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1,009)

‘안 그러면 오지(奧地)에 숨겨진 유적을 캐내는 학자들은 점점 줄어드니까.’

현장직이 대우받는 이유도 이것이다.

도박장에서 큰 돈을 딴 놈이 뽕에 맞아서 월급을 꼴아박는 것처럼, 유적 하나 제대로 뒤져서 돈을 벌고 학계에서 인정받은 학자는 계속 유적 탐험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스릴 중독이고 좋게 말하면 용감한 학자의 귀감이다.

‘그래서 교수직을 따려면 외부 근속 기록이 5년은 있어야 하는 거였지.’

다른 조건도 많지만 저것이 기본 조건 중 하나다. 나중에 나도 고고학 교수를 따야 될지도 모르니까 알아뒀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 놀랍네. 학계는 사르가디스에 왜 연구소를 설치하려고 한 거래?”

“나도 몰라 새끼야. 어차피 큰 연구소도 아니고 이름만 떡 박아놓은 곳이니까. 나도 1년 정도 전속하면서 틀만 갖춰놨다가 나중에 옮겨도 되고.”

다나는 말을 할수록 표정이 안 좋아졌다. 왜 저러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다나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아무튼 잘 됐다! 다나 너도 나 없는 사이에 존나 잘 지냈나 보구만! 누구는 똥꼬쇼 해가면서 노예에서 탈출했는데, 치사하게 너는 출세해서 랩실에서 런 하기냐!”

“야, 야! 이씨, 머리 망가트리지 말라고!”

“흐흐. 어차피 개털인데 뭐 어때! 그래, 반갑다! 오랜만에 봤는데 이 놈의 머리털은 하나도 안 바뀌었네! 다른 랩실 노예 놈들은 건강하고?”

“연구원생한테 건강이 어딨어 시발. 못 뒤져서 사는 거지. 그보다 존나 왜 애완동물 취급하고 지랄이냐. 개빡치네.”

말로는 그러는 주제에 다나는 내가 반가움을 표시하자 은근히 기분이 좋은 눈치였다. 흐흐. 몸은 솔직하군.

뭐, 간만에 만났는데 내가 궁금한 것만 묻고 반가운 척도 안 했으니까 삐질 만 했다. 나는 낄낄대며 적당히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이 가게는 손님한테 차도 안 내줌? 서비스 정신이 엉망이네. 별점 한개 반 드립니다.”

“아니 씨발 개점도 안 한 가게에 와서 평점질을 다 하네. 손님 디질래요?”

“이래봬도 우리 우정을 봐서 별점 2배로 올려준 거임. 늘 감사하십시오, 바이킹.”

“새끼가 누가 누구한테 안 바뀌었대. 니야말로 또라이 기질 그대로네. 그리고 누가 바이킹이야, 키타이 촌놈아.”

원숙하다 못해 권태기가 올 정도로 익숙한 대화였다. 우린 거울을 보는 기분으로 상대방의 쪼개는 얼굴을 보며 실컷 웃어제꼈다.

“흐흐. 그래서 뭔데? 내 얼굴 보고 싶어서 허겁지겁 사르가디스에 전근 신청 넣은 거야? 존나 기쁜데?”

“……웃기지 마셔. 누가 니 얼굴 보겠다고 왔대?”

내 말에 다나는 눈을 피하며 뇌까렸다. 그러고는 곁눈질로 날 째려본다.

“내가 여기에 전속 온 건 다 우연이거든? 보기 역하니까 자의식 과잉은 자제하셔.”

“글쿠나. 니가 이럴 때마다 내가 인생 헛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네요.”

“이 씨발, 지랄은…….”

다나는 자기 얼굴을 숨기려는 것처럼 책상에 엎드렸다.

뭘 부끄러워 하시나. 우리가 이러고 논지도 3년인 넘었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수치심 내성이 내려간 모양이었다.

“눈나. 나 가슴이 이상해. 막 감동이 벅차오르고 그래.”

“아, 제발 좀. 그건 니 심장이 심부전이라서 그렇고요.”

“그걸 니가 어떻게 알어. 날 너무 좋아해서 내 건강 상태도 얼굴만 보고 눈치까고 그러냐? 존나 유능하네. 고고학 때려치고 수녀 안 하싈?”

“사실 내가 어제 너 잘 때 몰래 가서 해부해 봤음. 그래서 아는데 너 심부전 맞다. 별점이랑 남은 심장 반 개씩 드립니다.”

“뭐야 시발 나머지 절반도 돌려줘요.”

“쏘리. 깜빡하고 내다 버렸다. 대신에 두쪽난 심장이 2배로 뛰게 만들어 줄게. 이거 읽어 봐.”

