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1,009)

─구원자시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런데 내가 입을 여는 것보다 먼저 유령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된 등산객들이 불에 모여드는 것처럼 내 몸을 끌어안고 달라붙었다.

“시발 머야!!”

깜짝 놀란 내가 그들을 쳐내려고 했을 때, 심장이 아까처럼 크게 뛰었다.

두근…! 두근…!

바깥에서 내 혈관에 도는 피에 펌프질을 한 듯한 격렬함!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채고 경악했다.

‘이건── 마나 계승?’

슈와아아아악─!!

유령들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마나가 내 몸 안에서 필터에 걸쳐지는 것처럼 룬의 마나로 바뀌어갔다.

힘이 넘쳐났다. 내 마나통의 그릇에서 범람한 마나는 나의 심장에서 흐르는 혈액처럼 온몸의 말단까지 채웠다.

─아아……. 안식이 찾아온다…….

─드디어 나도, 신들의 나라 마그멜으로…….

─어디든 좋다. 이 따스함과 함께라면…….

화르르르륵─!!

그들은 인간의 형상을 잃고 도깨비불 같은 빛으로 변했다.내 몸을 하얀 불꽃이 휘감았다.

룬의 힘이 그들과 나의 연결을 강하게 했던 걸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슴에서 온갖 감정이 솟아올랐다. 말을 하지 않고도 그들의 감정이 전해진 것이었다.

언어는 대화의 수단이고── 대화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행위니까.

“……고맙습니다.”

나는 해방된 영혼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마음이 전해져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오랫 동안 구천을 떠돌던 그들에게는 더 이상 복수심도 투쟁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들은 아직 이승에 머물러 주기로 한 것이다.

내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서 말이다.

《놈!! 약해빠진 인간 주제에 나를 방해했구나!!》

골렘과 같이 발이 묶인 흑마법사가 증오를 뿜어냈다. 이마의 혹만 빼고 얼굴 피부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쓰레기 놈들의 힘을 빌린다고 무엇이 바뀌지? 네놈도 죽여 주마!! 죽여서 골렘의 동력로로 써 주겠다!!》

놈은 나를 죽일 듯 노려봤지만 골렘의 등에서 내려오지는 않았다. 땅에 내려오자마자 네페르티티에게 맞아 죽기는 싫은 모양이지.

《꼴사납군.》

나는 그런 흑마법사의 추태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영혼들의 힘을 빌려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아니, 그게 아니다.

저 흑마법사에게 희생당한 영혼들은 이미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골렘의 군세를 부리며 왕 행세를 했지만 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다.

아비두스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줄은 알아도, 다른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줄은 몰랐다.

그런 놈에게는 동정도 증오도 사치였다.

나는 집게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었다.

바이콘은 말했다. 인간은 문자로 적는 것으로밖에 룬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그것은 돌려 말하면 원래의 룬 마법은 쓰고 읽는 것 외의 다른 사용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룬에는 매개체에 새기는 것 말고도 ‘뜻을 전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저 놈이 두려워하던 ᚨ(Ansuz)의 룬의 본래 사용법이다.

나는 나르메르-나일의 말로 선언했다.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거대 골렘의 배에 있던 영혼 동력로가 불꽃에 타올랐다.

영혼 동력로로 쓰이던 혼이 내 말에 호응하여 성불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흑마법사의 부하로 움직였지만 저 골렘의 혼도 자아를 빼앗기고 부품으로 사용당했던 누군가의 영혼이다.

차가운 흙에서 흑마법을 사용하는 노예처럼 부려지던 혼!

그가 내가 건넨 말에 의식을 차리고 마나를 불태워서 영혼의 감옥에서 해방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 그만둬!!! 그만둬라아아!!! 크누무트!! 멈춰어어!!!》

흑마법사는 자신의 전법을 유지하는 핵심이 붕괴되자 새된 비명을 질렀다. 거대 골렘이 안에서부터 갈라졌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하얀 빛을 뿜어대며 포효하는 골렘! 술식이 붕괴되어 흑마법의 마나가 사라졌다!

“멋진 서포트. 고마워.”

─타앗!! 나를 스쳐지나간 네페르티티가 감사인사를 남겼다. 그러고서 하늘 높이 점프했다.

10미터 이상 길어진 채찍이 자의식을 가진 뱀처럼 대가리를 쳐들었다. 네페르티티는 그것을 무자비하게 내려쳤다.

《──잘 가. 아비두스.》

《이 망할 연놈들이이이──!!!》

─쩌어어어어어어억!!!

흑마법사의 고함을 지워버리려는 것처럼 엄청난 공격이 거대 골렘의 가슴을 직격했다. 거의 뭐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퍼어어엉──!!!

폭발사산하는 거대 골렘의 파편과 폭풍! 이 씨발 니들은 또 왜 일로 쳐 날아오는데!!

“벡터-새우등 터지기이──잇!!!”

