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꾼 오딘의 꿈은 뭐였는가.
그러한 궁금증이 새로 생기고 말았다.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이유가 궁금하기는 했다. 학자로서 가지는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도 3년을 고고학자로 산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베로니카한테 물어볼 걸 그랬네.’
이야기의 흐름이 바이콘의 저주 얘기로 넘어가서 그런지 뭐라고 물어볼 경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냥 개꿈일 거라는 말을 들으면 반론하기 어렵지.’
내가 그 꿈에서 무슨 새로운 지식이나 깨달음을 얻기라도 했던가. 나는 어쩌다 보니까 오딘의 꿈을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받아들였었지만, 남들은 이야기를 들어봤자 망상으로 치부해 버릴 것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잇는 의문의 연쇄.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학자의 숙명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야, 노르드. 영주님한테서 초대장이 왔더라.”
여관 1층에 모여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도르카가 말했다. 나는 스프를 뜨다 말고 대답했다.
“그거 아마 축하연 초대장일 걸. 골렘 토벌 의뢰에서 어쩌다가 높은 분들한테 눈에 띄었걸랑.”
“아항. 소문으로 얘기는 얼추 들었다만 너도 거기 꼽사리 끼러 가냐? 축하한다. 출세했구만.”
“말로만? 따로 뭐 서비스는 없음?”
“크크. 출세 기념으로 네가 우리 가게에서 한 턱 쏘는 게 정상 아니냐?”
“씁. 하여간 이 가게는 서비스가 아주 일류야, 일류.”
내가 초대장을 받자 도르카가 청소하러 돌아갔다. 프랑과 라리루라도 식기를 놓고 초대장을 열기를 기다렸다.
─투둑.
나는 촛농으로 밀봉한 초대장을 뜯고 내용물을 읽었다. 긴 서론과 거창한 표현이 가득한 부분을 속독으로 넘기고 대충 본론만 요약했다.
“──‘7일 뒤에 열리는 파티에 참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발신인이 영주님이 아니고 그 집사장이군.”
영주가 보내면 초대를 거부하기 힘들다. 말이 초대장이지 거의 출두장이 될 것이었다. 그걸 염려한 배려였다.
‘귀족의 초청을 씹을 수 있는 고급 인력은 미스릴 클래스 위쪽의 모험가 뿐이니까.’
거기까지 가면 어지간한 기사들에게 지지 않을 일류 전투원이라서 나라에서도 적당히 대접을 해 준다고 한다.
내가 편지 내용을 요약해주자 아침부터 풀 메이크인 라리루라는 편지지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선배~. 저도 봐도 되나요~?”
“그래. 둘이서 돌려 봐.”
파티원들한테 편지지를 줬다. 복잡한 표현이 가득한 글에 외국 출신 미소녀들이 동시에 눈썹을 찡그리는 게 꽤 볼 만 했다.
“무, 물심…… 물심양면?”
“아뢰오… 어뢰옵고?”
“도시의 안녕을 위해 물심양면 분려해주신 모험가 분들의 분투를 기리며, 7일 뒤에 영주저(邸)에서 작은 축하연을 개최됨을 아룁니다. 당일 여유가 되시는 영웅 분들께서 발걸음을 옮겨 자리를 빛내 주신다면 본(本) 집사장도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일 것입니다.”
“……나는 그만 읽을게.”
“저도 기브 업이에요……☆”
읽는 사람이 다 골이 땡기는 귀족의 편지에 머리가 아파진 우리 파티원들이었다.
모험가들한테 보내는 편지 치고는 너무 격식을 차린 느낌이긴 하다.
‘이거 파티 매너도 연습해 둬야 하나?’
야만한 모험가들을 초청한 파티니까 다른 참가자들도 작은 실례 정도는 감안해 주겠지.
그래도 어린애가 작업장을 경망스럽게 돌아다니는 걸 좋게 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기본적인 매너 정도는 알아가는 편이 나을까?
귀족은 영주와 영주 일가가 전부일 것 같긴 한데, 드레스 코드 말고도 신경 쓸 게 많은 느낌이었다.
‘……아니다. 관두자.’
