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술자리에 낀 어린애처럼 안주─달게 졸인 완두콩─ 섭취에 몰두하던 라리루나는 손가락을 핥고 말했다.
“예정은 변함 없어요. 새 꼭두각시도 만들었으니까 저도 내일부터는 길거리 공연을 시작하려구요☆!”
─낼름. 손가락 사이를 혀로 핥은 라리루라는 요염한 척을 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깝죽거림 ON이다.
“아핫♥ 그야 뭐~? 선배가 무릎을 꿇고 부탁하신다면~ 못 들어드릴 것도 없지만요오~♡?”
“내 무릎은 비싸서 안 됨.”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내 단언에 라리루라는 샐쭉거렸다.
“뭐에요. 얼만데요?”
“싯가.”
“앗, 이거 바가지다. 안 사요 안 사~☆”
유람 생활의 관록으로 위기회피능력을 전개하는 전직 서커스단 에이스였다. 얘기를 듣던 티르시는 라리루라에게 말했다.
“라리루라, 괜찮겠어요? 길드 예보를 따르면 앞으로 며칠 정도는 비가 내린다는데.”
“……넷?”
“지력(地力) 회복용 포션의 주문이랑 관계가 있어서 저도 날씨 예보는 알아 두거든요. 오늘이나 내일부터 월말까지는 계속 비가 올 거래요.”
떼─엥. 충격을 받고 콩을 떨구는 라리루라.
비 오는 날의 서커스 쇼는 불가능한 일이다. 본인이 존나 물쇼를 펼칠 마음으로 쇼를 여는 건 가능하겠지만 손님이 안 올 것이니 NO 의미.
“히이잉……. 추운 겨울 전의 마지막 벌이 찬스인데.”
라리루라는 콩을 손가락으로 뭉개며 슬퍼했다.
그래도 우리 같은 일반인한테 날씨는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었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더 있나.
나는 다나에게 질문했다.
“다나? 연구소에 기자재 다 모일 때까지 얼마나 걸리냐?”
“글쎄다. 나는 영주님이랑 상의해야 해서 일찍 온 거니까 아마 못해도 3, 4일?”
“응? 나 보고 싶어서 온 거 아니었어?”
“……그래요, 시발. 내가 니 면상이 보고 싶어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존나 뭐, 왜. 꼽냐?”
─까득.
짖궂은 질문에 다나는 이를 악물고 내 손목을 물었다. 악!
“갸아악! 이 눈나는 왜 박사 달고도 이러케 폭력적이얏!”
“우물우물……. 새끼, 짭짤하니 안주로 딱이네.”
혀로 내 손목을 핥는 다나. 먹지 마 야발련아. 니가 핥아도 되는 건 내 입술이랑 쥬지 뿐이에요.
“저렇다고 하네요. 며칠은 걸리니까 말씀 드렸던 마법을 배울 시간은 있겠죠. 가르쳐 주실래요?”
나는 다나에게 손목을 핥아지며 티르시에게 말했다. 근데 재빨리 대답한 것은 티르시가 아니었다.
“저요! 저요저요! 저한테도 마법 알려주세요! 저 돈이라면 잔뜩 있어요!”
손을 든 라리루라는 취소된 일정의 빈 공간에 새로운 플랜을 채워넣으려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구름 소환(Summon Cloud)>이랑 <수사의 랜턴(Friar's Lantern)>이라는 마법! 꼭 배우고 싶어요!”
번개.
다른 말로는 라이트닝.
전기는 21세기의 문명을 형성하는 원동력이자 지구인들이 다루는 가장 응용성 좋은 에-네르기였다. 원자력이니 친환경 에너지 같은 걸 많이 따지지만 역시 갑 OF 갑은 전기다.
‘다른 에너지도 결국 발전소로 전기를 만드니까.’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코리안인 내가 마나를 전기로 바꾸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 것은 문명 수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휴먼-마나 발전소가 되는 것이다.
“뭐, 마법 배운다고? 그럼 프랑은 내가 방에 데려갈게. 잘 배우고 와라.”
