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급히 확보해야 되는 건 일대 다수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기술이었다.
난전에서 유리해지는 마마무(魔磨霧)도 공격 수단은 결국 내 손으로 후려갈기는 것 아닌가. 기껏 마법을 배울 수 있는데 이 증명서를 썩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 크롬웰이 나를 손절하고 증명서를 폐기할지 모를 일이었고 말이다.
“여러 명의 적을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는 마법을 원하는 거라면, 아마 긴 주문 영창이 필요한 고급 마법밖에는 없을 거에요.”
티르시는 겨드랑이 어필 해프닝을 잊으려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내 말에 대답했다.
“그렇지만 노르드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전사’잖아요? 전위에서 싸우는 사람이 주문에 집중할 여유는 없지 않을까요?”
“뭐, 그렇긴 한데요.”
그건 나도 걱정하고 있던 점이었다.
무기를 휘두르는 적을 앞에 두고 내가 주문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까?
마법은 단계가 높아질수록 난이도도 급상승한다. 벤치 프레스를 하면서 10의 자리 곱셈은 할 수 있겠지만, 미적분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긴 하다.
‘내가 뒤로 빠져서 싸우면 프랑이 위험해지니까.’
라리루라는 언제까지 계속 파티원으로 있어 줄지 모르니 지금은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금속 꼭두각시인 링링이 3호라면 나만큼 단단하기는 할 것 같지만 말이다.
“저…… 혹시 괜찮다면 제가…….”
티르시는 나한테 뭔가 말하려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입을 다물어버렸다. 얼굴이 또 빨개진 티르시가 머리를 휘젓고 중얼거렸다.
“제가 그, 추천 드리고 싶은 마법이 있는데요. 꼭 강력한 마법이 아니어도 상관 없을 것 같아서요.”
강력한 마법이 아니어도 된다니?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다가 손뼉을 쳤다.
“아아! 적의 발을 묶거나 하는 마법이군요.”
게임에서 말하는 메즈기나 버프기다.
‘그 왜, 옛날 판타지 소설 같은 곳에 보면 한 번은 나와 주는 게 국룰인 그리스 마법 같은 거.’
적들이 우르르 몰려오는데 바닥의 마찰 계수를 낮춰서 넘어트리고 유유자적 도망치는 주인공은 2000년대 판타지 소설의 템플릿이었다.
적의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여러 명한테 다굴을 당해도 각개격파가 가능할 것이었다.
티르시는 맞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 이건 공격용으로도 쓸 수 있는 마법이거든요. 마법 적성이 문제지만요.”
“흐흐. 티르시도 사람을 기대시키는데 일가견이 있군요.”
적성 문제야 어디에든 따라오는 거라서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티르시는 내가 치켜세워주자 눈을 돌리면서 급하게 말했다.
“아, 그, 그게요!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이라는 마법인데요! 이건 <화살> 계통의 마법 중에서도 위력과 부가 효과가 가장 뛰어난 마법이에요!”
“<번개의 화살>이요? 티르시가 자주 쓰는 마법은 <얼음의 화살> 아니던가요?”
<얼음의 화살>은 티르시랑 힘을 합쳐서 싸울 때마다 매번 썼던 것 같다. 냉기를 뭉쳐서 날리는 마법이던가.
“네! 제가 제일 자신 있는 마법이거든요! 쓸 줄 아는 공격 마법이 별로 없어서 엄청 연습해서 무영창으로 만들고, 그리고, 실제 얼음을 냉기로 밀어내서 진짜 화살처럼 만들거나 했어요!”
티르시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내가 길드장들 앞에서 발표했던 때처럼 당황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요! <번개의 화살>은 뭐냐면요! 원리는 같은데 냉기 대신에 번개를 뭉쳐서 쏘는 거에요! 진짜 번개처럼 빠르지는 않지만요!”
“번개군요. 감전으로 공격할 수도 있고, 몸이 저려서 마비 효과를 낼 수도 있겠네요.”
암만 몸이 튼튼한 사림이라도 전기가 몸을 휘젓고 가면 으게기기기긱 거릴 것임에 틀림 없다.
‘나쁘지 않은데?’
아니,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꽤 괜찮은 것 같다. 나는 티르시에게 물었다.
