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 (147/1,009)

그리 말한 프랑은 차를 마셔서 입술을 적시고 말했다.

“제가 노르랑 친해지게 된 계기는 말을 놓고 술을 마신 거였거든요. 다나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나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금새 다나 특유의 미소로 변했다.

나랑 대화할 때의── 정말 편한 상대에게 보여주는 진심 어린 미소가 말이다.

“──좋지. 근데 아직 대낮이다?”

“나도 반은 드워프라서.”

거침없는 다나, 맞받아치는 프랑.

쏙 빼닮은 듯 전혀 다른 미녀들은 그렇게 웃으며 남은 차를 비우고 지갑을 챙겼다.

“아, 근데 쟤는 너 술 무지 못한다던데 괜찮겠어? 나 주량 엄청 세다?”

“…………노르?”

존나 오랜만에 보는 프랑의 짜게 식은 눈동자였다.

허미 시팔. 역시 달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구나.

아무 말 없이 여자를 홀리는 진짜 꼴마초의 길은 이리도 멀고 험하다. 나는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았다.

“앗.. 아아.. 다나 너 이 고오얀 놈…….”

“어? 왜, 왜?”

난 몰라 시팔아. 흥이 올랐으니까 니가 책임져.

아무래도 오늘은 프랑의 주정에 어울려줘야 되게 생겼다.

1층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자 라리루라가 돌아왔다.

“와우☆ 모르는 척 하고 싶어지는 광경이에요.”

“왜 돌아오자마자 악담이냐.”

감히 대낮부터 술에 코 박고 기절하는 어른들을 보고 저런 말을 하다니? 존나 미성년자의 귀감 같은 녀석이로군. 나는 프랑이 시킨 독주를 홀짝이며 손을 흔들었다.

“왔냐. 너 요즘 바쁜지 잘 안 보이더라?”

“꼭두각시 공방이 따로 없어서 마법사 길드에 다녀왔어요! 티르시 언니한테 도움을 받아서 장인 씨한테 인사를 드렸더니 왠지 높으신 분이 나오시던데요? 소 서리? 소설러? 대충 그런 이름이었어요!”

크롬웰 그 아저씨는 존나 할 일이 없나? 아, 골렘 코어로 주문이 들어왔으니까 확인하러 온 건가? 만약 그런 거면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일을 찾아다니는 수준이었다.

나는 라리루라가 조종하는 커다란 꼭두각시를 가리켰다.

“그거 링링이 3호지? 왜 헝겊을 덮고 있냐?”

“링링이가 쌩얼을 까고 다니면 이목을 사니까인데요? 싸울 때는 위압감이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주문했는데요~ 직접 데리고 다닐 땐 귀찮네요★! 서커스단 시절에는 마차에 싣고 다녀서 몰랐어요!”

─쿵쿵. 헝겊을 쓴 꼭두각시를 전진시키는 라리루라.

그 놈은 작은 꼭두각시를 들고 있었다. 저게 길거리 공연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서브 모델이겠지.

도르카는 우리 근처에서 잡일을 하며 술이나 안주 주문을 기다리다가 일어섰다.

“아가씨. 그 녀석들도 창고 행이지?”

“얏호~☆! 도르카 씨 안녕! 맞아요~ 제 파트너들도 이제는 창고에서 쉴 시간이에요~! 부탁드릴게요?”

“그래. 어여 가자.”

─쿵쿵쿵. 라리루라는 주차 하듯이 간단하게 창고에 링링이 3호와 새 꼭두각시를 안치시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그래서~ 그쪽에 계신 미인 분은 누구신가요~♡? 저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먼저 인사드려버려도 돼요? 그래두 되죠~?”

높은 텐션을 살려서 다나에게 질문하는 라리루라였다. 안주인 콩을 까던 다나가 손을 닦으며 말했다.

“안녕. 고고학자 다나 베르베이아야. 오늘부터 여기 이 놈 아내가 되기로 했어.”

