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으니까 첫사랑 얘기나 해 보세요. 어차피 아다쉑 비하인드 스토리엔 좆도 관심 없어.”
이세계인들은 악당들도 존나 사악하고 머리가 좋았다.
놈이 자기 사정을 나불대며 지껄이고 있는 것도 시간을 끌기 위해서일 것이다. 자기 골렘들이 실시간으로 뒤져나가는데 시간을 끈다? 존나 위험한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어차피 저 새끼가 사실대로 불 리도 없지.’
차라리 이 새끼를 얼른 조지고 네페르티티한테 나중에 물어보는 게 낫다! 나는 잡설을 끊고 앞으로 대쉬했다.
“아다로 뒤져라, 좆이 뿔보다 작은 새끼여!!”
“──네놈만은 죽여주마!! 골렘의 소재로도 삼지 않겠다!!”
─퍼서서서석!!
코어를 뿌리며 흑마법사가 골렘을 소환했다. 저 골렘에도 누군가의 영혼이 들어있겠지.
시간을 들여서 만든 거대 골렘에 비하면 약하겠지만, 그래도 흑마법사가 직접 발동한 장판 버프를 받는 놈들!
얕봐서는 안 된다!
“스으으으으으으…….”
나는 맹대쉬하며 호흡을 컨트롤했다.
들숨날숨들숨! 한국인의 얼, 자진모리 장단을 나의 폐로 재현해라!!
‘영혼이 빌려줬던 마나는 사라졌어도, 불꽃의 감각은 아직 내 손에 남았어.’
하얀 불꽃들이 보여줬던 그 맹렬한 불길을 떠올렸다. 그때 보았던 불꽃을 내가 펼치는 마법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검을 발도하는 것처럼 허리에 대고 칼날에 룬을 썼다. 참된 깨달음을 얻은 ᚨ(Ansuz)이 녹색으로 새겨졌다.
ᚨ(Ansuz)의 참된 뜻은 교감과 영감(靈感), 마법과 창조!
그렇기에 검에 새긴 정방향의 ᚨ(Ansuz)는 무기에 작용하는 주문의 효과를 강화한다!!
“<부여(Enchant)>.”
화르르르르륵─!!
부여마법을 쓰자 내 검이 황금색의 불꽃에 휘감겼다. 내가 발동한 마법의 술식에 야수회귀를 방불케 하는 마나가 빨려든다.
무영창으로 발동한 <타오르는 손길>이었다.
영혼의 불꽃이 보여줬던 깨달음이 내 <타오르는 손길>의 위력과 레벨을 높여줬다!
“전집중 금태양(金太陽)의 호흡!”
마나를 불어넣자 탐욕을 드러내며 낼름대는 금색의 불꽃. 좋다! 먹고 싶은 만큼 먹어라! 살은 나중에 대학 가면 다 빠지니까!
나는 불꽃검으로 상단세를 취하며 절기(絶技)를 펼쳤다.
“──귀두룡섬(鬼頭龍閃)!!”
도깨비(鬼)의 머리(頭)를 베는 용(龍)과 같은 반짝임(閃)!
─서걱!!!
타오르는 검이 가고일처럼 흉악하게 생긴 골렘의 머리통을 단박에 베어냈다. 진흙을 모닥불에 끓이는 것만 같은 악취가 풍겨왔다.
─뎅겅!!
덤벼드는 골렘을 몽땅 동강냈다. 간단히 박살나는 자신의 인스턴트 골렘에 흑마법사가 신음했다.
이 새끼, 티는 안 냈지만 네페르티티와의 전투에서 마나를 많이 소모한 것이었다. 이곳과 사르포트 숲에 친 결계만 놓고 봐도 상당한 MP 소모였겠지.
‘지금이 이 놈의 목을 딸 호기다!’
