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1,009)

변기물만 역류해도 비명을 지르는 나랑은 사는 세계가 다른 분들이다.

‘뭐가 어쨌든, 술식 결합은 난이도가 높아.’

나는 술식 결합의 요령을 배웠기에 프랑에게 프로포즈를 할 때도 두 개의 마법을 섞어서 쓸 수 있었다.

1+1을 배운 놈이 69+74를 계산한다고 그걸 개쩐다며 빨아주지는 않지 않은가. 저위 마법의 술식 결합도 그것과 같았다.

방법만 알면 저기서 열심히 하는 라리루라도 금방 마스터를 할 것이었다.

‘……쓰벌. 마법을 좀 얕봤네.’

저위 마법 습득이 존나 쉽길래 나한테 마법의 재능도 있는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마법사가 대접을 받는 이유가 있구만요.’

쉬워 보이는데 돈을 많이 받는 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존나 블루오션이거나, ‘니가 해 봐 씹새야’이거나.

마법 업계는 후자였다. 나처럼 어정쩡한 마음가짐으로 들어온 병신들은 20년, 30년 걸려서 8성급 정도 찍고 마법사 길드원으로 평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수학 경진대회에서 은상을 탔던 내가 중학교 입학 시험에서 알파벳을 보고 멘붕했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타오르는 손길(Burning Hand)>+야수회귀가 덧셈이라면 <번개의 화살>+<구름 소환>은 이차방정식 정도일까.

<번개의 화살>도 곱셈 수준은 될 것 같다.

그것도 구구단 수준의 곱셈.

“오일은 오 오이 십이 오삼 십오…….”

나는 깨닫고 보니 시련에 맞닥뜨린 수도자처럼 구구단을 암송하고 있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잼민이였던 시절의 일이었다.

촌지를 받아먹던 아버지 세대의 교권이 떡락했음에도 아직 말궁뎅이를 채찍으로 갈기듯이 애들은 패야 말을 듣는다는 말이 나돌던 초등학생들의 암흑기!

그때의 우리들은 스타크래프트 강점기에 따라 초딩 저글링, 즉 초글링이라고 불리우며 무개념 외계생물 취급을 받았었다.

선생이라는 작자들은 때릴 곳도 없는 꼬마 애들 손바닥을 뒷산에서 파밍해 온 회초리나 그 좆 같이 딴딴한 단소로 후려팼었고 말이다.

그리고 매일 같이 개념을 강제로 혈중 주입당하던 끔찍한 유소년기에, 나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개시팔 담임 선생에게 하루에 다섯 대씩 손바닥을 쳐맞아야만 했다.

꿈에 나올 듯이 선명한, 그 좆 같은 빨간 안경테!

새된 목소리로 연주하기 지랄 맞게 어렵던 단소를 주무기로 장비하고 머리띠로 이마를 깐 담임은 라면 국물이 튄 카세트 테이프처럼 같은 소리만을 반복했다.

─강북호!! 몇 대 맞을 거야!!

언뜻 선택의 여지를 준 걸로 보이지만 우리에게 원하는 미래를 고를 자격은 없었다.

저기서 꼴리는대로 숫자를 불렀다가는 그 2~5배의 양을 얻어맞는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열 대 맞을게요…….

나는 암묵적인 합의에 굴종하여 모두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열 대를 불렀다.

초글링의 피로 물든 빨간테 썅년이 꾀를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의 적정선이 열 대였던 것이다.

우습게도 여자애들은 다섯 대가 국룰이었다. 어쩌면 21세기에 창궐하기 시작한 페미니즘은 그때부터 자신의 도래를 알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맞을 때마다 니가 숫자 세.

내가 그렇게 열 대를 쳐맞겠노라 선언하면, 빨간 안경의 담임은 그날그날의 기분 상태에 따라 그 10방을 간단하게 때리고 넘어가거나 묻고 따블로 힘껏 후려갈기거나 했다.

