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고 시발.’
얼마나 집중을 했으면 총 소리를 들은 꿩처럼 머리가 삐쭉 튀어나오고도 자각을 못 했을까. 놀라서 같이 무너지는 꼴이 아주 죽이 척척 맞는다.
“아, 아하하핫♡! 죄송해요~? 잠깐 기다린다는 걸 그만!”
라리루라는 얼른 먼지를 털고 시치미를 뗐다. 티르시는 그 모습에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경악하더니 나한테 변명했다.
“이, 그, 이게 말이죠? 홀로 돌아가고 있는데 복도에서 두 분이랑 마주쳐서 얘기를 나누다가 그만!”
“맞아요~! 그만 그만♡!”
“네☆”
분위기 파악을 하고 눈치껏 아가리를 하는 엿보기범's.
‘갸아아아아악…….’
하지만 정작 그녀들을 조용히 시킨 나는 데미지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일생 일대의 첫 프로포즈를 직관당했다는 것을 눈치 까고 수치심에 죽을 것 같다.
그런데 프랑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넋이 나가서는 내가 준 반지를 쓰다듬고 있다.
파워 스톤 안 박아넣기를 잘 했네. 만약 보석을 넣었다가 흠집이라도 났으면 반지를 볼 때마다 울었을 확률이 100%.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고 말했다.
“됐다. 넘어가자. 티르시한텐 내가 남말할 처지가 아니고, 라리루라 너도 기다리다가 호기심이 들었을 수도 있겠지.”
생각해 보니까 티르시가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는 걸 우연히 엿들은 횟수는 내가 더 많았다.
어스레이트 때는 내가 나서서 찾아다녔으니까 우연이 아니라고는 해도, 오늘 일은 내가 먼저 엿듣기범처럼 굴었으니까.
라리루라는 그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대답했다.
“그래요! 부끄러워 하실 것 없다구요~♡? 우리 선배는 폼 잡을 때가 제일 더 멋지다니까요!”
“응. 셧 더 마우스 하렴.”
우리 프랑이 아직도 황홀경 상태에 있길래 내가 표현을 빌려썼다. 그 얘기 그만 스탑하자.
“반짝거리는 구름이 춤추면서 그냥 막 밤하늘처럼 빛나고! 진짜 볼 만 하던데요? 나중에 저희 서커스단에 연출 협력이라도 해 주지 않으실래요~☆?!”
근데 요년이 아가리를 안 하네.
라리루라는 사춘기가 끝나고 새내기 대학생이 된 여자애가 그러는 것처럼 로맨틱한 상황에 흥분해버린 듯 했다.
“저런 고백을 받으면 웬만한 여자는 다 꿈뻑 갈 거에요!! 저 보면서 가슴이 엄청 오그라들었다구요☆!!”
“알겠으니까 제발 아가리 좀 하자…….”
그야말로 여운이 넘치는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보고 나온 감수성 넘치는 문과 소녀처럼 흥이 넘치는 라리루라.
아마도 약혼 말고는 결혼 전의 이벤트 문화가 거의 없는 이세계에서 내 프로포즈는 임팩트가 굉장했던 모양이다.
대충 21세기까지 문화랑 풍토가 이어진 고구려에서 영화관 고백을 저질렀을 때의 컬쳐 쇼크라고 보면 될까. 그거야 뭐 충격적이기는 할 것이었다.
‘아니, 나도 그걸 노린 건 맞긴 한데…….’
말로만 주고 받는 이세계 고백 문화는 내 눈에 안 찼다.
그래서 결혼 후에나 마련하는 반지까지 미리 만들어 놓고, 프랑이 감동 받기를 바라며 준비한 거였다.
“……뭐어. 마법으로 이렇게 감동을 주는 고백은 노련한 음유시인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긴 하죠?”
“그렇죠♡?!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근데 왜 스플뎀이 쟤들한테까지 들어가냐고.
나는 라리루라가 ‘오그라든다’는 말을 좋은 뜻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쪽이 더 어이가 없었다.