금태양의 호흡으로 검을 휘둘렀다. 마법을 인챈트한 검으로 푸른 막을 파훼하고 해치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꼴에 미스릴 클래스. 흑마법사도 간단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의 집을 황금으로 꾸미노라(iw ir.n.i n.i pr sXkrw m nbw)──!!!》
─카아앙!!
황금색 실드가 정면에서 내 검을 막았다. 이 시발!! 아까도 봤던 범위 압축 실드다!
새끼가 또 방구석 여포 흉내나 내고 앉았어!!! 나는 억울함이 복받쳐서 소리치고 말았다!!
“밖에 좀 나가!! 엄마도 사람이야 사람!!!!”
“크흑! 이제 보니 네놈도 숫제 광인이나 다름이 없구나!!”
“크흑! 너 이 내새끼!! 마망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구나!!!”
씹새가 감히 색깔놀이 전대물의 금기인 ‘색깔 따라하기’를 사용하려 들다니!! 나는 보법을 밟아서 황금색의 실드의 사각으로 들어갔다!
“황금색 방패가 왠 말이냐!! 내 칼이랑 컬러가 겹치잖아!!”
─촤촤촤촥!
─팽그르르!
내가 빠르게 이동해도 흑마법사는 내 위치에 맞춰서 실드를 이동시켰다. 마나로 몸을 강화할 줄 아는 움직임! 마치 숙련된 방패병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놈은 마법사라는 것! 이대로 가다가는 내 체력만 깎이고 놈에게 주문을 외울 시간을 주게 된다!
‘<구름 소환(Summon Cloud)>을 발에 사용해서 빠르게 이동해 볼까?’
그건 안 통할 것 같다. 네페르티티의 움직임에도 반응하던 놈이다. 마나가 오링 나서 움직임이 굼떠졌지만 스피드로 승부를 보는 것은 어리석다!
─쿠르르르르릉!!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를 돌던 나는 이변을 깨달았다.
하늘의 결계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저 붉은 결계로 우리를 압사시킬 생각인가!’
자폭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자기 몸을 지킬 수단을 남겨두고 시간을 끌어서 우리를 죽이고 네페르티티의 혼을 챙겨서 도망치려는 것이다!
─채앵!! 채애애앵!!
노림수를 깨달은 나는 불꽃의 검으로 실드를 연타했다. 더럽게 단단해서 부숴질 기미가 없다. 흑마법사가 승기를 붙잡고서 홍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하!! 무의미한 저항이구나!! 벌레는 벌레답게 뭉개져서 죽도록 해라!! 최후에 살아남는 자야말로 진정한 승자니까!!!”
“이 씨발……!”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기껏 다 이겨놓고는 자기장에 뒤지는 꼴이 나 버린다.
네페르티티를 회복시킬까? 그게 가능한 상급 포션이 없다.
다른 모험가들은 뭘 하고 있지? 골렘 무리에게 고전하고 있을 것이다. 지원은 바랄 수 없다.
‘어쩌지? 어떻게 하면 이 새낄 죽일 수 있지?’
여기까지 와서 절체절명인가?
그렇게 나와 흑마법사 새끼의 살의가 뒤섞이며 적을 향한 경계심이 극한으로 치달은── 그 순간.
─퍼버버벅!!
얼어붙는 화살이 흑마법사의 등에 날아들어 꽂혔다.
모든 방패를 내게 집중하느라 어떤 방비도 하지 못한 흑마법사는 그 화살을 모조리 자신의 등에 심고 말았다.
순수한 냉기 덩어리에 운동 에너지, 질량까지 포함한 개조 마법이었다.
“커, 헉……?”
─쩌적. 내장까지 얼어붙은 흑마법사는 뒤를 돌아보았다.
역전의 한 수를 찾던 나와, 그것을 막으려던 흑마법사.
2명 분의 감지능력을 완전히 빠져나와서 기습을 성공시킨 마법사가 거기에 있었다.
“약간 손을 본 <얼음의 화살(Ice Missile)>이에요. 마음에 드셨나 모르겠군요.”
