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9/1,009)

─까딱, 까닥.

뒷짐을 진 라리루라는 시소 중간에 올라탄 것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광대옷에 감싸인 은근한 거유가 출렁거렸다.

“노르드한테 그런 취미가?”

‘연하의 미소녀에게 공부를 배우는 취미’ 발언에 티르시도 나를 쳐다봤다. 긴 속눈썹이 악의 없이 깜빡거렸다.

아니 시발, 오해에요.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 아닌 척 어깨를 맞대거나~ 난방이 덥다고 겉옷을 벗으면서 분위기를 내시려구요? 유-감♡ 진부해요, 진부해. 좀 더 로맨틱한 걸로 생각해 오세요?”

라리루라는 기세를 타서 계속 지껄였다.

이 놈의 꼬맹이가 목소리 하나는 진짜로 아나운서라도 된 것처럼 듣기 좋아서 2배로 성질을 돋구는군.

“저 라리루라는 서커스단의 무희 선배한테 남녀상열지사를 배워서 리스닝 토킹 모두 마스터했답니다☆? 그런 낡은 수작에는 안 걸려요~?

아니면 저한테도 말씀해 보실래요? 푸후후. 그거요 그거. ‘제가 당신을 사랑해도’──”

“갸아아아아아악──!! 너 이 새끼!! 정수리 딱 대!!”

개시팔! 내가 키타이의 유서 깊은 체벌 문화, 정수리 고속도로 개통식을 맥여주고 만다!

─휘익! 내가 팔을 뻗었지만 라리루라는 뒷짐을 지고 가볍게 뛰어서 내 손을 피했다.

“아핫♡! 팔이 짧아서 안 닿는답니다~? 선배는 지금 결계에 갖힌 처지라구요~? 제가 아무리 놀려도 지금은 밖으로 못 나오시잖아요?”

눈을 크게 뜨는 나. 이 년이 왜 기세등등한가 했더니 결계 범위를 눈대중으로 재고 저러는 거였군.

‘그른데 니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하긴 얘가 본 결계는 다 개쩌는 씹사기 성능이었으니까 알 만 하다. 나는 결계의 바닥 부분을 발로 긁어서 해제해버렸다.

─쉬이익.

“……으에?”

간단히 꺼져버리는 마법진. 눈이 콩알만 해지는 라리루라. 결계에서 빠져나온 나는 다정하게 말했다.

“바닥에 그린 결계는 대비를 안 해 놓으면 지워지거든. 이 부분만 복구하면 다시 기능하니까 걱정 말고.”

─우드득.

손을 풀며 라리루라를 향해서 접근했다. 라리루라는 도망 시도를 빠르게 포기하고 동공에 지진을 일으켰다.

“……에헤헷? 선배? 장난이에요, 장.난♡!”

나는 라리루라가 사과를 하면 조금 봐 주려고 했는데, 이 녀석은 양손으로 V자를 그리며 애교를 부렸다.

“저처럼 귀여운 후배한테 설마 손찌검은 않으실 거죠?”

“벡터-폭설 내린 날 고속도로.”

“네? 고속도로? 어? 흐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꾸구구구구국!

턱을 잡고 이마부터 뒤통수까지 주먹 불도저를 진행시키자 라리루라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누가 정의인가? 내가 바로 정의다. 버스에서 배터리 꺼진 핸드폰을 들고 1시간을 기다리던 나의 고통을 알아라.

“티르시. 이 녀석 말은 신경 끄시고. 이제 시작하죠.”

“후훗. 그럴까요?

나는 쓰러진 라리루라를 무시하고 티르시에게 말했다. 다시 결계를 복구한 티르시는 별 수 있겠냐는 것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아, 그런데 시작하기 앞서서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이번에 배울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도 그렇지만, <화살> 계통의 마법 훈련에는 주의점이 한 가지 있어요.”

티르시는 손가락을 세웠다. 주의점?

