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1,009)

크롬웰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골렘의 코어라. 내가 조졌던 거대 골렘의 코어는 나한테도 지분이 있으려나?

그리 생각하니 갑자기 여기서 고생하고 있는 게 무의미해 지는 기분이다.

에픽템을 챙겼는데 나한테도는 도움도 안 될 물건을 찾겠다고 왜 고생을 해야 하는 거지.

“연구 성과는 꼭 회수해야 합니까?”

“흑마법사끼리 커넥션이 있다면 언젠가 놈의 제자나 동료가 회수하러 올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의 기술이 대를 잇는 것을 막는 일이니 중요하죠.”

브딱이가 할 일은 아니란 소리네요. 집에 가고 싶어졌다.

길드장들처럼 잘나신 분들이나 칼라일 말대로 전문 팀이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는 현타에 습격당하며 뒤로 물러났다. 여자친구의 딜도를 찾는다는 마음으로 침대를 포함해서 연구실 곳곳을 뒤졌지만 아무 것도 안 나오더라.

‘……잠만. 나 혹시 병신인가?’

ᚨ(Ansuz)의 룬을 바닥에 새겼다. 그러자 나무 통에 갇힌 영혼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병신 맞았네.’

시발 처음부터 이럴걸.

영혼들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살짝 눈치를 봤다. 다행히 여기에서 저 영혼들이 보이는 것은 나 뿐인 것 같았다.

흑마법사 놈이 영혼을 이승에 묶어뒀던 것이 도움이 됐다. 길드장들 몰래 그들한테로 접근하는 스니킹 노르드.

“후우. 흑마법사는 여기 어딘가에 비밀 금고 같은 걸 만들어 놨겠죠. 그게 어디 숨겨져 있는지만 알면 되는데, 쉽지가 않군요.”

나는 길드장들이 들어도 혼잣말이겠거니 하도록 일부러 중의적으로 말했다.

─흑마법사의 금고……?

그러자 넋이 나가 있던 영혼들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룬 마법의 힘으로 선명하게 들리는 내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르군.’

거의 망령 수준이었던 골렘의 영혼들과는 상반된 반응!

혹시 저 나무통은 주술적인 가공을 거친 흙으로 영혼의 자의식을 훼손시키는 의식인 게 아닐까?

나무통에서 아직 시체 썩는 내가 나는 것을 보면 저 영혼들은 아직 자의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금고만 찾으면 저희도 안심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려줄 텐데요.”

─진혼……? 저희를 해방시켜 주십니까……?

나무통에 갇힌 시체의 주인들은 자기한테 말한다는 것을 깨닫고 대답을 해 주었다.

─놈은…… 저곳에 무언가를 숨기곤 했습니다…….

성인 남자처럼 생긴 영혼이 테이블 위쪽의 벽을 가리켰다. 아직 시체가 남아 있기 때문인지 영혼의 형태도 또렷하고 흑마법사에 대한 증오도 남은 모양이었다.

오케이 땡큐. 나는 시치미를 떼면서 이동했다.

“흐으으으음……. 예를 들어서 이런 벽 같은 곳에 금고를 숨겨놓지는 않았을까요?”

─톡톡. 후두두둑.

영혼이 알려준 위치를 두들기는 나. 길드장들이 내 말에 탐색을 멈췄다.

“크롬웰 님? 이거 건드려도 안 무너지겠죠?”

“하하. 크롬웰이면 됩니다. 마법으로 굳혀놓은 공간이라서 무너질 염려는 없겠죠.”

“그렇군요. 마침 여기가 왠지 수상하지 않습니까?”

셜록 홈즈를 빙의시킨 내가 추리 소설에서 읽었던 정보를 아무렇게나 읊었다.

“흙은 정답을 알고 있죠. 저희 어디 합리적으로 접근해 볼까요?”

“합리적이란 말씀은?”

“결론에서부터 되짚어보자는 겁니다. 금고를 만들어서 숨겼다면 흑마법사가 그 자리를 자주 파헤쳤겠죠? 마법으로 다시 굳혀놨다고 해도 흙의 수분이 다를 겁니다.”