나는 팔다리를 웅크리고 낙법을 취하며 날아갔다!! 태풍에 날아가는 바위 아래의 공벌레를 방불케 하는 훌륭한 낙법!! 잼민이 시절에 배웠던 태권도가 내 목숨을 살렸다!!

“갸아아아아악!!”

─덱-데구르르르르르!!

대비하고 있었다면 버틸 만 했을지도 모르지만 멍청하게 서 있어서 그런지 덧없는 가을 낙엽처럼 땅을 구르는 나. 그런 내 앞에 네페르티티가 내려섰다.

“윽, 큭…….”

네페르티티는 자랑거리인 사뿐한 착지법도 취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민소매라서 뻔히 드러난 오른팔이 부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전투 중에 다친 상처인가? 아니, 거대 골렘을 붙들고 있느라고 생긴 근육 파열일지도 모른다. 나는 헉헉대는 네페르티티한테로 뛰어갔다.

“네페르티티 님!! 괜찮으십니까?!”

“……응. 하지만 조금 무리했어.”

내 물음에 대답하는 네페르티티.

그러면서도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거대 골렘의 사체한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시발 잠깐만. 흙먼지요?’

존나 불길한 느낌에 나도 거기에 눈이 못 박히고 말았다.

파워레인저의 국룰. 몬스터는 조지면 거대화한다.

흑마법사 새끼는 꼴에 대가리가 돌아간답시고 처음부터 거대화한 몬스터를 꺼내왔지만, 설마 이거 보스몹은 잡았는데 옆에 붙어서 깐족거리던 새끼는 안 뒈진 패턴인가?

그치만 암만 미스릴 클래스라도 그 혹부랄 놈은 마법사다. 골렘의 시체 폭발(마법뎀)이랑 30미터 높이의 추락을 견디고 살아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믿고 싶다.

슈우우우…….

영혼들이 빌려줬던 마나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도 흙먼지가 걷히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크흐흐흐…….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네페르티티.》

지팡이를 든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작살났지만, 멀쩡하게 숨이 붙어 있는 흑마법사 새끼의 모습을.

시발! 진짜 안 뒤졌잖아!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처녀의 경계’와 ‘마도의 경계’는 네놈만을 위해 준비한 마법이다!! 번거로운 마법사 길드와 모험가 놈들을 떼어놓고 너를 죽이기 위해서!!》

피를 흘리면서 흑마법사가 외쳤다.

《태양신의 아들, 아메넴헤트의 진성(眞聲), 진리의 계시를 통해 선언한다(sA ra imn-m-Hat mAa-xrw Dd.fm wpt mAat)!!》

“아아악!! 씨발 진짜!!!”

또 저거냐! 나는 흑마법사 새끼가 아직 싸울 생각이라는 걸 눈치까고 냅다 대쉬했다.

하늘의 결계는 아직 안 풀렸다! 저 새끼가 주문을 외우느라 무방비할 때 조지는 수밖에 없다!

《신으로서 일어나라(Dd.f xa m nTr)!!》

─파스스슥!! 거대 골렘의 시신에서 일어나는 골렘들! 흑마법사는 마법을 연달아 발동했다.

무영창으로 펼쳐진 흑마법이 땅을 뒤덮었다. 저 새끼 지가 직접 흑마법을 쓰고 앉았다! 이마의 혹과 얼굴 반쪽이 부작용으로 흉측하게 문드러지는 것이 보였다.

“곰 같은 힘이여! 솟아라!”

나는 주먹을 빡세게 쥐고 놈한테로 달려들었다. 검으로는 놈의 물리 내성 결계를 뚫지 못한다! 그걸 아는 흑마법사도 문드러진 얼굴로 클클댔다!

《어리석은 놈!! ‘마도의 경계’는 네놈들 같은 야만인들이 파훼할 수 있는 결계가──》

《입장은 점프가 개념!!》

─파지지직!! 내 몸은 푸른 결계를 정면에서 뚫었다. 내가 두르고 있는 마나 코팅도 다 마법이란다, 좆밥아!

《아, 아닛──?!》

“이 골렘 슈퍼 전파자 새끼이이──잇!!”

2미터 거리의 결계 안을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자기 혼자 안전한 곳에서 숨어서 남들한테 민폐나 끼치는 쓰레기 놈!!

“니새끼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어!!”

─뻐어어억!!

나는 지구용사의 힘을 듬뿍 담은 주먹으로 놈의 아굴창을 갈겼다.

“제발 밖에도 좀 나가아아앗!!!”

《그헤에에엑──!!!》

아굴창에 곰돌이 펀치를 쳐맞은 흑마법사가 이빨을 멀리 발사했다. 나는 추접하게 튀는 검은 피를 피해서 고개를 돌렸다.

이 존나 더럽고 치밀한 새끼 같으니! 얼굴을 쳐갈기자니 피부병이 옮을까봐 때리지를 못하겠다! 어째서 저딴 질병을 가진 놈이 마스크도 안 끼고 돌아다닌다는 말인가!