“가장 중요한 건 몸 밖으로 방출한 마나의 방향을 확실히 조절하는 거에요. <화살> 시리즈는 전부 마나를 특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거라서요. 조절에 실수하면 모든 방향으로 뿜어져 나와서 다치는 일이 생겨요.”

“아아. 그러면 <번개의 화살>은 많이 위험하겠네요?”

“네. 마나를 전기로 바꾸는 거니까요. 사고율이라는 점에서는 가장 위험하죠. 여기 이 결계는 전기가 공중에 흐르는 것을 막는 효과를 가졌지만, 그래도 조심하세요?”

“그렇군요. 유념하겠습니다.”

티르시는 이런 특수한 결계를 일부러 배워뒀던 걸까?

설마. 나를 가르치려고 찾아내서 배워온 거겠지. 그 마음을 배신하지 않게 나도 열심히 하자.

“히끅……. 선배? 이번 건 진짜 아팠다구요……?”

“티르시. 마법서는 어디 있나요?”

“아, 여기요.”

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잉잉 우는 아무개 광대를 쌩무시하며 마법서를 건네받았다.

주문과 술식의 구조가 적힌 마법서다. 병원 잡지 옆에 꽂힌 암 예방 가이드 정도의 분량이었다.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마법서를 펼친 나는 중간 문단까지 읽다가 마법의 주문을 발견했다.

─천공을 흐르는 번개의 마나여. N 가닥의 손톱이 되어 꿰뚫어라.

거기에 적힌 것은 마법 주문이었다.

N은 임의의 숫자다. 7발을 날리고 싶으면 일곱 가닥의 손톱~ 하고 주문을 외우면 되는 것이었다.

‘시발. 쪽팔리게.’

이제는 남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주문까지 외치게 생겼네.

내가 싸울 때마다 기술명을 외쳐대는 만화의 등장인물도 아닌데 말이지. 벡터-구미호 전기 강화! 이 지랄을 꼭 해야 한다니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퓨전 포즈를 취하는 베지터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그 슬픔을 참아내고 연습을 반복했다.

“술식의 요령은 몸 속에서 마나를 원형으로 만들어 놓는 거에요.”

티르시는 내게 경험자만이 알 수 있는 꿀팁도 알려줬다.

“주문의 이름처럼 화살을 매기는 거랑 같은 요령이죠. 이 마법 계통이 <○○의 화살>인 이유가 아마 이게 아닐까요?”

“화살이군요.”

존나 내가 화살을 쏴 봤어야 알지. 육군 장병(병신이라 수의대생인데 입대함)은 총 쏘는 법 밖에 몰라요.

‘잠깐. 그럼 총을 이미지하면 되지 않을까?’

총!

영어로는 GUN. 나의 영혼의 파트너 K-2의 감촉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에 나오곤 했다. 잊을 래야 잊을 수가 있어야지 시발아.

굳건이 개새끼. 나는 군 시절을 떠올리며 주문을 읊었다.

“천공을 흐르는 번개의 마나여. 한 가닥의 손톱이 되어 꿰뚫어라.”

마나를 뭉쳐서 탄환을 넣은 탄창을 끼우는 것처럼 술식에 단박에 때려박았다.

“<번개의 화살>.”

─파츠즈즈즛!

술식에 마나를 넣고 주문명을 뇌까리자 내 손 끝에 작은 빛 구슬이 생겼다.

아니, 빛 구슬이 아니다. 이것은 전기였다.

동그랗게 압축된 전기!

물리법칙이나 21세기의 과학력으로는 불가능한 광경이었다. 티르시는 사선에서 물러나며 빈 공간을 가리켰다.

“마나를 적게 넣고 쏴 보세요. 발사하는 느낌으로요.”

“발사요?”

그거라면 내가 또 존나 잘 하지. 나는 특급사수의 경험을 살려서 앉아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외쳤다.

“묠니르─ 싼닷-!!”

─콰르르릉!

번개의 화살이 공터를 빠르게 종단했다.