근처의 펜으로 벽을 긁어냈다. 그리고 쏟아진 흙을 집어서 존나 프로페셔널한 CIA처럼 가오를 잡았다.

“여기는 황야입니다만 구덩이 안쪽은 흙이 찰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흙의 물기는 공기에 오래 노출되면 건조되고요. 그런데 이 벽만이 다른 벽에 비해서 흙이 축축하군요.”

팩트 여부는 모른다. 대충 아가리를 터는 것이니까.

그래도 살짝 그럴싸하게만 말하면 된다.

흙은 정답을 모르지만, 영혼들은 정답을 알거든.

“흑마법사는 저희를 공격하며 말했습니다. 새 골렘의 성능을 시험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작전을 시행하기 전에 그 제작 결과를 기록하고 숨겼다면──”

그야말로 이세계 녹즙 판매원이자 유사과학 다단계 사원이 된 나는 희대의 명탐정처럼 단언을 하였다.

“금고 주변에 새롭게 덮은 흙은 지층 안쪽의 젖은 흙으로 되어 있겠죠?”

말을 끝내고 야수회귀를 발동한 주먹으로 벽을 세게 쳤다.

─데구르르! 쿵!!

그러자 커다란 돌덩이가 벽에서 굴러나왔다.

마치 인위적으로 굳힌 듯한 크기다. 고고학자인 나는 어느 정도는 지층에 대해서도 안다. 이런 황야의 깊이 수십 미터 지반에서 나올 크기의 바위가 아니었다.

─툭툭. 수박의 속을 확인하듯이 안을 두들겼다. 안이 텅 빈 것만 같은 소리가 났기에 길드장들이 눈을 크게 떴다.

“금고가 아니라 석고(石庫)였군요. 제 힘으로는 내용물을 손상시키지 않고는 못 부술 것 같은데, 도와주시겠습니까?”

“제가 하죠.”

에들린이 일어나서 마법을 사용했다. 장갑에서 용접절단기 같은 불꽃이 뿜어져나왔다. 모험가 길드장답게 마법이 전부 무영창이로군.

치이이이이이익─!

그냥 불꽃이 아니라 물리 에너지 포함하는 마법인지 불꽃 토치 앞에 돌멩이는 조각이 나 버렸다.

내용물은 커다란 나무 상자였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거의 백과사전 수준으로 두꺼운 책이 나왔다.

“세상에…….”

경악에 눈을 부릅뜬 에들린은 그 내용물보다 나의 추리가 더 놀라운지 날 보며 말을 잃었다. ─메다닥! 크롬웰이 마구 달려와서 책을 훑었다.

“잠깐 봅시다! ‘골렘의 안에 영혼을 가두는 실험을 진행한 나는 인간의 혼을 두개골에 가두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맞습니다! 이건 흑마법사의 연구 성과가 틀림없어요!”

좋아. 전문가의 공식 인증 나왔고.

나는 손에 묻은 흙을 털며 영혼들이 담긴 나무통을 만졌다. 땡큐베리머치입니다, 여러분.

─오오오오오오……. 정화된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손에 접촉한 영혼들은 성불하여 저승으로 떠났다. 5명 정도의 영혼이 연구실 천장을 뚫고 하늘로 사라졌다.

“왜 그러십니까? 여러분. 이만 돌아갑시다.”

그리고 나서 아직도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길드장들에게 어색하게 웃어줬다.

“이 분들의 무덤도 만들어 드리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앗, 아, 예!”

멍청하게 있다가 움직이는 시골 촌구석의 세 길드장들.

유일하게 네페르티티만이 데려오길 잘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이 묘하게 웃겼다.

연구실 바깥으로 나오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눕거나 앉아서 대기하던 모험가들은 길드장들(+나)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골딱이들은 계속 연구실 앞에서 경비를 섰는데, 팔자도 좋은 놈들이다.

“ZZZ…♡”

아니 시발 제일 팔자 좋은 애가 우리 파티네.

“쓰으읍. 부러워 죽겠구만.”

프랑의 무릎을 베고 자는 라리루라에게 나는 질투심을 불태웠다. 존나 내 특등석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내가 일하는 동안에 잠이나 자고 있어?

“그치만 이번 토벌대에 어울려준 의리가 있으니 봐준다.”