다나는 그렇게 말하며 두루마리를 던졌다. 노골적인 화제 전환이로군. 하지만 난 착한 아이니까 넘어가 준다.

나는 형식적인 문구를 날리고 본론만 추려서 읽었다.

“뎃? 웬 지명의뢰서? 유적 탐사 호위?”

아우둠라 길드의 모험가 노르드를 정확하게 찝어서 호위를 부탁한다는 요지의 의뢰서였다.

“아이고야, 우리 눈나 왤케 팔불출이셔. 브딱이한테 지명의뢰를 다 넣고 계시네.”

실딱골딱 밑으로 지명의뢰가 들어오는 일은 적었다.

어제 파티에서 나한테 침을 발라둔(비유적 표현) 놈들도 오늘 쯤이면 길드에 지명 의뢰를 넣었겠지만, 의뢰 내용은 별 것 아닐 것이었다.

내가 스펙은 골딱이 급이여도 실제 등급이 브딱이다 보니까 길드법 때문에 어려운 의뢰를 넣을 수가 없다. 나랑 인맥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으로 적당한 의뢰나 몇 개 신청했겠지.

드래곤 슬레이어가 모험가업을 시작했다고 아딱이한테 용의 심장을 구해와 달라고는 못 하지 않겠는가? 그거랑 같은 이치였다.

‘아. 그래서 전속 호위인가.’

고고학 연구소의 팀이 탐사를 하는 동안에 지켜달라는 의뢰는 존나 국룰이었다.

나도 대학 시절에 실딱 골딱의 모험가들이랑 유적 탐험을 같이 했었으니까. 그때 다나도 있었고 말이다. 나는 두루마리를 말며 물었다.

“뭐, 호위는 좋은데. 무슨 유적이길래? 아, 맞아. 내가 보냈던 논문은 봤고?”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야수회귀의 유적 때문에 연구소가 설립된 건가?

내가 그리 생각해서 묻자 다나는 엎드린 상태로 눈만 조금 내밀었다.

“유적 위치는 계약하기 전까지는 발설 엄금이라서 내가 말 못 해 준다. 그래도 논문은 봤어. 나는 그때 전속 준비로 바빠서 검수는 다른 애들이랑 새 교수님이 했었지만.”

“아아, 그래? 봐 보니까 어떻든?”

“그럭저럭 괜찮더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구소가 설립된 건 아냐. 서부쪽에 학계 직속 연구소가 없었으니까, 너랑 비슷한 이유로 사르가디스에 연구소를 세운 거겠지.”

“그러냐?”

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쉽다고 해야 할까. 나는 입맛을 다시며 두루마리를 품에 챙겼다.

“근데 너 내가 아우둠라 길드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

“호위 일을 맡길 상대를 찾고 있는데, 브론즈 클래스인데 길드장들이랑 나란히 영주의 치하를 받았다는 키타이 인이 있대서. 알아보니까 이름이 노르드대?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로 너더라고.”

몸을 일으킨 다나는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여기서 뭘 하고 다녔길래 고블린이랑 영혼의 맞다이를 뜨던 놈이 고작 1달만에 이렇게 일을 벌리고 다니냐? 너 원래는 돌멩이 들고 운동하기만 해도 헉헉댔잖아? 어디 얘기나 좀 들려줘 봐.”

그래서 나는 내가 성장한 배경에 대해서만 대충 말했다.

슬슬 티르시가 와 있을 시간이다. 잡다한 얘기는 날리고 면접에서 스펙 어필을 하는 것처럼 야수회귀랑 마법, 미스릴 같은 얘기만 했다.

“뭔 시발. 듣고 있기만 해도 조마조마하네. 그게 고작 1~2주 만에 벌어진 일이라고?”

다나는 야수회귀를 켠 내 손을 보며 질색을 했다.

이세계 그린 잼민이떼와의 전투를 얘기하던 나는 그 반응에 낄낄댔다.

“존나 스펙터클하지 않냐? 음유시인한테 돈 받고 팔아도 될 듯?”

“지랄은. 그만해, 그만. 담번에 술이나 한 번 하자. 남은 얘기는 그때 마저 들을련다. 맨정신으로 들으려니 골 땡겨서 안 되겠어.”

“흐흐. 그러든가. 샘의 쉼터라는 여관에서 묵고 있으니까 담번에 네가 보러 와라.”

“의뢰주한테 오라가라 하고 앉았네. 나한테 돈 받는 하급 모험가 주제에 아주 건방져~? 응?”

“지금이 찬스임. 나중에는 내가 너무 위대해져서 박사따리 박사따는 말을 걸기도 힘들 걸?”

“응~ 석사따리 석사따~.”

“시팔.”

내 자뻑에 팩트로 받아치는 다나였다.