다나는 그리 말하고 술냄새 나는 프랑을 업었다. 프랑은 푹 익힌 시금치처럼 늘어졌다. 뼈가 없는 생물인 줄 알았다.
“프랑, 제대로 업혀. 넘어지겠어.”
“후으……? 노르, 가슴에 살 쪘어?”
“……시발. 나 설마 지금 남자랑 비교당한 거야?”
─말캉. 다나는 옆구리로 빠져나와서 자신의 가슴을 끌어안는 프랑의 손길에 현타에 휩싸였다.
그럴 만 했다. 등으로 슴부격차를 실감하게 만들면서 가슴까지 직접 비교하다니! 나는 다나를 따라가서 프랑을 제대로 업게 해 주고 말했다.
“걱정 마. 다나 너도 쮸쮸 짱커. 나랑 비슷한 수준은 됨.”
“이 시발 새끼야. 너 이게 내 거 아니었으면 내가 무릎으로 찍었어.”
─스윽스윽. 남들 몰래 내 허벅지를 쓰다듬는 다나였다. 그 위치는 정확하게 내 쥬지콘다의 뱀굴이었다.
존나 이건 치한 짓 아니냐? 우리 쥬지콘다 푹 자고 있는데 깨우지 마라.
“이 눈나가 누가 얼스터 방계 아니랄까봐 노출 플레이를 다 하시네.”
나중에 나도 몰래 사람들 있을 때 다나 엉덩이 주물러 줘야겠다. 다나는 인상을 썼다.
“개소리. 내 고향은 성인식 안 치른 애들한텐 옷 입히거든?”
“그래서 10살에 성인식 안 치르고 고향을 나오셨군요?”
“눈치 존나 빠르네. 그래. 여자들은 10살에 성인식이었어. 옷을 벗고 남들 앞에서 의식을 치루는 게 싫어서 튀었지.”
다나는 진절머리를 치며 말했다. 우리 눈나한텐 야외 플레이 내성이 없나? 하긴 이번에는 프랑이 독특한 경우였다.
그렇게 방에 가서 프랑을 눕히고 이불을 덮혀준 우리.
목 위만 남으니까 프랑 진짜 어린애 같다. 존나 옛날 표현이기는 한데, 베이글녀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나는 프랑이 깼을 때를 대비해서 쪽지를 적어뒀다.
다나는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서 방을 나왔다.
“암튼 뭐, 잘 배우고 와라. 저 티르시라는 사람. 대충 봐도 기본기가 튼튼해 보이네. 나는 연구소로 돌아가서 남은 일 처리하고 밤에 돌아올게.”
“티르시 실력은 나도 잘 알지. 내가 파티 운 하나는 좋더라.”
“……여자 운이 좋은 게 아니고?”
“흐흐. 그럼 합쳐서 인복이 좋은 걸로.”
나는 다나의 뺨에 키스를 하고 프랑을 쓰다듬었다.
내가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미인들을 아내로 삼았으니까, 그만큼 세상에는 모솔아다의 숫자가 늘겠지. 이게 이세계의 잔혹무상한 법도란다. 꼬우면 성공한든가. 하하하.
“아…… 그리고 이건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2층으로 올라가려던 다나가 내게 말했다.
“나한테 그 뭐냐, 프로포즈 같은 거 할 생각 마라. 아니, 걍 나랑 그 ‘다음’이 있으면 걔들한테는 하지 마.”
“뭐? 왜?”
다나한테는 뭘 해줄까 고민하고 있었던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는데, 다나는 눈썹 하나 꿈쩍 안 하고 말했다.
“왜 놀라. 존나 앞으로 네 아내가 몇 명이 더 늘어날지 모르는데 매번 프로포즈에 결혼식까지 다 하게?”
“아니, 나도 ‘몇 명’이라고 할 만큼 마구잡이로 늘릴 생각은 없는데.”
만약 누군가가 좋아해준다고 해도 내가 그 사람을 아내로 이 둘과 똑같이 사랑할 자신이 없다면 사양할 생각이다.
존나 당연한 얘기였다. 아내는 트로피가 아니니까. 기회가 됐다고 손에 쥐어서 선반에 두고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다나는 코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 뭣보다 그런 거창한 고백은 얘한테 해 준 걸로 충분해. 첫 아내인 프랑을 배려한 거라고 하면 상식 제대로 박힌 애들은 뭐라고 안 할 걸.”