“아핫☆! 그렇군요! 아내, 아내, 아내…… 아… 네?”

마지막 질문은 나한테 한 것이었다.

아니, 저거 질문이 맞긴 한가? 나는 라리루라의 드립 서브를 스매시로 받아쳤다.

“새끼, 개그 좀 치는군. 언어유희왕의 칭호를 선사하마.”

“선배는 개소리 말구요.”

일축당했다. 시발. 회심의 드립이었는데.

술을 마시며 울적해 하는 나와, 고개를 차량 앞유리 앞에 붙여놓는 스프링 인형처럼 좌우로 움직이는 라리루라.

“네? 에? 뭐에요? 뭔가요? 제가 링링이 3.5호 뉴-모델의 멋진 점을 자랑하려고 회심의 밑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 대체 뭐가 있었죠? 고고학자 씨? 아내 분? 제가 아직 브리타니아 어를 잘 못 하나요?”

“네가 이해한 게 맞아. 이 아내들이 내 날개다.”

새는 두 장의 날개로 날고 천사는 여러 쌍의 날개를 갖고 있다고 한다.

나는 파충류를 걸쳐서 드래곤, 대천사로 이어지는 마초몬 워프 진화의 계보를 탈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 풀떼기가 절대완전체에서는 롸벗형 디지몬이 되는 게 이 바닥의 국룰 아니겠는가.

“흠흠. 그러셨군요. 옛날 친구가…….”

초특급 진화를 방불케 하는 나의 요약을 들은 라리루라는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술을 따랐다. 니 뭐하니.

“어허, 떽이야. 미성년자가 술 마시는 거 아니다.”

─휙! 라리루라한테서 맥주잔을 빼앗자 라리루라는 아깝다는 것처럼 등을 굽혔다.

“아앗, 잘 될 줄 알았는데. 은근슬쩍 후루룩 작전 대실패에요.”

“이게 잘 된 거지. 꼬맹이가 술 마시면 머리 망가진다.”

“뭐 어때. 난 13살 때부터 마셨는데.”

“그래서 니가.”

“니가? 나르메르-나일에 신고했습니다. 면회는 자주 갈게.”

“주님. 한놈 올라갑니다. 시발 좋은 대로 보내 주세요.”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고 라리루라가 따른 술을 다나의 잔에 부어버렸다. 어르신 한 잔 더 하십쇼.

“선배애~ 앞으로 몇 개월 안 남았으니까 그냥 봐 주시면 안 될까요~?”

라리루라는 발을 의자 위에서 까딱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나는 독주를 입에서 굴리며 인상을 썼다.

“쓰으읍……. 몇 개월밖에 안 남았으면 몇 개월 참으셔. 이 해독 가능한 독 같은 거 마셔서 좋을 거 없다.”

존나 꼰대 같은 소리였는데, 꼰대가 맞는 것 같다. 내 안의 유교 드래곤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인가?

언데드 유교 드래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유교는 죽어서도 -꼰-을 남긴다. 그야말로 본(本) 드래곤이다.

“겨울이 끝나면 저도 어엿한 어른 여자랍니다♡? 이 귀염뽀짝한 후배가 술을 마시면 어떤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지 않아요?”

“그땐 어른 한 명 동반해서 같이 마셔라. 아, 프랑은 빼고 다른 사람으로.”

들뜬 라리루라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했다.

나도 민증 받고 성인이 되자마자 처음 한 게 아버지한테 술 따르는 법을 배운 거였으니까.

그때 뺨을 테이블에다가 대고 엎드려 있던 프랑이 움찔했다.

“으응? 냐는 웨 안댸……?”

“슐 댜 깨믄 알려주께.”

“아라써어…….”

“푸훗. 푸흐흐흐.”

혀가 꽈배기가 된 프랑과 그걸 흉내내는 나. 다나는 술을 마시다가 뿜을 뻔 하고서 입가를 닦았다.

얼굴이 토마토가 된 프랑이 이유도 없이 헤벌쭉 웃는 것을 라리루라는 신기한 것처럼 쳐다봤다.

