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1,009)

그래도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의 얘기지. 나는 일행의 주목을 모아서 내 의견을 말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어떻게든 침입을 막으려고’ 세운 건물이라는 뜻이 되겠지.”

“……기대를 해야 할까요? 아니면 나르메르-나일에서 일어났던 ‘제 4 피라미드 해방 사건’의 재래를 걱정해야 할까요.”

티르시가 ‘유적을 잘못 건드렸다가 좆된 사건’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읊으며 염려를 했다.

역사적으로 유적을 파헤쳐서 좆 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저절로 비행기 추락 사건 뉴스를 떠올리게 되는 법이었다.

“고민해도 어쩔 수 없어요. 욕심에 눈이 먼 놈들은 저희가 움직이기 전부터 유적에 들어가고 있죠.”

그런 티르시의 고민을 일축하려는 것처럼 다나가 선언했다.

“따라서 저는 그곳에 가야 합니다. 유적에 위험한 뭔가가 존재한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도 거기에 있어야 하니까요. 저처럼 고고학을 배운 사람이 말이에요.”

덤덤하게 의무를 읊은 다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쟁터로 나서는 여기사처럼 늠름해 보였다.

─말캉. 나는 그런 다나의 옆구리를 몰래 찔렀다.

“햐으앗?!”

자다가 옆구리를 찔린 강아지처럼 화들짝 놀라는 다나. 그 눈빛은 놀람과 혼란을 거쳐서 분노로 바뀌었다.

“뭐, 뭐하는데 새끼야! 시발, 나는 폼 좀 잡으면 안 되냐?!”

“잡아도 되지. 우리 눈나 존나 멋있어서 반할 뻔 했자너.”

나는 그렇게 낄낄대다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치만 어깨에서 힘 좀 빼. 너 연구소장 자리를 맡았다고 너무 굳어 있어. 언제 우리가 의무 같은 거 따졌다고.”

“……흥.”

자각은 있는지 다나는 삐진 척을 했다. 흐흐. 귀엽긴.

아무튼 저 탑이 위험한 곳이었으면 우리 사르가디스의 촌놈 모험가들부터가 뒤져나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놈들은 다 멀쩡하게 돌아왔다. 머리가 훼까닥 맛이 가거나 떨어진 팔다리를 가방에 넣어서 오거나 하는 놈은 일부 병신들이 전부였다.

“쫄 것 없어. 흑마법사 새끼가 자기 혼자 공략하려고 했던 곳이야. 그 놈 모가지를 몸통이랑 빠빠이 시켜준 내가 공략 못 할 이유가 어딨겠어?”

존나 폭론이었지만 기운을 복돋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혹부리 흑마법사 놈이 골렘의 생성을 촉진한 이유는 분명 그 유적 때문이다.’

그 새끼는 골렘을 만드는 것으로 땅을 파서 지저의 탑을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골렘을 만들어낸 것은 지나친 병신 짓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시발 거기에도 이유가 있었다니. 그 새끼는 파도 파도 끝이 없구만.

하여튼 개시팔럼. 나는 아다 유니콘 벌레박이 새끼를 존나 씹어주고서 말했다.

“준비해서 출발하자. 우리 파티의 첫 출진 아니냐. 다치는 사람 없이 완벽하게 성공해 보자고.”

─번쩍.

그렇게 말하는 내 어깨에서는 어제 완성된 미스릴 창이 쫌 간지나게 번쩍거렸다.

‘근데 창 연습 아직 덜 했는데.’

흠.

시발 모르겠다. 싸우다 보면 적응하겠지.

나의 천재성을 믿어보도록 하자.

우리 파티는 구덩이까지 도보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말을 빌리려고 했는데 관뒀다. 유적을 강하 중일 때 말들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쓰읍. 존나 나는 뚜벅이로 살다가 뒤질 운명인가?”

“출세하면 마차를 사시는 게 어때요~?”