한 방의 딜량을 평준화하지 않으면 횟수를 정하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아직 덜 여문 초등학생의 대가리로도 알 수 있던 의문을 우리 담임은 알지 못한 듯 보였었다. 아마 그 염병할 빨간 안경이 지능을 깎아내리는 저주템이었던 모양이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단소 스윙의 위력에 곱연산 버프가 걸리던 날이 그 썅년의 생리주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짝! 짜악!

아무튼 그렇게 손바닥을 쳐맞고 잉잉대며 자리로 돌아가면, 나는 가장 쉽고 외우기 쉬운 구구단 5단을 반복하며 수학 교과서를 눈물로 적시는 것이 일과였다.

쓰라린 손바닥을 차가운 의자 알루미늄 다리를 붙잡아서 식혀가며 말이다.

슈와아아아아아악……!!

마나가 회전했다. 유소년기의 트라우마가 내 마나에 녹아들어가 한 가지의 깨달음으로 승화해 갔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밖에 남을 가르칠 수 없어.’

그것이 나의 깨달음이었다.

내 유소년기를 고통으로 기른 초등학교 담임도, 티르시도 그러했다. 방식은 정 반대였고 생긴 것도 믹스 커피에 데친 심해어랑 우아한 백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녀들에게도 공통점은 존재했다.

가르침에 자신의 경험이나 사상이 섞여있다는 점!

그게 교육자들이 가지는 숙명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남의 가르침을 어떻게 소화하느냐도 그 사람의 인생관에 달려 있지.’

똑같은 의무교육을 받고도 10대에 강간 살인을 저지르는 촉법소년이 있고, 지하철에서 노약자의 짊을 대신 들어주는 아이가 있다.

‘이세계인의 비유나 설명은 내게 와닿지 않아.’

나는 이세계인이 아니고, 이세계인들은 지구인이 아니다.

내가 마린 2부대를 끌고 간 적진에서 가시가 날아드는 걸 봤을 때의 심정을 어찌 브리타니아 인들이 이해하겠는가!

나처럼 다른 세상에서 찾아온 이세계의 방랑자에게는 나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였다.

─같은 무술 유파에서 출발해도 도달하는 곳은 달라.

네페르티티의 말이 뇌리에 울렸다.

무술도 마법도 똑같은 게 아닐까? 누구의 영향을 받던지 간에 진짜 달인이라면 자신만의 오리지널 스타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스타크래프트 1이 10년을 이어져 오면서, 같은 유닛들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전술을 개발해 왔던 것과 같이!

─처억!

나는 손가락을 세우고 마나를 운용했다.

좆밥따리 유사 마법사인 내가 새로운 마법이나 마법의 개조를 꿈꾸는 것은 사치였다.

나도 명색이 학자니까 안다. 내가 오리지널 마법을 개발하거나 티르시처럼 마법에 어레인지를 넣으려면 좀 더 절차탁마 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나도 21세기 지구인으로서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이럴 때가 아니면 멀티미디어에 인생을 낭비하며 얻은 상상력을 어따 쓰겠냐고. 나는 빡집중 모드에 들어갔다.

‘이미지. 이미지라.’

나에게 이 일렉트릭 볼은 화살이 아니다. 탄환이다.

그야말로 라이트닝 불릿!

탄환의 구조는 어떻지? 크게 보면 작약, 탄, 탄피이다.

작약은 없어도 된다. 내 마나로 쏘는 거니까. 탄은 전기가 탄이다. 그러니까 남은 건 탄피 뿐.

‘탄피. 딱이네.’

화약의 추진력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게 탄피다.

내가 겪는 문제점에 귀신처럼 들어맞는 용도였다.

─찰칵.

그리 생각하자 내가 술식에 넣는 마나의 이미지가 완전히 탄환으로 바뀐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주문을 외웠다.

“천공을 흐르는 번개의 마나여. 한 가닥의 손톱이 되어 꿰뚫어라. <번개의 화살>.”

─파지지직.

나타난 구형의 일렉트릭 볼! 그것을 앞에 겨누고 발사했다.

