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뭣보다 내가 가벼운 무게로 하는 운동을 모른다.
브람마톤 교수님은 무조건 고중량 유산소를 겸하는 실전 근육 찬양론자셨다. 21세기의 운동법? 내가 관심이 없었어서 전혀 아는 게 없다.
‘아예 마나를 빼고 운동을 할까?’
그것도 방법이긴 한데 효율이 안 좋았다.
근섬유가 혹사당해야 늘어나는 것처럼 마나도 사용해야만 몸에 적응하는 것!
마나를 빼고 근력 운동을 한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냥 딴 운동을 하고 말련다.
─주섬주섬.
바닥에 버려진 나뭇가지를 주워서 흙을 털었다. 가지치기를 해 놓고 안 치운 가지인지 두께나 무게가 적당했다.
그걸 들고 가을 낙엽이 남은 나무를 적당히 흔들었다. ─후두두둑! 기운 없이 붙어 있던 나뭇잎은 마지막 잎새가 되어 내 앞으로 쏟아졌다.
나는 나뭇가지를 검처럼 쥐고 속삭였다.
“──귀두룡섬·개(鬼頭龍閃·改)!”
─파파파팡!
야수회귀를 안 키고 쏟아지는 낙엽을 때린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거기까지는 놓치지 않고 전부 맞췄지만 다섯 개째에서 그만 삑사리가 나고 말았다. 약간 자존심이 상해서 마나를 강하게 끌어올렸다.
“수유우우우우우웃──!!”
여섯 개, 일곱 개, 여덟 개, 삑사리! 삑사리! 존나 삑사리!
“요 시부랄 새끼들 존나 잘 피하네.”
나는 혀를 차면서 나뭇가지로 땅을 두들겼다.
만화나 영화를 보면 찌르기 1번으로 나뭇잎을 여러 개 꿰거나 하던데, 픽션은 픽션이었다.
쏟아지는 낙엽을 정확하게 맞추자니 꽤 어려웠다. 속도를 무작정 빠르게 한다고 맞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물 위의 기름을 뜨는 것처럼 나뭇잎들은 내 공격이 빨라질수록 바람을 타고 요리조리 피한다.
나도 몇 개까지는 라리루라한테 배웠던 신체조율 훈련 덕분인지 제대로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갯수가 늘어날수록 빗나가고 만다.
‘연속 공격이 말처럼 쉽지가 않구나.’
빠르고 정확하게 적을 공격할 수 있다면 다대일 전투에도 유리해질 것 같은데 말이다.
‘됐다. 단련만이 답이겠지.’
나는 언젠가 얼스터 빨갱이 셈무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뭇잎 부수기를 재개했다.
─팡! 팡! 팡!
나무의 탈모를 진행시키며 단련에 매진한지 1시간 쯤 지났을까. 내가 흔들던 나무는 더 이상 떨어트릴 낙엽이 없어진 황량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약간 미안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어차피 내년이 되면 다시 자랄 거 아냐.’
그렇다면 이건 탈모가 아니라 제모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내가 벌인 일은 입대를 앞둔 20대 휴학생의 머리를 밀어주는 블루클럽 사장님과 같은 상냥함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역시 나는 선량한 마초라니까.”
그렇게 다른 나무를 빡빡이로 만들어 주려고 발을 옮겼던 내 기감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잡혔다.
다른 손님인가? 우물가니까 물을 뜨러 올 만도 했다. 그리 생각하며 얌전히 그 사람을 기다렸던 나는 나타난 사람의 상상도 못한 정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페르티티 님?”
팔에 붕대를 감은 미스릴 클래스의 모험가. 내게 나뭇잎 부수기 연습을 하게 만들었던 연속 공격의 달인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네페르티티는 무감정한 어조로 말했다.
“안녕.”
“아, 예.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그, 혹시 저를 보시러?”
까딱과 끄덕 사이의 작은 끄덕임이었다. 아니 뭔데. 날 보러 온 거면 말을 해 제발.
“방해했어?”
한 10초 정도 기다리자 네페르티티가 물었다. 내가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내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흐흐. 아닙니다. 그보다 보고 계셨던 건 아니죠? 실력이 미천해서 네페르티티 님께 보여드릴 정도는 못 되는데요.”
“안 봤어. 남의 단련을 엿보는 건 실례니까.”
그거 다행이구만. 안심하는 나에게 네페르티티가 말했다.
“이거, 보답.”
“넹?”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나한테 내미는 네페르티티. 빌려간 걸 돌려주는 것처럼 당연하게 내밀길래 어버버 하는 사이에 받아버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무겁다. 하지만 무거운 것 치고는 가볍다.
무슨 소리냐고? 금속 같은데 존나 가벼웠다는 뜻이다. 어쩌면 알루미늄보다 가벼울지도 모른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보답이라니, 뭡니까?”
뭐에 대한 보답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나는 주는 건 받는 놈이었고 흑마법사 퇴치에서도 꽤 활약했으니까.