저번처럼 링링이 3호인가 3.5인가에게 안겨서 이동하던 라리루라가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더 출세하라고? 뭐 귀족 작위라도 따야 되냐? 나는 혀를 찼다.

“마차든 말이든 그걸 간수하고 보살펴줄 사람이 있어야지 의미가 있지. 왜 저택이랑 명마가 부의 척도겠냐? 다 그런 걸 감당할 재력이 된다는 증거라서 그래.”

내가 말이니 마차니 하는 걸 샀다가는 스포츠카를 사서 월세집 주차장에 두는 꼴이다.

그것도 자기 집은 반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말이다.

그게 얼마나 하찮아 보이겠는가. 존나 차 범퍼가 나가도 수리할 돈도 없을 것이었다.

“그보다는…… 연구소 근처에 집을 구하든가 해야겠지.”

“집을?”

링링이 3.5호에 같이 탄 프랑이 0.1초만에 반응했다.

엄청 빠른 속도라서 나는 좀 움찔했다.

“어, 어어. 왜? 프랑 너도 집 구하고 싶었어?”

“응?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그때는 나랑 다나한테 꼭 상담해 주기야?”

“크흐흐. 당연하지. 어떤 몹쓸 남편이 아내 의견도 안 묻고 집을 구해오겠어.”

시발, 다행이다. 나는 들키지 않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프랑이 언제쯤 되야 여관 생활에서 독립하나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나 했네. 만약 그랬으면 죄책감이 씹오졌을 것이다. 오늘 일 끝나고 돌아가서 바로 부동산으로 달려갔겠지.

‘나는 청소가 귀찮아서 모텔 생활도 괜찮긴 하지만…….’

여친이랑 둘이서 맨날 팔짱을 끼고 모텔로 귀가하는 생활!

음미롭고 음란해서 좋지 않은가? 존나 상상만 해도 쥬지가 불끈거린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연인이 아니야. 아내이고, 가족이지.’

자고로 한국인 하면 집, 집 하면 한국인이다.

우리는 동물의 숲을 해도 빚을 갚아서 집부터 키우는 민족 아니던가!

‘집문서, 전셋집, 독립!’

이 말에 두근거리지 않는 한국인에겐 싸이코패스의 자질이 있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야말로 순정마초인 내게 ‘신혼집’이라는 건 존나 쥬지와 가슴을 함께 자극하는 단어였다.

“야. 굳이 연구소 근처로 안 잡아도 돼. 누나 출근 걱정은 말아라.”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다나가 가까이 오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아닌 척 어깨를 으쓱였다.

“뭐래.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 그쪽 구획에 좋은 터가 많아서 그런 거니까 자의식 과잉 자제 좀.”

“새끼가 찔리니까 빼기는. 니 얼굴만 봐도 합리적 의심 쌉가능이거든.”

─툭툭. 낄낄대며 팔꿈치로 날 치는 다나였다.

그 바람에 다나의 털 한 올 없는 겨드랑이가 훤히 보였다.

‘와, 시발. 이렇게 보니까 얘 전투복 진짜 개꼴리네.’

흑백의 펑크 스타일 수녀복 슈트, 라고 하면 가장 적절한 비유일 것 같다.

몸에 달라붙는 상의나 어깨가 드러난 케이프 망토도 다나랑 존나 잘 어울렸지만, 제일 꼴리는 것은 짧은 치마의 슬릿 사이로 빠져나온 망사 스타킹이었다.

존나 나도 예전에는 저거랑 다른 여자 모험가들 옷을 보고 이세계의 패션 문화에 감격하고 그랬었는데.

연구원생 노예로 각성한 뒤로는 다나가 저러고 다녀도 걍 어머니 속옷을 보는 느낌이었었지.

─불끈.

그런데 지금은 또 달랐다. 대학원생의 권태기를 넘어서서 다시 반로환동을 해 버린 내 쥬지 나침반이 다나의 허벅지를 가리키려는 게 아닌가!