“선배♥! 다음 고백 기획은 언제인가요?! 저, 그때에도 도와드릴게요! 저희 힘을 합쳐서 ‘제가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 만큼 감동적인 이벤트를 벌이자구요!!”
“계획 없어 시발…….”
아가리 좀…… 하라고…….
왜 프로포즈 멘트를 면전에서 읽고 난리야. 몸도 마음도 걸레짝이 된 내 대답에 라리루라는 깜짝 놀랐다.
“네엣?! 왜요!! 프랑 언니한테 또 고백하기 뭣하시면 다음 아내분 때라도 좋으니까!!”
“않이 님 진짜 맞을래요?”
아무리 일부다처가 흔한 세상이라지만 우리는 5분 전에 프로포즈를 나눈 커플이다. 할 소리가 있고 안 할 소리가 있지!
그리 생각한 내가 눈을 부라리자 두 로마니아 인은 눈을 깜빡였다.
“네? 왜 그러세요?”
“노르드처럼 능력이 있으면 뭐…… 상관 없지 않나요?”
시발 실화냐. 존나 여기서 문화 차이가 나올 줄이야. 나는 뒤통수가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 그랬지 참. 다나도 말했었지.’
로마니아에서는 일처다부제로 노예 신랑을 들이려고 부인을 암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이다.
그래도 가까운 사이였던 그녀들의 입에서 나오니까 꽤 충격적이다.
혹시 로마니아 출신인 라리루라랑 티르시에겐 저런 식의 발상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둘 다 아내나 남편을 여럿 들이는 로마니아 귀족들과 밀접한 유년기 생활을 보냈으니까.
‘아니, 게르마니아를 빼면 주변 국가가 다 그꼴인가?’
로마니아. 브리타니아. 얼스터 군락. 아즈테카.
멀리는 키타이에서 수메르니아까지.
내가 대충 아는 국가들은 처녀충 동정충 숭배 문화가 있는 게르마니아를 빼면 다 그런 식이었다. 이게 문화 차이인가. 내 머리가 다 아프군.
“아, 그딴 거 모르겠고. 우리는 이제 간다.”
시발, 됐다 그래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 따위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딴 건 나랑 좆도 상관 없는 얘기였다.
어쩌다 보니까 내 주위에 여성들이 늘었지만 당장은 예정 없다. 프랑이랑 정식으로 부부 사이가 되면 에들린처럼 내게 추파를 던지는 노예 여주인은 없어지겠지.
나는 프랑을 안아들고 말했다.
“티르시? 빨라도 내일 점심까지는 찾아오지 마세요. 라리루라 너도 돌아오면 우리한테 인사하러 오지 말고, 씻고 일찍 자라.”
“네? 네에~.”
내가 왜 늦게 찾아오라고 했는지 알아차린 것처럼 티르시는 얼굴을 붉혔다. 라리루라는 잘 모르는 눈치다.
‘몰라 시발.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오늘은 밤 샐 거임.’
우리 프랑이 마나도 각성했으니 예전보다 오래 버티겠지.
내가 룬을 써서라도 오늘밤은 8시간 F(프란체스카) 정식 풀코스다. 쥬지콘다 140% 오버런을 보여주고 말겠다.
“먼저 간다. 다른 사람들한테 안부 전해줘.”
그렇게 나는 프랑을 공주님처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 목을 안고 세상 행복해 하는 프랑이 존나 깜찍했다.
프랑이 입은 드레스 값?
까짓거 배상하고 말지 뭐.
8시간 동안 20발을 사정한 결과, 내 무한한 것만 같았던 정력의 원천이 밝혀졌다.
“세상에 시발. 정액을 싸니까 마나가 깎이네.”
오후 1시에 침대에서 깨어난 나는 마나통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정력에 한계가 오면 마나를 소진해서라도 채우는군.’
10발 정도로는 부랄의 자체 정력에서 커버가 되는데, 그걸 넘어가면 마나가 정력으로 치환되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정을 안 참고 마려운대로 싸제끼지만 않으면 며칠 밤낮을 섹스해도 쥬지가 버틴다는 뜻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정액 생성(Semen Creation)> 마법이라고 해야 할까.