“프랑 언니는 왜 저러셔요? 어디 아프시대요?”

“취했어. 돈 번 걸로 어디 지옥에서 건져낸 것 같은 독한 술을 시켰거든. 그래도 3잔까지는 버티더라.”

내가 손에 든 잔을 찰랑이며 댄디하게 말했다.

프랑은 이걸 통 크게 1병 째로 시켜놓고 반도 못 마셨다. 남은 걸 버리기엔 아까워서 내가 쬐끔씩 먹고 있는 것이었다.

유리잔에 증류주를 따르고 마시고 있자니 나도 기분만은 마피아 보스가 된 것 같다.

‘향은 좋네.’

독하기로는 저번에 마셨던 아카드인가 터닝메카드인가 하는 술 못지 않다.

프랑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마나가 신체 강화 효과가 간의 해독능력에도 미치고 있는 게 아닐까? 강한 전사들이 잘 중독되지 않거나 다나가 주량이 큰 것을 보면 맞을 것 같다.

‘근왜 프랑은 기절한 것?’

드워프는 혹시 열성 유전자인가.

자기들끼리 결혼하는 이유가 그거인가.

“그 술 때문에 프랑 언니가 이렇게까지 물에 적신 찐방이 돼 버렸다구요?”

라리루라는 몽유병 모드가 된 프랑의 뺨을 조물거리다가 물었다.

“선배~ 궁금해서 그런데, 저 그거 냄새만 맡아보면 안 돼요?”

“옜다.”

달라길래 줬다. 마실 걱정은 없다. 이건 마시라고 강요해도 핏덩이에서 막 벗어난 미성년자는 코로 뿜어낼 거거든.

가슴은 다나보다 크다만.

“우리 여보님아. 너 지금 뭐 좆 같은 생각 하지 않았냐?”

“피해망상은 좋지 않단다 아내님아.”

“이 씹……. 맞는 것 같은데.”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절대 아님.”

(저 멀리 오스트레일리아 근처에서 산책 중이실 이름 모를)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다나는 의심스럽게 쳐다봤지만 캐묻진 않았다. 휴 시발. 뒤지는 줄.

존나 그건 그렇고 우리 눈나 저걸로 몇 잔 째지? 도르카가 쪼개고 있는걸 보니까 이번달 매출에 다나가 다대한 공헌을 세울 듯 했다.

‘하여튼 저건 진짜 사람이 아니다. 랩실 망령이지.’

우리가 그러는 동안에 라리루라는 잔 바닥에 남은 독주의 향기를 킁킁 대다가 잔 근처를 몰래 혀로 핥았다.

─핥핥.

“웨액…….”

“왝 그러니 고라니루라야.”

“제 사랑스러운 예명을 동물처럼 부르지 말아 주실래여, 이 미스터 짐승남…….”

혀를 빼물고 헛구역질을 하며 말하는 라리루라. 목을 잡고 숨 넘어가게 켁켁 거린다. 나는 잔을 가져오며 낄낄댔다.

“아니, 솔직히 니 예명 발음이 귀여운 건 인정하지만 발음은 존나 헷갈리는데.”

그냥 본명인 프리실라 쪽이 외우기 쉬울 것 같다. 아니면 애칭인 루리로 부르든가…… 루리…… 근근…… 으윽 머리가.

“으윽. 혀가 얼얼해여……. 이른 거 웨 마셔여……?”

─헤엑헤엑. 라리루라는 혀를 빼물고 모자를 벗었다. 열이 올라오나 보다.

내가 어릴 적에 소주 잔에 물 따라마시면서 놀다가 아버지 쐬주 잔을 마시고 취했을 때가 저랬는데.

“그러게 누가 마시랬냐? 나는 인생이 고달파서 이런 건 달기만 하다.”

“지랄. 달기만 하면 걍 원샷 하시던가.”

“그랬다간 급성당분중독으로 훅 가는 수가 잇서요.”