아니, 이것도 놈의 작전인가? 자신의 피부병을 드러내는 것으로 적의 공격 범위를 한정짓는 기술인 듯 했다!

“치잇!! 결계인가!!”

그야말로 전염성 아토피 결계!

《크아아아아악!!!》

─붕쯔붕쯔! 고통을 느낀 흑마법사 놈이 팔다리를 흔들며 침을 뿌렸다.

드루이드는 나인데 왜 저 새끼가 역병을 퍼트리는 것이지?나는 불결함을 참고 파고들었다가 지면에서 날아드는 창을 눈치채고 몸을 피했다.

─콰드드드드득!!

지면에서 뻗어나오는 바위 창! 거리를 벌리려는 심보가 뻔히 보였지만 시꺼먼 흑마법을 몸빵으로 떼울 자신이 없었다.

속도가 느려서 피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파지지직!

흑마법사가 물러나자 내 몸도 푸른 결계에서 벗어났다. 영향은 없다. 역시 야수회귀는 최고다. 내가 벡터맨으로 변신 못 했었으면 어쩔 뻔 했냐 진짜.

나는 투철한 권투 자세를 취하며 이 자리의 유일한 아군에게 물었다.

“네페르티티 님! 아직 싸울 수 있습니까?!”

“……쿨럭.”

우리 동네 대빵 모험가께서는 피토로 대답하셨다. 시발 앞에는 피부병이고 뒤에는 폐병이네. 역시 사람은 건강이 제일이었다.

“크으으윽, 커헉…….”

흑마법사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서 휘청거렸다. 뒤에서 골렘들이 몰려왔다.

숫자는 수십 체! 거대 골렘 안에 남은 골렘 코어를 거의 다 투입한 것이었다.

저걸 나 혼자서 대처할 수 있을까? 긴장으로 손이 축축해졌을 때, 거대 골렘의 후방에서 진군 소리가 들렸다!

“전원!! 흑마법사를 토벌하라아아!!”

─쩌저저적!!

티르시의 마법이 날아와서 골렘의 일부를 얼렸다. 증원! 아직 빠져나가지 못했던 모험가들이 원호하러 온 것이었다.

손을 휘둘러서 결계를 해제하는 흑마법사. 이걸로 도망칠 수 있는 놈들은 도망치게 만들어서 팀 워크를 와해시킬 생각인가.

혹부랄 새끼는 그러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어놓지 않았다. 자신 있는 결계를 바늘로 콘돔 뚫듯이 찢어버리고 맴매를 해 준 것이 존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적의 몸과 마나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관찰했다.

그 덕분에 눈치를 챘다.

“……뿔?”

─흠칫! 내가 읊조린 말에 흑마법사가 몸을 떨었다.

혹부랄이라고 생각했던 이마의 덩어리는 뿔이었다. 문드러지고 꺾였으며 씹창이 나 버린 뿔! 그것이 땔깜으로 사용되고 방치된 나무 그루터기처럼 이마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 놈의 정체를 암시하는 증거였다.

“이 새끼…… 유니콘이었군.”

유니콘!

바이콘과 상반되는 극한의 처녀충! 그리고 페가서스와 쌍벽을 이루는 성수(聖獸)이기도 했다.

“그랬나. ‘처녀의 경계’라고 했지. 강력한 신성마법과 흑마법의 지나친 부작용……. 인간으로 변신한 유니콘이라면 설명이 되지.”

“변신? 크흐흐. 변신이라.”

흑마법사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흉측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뿔을 쓰다듬었다.

“이것은 변신 따위가 아니다. 나는 저주를 풀고 신족의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위대하신 그분의 은혜를 받아서!”

“응~ 존나 테러리스트 새끼들의 인적사항은 관심 없어~. 처녀충 아다 유니콘 주인님도 어차피 아다겠지 뭐~.”

“뭐, 뭣?! 누가 동정이라고!!”

내 말이 약점이라도 찔렀는지 흑마법사는 격앙했다. 오? 이게 통하네. 나는 검을 뽑으며 도발을 날렸다.

“헉.. 진짜 아다일 줄은 몰랏내요.. 심한말 죄송함다.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큭! 하, 하찮은 도발이로군! 순결한 몸이야말로 존엄한 것 네놈이나 길드장 놈들처럼 몸을 더럽힌 것이 뭐가 자랑이라는 말이냐!!”

“그러셨군요… 가족분들도 알고 계신가요?”

“닥치라고 했을 텐데!! 그까짓 계집 따위 안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안을 수 있었다!!”

“지랄도 정돈컷. 너는 성격도 외모도 나쁘고 장점도 적어서 400살까지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할 걸.”

“네, 네까짓 놈이 뭘 안다고 떠드느냐!!”

“아니.. 이건.. 상식.. 아닌가..?”

“이, 이, 이 망할 인간 놈이……!!”

─부들부들! 몸이 벌벌 떨리는 수컷 유니콘! 나는 도발이 통하는 것을 느끼며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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