‘존나 시발 무슨 매지컬 부랄도 아니고.’
더없이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이래서야 진짜 정액 디스펜서라는 소리를 들어도 반론이 어렵지 않은가!
내 부랄은 이제부터 매직 아이템으로 분류된다. 장비칸의 액세서리 칸에 채워넣어도 아무도 반론을 못 하겠지.
‘이 정도로 놀란 게 얼마만인지.’
플래시 365에서 했던 축구선수 키우기 게임에서 돈을 늘리는 버그가 실은 빚을 지는 거였단 걸 깨달았을 때도 이렇게 경악스럽지는 않았는데.
“퓨으으으으…….”
덕분에 마나를 각성하고 호기롭게 내 쥬지를 받아들였던 프랑도 지금은 8시간의 철야 섹스에 기절한 상태.
참고로 프랑은 4시간이 넘은 시점에서 룬 마법 디버프를 받고도 한계를 맞이했다.
통증을 호소하길래 내가 포션을 꺼냈을 때의 표정은 아마 평생 내 해마에 남을 것이었다. 사진기가 없는 게 아쉽다.
‘하여튼 귀엽다니까.’
나는 프랑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주무르며 옷을 입었다.
그리고 프랑의 몸을 닦아서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나왔다. 등에 프랑이 긁은 손톱 자국이 남아서 약간 따갑다. 우리 아내님이 마나를 각성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하아아아암……. 아, 도르카. 훈제 고기 남는 거 파냐?”
1층으로 내려와서 그렇게 묻자 도르카는 빵을 우적거리다가 대답했다.
“너 임마. 어지간하면 니가 정육점에서 사라. 우리 가게 재고나 깨작대지 말고.”
“흐흐. 너희처럼 대용량으로 사는 게 더 싸잖아. 나도 너한테 사면 가성비가 딱 좋다고.”
“새끼. 적정가로 사니까 봐준다. 얼마나 줘?”
“2쿠퍼 어치. 오늘은 프랑이랑 나랑 그밖의 친구들끼리 모여서 마법이나 배우려고.”
나는 티르시한테 <번개의 화살>을, 프랑은 <골렘 소환(Summon Golem )>을 배울 생각이다.
라리루라? 걔는 걔대로 링링이 3호의 업그레이드에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골렘 코어가 생각보다 도움이 컸대나 뭐래나.
“옛다 받아라.”
─휙! 날아온 훈제를 받는 나.
아침 겸 점심은 이걸로 하고, 남은 걸로 샌드위치나 하자. 프랑이랑 같이 요리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었다.
“아, 그래. 너한테 또 편지가 왔더라. 사르가디스 고고학 연구소라는데?”
“……아니, 뭐?”
고고학 연구소?
그건 존나 말 그대로의 단어였다. 고고학계에서 도시에 배치하는 고고학 연구소!
대학에 부속된 것도 있고, 학계에서 직속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공통점은 솔플 뛰는 현장직 쉑이 실업하기 딱 좋게 만드는 집단이라는 점! 예산을 받아서 움직이는 집단을 상대로 개인 플레이는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동네 구멍가게 옆에 이마트가 들어온 격이다.
“사르가디스에 고고학 연구소가 생긴다고?”
나는 그만 넋이 나가서 그리 중얼거리고 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르가디스에 고고학 연구소는 없었다.
내가 여기를 홈 타운으로 고른 이유는 고고학 연구소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유적의 질이 낮아서 경쟁자가 없는 곳이라서 현장직인 내가 활동하기 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고학 연구소가 없는 곳을 골랐다.
그런데 도르카가 건네준 초대장에는 사르가디스 고고학 연구소장의 정식 날인이 찍혀 있었다. 100% 실화인 것이다.
뺨을 꼬집어도 안 깨는 것을 보면 꿈도 아니다. 세상에 시발. 베로니카가 다 그립네.
‘……왜지?’
고고학 박사급 이상의 인재에게 사르가디스는 매력적인 토지가 아니다.
학자라는 면모만큼이나 트레저 헌터에 가까운 것이 우리들 고고학자였다. 고대문명과 거리가 먼 촌구석에 고고학 연구소를 뭐하러 세운다는 말인가?