“좋은데요. <번개의 화살>의 마법서는 길드에서 파나요?”
“그게, 팔기는 파는데……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제가 노르드한테 마법을 알려드리면 안 될까요?”
“이, 이 마법이 감전 위험도 있고 배우기도 어렵거든요! 마법사 길드에서는 마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직계 선생을 가지기를 추천하기도 하고요!”
─꼼지락꼼지락.
그렇게 외친 티르시는 손가락을 비비며 내 눈치를 봤다.
뭐지. 분위기가 좀 야한데.
‘……설마 티르시가 나한테 관심이 있나?’
나도 남자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고 말았다. 내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르지만 티르시의 분위기도 엄청 심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티르시가 말했다.
“대신에 그……! 제가 노르드 씨의 파티에 가입하면 안 될까요?!”
“……넹?”
PARTY?
“그게요. 실은 요즘에 간신히 모험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났는데, 브론즈 클래스 이상으로 올라가면 팀을 꾸리고 움직이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티르시는 간신히 말했다는 것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제로 싸움에서 활약 가능한 마법사는 길드에서도 평가가 높아지고 이득을 보거든요. 기준으로는 골드 클래스 이상이면 6성급에도 추천을 받아요.”
“실력이나 인품 면에서 믿을 수 있는 분들이랑 팀을 꾸리고 싶은데, 짐작 가는 곳이 없어서…… 안 될까요?”
“앗, 네, 아뇨, 네. 아마 괜찮을 걸요. 파티원들한테 물어볼게요.”
“정말요?!”
내 대답에 눈을 빛낸 티르시는 테이블에 몸을 내밀며 매우 기뻐했다. 와. 나 이 사람이 이렇게 기뻐 하는 거 처음 봐.
“그럼 제가 나중에 묵고 계신 여관으로 찾아갈게요! 아! 저도 영주님이 주최하는 축하연에 참가하니까 그때까지 얘길 나눠 보시고 대답 들려 주세요!
“네엥…….”
“허락만 해 주시면 찾아봬서 일행 분들께 인사도 드리고, 마법도 얼마든지 알려드릴게요! 약속이에요! 노르드!”
“네에엥…….”
그렇게 인사를 마친 나는 문을 닫고 티르시와 작별했다.
“……네훼에엥.”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존나 수치스러웠다. 이성이 조금 호의를 보이거나 좋은 분위기가 됐다고 바로 우쭐해져서 날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다니!
아다였던 시절에 여자랑 작은 접점 하나 생겼다고 손주 이름까지 생각하던 것보다 아주 약간 나아진 수준이었다.
‘결국 아직 나는 정신적으로 유사-아다인 거구나.’
쪽팔림과 허무함에 지배당한 내 머리 위를 아까 봤던 비둘기 새끼가 세차게 날아가며 울부짖었다.
“국구! 국구! (병신! 병신!)”
이 뻐킹 이세계는 가끔씩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아넣는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코어를 받아서 돌아갔다.
내 대갈통만 한 코어는 뒤지게 무거웠다.
“모험가 길드에 등록해야겠네요☆!”
마법사 길드에서 들었던대로 축하연 얘기를 하자 라리루라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프랑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어? 왜?”
“신분적으로는 그렇게 설명하는 게 빠르니까요! 제 체류자 허가증이나 신분 얘기는 복잡하니까, 아우둠라 길드의 모험가라는 신분이 있는 게 낫지 않아요~?”
“자기소개가 번거로운 게 싫다면 그것도 방법이지.”
나는 골렘 코어를 넣은 상자를 내려놓고 프랑한테 말했다.
“라리루라는 로마니아 인이지만 서커스단 출신으로 입국해서 체류 중인 민간인이잖아. 그런데 어쩌다 보니 골렘 토벌대에 참가했던 거였으니까, 누가 물어보면 설명이 길어지지.”
“선배의 일행으로 축하연에 참석한다면 ‘모험가 팀 동료’라는 입장을 얻어두는 게 자기 소개도 편할 걸요♡?”
“아, 그렇구나. 영주님이 자네는 누군가~? 하구 물어보실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이해를 한 듯한 프랑이었다.
‘전투에서 활약한 모험가들을 치하하는 파티니까 입장은 확실히 해야지.’