그래서 네페르티티의 대답은 짧고 굵었다.
“미스릴.”
“……죄송합니다. 뭐라고요?”
잘못 들었나? 미스, 뭐요? 슬라임?
내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자 네페르티티는 자기 발음의 문제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입을 크게 벌린 그녀가 다시 말했다.
“나한테 남은 미스릴, 전부.”
미스릴.
시장에 유통되는 금속 중에서는 가장 단단하고 비싼 금속.
가격으로 치면 같은 무게의 순금을 5배로 얹어도 안 판다는 물건이었다.
‘허미.’
나는 손에 들린 천을 걷었다가 자지러질 뻔 했다.
안쪽에 보이는 은색의 덩어리는 보는 눈이 없는 놈한테는 철로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나도 마나를 보는 영감을 각성하기 전이었으면 못 알아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나도 만져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피부에 닿기 전에는 미스릴에서 마나가 밖으로 전혀 새어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스릴은 마나를 꽉 붙들고 밖으로 유출되지 않게 잡아둔다고 하는데, 실제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마나 감응력이 높은 희귀금속!
미스릴이 존나 귀한 금속인 이유가 그것이었다.
‘보통의 금속은 마나를 거부하지.’
바위가 땅 안에서 압축되서 생겨나는 게 금속 아니던가.
강력한 땅의 마나를 품은 금속들은 다른 마나를 흡수하지 않고 튕겨내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불판에 올린 물처럼.
‘그래서 금속에다가 마법을 걸려면 계속 마나를 넣어주는 수밖에 없어.’
타뷸라의 철가면에 나무 부적이 별도로 붙여져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대장장이 클라라가 금속 전문 무기점을 하느라 고생하는 것도 이런 금속의 한계 때문이었고 말이다.
‘미스릴 같은 희귀금속이 아니면 부여 마법을 불어넣질 못하는데, 희귀금속은 존나 비싸니까.’
가격? 몬스터 소재가 훨씬 싸다.
강도(剛度)? 몬스터 소재가 훨씬 딴딴하다.
공격력? 몬스터 소재에 부여 마법을 거는 게 더 쎄다.
‘그래서 미스릴이 씹사기인 거지.’
마나를 잘 받는데 금속이다. 재질도 튼튼하고 가벼운데다 재련도 간단하다.
개성이 쎄서 장비마다 손질법이 다른 몬스터 소재 무기나 갑옷보다 손질하기도 편하다. 씨발 진짜 장점밖에 없네.
왜 모험가 등급의 금속 랭킹 최고위가 미스릴이겠는가. 이 미스릴이 그만큼 개쩌는 금속이라서 그런 것이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역시 미스릴 클래스 모험가님께선 배포도 남다르셔!!”
그러다 보니까 나도 척추반사로 저자세가 되고 말았다
존나 포상휴가 5박 6일을 받았던 내 맞선임처럼 가스 불에 지져진 오징어가 돼 버렷!
하지만 내 진심이 가득 담긴 아부에 네페르티티는 심드렁하게 대답할 뿐.
아니 뭐, 어디 사는 변발 농사꾼 엘프 새끼도 그렇고 여기 사람들은 힘이 쎄지면 감정이 고자가 돼 버리나. 왤케 다들 쿨내나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개이득!’
나는 미스릴의 가벼운 묵직함에 입이 귀에 걸려버렸다.
미스릴은 유통량이 꽤 있어서 부호들이 눈이 뒤집힐 정도의 물건은 아니다.
줫밥들은 가치를 못 알아보고, 나처럼 마나를 볼 줄 아는 놈들도 만져보기 전까지는 이게 미스릴이라는 건 모른다.
‘즉, 들고 다닌다고 위험해지는 물건도 아니란 거지!’
이세계에서 비싼 무기로 무장하고 다니는 것은 일진 형들이 담배 피는 뒷골목에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가는 고딩처럼 위험천만한 짓!
내가 지구에 있을 때도 그런 양심 없는 학교 선배놈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야. 그거 빌려줘 봐. 아 시발, 쓰고 돌려준다니까?
─어어, 저 새끼 튄다! 잡아!
새록새록 떠오르는 좆 같은 추억 따위 이젠 안녕이다!
미스릴 무기는 들고 다니다가 트러블을 겪을 일이 없다! 이걸로 +5 집행검을 만들어 들고 다녀도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나는 좋아 죽으려는 입을 인내심의 다리미로 쫙 펴고 헛기침을 했다. 너무 꼴사납게 기뻐하는 것도 좋지 않다.
“잘 쓰겠습니다, 네페르티티 님. 마침 무기를 잃은 참이라 큰 도움이 되는군요.”
“미스릴, 얼마 안 돼. 만든다면 창이 좋아.”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참고하죠.”
지금 나더러 창쟁이가 되라는 것인가?