지금에야 깨달았는데, 나 석사 동장에 모험가 등급도 브론즈다. 그야말로 브딱이의 화신이었다. 좆 같네.

“그나저나 너도 만만치 않게 날라다녔구만. 나한테 출세했다느니 어쩌니 해놓곤 자기 자랑할 때만 기다렸겠네.”

“석사 동장인데 출세는 무슨. 그래도 내가 쉬지 않고 성장 중이긴 하지. 남자는 사흘 못 보면 괄목해야 하는 거거든? 너는 1달을 못 봤으니까 내가 싸우는 거 보면 입이 떡 벌어질 거다.”

“하여간 새끼, 또 깝치지. 어쨌든 절차는 끝내 놨으니까 니 파티원들이랑도 상담해 봐.”

손사레를 치며 그리 말하는 다나였다.

나한테 파티원이 있다는 것까지 아네? 뭐, 소식이 퍼졌으니까 조사를 했다면 모르는 게 더 이상한가. 나는 감탄을 섞어 혀를 내둘렀다.

“일처리 존나 빠르네. 0.7 노르드 정도는 되는 듯.”

“푸핫. 0.7은 개뿔이. 1.7 노르드는 하지. 20대에 박사 단 여자가 얼마나 된다고? 석사 동장이랑은 끕이 달라요, 끕이.”

놀리는 것처럼 말하는 게 존나 잘 어울려서 약간 빡친다.

‘근데 뭐 뽐내도 될 업적이긴 해.’

의무교육이나 학계에 뛰어드는 나이가 뿔뿔이 흩어진 곳이 이세계다.

대학을 50대에 졸업하는 사람이 있으면 남들보다 훨씬 빨리 학계에 진출하는 사람도 있다. 30줄도 아닌데 박사 학위를 딴 다나는 학계를 통틀어서 뒤져봐도 빠른 편이었다.

나도─치트빨이긴 하지만─ 진급 속도만 놓고 보면 다나랑 삐까뜰 정도이긴 한데, 짬에서 밀려서 아직 석사 동장. 시발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약간 부아가 치민 나는 일부러 짖궂게 말했다.

“28살을 20대라고 할 수 있나? 2월 말이면 봄이지 겨울은 아니잖아? 뭣보다 몇 달 뒤면 눈나 스물 아홉…….”

“주댕이싸물어뒤진다.”

실수. 선 넘었나 보다. 나는 진정하라는 뜻으로 웃어보였다.

“화내지 마. 누나는 꾸미기만 하면 10대로 보인다고.”

“……진짜냐?”

“어. 다크써클 지우고 머리 빗고 말투 고치고 옷 제대로 입으면. 근데 그쯤 되면 90% 딴사람이네.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게 맞는 듯.”

“개새끼야.”

울컥한 다나가 나한테 덤벼들어서 잽을 날렸다.

아이코, 우리 눈나 힘도 장사셔. 내가 맞은 부위를 쓰다듬고 있자 다나는 꺼지라는 것처럼 손을 저으며 말했다.

“여기는 아직 건축 도중이니까 네가 묵는 곳에 대답 들으러 갈게. 그 여관도 술 정도는 팔지?”

“아무렴. 마셔본 적은 없는데 대학 근처의 오줌 맥주보단 나을 거다.”

“알써. 그럼 그때 봐. 다른 팀이나 연구 자재는 아직 안 왔으니까 천천히 얘기해…… 봐도……?”

인사를 하던 다나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그야말로 대화 도중에 닌자가 튀어나와서 수리검을 날려 나를 죽이는 광경이라도 본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뭔데. 왜 그러는데? 우리 박사님 연료 동나서 고장났어?”

“어……? 아, 아니, 그…… 너, 그 반지 뭐야……?”

“반지요?”

삐걱거리는 태엽 인형처럼 나를 가리키는 다나. 우리 연구원생 노예 프렌즈가 발견한 것은 내 왼손 약지를 장식하는 미스릴 반지였다.

‘아, 이 얘길 깜빡했네.’

다나한테 내 연애사 얘기는 안 했으니까. 나중에 술이나 마시면서 마저 얘기하자고 했었으니까, 그때 말할 생각이엇다.

“그게, 그…… 다나?”

속으로 말할까 말까를 100번 정도 고민하던 나는 마음을 정하고 반지를 낀 손가락을 내밀었다.

“나 결혼했어.”

“…………………………………………………………헤?”

다나는 자기가 담당하는 반의 남학생이 이화여대 무용과에 붙었다는 소리를 들은 교생처럼 놀랐다.

─영차! 어이 드씨! 이거 먹고 해!

─새참이야? 아, 뭐야. 추워 죽겠는데 스프 정도는 끓이지.

─불만이면 드씨가 사 오든가!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수들의 대화가 들려올 정도로 볼륨이 낮아진 집무실이었다.