국가유공자 서훈식에 외국인 유공자가 껴 있으면 얼마나 설명하기가 복잡해지겠는가. 그냥 모험가 자격증 따 가서 저랑 같은 팀이라 데려왔슴다~ 하고 말지.
나는 모자를 벗고 손으로 머리를 빗는 라리루라에게 물었다.
“그보다 라리루라. 너 모험가 일을 계속할 생각은 있냐?”
“글쎄요~? 솔직히 유적이라든가 잘 모르는 비경(秘境)을 탐험하는 일이라면 꽤 가슴이 뛰지만요~☆? 성실하게 바닥부터 올라가자니 저한테 그다지 메리트가 없달까요~.”
뭐, 그렇겠지. 라리루라는 나처럼 신분 상승을 노리는 것도 아니니까. 라리루라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저번 골렘 토벌에는 흥미 본위로 참여했지만~ 제가 앞으로 뭘 하면서 지낼지는 정하질 않았거든요~.”
“라리루라도 돈은 꽤 벌지 않았어? 1~2년은 일 안 해두 될 것 같은데.”
“그러게. 이 골렘 코어 값이랑 축하연에서 나오는 보상이면 당분간 일할 걱정은 없을 걸.”
“앗, 저는 영주님이 주는 보상은 딱히 필요 없는데요? 저번 싸움에서 그렇게 큰 도움도 안 됐었구.
프랑의 말에 내가 동의하자 라리루라는 손사레를 쳤다. 그러고는 애교를 부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두 그 커다란 흙 골렘의 코어는 쪼오~금 떼 주시면 기쁠 것 같은데요오~. 링링이 3호의 개조 보강에 좋을 것 같아서~♡”
프랑과 눈빛을 교환했다. 상관없다는 사인을 보내는 우리 여친님. 그에 나는 코어를 넣은 상자를 가리켰다.
“안 그래도 이건 3분의 1로 나눌 거야. 처음부터 보수 분배는 그런 약속이었잖냐.”
헤이스벤트를 출발하기 전에 우리는 이번 일의 보수를 3등분하기로 했었다. 그걸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는 것이었다.
파이가 커졌다고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것은 마초가 할 짓이 못 된다 이 말씀.
‘내 몫의 코어는 부여 마법 재료로 써야지.’
고품질의 코어다. 프랑의 가면에 새겨뒀던 ᚲ(Kenaz)의 유지시간도 늘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거 말고도 앞으로 부여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쓸모가 많겠지. 팔아버리는 건 아깝다.
“만세! 두 분도 참♡! 사람이 좋으셔~☆!”
“후후. 그렇게 기뻐?”
만세를 하면서 신나하는 라리루라에게 프랑이 물었다. 라리루라는 집게 손가락으로 V자를 내걸었다.
“당연하죠! 요즘은 꼭두각시에도 코어를 넣는 추세라구요! 보조 동력로를 설치해 두면 술사의 마나에 맞춰서 출력을 높일 수 있어서 좋답니다!”
“어려워 보이는데 혼자서 만들 수 있어?”
“전혀요☆! 전문가한테 상담해 볼래요!”
사르가디스에 꼭두각시의 전문가가 있을려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라리루라는 상자를 열었다. ─잘그락. 작은 코어 조각을 집어서 챙기는 라리루라였다.
“저, 얼른 가서 아우둠라 길드에 등록하고 골렘 장인이 있는지도 물어보고 올게요?”
“아. 그런 거라면 프랑이랑 같이 가. 아직 해도 중천이니까 여기에도 들리면 딱 맞겠다.”
나는 품에서 재봉 길드의 소개장을 꺼냈다. 자기 이름이 나오자 프랑이 귀를 쫑긋했다.
“뭐야, 그거?”
“축하연에 참석하려면 드레스 코드를 맞춰야지. 이건 재봉 길드의 소개장이니까 너희끼리 돌아다니면서 파티장에서 입을 옷을 골라 와.”
“넷?! 뭔가요, 뭔가요! 옷 얘기인가요?!”
진정 좀 해라, 광대옷 단벌신사 서커스 걸. U턴해서 달려온 라리루라랑 프랑이 볼 수 있게 소개장을 내밀었다.
