용케 즉사하지 않았는지 내 근처에서 사제의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흑마법사는 분명히 그의 공격에는 마법을 써가면서까지 방어했었다.
그런데 네페르티티의 공격은 푸른 결계만으로 막았다.
‘차이점은 하나.’
그 공격이 마법인가, 아닌가다.
마나라면 네페르티티의 채찍도 오러를 감고 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푸른 결계는 물리적인 방어력만을 높인 실드가 아닐까?
‘하늘의 결계도 그랬잖아.’
아무렇게나 통과할 수 있는 사람과 전혀 통과할 수 없는 사람이 나뉘었던 하늘의 결계.
뭘 기준으로 통과시키고 말고를 정하는지는 몰라도 일부러 빠져나가는 사람을 정해둘 이유는 없지 않은가. 실버 클래스 팀의 생존자를 살려 보냈던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대화 분위기를 보면 네페르티티와 저 새끼는 아는 사이다.
미스릴 클래스인 네페르티티가 이런 시골 도시에 있는 게 저 새끼를 쫓아왔기 때문이었다면?
오랜 시간이 걸린 함정이 전부 네페르티티를 끌여들여서 죽이기 위해서였다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위험해.’
보통 위험한 것이 아니라 존나게 위험했다.
흑마법사 새끼는 최소 미스릴 클래스였다. 네페르티티와 정면에서 치고받고 있으니까 100% 틀림없다.
그런 놈이 시간을 들여서 네페르티티를 죽이기 위한 대책을 짜 온 것이다.
재생하는 골렘에 물리 내성 실드는 네페르티티의 공격을 무효로 하기 위한 준비가 아닐까?
그리고 붉은 결계는 자신을 죽이러 온 네페르티티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발동한 덫이겠지. 저 새끼가 범위를 줄이고 나서부터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게 됐으니까!
‘시발. 좆 됐네.’
다른 길드장들은 아직도 숲의 함정에서 못 빠져나왔다.
흑마법사 새끼는 네페르티티도 길드장들도 다 죽이고 나서는 사르가디스로 우랴돌격을 감행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뭣보다 우리도 존나 이 결계 안에 갇혀버리지 않았는가! 네페르티티가 진다면 우리도 원쁠원으로 토마토 쥬스가 될 것은 7살배기 잼민이도 눈치깔 일이었다!
─쾅쾅쾅쾅쾅!!
유성우처럼 지면을 난타하는 거대 골렘! 네페르티니는 그런 광범위한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내고 쳐냈다.
《여전히 잽싸군!! 네년이라면 내 골렘의 영혼 동력로로서 일급품이 될 것이다!!》
흑마법사는 날뛰는 골렘의 어깨에서 당당하게 서서 탐욕스럽게 지껄였다.
《네페르티티!! 나의 것이 되어라!! 네년이 나의 골렘이 된다면 나는 육망성의 좌에 오를 수 있다!!》
《……흑마법사는 내가 모두 명부로 보낼 거야. 너도, 다른 임모르탈리스도.》
《크하하하하!! 오만한 꿈이로군!! 내 골렘의 안에서 마저 꾸도록 해라!!》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모르는 단어 투성이였다. 그래도 알아들은 표현도 있었다.
‘영혼 동력로?’
머릿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흑마법사 하면 언데드. 언데드 하면 강령술(Necromancy) 아니던가.
골렘이 너무 씹사기여서 깜빡했었다. 흑마법사라면 골렘이 아니라 언데드를 주요 병력으로 쓰는 것이 정상인데, 저 혹부랄 와꾸 병신은 아까부터 골렘만 쓰고 있었다.
그건 흑마법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만이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이상했다. 골렘을 만들기만 했다면 흑마법을 배울 필요가 없지 않나? 성격이 파탄난 마법사라도 흑마법에 손을 대는 건 보통 미친 새끼가 아니고서는 안 하는 짓인데?
‘──놈이 주력으로 쓰는 흑마법은 뭐지?’
나는 골렘이 마법을 쓸 수 있는 이유를 생각했다.
링링이 3호의 매직 미사일처럼 안에 마법진을 새겨놓은 거라면 그걸 발동하는 흑마법사에게 부작용이 갈 것이었다. 마법을 발동하는 마나는 본인에게서 가져가는 것이니까.