“니가 자꾸 그러니까 나도 은근 끌리네. 한 잔 줘 봐.”

“내 잔 줄게. 이걸로 마셔.”

잘 봐라 신입. 간접키스 각이다. 나는 다나에게 술을 따른 잔을 넘겼다.

프랑이 다 마시는 것보다는 우리 간을 괴롭히는 게 낫지 않을까? 원래 가족은 기쁨도 고통도 나누는 것이니까.

‘그런데 당뇨가 되면 정액도 달아지나?’

나는 수의학과생은 평생 알 수 없는 심오한 인체의 신비에 호기심이 동했다. 정액 맛이 변하는 포션 정도는 있다고 들었는데.

나의 그런 병신 같은 상상에 맞춘 것은 아니겠지만, 문을 열며 한 사람의 여성이 여관으로 들어왔다.

겨드랑이에 낀 마법서와 가슴을 /자로 가르는 숄더 백! 그 마법사는 술판을 벌이는 우리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오늘도 집에 돌아가야 하나요?”

“흐흐. 그럴 리가요. 저는 안 취했으니 와서 앉으시죠. 저 마법 배우고 싶거든요.”

“학구열이 있는 학생이시군요. 좋은 자세에요.”

티르시는 라리루라가 떨어트린 모자를 털어서 씌워주며 그리 말했다.

“잘 풀렸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축하드려요.”

다나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 티르시는 안심한 것처럼 숨을 내쉬었다.

길드로 돌아가서도 가슴을 졸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잘 풀렸다는 증거로 다나의 손을 쓰다듬었다.

다나는 연신 맥주를 마시며 내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날 쳐다보지도 않는다.

“흐흐. 눈나? 그러다가 맥주잔에 머리 들어가겠어요.”

“……쥐구멍에도 숨는데 여기 정도면 머리 넣을 만 하지. 자꾸 그러면 네 머리를 여따 쑤셔넣어 버린다.”

“네이~. 알아서 짜지겠읍니다~.”

나는 넣는 건 좋아하지만 넣어지는 건 극구 사절이다.

맥주 가지고 얼굴이 빨개질 사람도 아닌데 다나는 앞머리로 시뻘건 얼굴을 존나 열심히 감췄다. 나는 히죽 웃었다.

“보다시피 앞으로 셋이서 잘 해 나갈 생각입니다.”

“응원할게요.”

티르시가 말했다. 거짓 없이 진심 가득한 응원이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까 저번에 이 사람이 날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것이 부끄러워질 정도다.

설마 넘쳐나는 정욕이 성욕으로 바뀐 건가.

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이면 곤란한데.

내가 그리 생각했을 때였다. 티르시는 목에 건 모험가 플레이트에 손을 댔다.

“그나저나 얘기가 정리됐다면 의뢰는 어떻게 된 건가요?”

“아아, 그 얘기도 있었죠. 다나? 설명 좀.”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 계속 밀려졌지만 다나가 아우둠라 길드에 지명 의뢰를 던졌었다. 시발 반쯤 까먹고 있었네.

“의뢰는 간단한 내용이라서 별 건 없어요. 내부 조사는 제 연구소에 취임할 연구원들이랑 기자재들이 들어온 뒤에나 할 예정이거든요.”

다나는 티르시에세 조리 있게 설명을 했다.

“자세한 사항은 그때 다시 말씀드릴게요. 위치는 여러분도 잘 아는 곳이거든요.”

그 말에 다나가 보냈던 초대장의 글귀가 떠올랐다.

‘흑마법사와 관련 있는 유적이랬나?’

그렇다면 사르포트 숲일까. 다나는 헛기침을 하고 나한테 질문했다.

“그런데, 야. 이렇게 네 사람이 너랑 파티 맺은 팀이냐?”

“어. 일단 여기 얘는 자유 참가지만. 라리루라? 너 서커스 공연인가 말하던 건 어떻게 됐냐?”

나는 라리루라에게 질문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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