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1,009)

그렇게 2명한테 인사하고 나는 마법사 길드로 갔다.

아서 웨인이 아닌 노르드로서 마법사 길드를 찾은 나는 우선은 신분 순서에 따라서 크롬웰한테로 갔다. 티르시는 있다가 봐도 되니까.

존나 타 중대 행보관이 불렀는데 일병 동기한테 먼저 인사하러 갈 수는 없잖아.

“어서 오십시오. 노르드 씨.”

집무실로 안내받아서 들어가니 크롬웰이 비싸 보이는 테이블에서 마법 연구를 하고 있었다.

요즘 따라서 만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갑자기 레벨 업 한 느낌적인 느낌. 약간 쫄렸지만 티 내지 않고 인사를 돌려줬다.

“예, 크롬웰 씨. 저번에 말씀하셨던 대로 정화해 주신 코어를 받으러 왔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앉으시죠. 차를 내오게 하겠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크롬웰이 벨을 흔들자 비서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 우리의 잔에 차를 따라주고 갔다.

존나 남자 비서라니 로망을 모르는군. 효율충 마법사답다고 해야 할까.

“거듭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이번 흑마법사 퇴치에서는 노르드 씨의 도움이 컸습니다.”

“저는 그저 새가 날기 편하도록 날개에 묻은 진흙을 털어준 것에 불과합니다. 도시를 지켜낸 것은 여러분의 힘이죠.”

나랑 크롬웰은 테이블에 앉아서 서론이니 공치사를 주고 받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골렘 크누므트의 코어는 정화가 끝났습니다. 가시는 길에 받으실 수 있게 절차를 진행해 놓았으니, 길드 내를 구경하시다가 떠나시기 전에 접수처에서 받아가 주십시오.”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저 때문에 다망하신 분이 시간을 융통하게 만들고 말았으니, 따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지금 들어두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드는군요.”

따로 불렀으면 용건이나 말하렴. 내 말에 진짜 본론으로 들어가는 크롬웰이었다.

“하하하. 역시 지혜로우십니다. 할 말이라……. 굳이 따지자면 두어 개 있겠군요.”

“어떤 것인지 여쭤봐도?”

“예. 첫 번째는 이번 승전(勝戰)의 축하연에 대해서입니다. 영주님께서 흑마법사를 퇴치하는데 다대한 공로를 세운 모험가들을 치하하는 작은 파티를 열어주신다더군요.”

작은 파티?

귀족의 세레브한 파티니까 절대 작지는 않을 거다. 저 표현은 드라마에 나오는 검소하지만 10억원입니다 같은 관용구라고 생각해 두면 된다.

‘근데 축하연이라고?’

두네 풀가동! 나는 왜 귀족들이 모험가를 치하하는 파티를 열어주는 것인지 생각을 해 보았다.

흑마법사를 조진 것에 대한 축하라면 끕이 맞는 귀족들끼리 모여서 회사가 상장한 것을 기념하는 비리 기업 주주 총회처럼 놀아제끼지 않나? 존나 거기에 우릴 왜 불러?

기업이 상장했다고 사장이 실무를 뛰는 과장급 인사들을 모아서 회식하는 것 봤는가? 사르가디스가 촌동네여도 이건 좀 이상한 느낌이었다.

‘충성심 문제인가?’

모험가는 거처가 자유로운 직업이다.

나랑 프랑은 헤이스벤트로 이사해서 거기 있는 아우둠라 길드의 의뢰를 수행할 수 있다. 자격만 되면 아예 다른 나라로 뜨는 것도 우리 마음대로였다.

사르가디스의 영주가 우리를 강제로 붙잡아 둘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주도 모험가들이 사르가디스에서 없어지면 곤란하겠지.’

저 흑마법사 같은 놈들이 또 나타났을 때, 그걸 경비대나 얼마 없을 기사들로 막아내는 것은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모험가들을 존중해 주면서,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보수와 치하를 섞어가며 어화둥둥해 주는 게 아닐까?

‘명예욕은 모험가가 채우기 힘든 욕구니까.’