“쿠튀리에 길드라는 곳에서 참석하는 모험가한테 파티복을 협찬해 준대. 기성복을 빌려주는 거지만 사이즈 조정도 해 준다더라고. 너희끼리 가서 골라보고 와.”
“노르는? 노르도 같이 가자.”
그렇게 물을 줄 알았다. 나는 프랑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며 말했다.
“아니, 너희들 옷을 고르는데 내가 껴 있기 부끄럽거든. 그 왜, 파티복은 속옷부터 골라야 하잖아. 속옷은 협찬 안 해 줄 테니까 시착해 보거나 하면서 놀다 와.”
이세계에도 드레스는 코르셋 같은 게 있다. 그밖에도 등이나 가슴이 드러나는 옷에는 거기에 맞는 속옷을 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재봉 길드의 협찬은 고급 속옷을 팔고 고위 모험가랑 연줄을 대기 위해서겠지.’
나는 몸을 숙여서 프랑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가서 예쁜 옷으로 골라 와. 기대할게.”
“앗……♥”
프랑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오늘 밤이 기대되는군.’
여성용 고급 속옷은 야한 란제리가 대부분이다. 이세계에서도 그건 똑같다.
프랑의 가슴에 맞는 사이즈의 속옷이면 99.9% 야한 란제리겠지. 상상만 해도 쥬지 터진닷!
“드레스~ 드레스~♡! 새 옷~! 드레스라니 얼마만일까요!”
─빙글빙글! 라리루라도 소개장을 들고 신나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잘 다녀오란 뜻으로 프랑의 등을 밀었다.
“가끔은 내가 집 보기 담당을 해야 평등하지. 둘이서 놀다 와. 링링이 3호도 다 마르면 창고에 넣어둘게.”
“아핫♡! 감사해요 선배! 포대기 채로 흘리는 부품 없게 묶어서 창고에 넣어주세요~☆!”
“저녁 먹기 전에는 올게, 노르!”
“어. 조심해서 다녀와.”
프랑이랑 라리루라를 배웅하고 우물 옆의 바위에 앉았다. 그리고 품 안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냈다.
─팔랑.
<수사(修士)의 랜턴(Friar's Lantern)>이라는 마법의 사용법이 적힌 마법서였다. 두루마리도 2장이라 얼마나 배우기 쉬운 마법인지 알겠다.
나는 다리를 꼬고 거기에 적힌 글을 탐독했다.
“마나를 술식 구조에 넣어서…… 몸의 마나를 밖으로…… <광구> 마법이 구(球)형을 취하는 것은 발동 시간을 늘리기 위해…….”
─중얼중얼.
집중해서 연습하는 나. 마법의 원리를 습득하기까지는 10분 컷이었다. 나는 손바닥 위의 술식에 마나를 흘려넣으며 주문을 외웠다.
“<수사의 랜턴>.”
─파아아아아앗!
내 마나는 파란색의 빛으로 전환되었다.
들었던 대로 꽤 예쁜 빛무리였다. 띄워놓은 빛은 <구름 소환(Summon Cloud)>의 연기처럼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색깔 조정도 가능했고 말이다.
─슈와아아아아아악.
나는 다른 마법을 섞어보거나 조합해 보며 연습을 하다가 <수사의 랜턴> 마법을 껐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데다가 벌써 마법을 4~5개 다루는 나한테는 간단한 일이었다. 마법서를 잘 접어서 품에 넣고 바위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헬스나 해 볼까?’
요즘 들어서 모험가 일이 바빠서 운동에 매진하지 못했다.
운동은 좋은 것이다. 일을 하는 중에는 체력과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참았지만 간만에 상체 좀 조지자. 그리 생각한 나는 저번에 썼던 바위를 찾아서 뽑았다.
“……뭐고?”
그런데 바위는 저번보다 훨씬 가벼웠다. 무게가 안 느껴질 정도는 아닌데, 10kg 짜리 아령을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쓰으으으읍. 이거 못 쓰겠네.”
통탄하며 바위를 원상복귀시키는 나.
성장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이래서는 내가 쇠질을 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10kg 아령도 운동에는 쓸 수 있지만 이런 바위로는 그런 운동도 하기 힘들었다. 무게랑 상관 없이 쥐기가 힘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