나는 팔이 안으로 굽는 남자다. 프랑은 그런 나를 보면서 재미있어 했다.

“후후. 잠들었길래 내가 무릎에 눕혔어. 베개도 없이 자면 목 뻐근할 것 같아서.”

“역시 우리 여친님이 세상 친절하다니까. 근데 티르시는?”

“일 도와주러. 마법사 길드 인력이라서 바쁘신가 봐.”

“그래? 아직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나중에 얼굴 보러 마법사 길드에나 가야겠다. 크롬웰한테 고급 마법을 구매할 수 있는 자격증도 받았으니까 뭉게뭉게 총 말고도 필살기 같은 걸 배울 수는 없으려나.

근데 드루이드의 필살기가 뭐지.

벡터맨의 필살기라면 알 것 같은데.

“노르? 손에 든 건 뭐야?”

“응? 아, 이거? 전리품의 절반.”

나는 프랑의 질문에 가죽 주머니와 책을 내밀었다. 이건 내 개쩌는 추리(사기쇼)에 감명받은 길드장들에게 쇼부를 봐서 뜯어낸 흑마법사 새끼의 전리품이었다.

부여 마법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재료들. 은화 주머니.

그리고 나르메르-나일 식의 흙 골렘 마법서였다.

“이게 절반이야?”

프랑은 비싸 보이는 마법 재료들과 은화 주머니를 보며 놀라워했다.

그런데 이건 절반이 아니라 30% 정도일 수도 있다. 진짜 거물은 아직 채취 중이니까.

“절반이지. 저기 있는 커다란 골렘의 조각난 코어도 나랑 네페르티티 씨가 반반씩 나눠 가지기로 했거든.”

저런 초대형 골렘을 기동시키던 코어다. 쓸모는 상당히 많을 것이었다. 그래도 코어가 흑마법에 오염되어 있다면 정화 비용은 따로 들려나.

“정말? 잘 됐다! 헤헤. 왠지 나까지 자랑스럽네.”

프랑은 내 말에 밝게 웃었다. 저렇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니까 나도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우리 마망 만세다.

“아, 그런데 마법서는 왜? 골렘 마법도 배우게?”

“그럴 생각이었는데 나한테는 적성이 없더라고.”

에들린 아줌마한테 사용법은 대충 배웠는데, 나는 드루이드 주제에 흙 마법에는 재능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한테는, 말이지.’

마법서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프랑을 보며 나는 웃었다.

드워프의 마법 적성이 불과 흙이라는 건 말해 봤자 입만 아픈 일이었다.

프랑이 마법을 배우는 건 조금 훗날의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흑마법사의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초대형의 골렘과 결계가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목격되었던 것도 있어서 가담항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은 이세계에서도 똑같았다.

그래서 사르가디스의 영주는 민심 하락을 막기 위해 즉시 포고문을 걸었다. 조기에 흑마법사의 존재를 간파하고 연합을 세웠다는 증거를 내세운 것이었다.

“역시 헨네시스 영주님!”

“지혜롭고 자비로운 헨네시스 영주님 만세!”

흑마법사의 시체(=대갈통)를 내걸자 사르가디스 시민들은 영주를 찬양하는 목소리를 올렸다. 존나 단순한 사람들이다.

소문이 돈지 하루만에 모험가들이 흑막을 조지고 개선(凱旋)을 했으니까 시민들도 안심할 만도 한가.

나는 여기 영주 이름이 죠테루 폰 헨네시스였다는 사실에 감탄하기 바빠서 그다지 공감은 안 갔지만.

존나 사람 이름이 어떻게 헨네시스지.

무슨 도떼기 자유시장 같은 이름이군.

뭐 아무튼 그리하여서, 딱히 좋은 일도 아닌데 왠지 축제 분위기로 호호껄껄대는 브리타니아 촌동네 사르다기스였다.

그리고 그 사르가디스를 구원한 브리타니아의 영웅이자 슈퍼 엘리트 고고학 석사인 꼴마초 지구용사 노르드는 뭘 하고 있었는가 하면──

일박 3쿠퍼인 여관에서 반으로 똑 부러진 검을 들고 욕을 하고 있었다.