─파즈즉!

존나 아쉽게도 번개는 날아가는 중간에 흩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슬퍼하지 않았다. <화살>이 천둥소리를 내는 위치가── 내가 그어놨던 1미터의 선보다 더 앞이었으니까.

“이거네.”

발사의 요령과 응집의 요령을 전부 알아냈다. 앞으로는 반복 연습만 하면 되겠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내 귀가 결계 밖에 떨어진 물방울 소리를 캐치했다.

“앗! 비 내려요, 선배☆!”

뭉게뭉게 연기에 감싸여 있던 라리루라가 말했다.

그 말에 나도 하늘을 쳐다보았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중이었다.

“먹구름인가.”

나는 그 장엄한 기상현상을 보고 팔짱을 꼈다.

마나랑 기술력만 받춰준다면 저 먹구름처럼 강력한 자연현상도 마법으로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살아 있는 일기 예보(Weather report)가 되는 것이다.

“선배~? 비 오는데 찌릿찌릿 마법 연습하시다가 천벌 받은 악당처럼 노릇노릇해 지기 전에 얼른 가요, 우리~.”

“어어. 그래.”

라리루라가 재촉하는 소리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여관으로 돌아갔다.

며칠 정도는 마법을 연습할 시간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후우.”

그런데 그날 밤, 연구소 일을 끝내고 돌아온 다나는 존나 어정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누나. 뭔 일 났어?”

알고 지낸지 오래 된 나는 저 표정의 뜻을 알았다. 다나는 지금 뭔가 곤란한 일이 생겨서 골치가 아파진 것이었다.

“그래. 일이 귀찮게 됐다.”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내 물음에 다나는 세상 피곤하다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아우둠라 길드에서도 발견했대. 내가 말한 ‘흑마법사와 관련된 유적’을 말이야.”

“……우리 길드가 간만에 일을 저질렀네.”

다나의 얘기를 들은 나는 생각난 대로의 말을 주둥이에 담아서 발사했다.

다른 두 길드가 흑마법사랑 연관된 유적을 찾아내고 있을 때 어디서 굴러온 건지도 모를 유적이나 연구하던 좆소둠라가 드디어 성과를 낸 것이었다.

그 찐따 같던 좆소둠라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존나 우리한테 엿을 멕이지만 않았어도 나는 순수하게 그 성과에 감탄을 해 줬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샘의 쉼터 여관 1층의 주점에 모였다.

“고고학계에서 눈독을 들일 정도의 유적이 발견됐으니까, 다른 사람들과도 경쟁을 하게 되겠군요.”

티르시가 말했다. 그녀는 오늘은 길드로 돌아가도 할 일이 없다며 여관에 남아 있었다. 정신을 차린 프랑이랑 라리루라한테 마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모험가가 파티원들과 친분을 다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까.

“경쟁은 거의 확실히 벌어지겠죠. 모험가는 말할 것도 없고, 유적에서 인생 역전을 노리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까요.”

다나는 물을 주문하며 그리 말했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이세계에서 유적이나 던전 등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이건 자세하게 말하면 존나 길어지는 종교 관련 트라비아다.

요약하자면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의 이세계 종교판 어레인지 버전이다.

저번 야수회귀의 유적 사태처럼 각자 탐사할 던전이 있거나 유적 훼손을 막기 위한 경비를 세우던 때랑은 다르다.

아마 그 흑마법사와 관련된 유적이라는 곳에 사람들이 존나 많이 몰려들겠지.

“다나. 유적 탐사를 미룬 건 이런 사태가 안 일어나도록 한 거였지?”

“어. 하루이틀로 끝날 탐사가 아닐 거 아냐. 제대로 탐사를 시작하면 이목이 끌릴 거고.”

진짜 유적 탐사는 게임처럼 핸드폰이나 모니터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생판 다른 중노동이다.

다치거나 뒤지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진행하면서 식량, 전리품 등을 담을 가방을 매고 싸우다 보면 작은 유적도 탐사 완료까지는 몇 주일이 걸렸다.