길드장 급이면 몰라도 한참 아랫쪽인 내가 그랬다가는 역으로 눈에 띌 것이었다.
조금 비웃음을 사더라도 분에 넘치는 관심을 사는 것보다는 낫다. 내 딸이랑 결혼하싈? 하고 접근하는 유력인사의 정치 공작(工作), 절대 안 돼.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편지를 받아서 챙겼다. 이게 입장권 대용이라서 잃어버리면 좆 되니까.
“나도 이만 축하연에 나갈 옷을 빌리러 가야지. 밥 먹고 잠깐 나갔다가 올게.”
“앗, 그러면 저도 같이 갈게요♡!”
교실에서 발표하는 초등학생처럼 손을 드는 라리루라. 넌 왜 또 따라오려고 그러니.
“꼭두각시 장인이 있는지 알아보고 개량 상담을 하고 올 생각이서라요☆! 그리고 또, 공연에서 쓸 작은 꼭두각시도 사야 하구요!”
“아, 그럼 나도 갈래.”
발랄한 라리루라의 말에 프랑도 호응했다. 나는 이러다간 하루 종일 셋이서 돌아다니게 될 듯한 예감에 말을 꺼냈다.
“너희 옷은 나한테 안 보여줘 놓고 이러기야? 축하연에서 나만 서프라이즈 당하는 건 불공평하잖아.”
“네에? 뭔가요~? 감히 저희들에게 패션 센스 승부를 거실 생각이신가요~♡?”
라리루라는 쿡쿡거리며 건방진 웃음을 지었다.
“서프라이즈에 반격하셔 봤자 소용 없다구요? 프랑 언니의 옷이라든지 완전 굉장하니까요? 피부 노출이랑 옷 면적이 좋은 승부를 벌인다구요~♡?”
“……그거 기대되는데.”
“……으으.”
─휙. 프랑은 나랑 라리루라의 대화에 후드로 얼굴을 감춰버렸다.
아마 점원이 추천한 드레스를 거절 못 했던 모양이다. 연예대상 수상식에 모이는 여자 배우 같은 드레스일까.
쓰으읍. 그 옷 렌탈 불가능한가. 포장지 째로 가지고 가고 싶은데.
“어쨌든 내 옷은 내가 고르러 갈게. 실시간으로 남들한테 평가 받는 거 부끄러워서 싫다고.”
그렇게 말한 나는 문득 어제 말해뒀던 얘기를 떠올리고 질문했다.
“아아. 그래서 너희, 티르시가 파티에 참가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어제 축하연 설명을 하기 전에 얘기를 꺼내놓고 결론은 일시 보류로 끝났었다. 라리루라가 파티에 계속 남을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프랑과 라리루라는 눈빛을 주고 받더니 말했다.
“난 찬성이야. 어제 쇼핑하면서 얘기해 봤는데, 라리루라는 당분간 새 꼭두각시를 사서 길거리 공연을 할 생각이래.”
“계속 놀고만 있으면 기술이 녹스니까요~. 저 없이 일을 하실 때는 마법사 언니는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사양했다가 후회하지 마시구 홀몸일 때 낚아채 버리세요☆!”
“아니 표현 뭔데. 내가 뭔 보쌈 납치범이냐?”
이건 어디까지나 비지니스 요원으로 팀 관계를 맺을 뿐인 일이라고 주장해 두겠다.
이제 힐러만 있으면 파티의 기본 구성은 완벽한데 말이지. 아무튼 얘기가 정리된 우리는 방으로 가서 각자 볼 일을 보러 가기로 했다.
방문을 닫고 가방을 챙겨서 재봉 길드로 가려는데, 뒤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가 들렸다.
“언니언니~. 오늘도 마나 연습 하실 거죠~? 제가 나가기 전에 조금 도와드리고 갈게요!”
“어, 정말? 고맙기는 한데…… 도와준다니 뭘?”
“후후. 다 아시면서 뭘! 즐거운 꼭두각시 놀이에요♡!”
“그게 즐거운 건 라리루라 너만 그런 것 같── 잠깐만, 윗옷은 왜 벗기려구?!”
“아하하☆! 언니의 손을 조종하는 제 마나를 언니의 마나로 막는 훈련이에요!”