무기는 아이템 분류 상 소모템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검 같이 칼날 상태가 중요한 무기는 쓰다 보면 날이 닿거나 무뎌진다고 말이다.

그래서 존나 무기를 정비하는 것은 자신의 실력을 기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내 목숨을 맡길 파트너에게 리얼돌(Real-stone)을 사 주고 맨날 기름칠을 해 주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뽀각.

‘근데 그 친구가 뒤져버렸내오.’

구멍이 송송 뚫리고 부러져버린 중저가형 검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앗! 프랑 언니. 거기는 오른쪽으로 돌리면 뽑혀요☆!”

“이렇게? 앗, 됐다. 꼭두각시 정비도 손이 많이 가는구나.”

“그렇죠? 그렇죠? 알아 주시는군요? 관절에 흙이 들어가는 게 제일 싫다구요, 정말~.”

아침해가 시부랄 쨍쨍한 날에 우리는 여관의 우물 옆에서 장비 손질을 하고 있었다.

흙 투성이가 된 링링이 3호를 해체하고 닦는 라리루라과 그걸 돕는 프랑. 그리고 갑옷 손질을 마치고 뒤져버린 검을 애도하고 있는 나였다.

“이걸로 해체는 얼추 끝났네요☆! 이제 물로 닦고 말리기만 하면 된답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분장에 흙을 묻혀가며 일하던 라리루라가 그리 말했다. 한숨을 돌리고 나한테도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그래서~? 우리 선배는 뭘 하고 계시나요~? 그거, 키타이의 축복 의식 같은 건가요?”

“축복이 아니라 장례식입니다.”

검을 땅에 꽂고 꽃을 뿌려주는 나. 잡철로도 안 사줄 듯이 씹창이 나버린 검이라서 손질하는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노르. 오늘 새 무기 사러 갈 거야?”

꼭두각시의 구조를 구경하던 프랑이 물었다. 어렸을 적에도 뭘 만지고 노는 걸 좋아했다더니 링링이 3호의 해체 분해를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글쎄다. 자본은 있으니까 무기도 사기는 할 건데, 일단은 마법사 길드에 먼저 들리려고.”

나는 장례식을 치룬 검을 대충 검집에 쑤셔넣고 말했다.

검이랑 검집은 깔맞춤으로 만드는 거라서 재활용도 어렵다. 대장간에 돈 주고 처분해달라고 맡기는 수밖에.

“마법사 길드? 같이 가 줄까?”

“흐흐. 마음만 받을게. 귀찮은 얘기나 하게 될 것 같거든.”

이번에 길드에 가는 이유는 2개였다.

하나는 어쩌다 보니 헤어지게 된 티르시한테 인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대 골렘의 코어를 받으러 가는 것이었다.

─이게 골렘의 코어입니다. 이크, 그런데 이게 흑마법의 마나에 더럽혀져 있는 것 같군요! 저희 마법사 길드에서 무료로 정화해 드리겠습니다. 나중에 받으러 오시죠!

─흑마법의 마나는 딱히 안 느껴지는데요.

─하하하하. 이게 전문가만 느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아, 저희가 수작을 부리는 게 걱정되신다면 여기서 무게를 측정하고 각서도 쓰시죠.

이상하게 물고 늘어지던 크롬웰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마 저 말은 핑계이고, 코어 정화는 ‘나중에 얼굴 함 보자’는 사인일 것이다.

그래서 각서를 쓰고 무게, 코어의 마나량 같은 걸 체크한 다음에 정화를 맡겼다. 날 호구로 보고 있지는 않으니 통수를 치진 않겠지.

‘마법사 길드의 대표로 나설 직위의 인간이 일부러 빼돌릴 정도의 물건도 아니었으니까.’

거대 골렘의 주요 동력원은 영혼 동력로였다.

코어는 그냥 보조 엔진이나 다름이 없었다. 품질로는 골드 클래스 몬스터의 드랍템 수준의 가치다. 네페르티티랑 반띵 하기도 했으므로 최소 골드 클래스일 크롬웰이 삥땅칠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지갑 챙겨서 갔다올게. 늦으면 먼저 저녁 먹고 있어.”

“응. 다녀와.”

“네~♡ 조심하세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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