‘유적 연구가 가능할 수준까지 안전을 확보하려면 한두 달로는 안 끝나.’

존나 이세계 고고학자들이 역사 연구 좆 까고 유물에만 집착하는 이유가 달리 있겠는가.

저런 중노동을 하고 있는데 유물만 쌔벼가는 경쟁자까지 끼어드는 것이다.

현미경으로 미생물 관찰 실험을 하는데 옆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표본을 훔쳐가고, 때로는 죽이려 들기까지 한다.

시발 도미노 쌓는 중에 옆에서 깝치기만 해도 빡치는 게 사람 심리다. 나여도 걍 유물만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고 말지.

“내가 발령을 나올 때까지는 학계에서도 연구소가 완공된 뒤에 탐사를 시작하라는 스탠스였어. 하지만 내가 보낸 전서구가 닿으면 어떤 대답이 나올련지.”

다나는 테이블에 앉은 우리들을 보며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까 유적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릴게요. 탐사 지시가 내려오면 부탁드린 지명 의뢰에 착수하게 될 듯 해서요.”

“어? 여기서 말하셔도 돼요?”

술집을 채운 사람들을 곁눈질하는 라리루라. 누가 들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겠지.

그 질문에는 내가 대답했다.

“어디까지 말할지에 달렸지만 상관없을 걸. 이미 상당히 얘기가 퍼졌어.”

나는 몸을 돌리지 않고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주점에 모인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막스. 한 탕 크게 벌 일이 생겼는데 어때?”

“웬일로 술을 산다더니 역시 꿍꿍이가 있었군. 뭐길래 그러지?”

귀가 밝아 보이는 도적과 고인물처럼 생긴 전사.

“……그러니 우리는 상태를 보기로 하자. 유적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알 수 없어.”

“그러다가 정작 중요한 보물을 놓치면? 무대포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의견에는 찬성이지만, 나는 돈이 급해.”

의견이 충돌하는 모험가 팀.

“흑마법사가 노리던 유적이라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제가 아는데, 그 흑마법사는 미스릴 클래스의 괴물 같은 골렘 마스터였대요.”

“헛소리야. 소문은 입을 거칠 때마다 커지는 법이지. 그게 진짜라면 아우둠라의 무슨 외국인 브론즈인가 하는 놈이 어떻게 전투에서 공을 세운다고?”

“내 친구가 거기 참여해서 아는데, 커다란 골렘한테 앞이 가려져서 안 보였대. 듣기로는 외국의 미스릴 클래스가 다 해먹은 걸 옆에서 구경한 수준이라던데?”

진지하게 토론을 나누는 사람들까지.

‘……아니 근데 쟤들이 얘기하는 브딱이 나 아니냐?’

사르가디스에서 나는 존나 운 좋게 저번 전투에서 지분을 주워먹은 외노자 노씨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뭐, 됐다. 이상하게 주목을 받는 것보단 편하고 좋네.’

저 정도면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소문이란 어떻게 퍼질지 모르는 법이니까.

‘도시의 실세들이랑은 이미 연이 닿았고 말이지.’

사장이랑 안면을 틀었는데 다른 사원들의 생각까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아마 실태를 파악한 사람들은 전투의 상세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았다. 이세계인들의 정보를 독점하는 악취미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군.

그때 다나가 물을 들이키고 말했다.

“우리 여보님 말이 맞아. 아우둠라가 공인했으니 소문은 쫙 퍼졌고, 이제 다른 영지에까지 퍼질 일만 남았지. 그래서 이틈에 정보 교류를 해 두게.”

“연구소장님은 어디까지 파악하셨나요?”

“격식 차릴 것 없이 다나라고 불러주세요. 저도 보고받은 내용이 전부지만 어느 정도의 추측은 세울 수 있고요.”

“보고라니, 누가?”

질문자는 프랑이었다. 다나는 내 어깨를 쿡쿡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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