1미터를 나가간 번개 화살을 물에다가 감식초를 찬 것처럼 확산해서 흩어져버렸다. 거의 날아가지도 않고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바로 앞에서 울려퍼진 천둥 소리에 잠깐 귀가 먹먹해졌다.

‘머임?’

성공인가?

아니, 그치만 티르시가 쓰던 <얼음의 화살(Ice Missile)>이랑 느낌이 너무 다른데? 나는 앉아쏴 자세에서 꺼벙하게 입을 벌렸다.

공기에 남은 전기가 스파크를 튀겼다가 사라졌다. <번개의 화살>이 사이오닉 스톰처럼 광범위하게 작렬한 여파였다.

‘번개가 확산했어? 왜지? 마나는 별로 안 넣었는데?’

<물 생성(Water Creation)> 마법으로 따지면 컵 1잔 정도 채울까 말까 하는 마나였다.

천둥 소리란 고열의 낙뢰가 공기를 파열시키는 현상이다. 내 쥐꼬리 만한 마나로 이렇게 크게 작렬할 리가 없었다.

“실패네요.”

티르시가 말했다. 나는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실패라고요?”

“네. 방금 화살은 소리는 크게 났지만 위력은 적을 거에요. 말씀드렸잖아요? 이 마법진은 전기가 확산하는 결계라고.”

“앗, 대충 눈치 챘습니다. 결계 때문에 화살의 전기가 전부 흩어져서 저렇게 된 거군요?”

말하자면 이 결계는 통짜 피뢰침인 것이었다.

전기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결계에 흡수되는 구조라서 쬐끔 넣은 마나로도 큰 소리가 난 듯 했다. 3미터도 못 가서 폭발사산한 것도 그런 이유겠지.

“역시 이해가 빠르시네요.”

티르시는 입 아프게 말을 안 해도 되서 기쁜 모양이었다. 이 몸께서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 천재라서 그런 모양이다.

“말씀하신 대로, 이건 <화살>의 에너지가 목표에 맞기 전에 흐트러져서 마법사 본인이 다치지 않게 하는 훈련이에요. 이 결계는 연습에 좋을 것 같아서 준비해 봤죠.”

─찡긋. 윙크한 티르시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결계 안에서 번개를 5미터를 날릴 수 있다면 실전에서 마법 미숙으로 다치거나 사정거리가 모자랄 일은 없을 거에요.”

“일부러 이렇게까지……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씨게 박았다.

마법사가 어디 흔한 직업이던가. 파티에 넣어달란 부탁은 내가 티르시한테 해야 할 지경인데, 우리랑 같이 일을 해 주는데다가 성실하게 도와주기까지 하다니!

감격스러워서 마음의 쿠퍼액이 흐르려는 나에게 티르시는 손사레를 쳤다.

“뭘요. 저야말로 첫 성공이 엄청 빠르셔서 놀랐어요. 역시 노르드도 활을 잘 다루시나요?”

“흐흐. 기대를 배신해서 죄송합니다만 그렇진 않고요. 그냥 어쩌다 보니까 요령을 알았습니다.”

“후후후. 마법에도 재능이 있으신 거 아니에요?”

넉살맞게 나를 칭찬해 주는 티르시였다. 내가 마법을 빨리 성공시킨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시발. 군생활이 내 인생에 도움이 다 되네.’

만들어진지 몇 년 된 똥총 K-2로 총알이 걸려가며 사격 훈련을 했던 경험이 컸다.

교탄 남은 거 소모해야 된다면서 사격장에서 따발이 지원자를 받았던 중대장의 일처리 가라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티르시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여하튼 이제 남은 건 연습 또 연습! 1개를 성공하면 2개, 2개를 성공하고 나면 3개에요! 파이팅이에요!”

어설픈 펀치를 날리며 기운차게 응원하는 티르시.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하얀 머리카락이나 흰 피부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첫 인상이랑 갭이 큰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티르시의 주먹에 내 주먹을 부딪혔다.

“도와주신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해요.”

“네? 아, 네.”