흑마법의 부작용은 육체를 가진 생물에게 적용되는 것.
생명이기 때문에 어둠과 음의 마나에 적성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이미 죽은 ‘영혼’이라면?’
놈이 말한 ‘영혼 동력로’라는 건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미스릴 클래스인 네페르티티의 혼이라면 보다 강력한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골렘을 제작하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에게도 이 상황을 역전할 수단이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내 안에서 룬의 마나가 눈을 떴다.
내가 펼치려는 건 거창한 마법이나 비장의 수라고는 말하기 힘든 잡기(雜技)였다. 여러 번 하는 말이지만 인간이 다루는 룬 마법은 서포트 수준에 그치니까.
─언어의 역할은 말하고, 듣고, 쓰고, 전하는 것.
바이콘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이지 그 말이 틀린 게 하나 없었다.
룬 어도 근본은 언어다. 마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알파벳과 같은 글자의 일종인 것이었다.
자아내라. 룬 문자의 첫 음절을.
그것은 ‘입’을 뜻하는 가장 최초의 룬 문자였다. 입에서 자아내는 소리는 언어가 지닌 가장 원시적인 면모이기에, 이 글자는 ‘뜻을 전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음유시인의 재치이자 마술사의 지혜를 상징하는 글자.
─시와 전설 그리고 예언의 룬.
그 이름은.
“──ᚨ(Ansuz).”
나는 가장 많은 뜻을 가진 최초의 룬 문자를 읊었다.
지면에 새기는 ᚨ(Ansuz)의 룬은 명부로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혼백을 위령(慰靈)하는 효과를 지녔다.
저 혹부랄 새끼가 지껄이던 ‘영혼 동력로’가 진짜로 혼을 사용하는 흑마법이라면 무언가 반응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내 지리멸렬인 추리는 들어맞았다.
─Ooooooo…….
─괴로워…….
네페르티티가 개박살을 내놓은 골렘들의 돌무더기에서 하얗고 반투명한 연기 같은 것이 새어나왔다! 그것들은 부정형의 형태를 가진 유령처럼 옛 브리타니아 어를 중얼거렸다!
─차가운 흙……. 나를 묶는 저주인가…….
─햇빛 아래에서도 얼어붙을 듯 하구나…….
─거룩한 태양이시여…… 우리를 심판하소서…….
골렘에게 묶여 있는 지박령처럼 그들은 하늘을 그리워했다. 해방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이들은 서럽게 한탄했다.
‘다른 모험가들에게는 안 보이는 건가?’
소름 끼치는 형태의 영혼들이 솟아났는데도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영혼이란 그런 것이었다. 사후세계가 존재하는 듯한 이세계지만 생명의 영혼이란 오직 술법과 의식을 통해 영감을 갈고 닦은 이만이 보고 만지고 다룰 수 있는 것이였기에.
─두근!!
나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크게 뛴다!
룬 마법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것은 내 마법이 지나치게 성공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구원을…….
─안식을…….
저들의 슬픔과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흑마법사가 세상 천지의 유적이나 묘지에서 긁어모은 모양인지 영혼들은 모습도 시대상도 너무 달랐다. 저 새끼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골렘의 인공지능 겸 동력으로 삼았던 것이다!
나는 거대 골렘을 보았다. 30미터를 넘는 큰 골렘의 배에 하얀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저것이 거대 골렘을 움직이는 동력로!
《──쓰레기 놈들의 영혼이?! 어떻게!!》
미친 듯이 웃으며 네페르티티를 공격하던 흑마법사 새끼도 황야에 버려진 영혼들의 움직임을 눈치챘다.
《네놈이구나!!》
얼굴이 싹 굳은 흑마법사는 내가 범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거대 골렘을 이쪽으로 전진시켰다!
저 또라이 새끼는 내가 벌인 일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아니, 생각해 보면 저 새끼는 나보다 훨씬 영혼을 다루는 것에 조예가 깊은 놈이다. 눈치를 못 채는 게 더 이상한가!
“끄아아아아아악!! 골렘이 온다!! 도, 도망쳐!!”
“크윽?! 갑자기 왜?!”
30미터의 골렘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다! 안 그래도 보폭이 큰 새끼가 흑마법으로 이속 버프까지 받으니까 흙으로 된 쓰나미 같았다!