프랑이 만들고 내가 마법을 부여한 가면.
그것을 빌려 쓴 티르시가 완드를 겨누고 있었다.
한쪽 팔은 전투에서 다쳤는지 피가 흘러넘치는 중이었는데, 가면을 벗은 티르시의 안색은 늠름하기까지 했다.
《이, 이, 이…….》
몸을 파고드는 냉기에 입술이 보라색이 된 유니콘 흑마법사는 눈의 실핏줄을 터트리며 마나를 폭발시켰다.
《이 쓰레기 놈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쿠르르르르르릉!!
붉은 결계가 네페르티티를 끌여들였을 때만큼 빠르게 축소되었다.
뒷일을 포기한 마나 사용! 치명상을 입자 흑마법사도 필사적으로 변한 것이었다.
놈은 분노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됐다.
─푸확!!
나는 압축해방된 증기를 뿜으며 실드의 사각으로 들어갔다. 흑마법사의 안색이 변했다. 내 초고속 이동이 저 새끼가 알고 있던 나의 톱 스피드를 순간적으로 웃돈 것이었다.
실드가 조바심을 느끼게 하는 움직임으로 움직였다.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내 발은 원인치 거리에 진각을 내디뎠다. 실드를 끼워넣을 공간 따위 내주지 않는다.
뒤로 당긴 검을 다부지게 쥐고 찔렀다.
“충격의── 퍼스트 블러드!!!!!!!”
“커어어어어어어어억?!!!”
─푸욱!!!
─후두두둑!
불타는 검이 명치를 뚫고 손잡이까지 박혔다. 흑마법사는 폐와 심장을 잃고 내장의 처녀혈을 토해냈다.
─쿵! 무릎을 꿇는 흑마법사. 나는 그 놈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내면서 상큼하게 웃었다.
“너도 이제 파이즈리 후다야. 이 처녀충 새끼야.”
나는 무릎 꿇은 흑마법사 놈의 목을 검으로 쳐냈다.
─뎅겅!
가슴에 칼이 꼽힌 흑마법사는 마법도 발동하지 못하고 목이 달아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목이 박살났다고 말하는 게 맞을 듯 했다. 내 칼의 날은 까만 피에 젖어서 부식되었기 때문이었다.
“새끼. 얼마나 안 씻으면 피가 산성이 되냐.”
까만 연기를 피어올리는 검에서 피를 털어냈다.
얘도 나랑 오래 알고 지낸 파트너였지만 이 녀석 걱정을 할 시간에 저 흑마법사 새끼를 확인사살해야만 했다. 목을 잘랐더니 언데드로 부활하거나 거대화해서 3라운드 개시, 같은 건 절대 피하고 싶었다.
─툭! 데구르르르…….
하늘에서 360도 회전한 흑마법사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부릅 떠진 눈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존나 제대로 뒤진 것 맞겠지? 이가 나간 검을 겨누고 경계하는 나에게 네페르티티가 말했다.
“죽었어.”
“휴.”
안심하면서 검을 내렸다. 거대 골렘 뒤에서 모험가들과 싸우던 인스턴트 골렘들도 무너졌다.
─아아아아……!!
─안식의 하늘로……!!
술사가 죽었으므로 흑마법에서 해방된 걸까. 내가 따로 뭘 해줄 것도 없이 알아서들 휘발되는 영혼들이었다.
─욱씬!
“으겍.”
갑작스러운 통증. 나는 눈에서 고통을 느끼고 인상을 썼다.
마나통은 아직 널널한 느낌인데─오늘 내 마나를 쓰는 마법은 거의 안 썼으니까─ 몸에서 부담이 느껴졌다.
이 통증이 왜 느껴지는지 알 것 같아서 지면에 새긴 ᚨ(Ansuz)의 룬을 해제했다. ─휘릭! 혼과 교신하는 기능을 하던 룬이 해제되자 영혼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콜록, 콜록.”