“그래서 하지 말라고?”
“어. 그야 나도…… 결혼식이나 반지 정도는 해 줬으면 하지만.”
자기가 내 사랑의 증거를 몸소 나서서 조른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일까. 다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씨. 이 누나, 해가 중천인데 자꾸 꼴리게 구네?”
시발. 우리 눈나는 이럴 때가 제일 귀엽다. 괜히 내가 얘를 괴롭혀 주고 싶어지는 게 아니란 말이지.
“아, 지랄 말고요. 아무튼 하지 말라면 하지 마.”
내 말에 다나는 머리로 내 어깨를 쳤다. 귀가 빨갛다.
“나는 네가 어젯밤에 해 줬던 얘기면 충분해. 어설픈 고백으로 덮어쓰지 마. 프랑이 말했던 것처럼…… 나도 그게 제일 기뻤으니까.”
“……알았어. 네가 그러길 바란다면.”
풋풋한 심경 고백에 나는 다나의 뜻을 받아들였다.
까짓거 뭐 어떻단 말인가. 그만큼 결혼식을 거하게 치루면 될 일이었다. 1+1이든 0+2든 같은 2니까.
‘근데 어디 방식으로 치루지?’
가장 ‘결혼식’다운 결혼식은 로마니아의 방식이다.
브리타니아나 다른 나라는 전통 방식 느낌이 존나 심해서 결혼식이라기보다는 동네 축제 같은 느낌이더라.
물론 아내들이 원하다면 나는 상관 없지만, 둘이 서로 비교하고 침울해 하면 좆 된다. 할 거면 둘 다 화려하게 하는 게 옳았다.
‘아니면 21세기 기준으로 식장을 세울까?’
돈이 많이 깨지고 결혼식이 미뤄지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결혼식은 프로포즈처럼 서프라이즈로 하면 안 되니까 같이 상의해 보자.
‘조만간 날 잡아서 내가 지구인이라는 것도 밝혀야 하고.’
프랑한테는 원래 말할 생각이었고, 다나도 내 신기한 지식의 출처를 많이 궁금해 했으니까 말이다.
다나는 옷깃을 여미며 캐리어 우먼처럼 늠름하게 말했다.
“알았들었으면 됐어. 누나 일 갔다올게. 공부 열심히 해라.”
“존나 내가 기둥서방인 것처럼 말하지 마라? 니 여보님은 돈도 잘 벌어온다고.”
“왜? 기둥 서방이지, 불기둥 서방.”
─톡톡. 내 쥬지콘다의 머리를 손톱으로 건드리는 다나.
이 시발, 대체 어떻게 내 쥬지의 포지션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것이지? 존나 팀의 공격수를 마커당하는 한일전 감독이 된 기분이다.
다나는 요염하게 웃으며 내게 안겼다.
“솔직히 니가 이걸로 우릴 괴롭히면서 몇 달을 일 안 나가도 나나 프랑은 아무 말 못할 걸? 물론 평생 그러는 건 존나 곤란하겠지만 말이야.”
“니들이 그렇게 내가 일하는 모습을 물고 빨아주는데 내가 어떻게 그러냐.”
프랑은 꿈을 포기해도 된댔지만 내가 정말 앰생 백수로 취직했다간 실망이 클 것이었다.
얌전한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 것처럼, 프랑이 정말로 나한테 실망한다면 나도 데미지가 크겠지.
절대로 꿈을 포기 못 할 이유가 또 생겨버린 것이었다.
나는 다나의 허리에 손을 감으며 말했다.
“느긋하게 기다려. 비트코인 노르드의 떡상을 보여쥬지.”
80년대 초에 애플 주식에 전재산을 꼴박한 것과 같은 효과를 우리 아내들에게 보여주고 말겠다.
한때는 이세계 에메랄드 잼민이 수준의 아딱이였던 내가 지금은 골드 클래스에 비빌 정도까지 크지 않았는가! 이렇게 계속 노력하면 상한가를 치는 건 좆도 아닐 것이었다.