“자, 잠깐만! 이게 어디가 훈련── 히야아앗?!”
“……쓰으으으읍.”
방 안에서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세상 흥미진진하다.
1시간 정도는 구경하다가 가도 벌은 받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나는 문고리를 잡은 손을 놓기 위해서 아주 큰 인내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구나.’
초인적인 참을성으로 문에서 떨어져 길을 떠나는 나.
이런 사소한 노력이 쌓여서 나의 정신력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 틀림없었다.
“금딸이 사나이를 강하게 만드는 거시다…….”
정신승리를 하며 재봉 길드로 대쉬. 귀족은 아니지만 일반 서민보다는 부유한 주민들이 사는 상류층 거리에 도착했다.
─‘쿠튀리에 재봉 길드’.
여기다. 나는 재봉 길드의 소개장을 꺼내고 길드의 문을 열었다.
쿠튀리에 길드는 쇼핑몰을 중세풍으로 리모델링한 것 같은 곳이었다. 소개장을 접수처에 내고 설명받은 곳으로 갔을 때 그 인상은 더 견고해졌다.
비싸 보이는 옷들이 연예인들 옷방처럼 줄줄이 소세지로 정렬된 공간!
여기에 불을 지르면 내 월급을 받는대로 저축해도 전부 배상할 때까지 몇 년이 걸릴까. 이세계 갬성으로 보지 않아도 몸이 막 위축된다.
영국의 200년 된 부띠끄 샵에 온 것 같군. 시발. 핑계대지 말고 애들이랑 같이 올 걸.
“어머! 그 소개장은! 손님이 모험가 노르드 씨군요!”
컷트가 5만원인 고급 미용실에 들어온 찐따처럼 쭈뼛대던 나는 이세계 재봉틀─생긴 건 베틀에 가까운─을 돌리던 길드원에게 픽업되어 끌려갔다.
“얘기는 들었답니다! 축하연에 참석하실 옷을 구하러 오신 거죠? 이런 옷은 어떠세요? 어제 오신 파티원 분께 여쭤보고 미리 골라 놨답니다!”
“아뇨, 그. 키타이 인인 제가 새하얀 옷을 입었다간 노란 피부색이 붕 뜰 겁니다.”
“그러시군요! 다음으로는 이거! 정열의 빨강이에요!”
“……원단 원색이 아닌 옷은 없습니까?”
이세계 남성복의 패션 갬성과 21세기의 심미안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는 3시간 뒤에나 연미복을 한 벌 고를 수 있었다.
존나 암만 그래도 나팔 바지는 아니지, 나팔 바지는.
목에 세운 깃은 뭔데. 발기한 목도리 도마뱀이냐고.
“치수를 조정하는데 2~3시간 정도 걸리니까 점심 드시고 다시 오세요!”
옷을 고르고 길드를 나왔다. 2~3시간이라면 내 다른 용무를 마치고 올 여유가 있을 것이었다.
─터덜터덜.
그렇게 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대장장이 클라라의 무기점이었다. 정확하게는 본인 曰 ‘금속 전문점’이다.
“실례합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 노르드 씨! 어서 오세요!”
활기차게 인사하는 유부녀 대장장이 클라라. 눈가에 생긴 다크 서클은 일감이 많아서일까, 적어서일까.
어느 쪽이든 엄청 지쳐 보인다. 넘겨짚지 말고 넘어가자. 시간은 촉박하니까.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갑옷도 안 입으시고.”
“아, 예. 주문 제작을 부탁드려고요.”
─텅.
나는 재봉 길드에서부터 계속 품 안에 간직하고 다녔던 물건을 테이블에 올렸다.
“이걸 가공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은색으로 빛나는 금속 주괴.
네페르티티에게 받았던 미스릴이었다.
‘미스릴이라고 아끼고 있을 이유도 없으니까.’
주괴는 제련하기 전의 용이한 보관을 위한 것!
비싼 희귀 금속이라고 세월아 네월아 쟁여둘 것 없이 빨리 가공해서 물건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정식 계약서를 쓴다면 도난당할 걱정은 안 해도 돼.’