“……결, 혼?”

그렇게 3분 간의 재부팅 과정을 거친 다나가 말했다.

“결, 뭐? 겨, 결혼? 결혼?! 너 결혼이랬어 지금──?!”

내년이면 20대의 아홉수에 달하는 척척박사(동장)께서는 내 결혼 커밍아웃에 놀란 토끼눈이 되어서 소리쳤다.

─터텁!

나보다 키가 작은 보라색 개털머리녀에게 어깨를 붙잡힌 나는 앞뒤로 흔들리며 대답했다.

“네, 에, 에, 엥. 결, 혼, 했, 서, 요.”

“네가?! 언제?! 어디서?! 결혼을?! 어떻게?! 왜?!”

존나 육하원칙으로 묻지 말라고. 그보다 그만 흔들어. 존나 어지러워.

“1달이야!! 1달이라고!! 1, 2년도 아니고 고작 1달! 1개월! 30일──!!! 그런데 무슨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것도 아니고 그 잠깐만에 모험가로 성공한 걸로 모자라서 결혼하고 반지까지 맞췄다는 게 말이 돼──?!”

착란하며 나를 흔드는 다나. 근데 말이 되냐고 물어도 니가 그렇게 흔들어 제끼면 나는 차량 유리 앞에 달린 스프링 인형처럼 회전하기 바빠서 대답을 못 하는데요.

“아니, 뭐. 여기 와서 얼마 안 되고 만났거든. 모험가고, 나랑 같은 파티를 맺은 사람인데, 하프 드워프인 프란체스카라고 해. 좋은 사람이야. 착하고.”

“너 같은 놈이랑 결혼해 주는데 아무렴 좋은 사람이겠지!!”

야 잠깐만. 나 프랑 실드 쳐주느라 뼈 맞은 것 같은데.

“진짜야……? 진짜로 결혼했다고……?”

팩트와 피지컬 디스코팡팡에 의해 뇌가 액체 슬라임이 돼 버렸던 나는 다나가 손을 멈추자 어렵사리 정신을 되찾았다.

“3년…… 30일? ……하? 몇 배 차이야 대체……?”

띵한 머리를 붙잡고 있는데 넋 나간 다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혼이 빠져나갔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다른 혼이 들어와서 육체의 주도권을 두고 싸우는 것처럼 얼이 빠져 있었다.

멍청하게 서 있던 다나는 갑자기 댐이 터진 것처럼 분노한 얼굴로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존나 분노의 대상은 당연히 나였고 말이다.

“너! 결혼식을 올렸으면 나한테도 청첩장 정도는 보낼 만하지 않냐?! 1달 내내 편지도 안 보내더니 나한테는 연락도 없이 결혼까지 한 거야?!”

“아니 그, 미안. 내가 말을 잘못했다. 아직 식을 올리지는 않았어.”

뇌에 블루 스크린이라도 뜬 것처럼 얼빠지게 되묻는 다나. A/S 센터에서 땜질을 잘못한 모니터인 줄 알았다.

나는 세상 억울해 하는 다나를 달래듯이 말했다.

“어젯밤에 막 반지를 마련해서 선물하고 고백했었거든. 네 편지를 안 받았으면 오늘부터 호적에 등록할 예정이었어.”

“어젯…… 밤에?”

“어. 사귀기 시작한지는 조금 됐고. 그래도 마음이 맞아서 제대로 결혼하고 같이 살아볼려고…… 아니, 왜 이런 얘기까지 하고 있지?”

설명하다가 냉정함을 되찾으니까 갑자기 존나 부끄러웠다. 다나는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래…… 응. 그래, 그렇구나.”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친 다나는 지친 것처럼 머리를 숙이고 손을 털었다다. ─휙휙. 기운 없는 강아지 꼬리 같은 손짓이었다.

“알았어. 그만 말해도 돼. 얘기는…… 다음에 술 마시면서 들을게. 그 아내라는 사람이랑도 같이.”

“어, 어……. 다나 너, 괜찮냐?”

저렇게 풀이 죽은 다나는 거의 처음 보는 듯한 기분이다. 머리를 떨군 다나의 모습에 내 머리에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휘몰아쳤다.

그래서 그만 전혀 의미가 없는 무심한 질문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에 다나는 대답을 않다가 중얼거렸다.

“응. 괜찮고말고. 잠깐 놀란 것뿐이야. 그러니까 잠깐…… 혼자 있게 해 주라.”

반쯤 축객령이나 다름 없는 말이었다. 나는 내가 여기에 남아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 이번주 안에 안 찾아오면 내가 만나러 올게.”

그렇게 말하고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수확철이 끝나가는 사르가디스는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여관에 돌아오니 티르시와 프랑이 1층 테이블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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