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가 뒤졌기 때문에 사르포트 숲의 결계도 풀렸다.
그래서 길드장 놈들과 따까리들도 눈썹을 휘날리며 골렘의 발생지로 달려온 모양이었다.
힐을 받아서 HP를 쬐끔 회복한 네페르티티는 그들에게 사건의 추이를 설명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모험가들은 시체를 수습하고 현장을 조사했다.
골렘 토벌대의 사망자는 적었다.
처녀 여부를 나누는 결계에서 3할 정도가 빠져나갔고 남은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공격당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골딱이 팀이 메인 탱킹을 해 줬으니까.’
흑마법사 새끼가 네페르티티가 나타날 때까지 느긋하게 여유를 부렸던 것도 컸다.
아마 숲에서 살려보낸 실버 클래스 모험가로 길드장들을 꾀어냈던 것처럼, 결계에 가둬놓은 모험가들을 인질로 쓸 생각이었던 게 아닐까.
놈의 오산은 자기 골렘 전법에 메타를 찌를 수 있는 내가 거기에 껴 있었다는 것이었다.
대책을 세운 네페르티티를 1대 1로 죽이고 사르가디스로 쳐들어가거나 했으면 놈의 대승리였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파티와 합류했다.
“고마워, 프랑. 이번에는 너랑 티르시 덕분에 살았다.”
“헤헤.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구.”
프랑은 티르시한테 빌려줬던 가면을 돌려받으며 말했다. 2명의 도움 없이는 흑마법사의 실드를 피해서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콕콕.
그렇게 프랑을 안아주고 있는데 삐친 듯한 라리루라가 내 등을 찔렀다. 흙투성이가 된 링링이 3호도 보였다.
“저기요, 선배? 저한테도 감사해 주실래요? 저 마법사 언니가 파고들 틈을 만들어준 건 저였거든요? 프랑 언니가 혼자 가면을 쓰고 뛰쳐나가려는 것도 제가 말렸는데요?”
프랑이 혼자 나서려고 했었다고?
─움찔! 품에서 몸을 떠는 프랑. 나는 쪼그려 앉아서 눈높이를 맞추고 프랑을 눈을 쳐다보았다.
“……프랑?”
“그, 그게…… 노르가 혼자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만 나도 모르게…….”
“아니, 암만 그래도 그렇지…….”
뭐라고 해 주고 싶었는데 할 말이 없었다. 프랑의 무모한 행동을 따지고 들기에는 나도 사돈 남말 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도 파티에서 혼자 떨어져서 골렘을 상대로 마이클 베이 영화를 1편 찍고 미스릴 클래스 흑마법사랑 맞다이를 까지 않았던가.
그렇게 안 했으면 네페르티티가 당해서 우리 모두가 죽었겠지만, 내가 프랑한테 뭐라고 하는 것은 번지수가 맞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아, 그래. 라리루라 너도 고맙다. 프랑을 말려 줘서.”
“뭔가요? 말 뿐인가요? 저도 머리 정도는 쓰다듬어 주셔도완전 OK인데요? 실은 아까부터 스탠바이 중이었는데요?”
“그래, 그래. 우쭈쭈, 우리 라리루라. 잘 했다~.”
모자도 벗고 머리를 내밀길래 바라는대로 쓰다듬어줬다.
다 큰 어른이 외간 남자한테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건 조금 어떨까 싶기는 하다만.
“아핫♡! 그렇죠? 역시 저죠? 좀 더 감사해 주세요~?”
내 적당한 칭찬에도 좋아 죽는 라리루라였다. 혹시 얘가 애정결핍이라도 있나.
하긴 관종끼가 없으면 서커스단 에이스 노릇은 못 하겠지.
“어…… 실례지만, 여러분은 어떤 관계신가요?”
티르시는 우리의 그런 교환을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아주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아, 프랑이랑은 장래를 약속한 연인이고…… 야. 라리루라. 너랑 나는 무슨 관계라고 하면 되냐? 친구인가?”
“사이 좋은 선후배 아니었어요?”
“무슨 선후배?”
“……그르게요?”
라리루라는 인간 생명의 본질적인 의문에 철학적인 화두를 던져진 것처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선배니 후배니 하는 건 니가 먼저 시작하지 않았었냐. 니가 모르면 어떡해.
“뭐, 인생의 선배란 걸로 됐지 않을까요.”
고민을 내던지고 결론을 내린 라리루라. 너 정말로 그거면 되는 거냐.
나를 인생의 모토로 삼은 아이가 있다니. 앞으로는 나도 행동거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티르시에게 말했다.
“뭐, 아무튼 보시다시피 사이가 돈독한 파티입니다. 여기 라리루라는 모험가는 아니지만요.”
“아니지만요☆!”
“그, 그러셨군요.”
우리의 대답에 티르시는 계산을 할 때마다 답이 다르게 나오는 공식을 앞에 둔 것처럼 혼란스러워했다. 당황스러워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파티의 면면이 개성 덩어리이긴 하지.’
드루이드 석사 모험가에, 하프 드워프 도적에, 전직 유명 서커스단 에이스.