슬랜더한 몸매과 개쩌는 각선미를 뽐내는 옷을 입은 건데 안 서는 게 더 이상하다.

‘……저거 입고 있을 때 섹스큐즈미 하면 쳐맞겠지?’

맞을 것 같으니까 눈치껏 입을 싸물었다.

첫날밤 이후의 10일 동안, 다나는 우리가 묵는 여관에 자주 찾아와 놓고는 나랑 그런 분위기가 되려 하면 도망을 쳤다.

‘존나 아쉽기는 한데…… 뭐 어쩔 수 없지.’

이해한다.

프랑의 거유랑 비교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쪽팔리기도 할 것이고, 계속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도 다나의 취향은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저 옷을 입고 하자고 한다? 진짜 개빡친 다나한테 부랄을 잡히고 착정 당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어딜 어떻게 봐도 드루이드 느낌은 1도 없구만.’

내가 왜 다나의 출신을 듣고 놀랐겠는가. 100보 양보해도 다나의 패션은 깡패 수녀지, 드루이드랑은 거리가 멀다.

존나 출신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그럴 만 한가?

그딴 레이시즘적인 발상으로 따지면 나도 존나 무속인처럼 입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남자 한복은 내 취향이 아니다.

여자 한복이라면 아내들한테 꼭 입혀보고 싶지만.

그리고 뭐, 얼스터의 전통복인 알몸이라면 이미 봤고 말이지.

“이제 보이기 시작하네요.”

그때 티르시가 앞을 가리켰다. 캠프장처럼 텐트나 존나게 쳐진 구덩이 부근이 나타난 것이었다.

다나는 그것을 보고 혀를 찼다.

“뒤지게 바글바글하네. 그래서 사람들 거주권이랑 가까운 곳에서 유적이 발견되면 좋은 일이 없다니까.”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귀찮아 하는 다나. 저렇게 버릇처럼 스타일을 헤집어대니 맨날 부스스한 개털머리가 되지.

“흐응. 저 사람들은 유적 앞에 진을 치고 뭐하신데요? 할 일이 없나?”

“진입한 동료들을 기다리는 대기조이거나, 할 일이 없어서 푼돈을 벌러 온 양아치들이지.”

“양아치요?”

내 설명에 고개를 모로 꼬는 라리루라.

그리고 그런 라리루라는 3분도 되지 않아서 내가 한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보셔들. 어디 소풍 가시나?”

길을 막으며 몰려드는 열 명 남짓한 남자들!

생긴 것부터가 글러먹은 인생을 살 것 같이 놈들은 우리를 둘러싸며 음산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도적은 아니었다. 죄다 플레이트를 매고 있다.

나는 일행을 대표해서 앞장서 나왔다.

“유적을 탐사하러 나왔습니다. 용건이 있다면 듣죠.”

“크하하하! 탐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도굴을 잘 못 말한 거겠지! 동종업자끼리 내숭 부리지 말자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쪼개대는 말라깽이 남자였다. 저 놈이 이 새끼들의 우두머리인가 보다.

“도굴이라. 뭐 비슷하긴 합니다.”

고고학자가 다 그렇지 뭘.

지구에서도 영-프의 고고학자는 다른 나라에 가서 유물을 부숴다가 자기 가방에 담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남는 사람들 아니던가.

우리도 유물을 가져가서 돈 되면 팔고 할 거니까, 도굴꾼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흐흐. 그래, 솔직해서 좋구만. 그러면 우리 기분에도 잘 공감해 줄 수 있겠어.”

말라깽이 남자는 휘황찬 문신을 한 팔을─그쪽 팔만 소매를 까서 드러내고 있다─ 내밀며 말했다.

“생각해 보라고. 우리는 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유적을 용감하게 파헤치고 나갔단 말이지? 그런데 뒤에서 간을 보던 새끼들이 아~ 안전한갑다~ 하고 기어나오면 우리가 얼마나 억울하겠냐고.”