티르시는 내가 주먹을 부딪히자 신기한 것처럼 고개를 꼬며 대답했다.

아 시팔. 실수했다. 이세계에는 이런 문화도 없었지. 내가 그만 랩퍼들의 힙스터 소울에 빙의당했었나 보다.

누가 물어보면 이것도 키타이 문화인 걸로 퉁치자. 미안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내 고향아.

“그런데 비가 오면 이런 야외 훈련은 어렵지 않을까요?”

“마법사 길드에 실내 연습장이 있어요. 노르드는 준 길드원 취급이니까 대실이 가능해요. 먼 길을 오가게 하기 싫어서 오늘은 여기를 빌려썼지만요.”

“그렇습니까? 이거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기만 하네요.”

“그러지 마시라니까요. 아, 그래도 제가 계속 사양하는 게 불편하시다면 나중에 밥이라도 한 턱 쏘세요.”

“네. 이제 같은 파티원이니까 그럴 기회도 오겠죠.”

“후후. 잘 부탁드려요.”

티르시는 내가 어색해 하지 않게 다시 주먹을 들어줬다.

나는 그 매너에 감사하며 다시 주먹을 가볍게 부딪쳤다.

그렇게 마법 연습이 개시된 것도 1시간 전의 일이었다.

“스팀-다리미!”

─콰르르르릉!

라리루라가 티르시한테 교육받는 중에도 나는 열심히 <번개의 화살>을 연습했다.

그리고 성과는 좆도 없음.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마나를 탄환처럼 뭉쳐서 쏘는 건 쉽다.

어려운 건 그 다음부터다.

마나의 응집력── 속된 말로 ‘짱짱함’이 부족한 것이었다.

갯수를 늘리거나 3분 동안 집중하고 쏘거나 지랄이라는 지랄은 다 해 봤지만 마의 1미터 선을 넘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해야 되나. 새끼 손가락 2개로 실타래를 동그랗게 뭉쳐서 날리는 느낌이다.

‘근데 시발 어디 실뭉치가 둥글게 만다고 멀리 날아가냐고.’

내가 <화살>을 발사하면 마나는 예상을 훨씬 초월한 추진력에 버틸 수가 없는 데샤아아앗!! 하면서 흩어져버린다.

“애미야 풀 좀 다오.”

존나 내 마나인데 왜 내 말을 안 듣니. 나는 바닥에 그어 놓은 1미터의 선을 보고 발을 굴렀다.

‘술식 결합을 해도 의미가 없고.’

마나를 응축하는 테크닉이 필요한 건데 출력을 높여서 뭘 하겠는가.

그야 시발 출력을 높이면 멀리 날아가기는 하겠지.

근데 <화살>의 크기가 커지면 나도 감전 범위에 들어간다.

존나 꼬부기한테 100만 볼트를 쓰게 시키는 격이었다. 전기구이 용봉탕 한 사발 뚝딱인 것이다.

나중에 이 마법을 마스터하면 <구름 소환> 같은 것에다가 술식을 결합해서 100% 재현율의 싸이오닉 스톰을 펼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꿈도 못 꿀 얘기다.

‘하이 템플러의 길은 마초의 길만큼 멀고 험하구나.’

내가 술식 결합을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쉽게 해냈던 건, 그 마법들이 존나 간단한 저위 마법이라서다.

‘야수회귀의 술식 결합도 그렇지.’

그건 마법이라는 호스를 야수회귀라는 수도꼭지에 연결하는쌈마이한 기술이었다.

존나 유튜브 보다 끌려나온 잼민이도 10초컷 하고 방으로 돌아갈 수준의 잡일!

그에 비하자면 주문이 필요한 중위 마법의 술식 결합은 고장난 수도관을 고치는 것에 가까웠다. 시발 그걸 내가 어케 해요.

사람들은 어째선지 기술직을 천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배관공은 존나 개쩌는 사람들이다. 겨울에 수도가 얼어서 터졌을 때 그분들이 오시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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