모험가 파티라기보다는 누구 말마따나 서커스단으로 먹고 사는 게 더 어울릴 것 같기는 했다.
“여기!! 흙더미 안에 작은 골방 같은 게 있습니다!!”
그때 골렘 토벌대의 리더를 맡았던 골딱이가 외쳤다. 흑마법사 놈이 나타난 구멍에서 뭔가가 발견된 모양이었다.
길드장들에게 설명을 마친 네페르티티가 다가왔다. 그녀는 서론도 없이 곧바로 본론부터 말했다.
“가자.”
“예? 저요?”
설마 나더러 자기랑 같이 저길 기어들어가자는 뜻일까.
왜 뒤쪽의 길드장들이 같이 갈 준비를 하고 나를 쳐다보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요.
“어, 아까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여러분들의 도움은 못 돼 드릴 것 같은데요.”
“전투 염려는 없어.”
네페르티티는 고개를 저었다.
“흑마법사의 물건을 회수하러 갈 거야. 너도 가자.”
“아아, 그런 거라면.”
함정 같은 게 있어도 길드장들이 알아서 뚫어주겠지. 나는 뒤에서 지켜보다가 삥땅치지 않는지나 감시하면 된다.
그만큼 네페르티티가 내 전과를 높이 쳐줬던 걸까. 내가 참여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자기 몫을 뜯기지 않게 배려해 준 것이었다.
쓰러트린 적한테서 템을 루팅하는 것도 모험가의 권리니까 말이다.
“잠깐 다녀올게.”
나는 파티원들에게 그리 말하고 흑마법사의 진짜 은신처를 탐색하러 갔다.
구덩이로 이동하는 중에 길피 길드장 아줌마가 내 옆으로 왔다. 뭐지 시발. 이 아줌씨 왠지 거리감이 존나게 가까운데여.
“노르드 씨. 흑마법사의 초대형 골렘을 해치우셨다구요?”
“예? 아아, 예. 운이 좋았죠.”
“대단하시네요. 사르포트 숲에도 저거랑 비슷한 골렘이 2체 숨어 있었는데, 크기는 절반 정도였거든요.”
─낼름.
길피 길드의 길드장─이름을 까먹었다─의 빨간 혀가 입술을 핥았다. 소름 돋는 혓놀림이었다.
“아주 멋진 무용담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있다가 식사라도 한 끼 어떠세요? 제가 낼게요.”
'오우 쒯.'
나는 이 여자의 생각을 눈치채고 몸이 굳어졌다. 다짜고짜 뭔 소리를 하는가 했는데, 이건 이세계식 번호 따기였다.
아니, 모르지 시발. 번호 따기가 아니라 후장 따기일지도.
이 아줌마 해피 국제 여성의 날 드립을 치면서 바이브 달린 팬티를 입고 내 엉덩이를 쑤실 것처럼 생겼거든.
“하하하하. 그거 좋은 제안이네요. 저도 참석시켜 주시죠.”
그 타이밍에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크롬웰이었다.
“저희 마법사 길드에서 후원하는 가게 중에서 로마니아 식 디너 코스를 잘 하는 곳이 있습니다. 어떠십니까? 에들린.”
“후후후후……. 크롬웰? 당신은 정말 사사건건 제 방해를 하는군요.”
차갑게 웃는 에들린 아줌마. 존나 흑마법사보다 무섭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상종 안 하려는 것처럼 몸을 피하는 좆소둠라의 길드장의 마음을 십분 알겠다.
칼라일 씹새야. 니도 여기 껴 씨발.
─콜록, 콜록.
나는 헛기침을 해서 화제를 돌렸다.
“어쨌거나 여러분들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사르포트 숲은 어땠습니까?”
“함정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법진으로 발동하는 결계였다면 미리 알아차렸겠지만, 골렘을 기점으로 마법이 발동해서 그만 대처가 늦어졌죠.”
크롬웰은 나의 어색한 화제 전환에 따라와 주었다.
“대형 골렘을 포함한 골렘 부대는 저희끼리 해치웠습니다. 하지만 네페르티티 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 전력들은 결계를 뚫질 못하더군요.”
“아, 맞아요. 노르드 씨는 그 영문 모를 결계가 뭐였는지 혹시 모르시나요? 네페르티티 씨는 설명을 안 해 줘서요.”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저도 통과를 못 했어서.”
대답을 얼버무렸다. 네페르티티가 숨겼다고 한다면 내가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처녀충 유니콘 쉑이 발동한 결계 마법, ‘처녀의 경계’.
내 지인 중에서 결계의 통과자는 3명. 라리루라, 티르시, 네페르티티.
통과 못한 사람들은 여기 길드장들과 나, 그리고 프랑.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확신했다.
‘이건 100% 아가리 안건이다.’
통과할 수 있었던 사람과 통과하지 못했던 사람.
양쪽 모두를 위해서라도 이건 나랑 네페르티티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었다.
이번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을 전수조사해 보면 대충 감이 잡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은 안 좋을 것이었다.