귀족인 영주와 그보다 살짝 급이 낮은 상인들, 그리고 도시 길드장들을 불러놓은 파티!

거기에 모험가들을 불러놓고 소개합니다! 어벤져스! 하고 박수 몇 번 쳐 주면 모험가들은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며 뿌듯해질 것이었다.

24시간 꼴리는대로 살던 사람들이 보수를 노리고 일했을 뿐인데 도시를 구한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는다니?

누군들 그 상황에서 가오를 잡기 싫어지겠는가. 살짝 급이 낮은 전쟁영웅 개선 파티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질문했다.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건, 저한테도 참석 권유가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지요. 연합을 통해서 퍼진 이야기가 경비대장님을 거쳐서 영주님한테까지 올라갔을 겁니다. 노르드 씨한테도 며칠 안으로 초대장이 가겠죠.”

“저는 파티에 입고 나갈 옷도 없습니다만.”

“축하연은 일주일 정도 여유를 두고 열립니다. 입을 옷은 재봉 길드에서 협찬을 받을 수도 있고, 영주님 댁에서 따로 제공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미리 시착해 볼 여유는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동료들이 같이 참석해도 문제가 없을까요?”

“가족이나 같은 팀원에게는 허가가 나올 겁니다.”

“다행이네요.”

이건 파티원들이랑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

미리 알려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아무 것도 모르고 물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초대장만 덜렁 날아왔으면 동분서주하느라고 며칠을 낭비했을 것이었다.

그래서 왜 크롬웰이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 주느냐고?

‘──나한테 침을 발라두려는 거군.’

왜긴 왜야 시발. 내가 시발 구라쟁이 추리쇼로 어그로를 너무 많이 끌어놔서 그렇지.

“하하하하.”

“흐흐흐흐.”

웃음을 유지하는 크롬웰에게 나도 빵끗 웃어줬다.

상당히 재주가 좋은 사람이다. 나를 포섭하려고 해도 쉽게 넘어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눈치 까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포지션을 선점하려는 걸까.

세상에 무상의 호의는 없다.

‘생각해 보면 준 길드원 허가증 건(件)도 그랬어.’

생각 없이 보기에는 과잉 친절으로도 보이는 크롬웰의 행각은 가만히 살펴보면 대단한 처세술 투성이였다.

자기가 손해 볼 것은 거의 없는데, 유능해 뵈는 인재에게 뇌물 아닌 뇌물을 먹여두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뭐, 나한테도 나쁠 건 없지.’

받을 수 있는 건 받아내자. 기브 앤 테이크다.

크롬웰도 내가 여기에 홀라당 넘어가서 자기를 완전히 신뢰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할 것이었다. 우리는 상대방의 가치를 이해한 사이지, 뱃속까지 다 털어놓은 사이는 아니니까.

물론 이렇게 이성적으로 생각 못 할 만큼 정을 쌓아놓고 뒤통수를 치는 좆프년도 있지만.

생각하니까 갑자기 빡치네. 진정하자, 진정. 나는 크롬웰에게 말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염두해 두고 있겠습니다.”

“예에. 아, 그리고 2번째로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에들린을 경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노르드 씨, 아직 미혼이시죠?”

“콜록, 컥.”

시발 존나 갑자기 훅 들어오네. 나는 40대 아줌마댁 정액 디스펜서가 될 생각이 없어요.

“흐흐. 그렇습니다. 벌써 주의하고 있고요. 저번부터 크롬웰 씨에게 몇 번 도움을 받기도 했었죠?”

“아아, 알아차리고 계셨다니 다행입니다. 장래유망하신 노르드 씨가 그 여자의 마수에 걸려서 좋을 것 없잖습니까?”

“흐흐흐흐. 그렇습니까?”

너무 노빠꾸잖아 이 새끼야. 그 아줌마도 나름 권력자인데 내가 대답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렇고 말고요. 에들린이 지금까지 마법사 길드에서 낚아채간 인재만 몇 명이냐면 말입니다──”

“허어. 정말입니까?”

“어디 이것 뿐이겠습니까? 나이 먹고 화장품에는 얼마나 환장을 하는지, 피부에 좋다는 몬스터가 나왔다 하면──”

“흐흐. 거기까지는 몰랐습니다.”