하는 수가 없었다. 나는 파티와 떨어져서 뛰었다!
“잠깐, 선배!! 어디 가세요?!”
라리루라가 당황하며 날 붙잡으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일부러 피했다. 내 순간적인 기지가 논리나 추론 과정을 생략하고 정답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내 마법이 저 새끼한테 위협이 되는 거야!’
네페르티티도 제쳐두고 날 노리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까, 파티원들을 걱정하는 움직임을 보이면 안 돼!’
저 혹부랄 새끼는 양심이 3일 넘게 방치한 오동통 너구리처럼 불어터지고 썩어빠진 씨발럼!
내가 프랑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면 프랑이 있는 쪽으로 골렘의 방향을 선회시킬 것이다!
그러면 저 새끼가 쫓지 않아도 나는 프랑을 구하기 위해서 골렘의 발밑으로 뛰어들게 되니까!
그러므로 나는 영혼들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인터넷 키보드 전사로서 갈고 닦은 숙련된 어그로 테크닉이 내게 정답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흙이나 퍼 먹는 병신 새끼! 암만 가오를 잡아봤자 결국 쫄보 새끼에 불과하지!’
저 놈은 네페르티티와 싸울 때 길드장들이 같이 있지 못하도록 함정을 파고, 마법사를 최우선적으로 죽이는 새끼다!
모니터 너머로 수많은 정신승리자와 잼민이들을 멘탈 붕괴시킨 나의 연륜이 저 병신 새끼의 본성을 간파했다!
남의 존엄을 낄낄대며 짓밟는 주제에, 자기한테 위협이 되는 것에는 핏대를 세우며 아득바득 물어뜯는 후천적 싸이코패스!
미스릴 클래스의 흑마법사? 그딴 건 결과물일 뿐!
가진 힘에 비해서 저 놈의 그릇은 아주 옹졸맞다!
인터넷을 배운지 1시간 된 노약자들도 안방에서 편하게 만나볼 수 있는 글로벌한 앰생 새끼가, 운 좋게 강력한 힘을 얻고 날뛰게 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소인배 새끼 치고── 쫄보가 아닌 놈은 없다!
《추레한 인간 놈이!!!》
흑마법사는 자기가 악플을 단 연예인의 고소 소식을 들은 방구석 폐인처럼 광란했다! 목에 칼이 들어오자 본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처억! 나는 야수회귀의 출력을 발휘하여 골렘보다 먼저 영혼들 앞에 도착했다.
거대 골렘이 나한테 오기까지 앞으로 대충 2초! 좋다. 충분하다! 2초면 초일류 브딱이인 내가 2~3번은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는 뭘 하면 되는레후?’
조졌다.
여기까지 온 건 좋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존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뛰쳐나왔던 거지,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그냥 씨발 대충 동력로 위치나 말해주려고 했지!!’
적 골렘의 급소를 찾아내는 것!
내가 생각해낸 상황을 역전할 수단이란 건 그게 전부였다. 나는 네페르티티가 거대 골렘의 약점을 알면 싸움이 유리해 지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존나 나보다 3, 4단계는 뛰어난 달인들의 싸움에서 내가 그거 이상으로 뭘 할 수 있겠는가!
약점만 알려줘도 브딱이는 밥값을 한 거 아니냐?
─쾅쾅쾅쾅쾅쾅!!!
하지만 그딴 변명으로 살려달라고 빌 틈도 없었다!
달려드는 거대 골렘! 나는 이대로 이세계 토뭬-이로 부침개가 되고 마는가!!
“──빈틈.”
─휘릭!! 처억!!
그때 네페르티티가 채찍을 늘려서 공격했다. 길게 늘어난 오러의 채찍이 골렘의 몸통을 감고 멈췄다.
─쿠우웅!!
─우드드드드득!!
천공신 맙소사. 30미터의 흙 골렘을 완력으로 멈추네. 존나 저 사람한테 뺨 맞으면 대갈통 위쪽이 뇌수+핏물로 믹스 쥬스가 돼 버리겠다.
‘암튼 그래도 살았다!’
오줌을 지릴 뻔 했던 나는 꼬츄에 힘을 빡! 줬다. 그리고 저 거대 골렘의 영혼 동력로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고 닷지하려 했다.
─Oooooooo……!! 오오오오……!! 따스하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사람의 체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