내게 가슴을 밀착하며 다나가 능글맞게 웃었다.
“기대하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게 존나 어렵다는 건 알지?”
“흐흐. 니들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나게 만드는 건 보람 있고 좋지. 그 망할 교수들한테 부려먹히던 시절도 있었는데.”
…츄웁.
눈이 맞은 우리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입술을 포갰다. 혀를 섞으며 두 눈을 훤히 뜨고 상대방이 키스하는 얼굴을 기억에 새기려는 것처럼.
“으어어어…….”
그때 갑자기 복도의 문이 열리며 다른 방의 손님이 나왔다. 아 시발. 여기 여관 복도였지!
─메다닥! 우리는 빨리 떨어졌다.
“아, 아무튼! 나 간다! 있다 보자!”
소매로 입술을 닦은 다나는 삿대질을 하며 도망갔다. 아니 뭘 도망가기까지.
‘……아, 맞다.’
다나한테 줄 반지는 어떻게 하지.
모든 손가락에 반지를 낀 텐-링 만다린 노르드가 될 수는 없었다. 존나 그러면 새끼 손가락 반지를 받은 아내는 뭐가 되겠는가.
여러 아내를 들일 계획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보자.
나중에 가서 후회했다가 조지는 수가 있지 않겠는가.
‘지구에서도 일부다처제가 남아 있던 나라에서는 아내 선물은 같은 걸로 주는 게 낫댔는데…….’
시발. 그린 랜턴 군단도 아니고 결혼 반지를 하나로 통일한 이세계 대가족이 되는 것인가?
가족의 증거라고 하니까 약간 있어 보이기는 하네.
“모든 아내들은 반지를 착용했으며… 그 중엔 반지를 닦아주는 이도 있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녹색 마나로 빛나는 반지닦이 노르드는 마법이나 배우자. 나는 다나가 내려간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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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르시 SENSEI의 특강은 집 주변의 공터에서 개최되었다.
“일단 결계 마법── 이라기엔 많이 모자라지만, 지속형의 실드를 펼쳐놓을게요. <번개의 화살> 마법이 위험해서.”
─슥슥. 바닥의 마법진을 그리는 티르시. 라리루라는 그걸 1분만에 캐리커처를 그리는 길거리 화가를 보는 것처럼 신기하게 쳐다봤다.
“저것 보세요, 선배! 티르시 언니 지금 손목을 뱅글 돌려서 완벽하게 동그라미를 그렸어요!”
“그르게. 대단하다.”
그야말로 인간 캠퍼스였다. 티르시는 마법진을 다 그리고 헛기침을 했다.
“으흠. 준비 끝났어요. 노르드 씨는 안으로 들어오세요.”
“옙.”
“저는요?”
“노르드 씨가 연습하는 동안에 바깥에서 가르쳐 드릴게요.”
나만 안에서 하는 건가? 그러면 이건 대충 간이판 수류탄 훈련 같은 건가 보다.
고개를 끄덕인 라리루라는 경박한 경례 포즈를 취했다.
“알겠습니다~. 저는 옆에서 선배가 빌려준 마법서를 읽고 있을게요?”
“그래. 근데 그거 배워서 뭐 하게? 내 흉내?”
라리루라한테는 내가 가지고 있던 두 마법서 두루마리를 빌려줬다.
내가 대충 공부를 끝낸 부여 마법의 마법서─크라운 산도 씨의 책─도 말이다.
“칫, 칫, 칫♡ 틀렸어요~.”
라리루라는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건방지게 까불었다.
“일류 광대는 기술을 더욱이 갈고 닦는 거에요. 멋지다고 생각한 건 배우고 따라하고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죠! 저는 천재라서 고작 흉내에 그치지 않는다구요~? 이번만은 선배가 제 발을 붙잡고 알려달라고 부탁해도 안 알려 줄 거에요!”
“대여료, 아가리, 옆구리. 셋 중 하나 골라라.”
“정말~ 선배도 참. 그렇게 저한테 배우고 싶으신 거군요? 혹시나가 역시나, 연하의 미소녀에게 공부를 배우시는 취미가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