결국 그렇게 공무원 화법을 따라서 감탄사랑 의문사만 연발하다가 돌아왔다.

이건 나중에 뭐라고 얘기가 나와도 ‘전 암말도 안 했는데오’ 하고 시치미를 뗄 수 있는 아크로바틱 회피 화법이다. 다른 말로는 언어 태극권이라고도 한다.

요령은 리액션을 찰지게 받아주는 척 하면서 자기 의견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 것이지. 모두 상사의 뒷담화에 연루됐을 때는 애용하도록 하자.

‘준내 지치네.’

둘이 사이가 안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물밑에서 수작을 부려댈 줄은 몰랐다.

나는 크롬웰의 방에서 나오며 어깨를 풀었다.

이제 티르시한테 인사하러 가자.

티르시 아르마슈나스는 연금술사다.

그리고 같은 의학과도 정형외과, 성형외과, 치과, 수의과, 무화과 등의 여러 분류가 있듯이 연금술에도 종류가 많다.

금속 제련이나 가공이 전문인 조금(造金) 연금술사부터 생물적인 연구를 하는 바이오-연금술사(가칭)까지 여러 가지로 나뉘는 것이다.

그런 연금술 중에서 가장 메이저하고 돈이 잘 되는 분야는 무엇인가!

‘물약 연금술이지.’

물은 정답을 알고 있고 포션은 돈이 된다.

마법까지 부여된 정품 포션은 기술을 배우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마스터하고 나면 수익이 크고 안정적이다.

그래서인지 투자 비용도 크고 꼰대랑 똥군기도 많댄다. 대충 연금술 업계의 공무원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대체 그 연금술 학파 건물은 어디에 있는데.”

나는 존나 미아가 되어서 길을 헤매다가 그리 중얼거리고 말았다.

‘너무 넓어서 어디가 어딘지 모루겟소요.’

티르시를 따라서 가 본 적이 있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좆도 괜찮지 않았다. 건물이 다 비슷하게 생겨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사박사박.

그렇게 길을 헤매다가 어느 건물의 바깥부지로 나왔다. 잔디밭이 깔린 곳이었다.

“구구! (섹스!)”

잔디밭에는 새장도 있다. 비둘기 존나 예쁘게 생겼네.

마법사들이라서 룩딸부터 챙기나? 아니면 전서구가 아니라 사역마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잠깐 숨을 돌릴 겸 하얀 비둘기들을 구경했다. 눈이 시뻘건 것이 참 마음에 드는 놈들이었다.

“국구. (병신)”

“이 시발?”

저 새대가리 새끼가 지금 나더러 뭐라는 것이지? 존나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하자 나도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나는 가오를 잡으며 새장 안의 비둘기에게 삿대질을 했다.

“구륵 국구구구 굿 국구국. (너도 병신이라 거기 갇혔지.)”

“꾸구륵? (이 시발?)”

새총을 맞은 것처럼 놀라는 비둘기 새끼. 어디 조류 주제에 인간님에게 깝을 친단 말인가! 나는 낄낄대며 놈을 계속 몰아붙였다!

“국구국! 국구구구 국구국! (갖혔다! 병신이라 갖혔다!)”

“꾸르국!! 꾸르국!!!! (개 씨발아!! 개 씨발아!!!!)”

비둘기는 불알에 불닭소스라도 발린 것처럼 지랄을 했다. 그러나 철조망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놈이 분노해 봤자였다!

“크크. 국구그. (크크. 병신쉑).”

마지막까지 티배깅을 마친 나는 지구의 혁명가가 외쳤던 말을 인용하며 언쟁을 피니쉬 지었다.

“나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I will never be slaves. But I will be conquerors).”

“……거기, 뭐 하고 계시는 거죠?”

그러고 있는데 등 뒤에서 말을 거는 사람이 나타났다. 날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는 여자 마법사였다.

아니, 존나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상한 새끼가 맞긴 한데.

“앗. 죄송합니다. 잠깐 연금술 학파 건물이 어디인지 몰라서 헤매는 중이었습니다.”