존나 그렇다면 그냥 창쟁이로는 만족할 수 없지. 이걸로 글레이브를 만들어서 블루 드래곤 글레이브를 든 만인지적의 관우가 되고 말겠다.
이세계 꼴마초 관우. 히히 시발 신난다!
“그건 그렇고…… 이런 훌륭한 선물을 받아놓고 물어보긴 좀 면목이 없습니다만, 질문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타임랙 0.1초의 대답에 약간 얼탱이가 밤탱이가 되며 나는 궁금했던 걸 질문했다.
“흑마법사 아비두스와는 어떤 악연이 있으신 겁니까? 저도 검은 로브를 입고 정체를 숨긴 전사놈이랑 싸운 적이 있어서 부디 알려주셨으면 해서요.”
“전사……?”
네페르티티는 고심하다가 말했다.
“아마 그 사람은 관계없어. 흑마법사가 아니라면.”
“응. 아비두스는 임모르탈리스의 일원. 하지만 간부조차 못 되는 중위층 인력.”
“임모르탈리스. <불멸>입니까.”
사어(死語)에 가까운 옛 로마니아 어였다. 뜻은 해석할 수 있었다. 흑마법사 새끼들한테 어울리는 비밀결사의 이름이구만요.
‘그런데 그 괴물딱지가 고작 중간 관리직이라고?
시발 난 오늘 내 귀를 몇 번 의심하게 되는 거지’
그야 나도 기억은 난다. 그 새끼가 네페르티티를 골렘으로 만들면 간부가 될 수 있음! 하고 떠들었던 건 말이다.
그치만 누가 미스릴 클래스 모험가를 정면에서 때려잡는 흑마법사가 중간 관리직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아비두스 차장이 미스릴 클래스면 시발 회장급은 그랜드 마스터 찍겠네.’
나 찍힌 거 아니냐? 살아서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지만 괜히 나댔던 건 아닌지 후회가 됐다.
내가 불안해하자 네페르티티는 그걸 눈치챈 것처럼 말했다.
“임모르탈리스는 개인주의 집단. 보복할 걱정은 없어.”
“그, 그렇군요. 듣던 중 다행입니다. 그래서 그…… 네페르티티 님은 그것들이랑 무슨 인연이?”
“……언젠가 쓰러트릴 원수. 그것 뿐.”
아, 이거 건들면 안 되는 화제다.
나는 안 그래도 목석 같은 네페르티티의 목소리가 얼음장이 되자 알아서 아가리를 했다. 오래 살려면 눈치 있게 굴어야 하는 것이니까.
“시, 실례했습니다. 그, 다른 동료들은 조금 늦을 것 같은데 어쩌죠? 여관 주점에 앉아서 기다리시렵니까?”
“아니, 됐어. 널 보러 온 거니까.”
그거 왠지 쬐끔 로맨틱하게 들리네요. 내가 여자였으면 반할 뻔 했다.
“나는 나르메르-나일로 돌아갈 거야.”
냉랭했던 분위기가 다시 부드러워진 네페르티티는 그렇게 말했다. 돌아간다니, 역시 사르가디스에 온 것은 아비두스를 쫓기 위해서였나 보다.
이런 쪼~중렙 사냥터에 3차 전직 미스릴 모험가가 있는 게 이상하기는 했다.
이제 우리 동네 사냥터의 밸런스도 정상화 되는 걸까.
“축하연에는 참석 안 하십니까?”
“원래부터 관심 없었어.”
“그러셨군요.”
내가 저번에 했던 추리가 사실이라면 참석하지 않는 것이 매너일지도 모르겠다. 떠날 사람이 사르가디스의 모험가들을 축하하는 자리에 있는 것도 이상한 얘기고.
─휙.
네페르티티는 그렇게 돌아서서 떠나려다가, 발을 멈추고 날 돌아봤다.
“……이건, 수행의 요령이지만.”
─휙. 짧은 채찍을 꺼낸 네페르티티는 시범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자세를 취해주었다.
“가장 먼저 기초가 될 기술을 완성해. 최대한 정확하게. 꿈에서도 취할 수 있을 만큼.”
존나 뜬금없는 설명이었다. 그래도 성실하게 뭔가를 알려주려는 자세에서 내게 감사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휴대하고 다니는 노트를 꺼내서 말을 받아적었다. 업계 고인물이 뿌리는 공략 꿀팁이다. 이건 메모장 켜야 된다.
“기초가 될 자세, 그리고요?”
“거기에서 조금씩 바꿔나가. 더 빠르게, 아니면 더 세게, 그리고 더 많이.”
알아듣기 어렵게 설명한 네페르티티는 부족한 말솜씨를 행동으로 채웠다. 채찍이 뱀처럼 용트림을 하며 날뛰었다.
─팡! 파앙!
─팡!!! 슈슈슈슈슉!
4번의 채찍질은 각각 느낌이 달랐다.
첫 시범이 정확하고 평범한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는 같은 공격이 훨씬 빠른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