“뭐 어떻습니까. 그 결계에 대한 것도 저곳을 찾아보면 나올지 모르죠.”
크롬웰은 그리 말하며 구덩이를 가리켰다.
“마법사는 자기 연구를 문서로 정리하는 법이니까요.”
나는 ‘연구실’이라는 단어에 좋은 이미지가 없다.
조금 더 파고들어서 연구실을 ‘랩실’이라는 단어로 치환하면 그야말로 야전(野戰) 경험자가 텐트라는 말에 떠올리는 인상과 비슷할 것이다.
일반인들도 알아들게 설명하자면 이세계 석사 노르드에게 연구실이란 ‘내무반’, 또는 ‘생활관’이라는 단어와 거의 비슷한 곳이었다.
좋은 기억이 없지는 않은데 나쁜 기억이 더 많다.
‘우웁 씹.’
그렇기에 길드장들이랑 흑마법사의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누구보다 냉정침착하게 있을 수 있었다.
두개골이 놓여진 테이블이나 시체 썩는 내가 나는 나무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은, 내가 ‘연구실’이라는 말에 쬐끔도 좋은 기대감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상상 이상이군요.”
크롬웰이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존나 젠틀한 몸짓이었다. 약간 미안하게도 그만 생긴 거랑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휙휙.
연구실 곳곳을 살펴본 네페르티티는 안으로 들어갔다.
“마나의 기척은 없어.”
“흑마법사도 죽었으니 본인이 설치한 마법적인 함정은 발동하지 않을 거에요.”
길피 길드 길드장 에들린이 그렇게 말하면서 무영창으로 실드 마법을 뿌려줬다. 반투명한 실드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감쌌다.
─슈와아아악!
나도 야수회귀를 켜고 탐색에 합류했다.
흑마법사 새끼의 연구실은 비위가 상하는 것 투성이였다. 무엇이 있었는지 묘사하는 것은 생략하도록 하자.
굳이 말하자면── 이 새끼가 영혼을 골렘에 가두는 방식은 사람의 머리통을 흙에 담고 썩혀서 돌멩이에 옮기는 주술적 방법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상자의 해체는 전문 팀을 꾸리지. 여기에서 해체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지 않겠나.”
“예. 그럽시다.”
칼라일이 제시한 의견을 모두 승락했다.
저 나무통을 가르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될 것이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예상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촤르르륵! 책을 뒤져본 크롬웰은 혀를 찼다.
“서적은 별 것 없군요. 80%가 금서(禁書)지만 마법사 길드에서 관리 중인 것들이 전부입니다.”
“종교서적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 유니콘 새끼는 이교도였던 걸까?
“아닙니다. 흑마법의 술식과 입문법입니다. 그밖에는 보통의 흙 골렘 마법서 정도군요.”
“중요한 연구 서류는 어딘가 숨겼겠죠. 마나가 감춰지도록 만든 매직 아이템이나 물리적인 금고 아닐까요?”
마법으로 판 흙 동굴 같은 연구실을 쏘아보며 에들린이 말했다. 그렇게 노려보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크롬웰은 책을 소리 나게 덮고서 한숨을 쉬었다.
“여기 있는 금서는 제가 회수하겠습니다. 짐을 회수하는 인원들의 손을 거치는 것은 좋지 않아요. 1권이라도 새어나갔다가는 새로운 흑마법사의 탄생을 방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하시길. 금서는 돈도 안 되잖아요?”
“팔 수 있다면 돈은 되겠죠. 뒷세계에 인맥이 있다면요.”
그 말을 듣고 저 인맥 있는데용 하는 병신은 없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대충 납득을 했다.
‘이 사람들, 네페르티티와 흑마법사의 관계를 모르는군.’
사실 나도 모른다.
그래도 뭔가 인연이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다른 길드장들은 그 악연인지 원한관계인지 모를 무언가를 아예 모르는 듯 했다. 네페르티티는 자기 사정을 말하지 않고 흑마법사 대책 연합에 참여한 모양이었다.
‘묻는 건 나중에 할까.’
고민하다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
타뷸라 놈이 이 새끼들과 관계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여건이 별로였다. 물어볼 기회는 나중에라도 있겠지.
‘아마 딱히 연관은 없을 것 같지만.’
마법사를 대놓고 극혐하던 마초 빌런이었던 타뷸라.
전사인 네페르티티나 나를 야만인 취급하던 아비뭐시기.
두 새끼들은 성격이나 장르가 지나치게 달랐다.
같은 조직에서 대치하는 파벌일지도 모르지만, 분위기나 행동거지가 완전히 정반대 아니던가!
오히려 나와바리를 두고 싸우는 야쿠자나 마피아처럼 지들끼리 물고 뜯는 사이인 게 더 말이 되겠다.
그렇게 우리는 30분 가까이 작은 연구실을 찾아봤지만 눈에 띄는 곳에 연구 결과는 없었다.
은화 더미나 마법서, 매직 아이템 재료 같은 게 전부다.
“후우. 이래서는 골렘의 코어가 전리품의 전부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