“연금술 학파라면 반대편인데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메다닥! 나는 오바를 떨면서 도망갔다.

시발 보고 있었으면 말이라도 하든가. 거리가 멀어서 보고 있는 줄도 몰랐네. 개쪽팔려라.

“실례합니다. 티르시 아르마슈나스 씨 있습니까?”

나는 티르시가 있을 건물로 달려가서 용건을 밝히고 접견실에서 티르시를 기다렸다.

“노르드! 기다렸죠?”

밀린 일감이 따로 없었는지─아니면 내가 크롬웰이 신분을 보증해주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티르시는 금방 나타났다.

티르시는 이번에도 분홍색 간호사복에다가 의사 가운 같은 걸 입었다. 저게 작업복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빨리 오셨네요. 저번에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으니 잠깐 얼굴 비추러 왔습니다.”

“기쁘네요. 그래도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셔도 됐는데.”

“이런. 제가 혹시 귀찮게 해 드렸습니까?”

“네? 아뇨! 전혀요!”

─화들짝! 티르시는 눈을 크게 뜨며 손사레를 마구 쳤다. 다행이다. 방해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급한 일을 하다가 온 걸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티르시는 저번 싸움이 끝나고 어떻게 잘 들어가셨습니까? 다치셨던 곳은 괜찮구요?”

“네. 여러모로 정리를 하느라고 성문이 닫히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오기는 했지만요. 팔의 상처도 깔끔하게 다 나았어요. 보세요.”

의사 가운을 벗고 팔을 드는 티르시. 상처 부위를 보여주려고 한 것 같은데, 민둥산의 겨드랑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나는 깜짝 놀랐다.

분홍색 민소매 간호사복에 흰 장갑은 약간 페테시즘 같은 느낌이 든다. 저걸 연구복으로 지정한 새끼는 100% 변태다.

“……앗! 읏!”

내가 눈을 피하니까 티르시도 눈치 채고 팔을 내렸다.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이상한 건 묻지 말 걸 그랬다.

“하, 아하하……. 그, 부, 부끄럽네요…….”

빨개진 티르시는 양팔을 껴안으며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다음에 볼 때는 어색해질 것 같아서 다른 화제를 꺼냈다.

“아, 그건 그렇고 말입니다. 제가 저번에 크롬웰 씨한테 이런 걸 받지 않았습니까?”

품에서 크롬웰이 줬던 신분 증명서를 꺼냈다. 머리가 좋은 티르시도 눈치껏 내 말에 어울려줬다.

“네, 네! 그랬죠 참. 배우고 싶은 마법이라도 있나요?”

“예. 제가 여러 명의 적과 싸우는 능력이 부족해서요.”

수십 마리 골렘을 상대로 다굴당했을 때 얘기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대가리에 죽인다 or 죽는다 밖에 없는 상또라이 새끼들을 상대로 혼자 이기는 것은 존나 어려운 일이었다.

유적에서 이세계 그린 잼민이들을 조졌을 때는 파티랑 같이 싸웠다.

워킹-고라니들은 수준이 낮았던 것과 놈들이 자기 목숨을 걸고 나를 죽이려 들지 않았기에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하수도의 그레이트 빅 여치나 흙 골렘처럼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으로 덤벼드는 놈들을 상대로는 어땠지? 튀거나 깔리거나의 이택이었지 않은가.

‘내 약점은 다대일의 전투야.’

흑마법사 전에서 그것을 크게 실감했다.

내 전투능력은 최소 실버 클래스 상위에서 최대 골드 클래스 최하위 정도일 것이다. 마나가 거의 오링난 흑마법사를 정면에서 뚫지 못했으니까 솔직히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골드 클래스를 상대로도 틈을 파고 들어서 뭉게뭉게 총이나 그밖의 술식 결합으로 비벼보면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나한테는 타뷸라나 흑마법사처럼 진짜 수준이 높은 놈을 상대로도 통하는 고위력의 공격기가 있으니까.

‘그래도 이래서는 보스를 잡아 놓고도 그 부하들한테 다굴 맞아서 뒤질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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