‘……야수회귀의 유적 때문인가?’
슬슬 내가 보냈던 자료가 닿을 시간이긴 했다.
나도 논문을 쓸 때는 다른 연구팀이 배속되기 전에 보내야 한다고 시간에 쫓기듯 완성하지 않았던가! 설마 그거랑 관계라도 있는 걸까?
─찌이익!
인상을 쓴 나는 편지를 뜯어서 내용물을 읽었다.
도르카는 그런 나를 심드렁하게 구경하다가 말했다.
“표정을 보니까 점심을 준비할 필요는 없겠구만. 뭐래?”
“……특급으로 현지에 먼저 날아온 관장님께서 흑마법사 토벌에서 활약한 모험가를 만나뵙고 싶으시댄다.”
내가 고고학자라는 건 모르는 분위기였다. 아니면 알고도 숨기고 있던가.
대필한 것처럼 반듯한 글씨체의 편지는 이렇게 말했다.
──금번에 날뛰었던 흑마법사와 관련된 유적의 탐사에, 그를 해치운 모험가의 협력을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이다.
나는 일단 혼자서 고고학 연구소를 향했다.
프랑과의 신혼 생활을 위한 일정이 많이 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흑마법사 놈의 흔적에, 고고학 연구소. 어느 쪽도 미뤄둘 안건이 아니야.’
장차 일이 커질 사건을 제대로 대처하려면 초동(初動)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저번 일의 마무리와 앞으로의 탄탄대로를 위해서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고학 연구소 임시 지부’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연구소장이라는 인물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잃고 말았다.
“푸흐흐. 새끼, 못 본 사이에 신수가 아주 훤해졌구만.”
연구소장과 고고학 박사 뱃지를 단 미녀는 우습다는 듯이 말하며 깔깔댔다.
기품 있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연구소장은── 아직 시공 중인 연구소의 집무실에서 내게 즐겁게 인사했다.
“잘 지냈냐? 존나 오랜만이다, 요 탈주 석사 새끼야.”
……아니 눈나가 왜 거기서 나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뜬금없는 엔트리에 나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중얼거렸다.
“데뎃?”
보라색 개털머리가 챠밍 포인트인 다크써클 고고학자.
내 연구원생 동료인 다나 베르베이아였다.
“뭐야? 간만에 만났는데 인사도 안 해 주기냐?”
다나는 얼이 빠져버린 나에게 섭섭한 것처럼 말했다.
존나 털털함의 화신이나 다름 없던 친구놈(년)의 의외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이 고조되었다. 나는 머리를 털어서 혼란을 제거했다.
“아니, 잠만. 나 사태파악 좀 하게.”
내가 대학을 나온지 1달만에 다나가 박사 동장 학위를 달고 사르가디스 연구소장 역까지 맡았다고? 나는 하나씩 의문점을 짚었다.
“뭐지? 우리 다나 누나는 석사따리일 텐데. 너는 왜 존나 박사이고 난리죠?”
“너 가고 나서 진급했다. 우리 대학 고고학과에 이목이 몰려 있어서 그런지 일처리 겁나 빠르더라.”
“대학에 목줄 매인 노예쉑이 왜 무슨 수로 출세를 한 거고? 시발, 아니지. 출세는 그렇다 치고 왜 여기에 있음?”
“꼽냐? 교수 달려면 외부 근속 기록이 있어야 되니까 내가 자원했는데 왜. 안 그래도 사르가디스에 고고학과가 물꼬를 틀어 놓으려고 하길래 얼른 신청했지.”
내 물음에 어째 불만스러운 것처럼 삐쭉이는 다나였다.
외부 근속 기록이 뭔지는 나도 잘 안다.
대한민국 군바리가 해외 파견을 나가면 진급에 가산점이 붙는 거랑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고학계는 한곳에 죽치고 앉아서 연구만 하는 학자를 꼴 보기 싫어한다. 본인이 현지까지 날아가지는 않아도 최소한 모험가들을 고용하고 보고를 시켜서 연구하는 정도의 열의는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