가게를 냈다는 것은 대장장이 길드나 영지에서 허가가 나왔다는 뜻이므로 야반도주를 당해도 내가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었다.
클라라는 내가 내민 미스릴을 보고 고개를 모로 꼬았다.
“주문 제작이요? 금속 가공이라면 뭐든지 받지만, 은으로 된 장비라면 저희 가게에도…… 얼마든…… 얼마든지……?”
그리 말하며 미스릴을 집어든 클라라는 손상된 MP3 파일을 재생한 것처럼 버벅거렸다. 저번의 나처럼 자기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 이게 마나를 품은 금속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었다.
─딱딱딱딱딱!
어린애가 가지고 장난치는 호두까끼 인형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으로 이빨을 딱딱거린 클라라가 비명을 질렀다.
“미, 미, 미── 스──!!!”
“쉬잇!! 쉬이이잇!!”
나는 당황해서 검지를 세우며 클라라를 말렸다. 동네 사람들이 내가 미스릴 가지고 왔다는 거 다 알겠네!
“앗, 앗! 앗! 넵! 그게! 미, 미스! 미스 브리타니아──!!”
클라라도 정신을 차린 것처럼 눈치를 보며 외쳤다.
아니 시발 임기응변 능력 실화냐. 뜬금없이 뭔 소리래. 난 아줌마의 주책에 어이가 터져버렸고, 그런 내 얼굴을 보고 클라라도 수치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크흠, 흠. 여하튼! 이 물건의 가공을 저한테 맡기신다는 거죠? 그렇죠?! 네?!”
자기가 공언하는 금속 덕후답게 클라라는 미스릴을 가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멘탈을 금방 추스렀다. 화제를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딱 저번에 본 어떤 조랑말 암컷을 떠올리게 했다.
“전부는 아니고요. 일단 견본을 보고, 계약서를 쓰고, 작업 결과를 중간중간에 보면서 맡기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네! 네네네네네!! 네!! 이게 견본이에요!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우당탕탕!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들며 견본품을 가져오는 클라라. 이제는 저 난리통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 맞구나.
“제가 마법이랑 연장으로 가공한 금속 아트에요! 대장장이 길드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증명서랑, 대회에서 2등을 받은 물건이죠!”
“아하. 잠시 볼게요.”
21세기 지구에서 용접공의 실력을 철판에 새긴 그림으로 평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나는 불 자국이 없는 용접 아트 같은 철판 아트를 자세히 관람했다. 철판의 가공으로 그린 그림은 날개의 막까지 세세하게 연출한 나비 모양이었다.
‘완성도 높은데?’
솔직한 감탄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나는 클라라의 실력을 짐작은 했어도 직접 실감하지는 못했었다.
그 왜, 바지도 그렇고 프랑의 투척 나이프도 그렇고, 여기서 산 장비의 품질을 시험해 볼 기회가 별로 없지 않았던가.
가게에 놓인 물건이나 호툴루실 같은 대형 농사꾼에게 농기구를 납품한다는 정황으로 실력은 있겠거니 하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신분을 숨겨서 의뢰한다는 것도 생각은 해 봤지만…….’
완성된 물건을 가지고 다닐 텐데 숨겨서 뭘 하겠냐.
오히려 아서 웨인=노르드라는 증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정식 신분증은 2~3개가 전부다. 아서 웨인이 주문한 물건을 모험가 노르드가 들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인상 미채 가면 없이 가공을 맡기러 온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기대 이상이네요. 이거면 믿고 맡겨도 되겠어요.”
클라라는 내가 좋은 반응을 보이자 입이 귀에 걸려버렸다.
“히히. 히히히. 미스릴~ 미스릴~ 스승님 밑에서 독립하고 처음 만져보는 미스릴~!”
상담 중에도 계속 미스릴 주괴에 눈길이 향하는 클라라. 이 아줌마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살짝 기가 질릴 정도였지만 저러는 걸 보니까 반대로 믿음이 갔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은가.
“아참! 그래서 뭘 만들어드리면 될까요?!”
“아아, 예. 일단 미스릴 양이 충분하니까──”
“그거라면 창은 완성할 때까지 시간이 좀──”
클라라가 계약서를 꺼내며 묻자 나도 조목조목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