“아아. 그거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 새끼들이랑 얼마나 떠들어야 하는 거지.

나는 벌써 현타에 습격당하며 어깨에 걸친 창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결론이 뻔히 보이니까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줬으면 하는 내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양아치 모험가는 부드럽게 말했다.

“10쿠퍼. 너희들 몫을 다 해서 딱 그만큼만 내 주면 고맙겠어. 이 유적의 안전함을 확인해 준 우리한테 그 정도 수고비는 지불해 줄 수 있겠지?”

역시 그건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존나 너무 뻔해서 놀랍지도 않았다. 00년대까지만 해도 선진국 반열에 드는 대한민국에서 저런 공갈은 일상 아니던가.

내가 이세계로 오기 전에도 멕시코, 필리핀을 시작으로 치안이 나쁜 나라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들었고 말이다.

전세계적으로 모친실종자가 많은 이세계라서 그런지 시발 새끼들이 레파토리도 다 비슷해요.

“크흐흐흐. 아니면 뭐, 거기 아가씨들이 우리랑 잠깐 놀아줘도 되고.”

음충맞은 웃음을 띄운 말라깽이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것은 말이다.

“어허. 왜 잘못 들은 척을 하시나? 댁만 좋은 경험 하면 못 쓰지. 여자들 사이에서 놀면서 기분 좋았으면 그걸 남들한테 베풀 줄도 알아야지?”

─낄낄낄낄!

주변을 둘러싼 모험가 놈들이 따라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다나와 티르시가 인상을 썼다.

“거기 그 뭐냐, 이상한 장난감에 탄 꼬맹이들은 됐고. 댁 옆에 있는 이상한 수녀복 입은 년이랑 마법사 아가씨만 와.”

“──하아☆?”

“꼬맹……?”

순식간에 지뢰를 2개나 밟아버린 말라깽이는 자기 처지도 모르고 나이프를 건들거리며 말했다.

“딱 하루. 하루만 우리랑 놀아주면 돼. 그럼 수고비도 5쿠퍼로 깎아주마.”

“물론 좋다고 다시 찾아와도 된다고!!”

“크하하하하!! 야, 너무 겁주지 마!! 저 새끼 쫄았잖아!!”

신나서 쪼개대는 병신들.

나는 대답을 않고 다나에게 눈길을 보냈다.

“시발, 뭘 물어. 걍 해 버려.”

이마에 혈관을 띄운 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대화를 들은 말라깽이는 히죽 웃었다.

“해 버리라고? 뭐야? 고작 하루로는 너무 적은가?”

“아뇨. 플토인데요.”

나는 창대로 말라깽이 놈의 안면을 후려갈겼다.

“구헤에엑?!”

한 방에 나자빠지는 말라깽이.

미스릴 창의 첫 피로연이 창대로 양아치의 얼굴을 후려갈기는 거라니. 무기의 질에 비해서 상대가 너무 병신이라서 이 녀석한테 미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슬픔을 느낄 틈도 없이 분개하여 소리쳤다.

“이 씨발 새끼들이!! 감히 누구한테 눈독을 들여!!”

“시, 시발!! 감히 우리 대장을 건드려?!”

“대장이고 십이지장이고!! 이 씹새들아!! 느그들 다 뒤졌어!!”

새끼들이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프랑이랑 다나를 나란히 품평하고 성희롱해?

나는 내 창을 역수로 쥐고 주문을 외웠다.

“내 싸이오닉 스톰 맛을 쪼끔만 봐라!!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

나는 영창을 단축해서 마법을 발동했다.

─파츠즈즈즈!

댓번에 주문을 외우자 번개 구슬이 생성되었다. 딱 1개다.

<화살> 계통의 마법은 화살의 숫자를 늘릴 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는 마법이었다. 그걸 역으로 이용해서 화살 숫자를 줄이고 주문을 반쯤 단축하는 것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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