네페르티티는 서 있는 것도 버거운 것처럼 힘들어했다. 그런데도 힘을 짜내서 흑마법사의 시체를 보러 내 곁에 왔다.
“고마워. 이긴 건 네 덕분.”
내 얼굴을 올곧게 보면서 말하는 네페르티티. 보라색의 눈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제 덕분이 아닙니다. 흑마법사가 부리던 영혼들이 힘을 보태준 덕였어요.”
“영혼?”
“그 폭발 말씀이시죠?”
그리 말한 것은 포션으로 팔을 응급처치한 티르시였다.
“초대형 흙 골렘…… 크누무트라고 했죠. 그걸 폭발시킨 건 노르드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저는 말하자면 인화물질에 불똥을 던졌을 뿐입니다. 그때 폭발을 일으킨 건 흑마법사가 골렘에 넣은 영혼의 마나였어요.”
“아……. 저 작자, 골렘의 안에 혼을 넣었던 거였군요.”
“예. 영혼의 자의식을 봉인하고 연료로 썼던 겁니다. 흙과 영혼은 흑마술과 최고의 상성을 자랑하니까요.”
“……골렘이라는 거푸집에 타인의 영혼을 넣고, 노예에게 일을 시키듯이 흑마법을 사용시켰다?”
네페르티티가 말했다. 미스릴 클래스라서 그런지 내가 말한 원리를 쉽게 이해한 모양이다.
언젠가 겐트릭이 말했던 것처럼, 경지가 높아질수록 마법사니 전사니 하는 분류는 의미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아마도요. 그리고 본인은 결계의 유지에만 투철했습니다. 이 방식을 취하면 마나 소모도 적고 흑마법의 부작용도 겪지 않겠죠. 유니콘에게 어둠과 음(陰)의 마나는 극상성이니, 저 놈이 궁리한 편법이 아닐까요.”
“……저번에 싸웠을 때는 직접 썼었어.”
예전 일을 떠올리는 듯이 말하는 네피르티티. 역시 아는 놈이었던 모양이다. 악연일까.
“복수를 위해서 기술을 갈고 닦았다는 건가요. 그 노력을 좀 더 좋은 곳에 써도 됐을 것을.”
“그렇지 못한 사람만이, 흑마법사가 돼.”
“그건 뭐, 지당하신 말씀이네요.”
어느 일에나 적용되는 말이었다. 노력이란 에너지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흑마법사 새끼한테 선행을 바라는 것도 현실성 없는 이야기였다.
“포션 필요하세요?”
가방에서 병을 꺼내며 티르시가 물었다. 나는 사양했지만 네페르티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드릴게요. 목숨의 은인인걸요.”
“……나는 의무를 다했을 뿐.”
“네. 저도에요.”
티르시와 네페르티티는 그렇게 말을 주고 받고 조용해졌다.
“……잘 마실게.”
먼저 꺾인 것은 네페르티티였다.
그녀는 목례를 하고 포션을 받아서 마셨다. ─꿀꺽. 포션을 원샷 때렸지만 개운해 보이지는 않았다.
저 사람한테 우리 브딱이들이 쓰는 포션은 자양강장제 정도의 효력이겠지. RPG 게임에서 그런 것처럼 강한 사람일수록 약한 포션으로는 완쾌가 어려우니까.
내가 상태창을 볼 수 있었다면 ‘HP: 350/1000’ 같은 식으로 보였을까. 빨간 포션으로 3차 전직 모험가의 HP를 완쾌시키려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이긴 했다.
나는 구멍송송난 미해방 철쇄아 같은 꼬라지가 된 검을 검집에 납검했다.
거대 골렘의 사체를 피해서 이리로 달려오는 모험가들 중에는 프랑과 라리루라의 모습도 있었다.
존나 다사다난한 전투였지만, 그래도 내 파티원들은 모두 멀쩡하게 살아남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