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9화 (159/1,009)

야수회귀와 룬 마법은 이렇게 잘 발동을 했다. 룬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았지만 야수회귀를 쓸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라리루라는 나를 따라서 걷다가 물었다.

“불빛, 안 되나요?”

“어. 야수회귀랑 룬 마법 빼고는 발동이 안 돼.”

“……정말이네요. 몇 초밖에 유지 못 하겠어요.”

<꼭두극>의 실을 뻗었다가 실패하는 라리루라였다. 아니, 그 몇 초만이라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보다는 나았다.

‘마법의 숙련도랑 관계가 있나?’

그렇다면 <타오르는 손길>은 발동이 가능할지도. 낭비되는 마나가 아까우니까 시험해 보는 건 미뤄뒀다. 마나 포션은 딱 2개밖에 없었다.

“……돌아갈 수 있을까요?”

라리루라는 어두운 곳에 오고 나서부터 기운이 몹시 없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은 평소에 텐션이 높은 만큼 풀이 죽었을 때의 낙차가 굉장하다.

그래서 나도 좋은 대답을 들려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근거가 모자랐다.

“아직은 뭐라고 못 하겠다. 발견한 것도 없으니까.”

“그렇죠……?”

턱에 고인 물을 훔친 라리루라는 기운차게 웃었다.

“아핫♡! 죄송해요☆! 약한 소리를 해버렸네요!”

“뭐, 그럴 수 있지. 억지로 기운 짜내지만 마.”

“억지로라뇨~? 크라운 크라운 님도 말씀하셨다구요? ‘웃음을 파는 사람은 우선 본인이 웃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이에요☆”

“흐흐. 그 사람도 좋은 말을 하네.”

나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힘 내려는 녀석한테 초를 치는 것도 미안하다.

모래사장 같은 땅을 밟으며 랜턴의 빛을 의지해서 우리는 조사를 개시했다.

이 공간은 이계가 맞았다.

나무처럼 우뚝 선 육림(肉林)이 주변 경치의 전부였다. 꼭 바나나 나무를 보라색 촉수로다가 흉내낸 것만 같은 비쥬얼이라서 그 좆 같음이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여기서 나고 자라는 새끼는 또라이 싸이코패스 몬스터 외에 다른 장래를 선택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좆 같은 숲을 조심해서 돌아다니던 때였다.

“선배, 저기 동굴요.”

라리루라가 그 안쪽에서 동굴을 발견했다. 우리는 동굴을 끝까지 탐사해서 네크로모프 같은 이계의 생물이 존재하지 않는지 검사했다.

‘없군.’

동굴은 단칸방 수준이라서 다른 생물들은 새 집을 구하러 갔는지 텅텅 비었다. 집문서도 없는 이계에서 이런 좆 만한 곳에 사는 새끼가 병신이지.

“잠깐 쉴까?”

유적 탐사 때부터 꽤 오래 움직였더니 피로가 약간 발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마나를 각성한 나랑 라리루라는 초인이 됐지만, 초인이라도 초인적인 움직임을 펼치면 지치는 법이었다. HP/MP랑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습해서 사람 기분을 조지기 딱 좋은 동굴에 몸을 기댔다. 어둡고 습한 곳에서 돌아다니니까 우리까지 벌레가 된 느낌이었다.

“라리루라. 불안한 건 알지만 랜턴은 꺼 둬. 불을 구하기 전까지는 기름을 아끼지 않으면 안 돼.”

“……흐으. 꼭 꺼야 돼요?”

“땔감을 못 구했으니까.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촉수를 건드리고 잘라서 태우는 건 최후의 보루야.”

나는 랜턴을 보물처럼 품은 라리루라에게 말했다.

흐물흐물한 촉수는 횃불로 만들어도 들고 다니기 힘들 것이었다. 그리고 잘못해서 독성 물질이 들어 있으면 뒤지는 수가 있다.

안전한 불이며 유일한 광원(光源)인 랜턴은 RPG 게임의 최고급 포션처럼 아끼고 아껴야만 했다.

“……알겠어요. 끌게요.”

─치익.

라리루라는 울상을 지으며 랜턴을 껐다. 유일한 빛이 없어지니까 씨발 진짜 존나게 어두워서 아무 것도 안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보였던 라리루라의 울상 지은 표정이 꼭 머리에 들러붙은 것 같이 인상 깊었다.

“……선배.”

“왜?”

“저, 실은 어두운 게 싫거든요? 옆에 붙어 있어도 돼요?”

어두운 게 싫다고?

‘그런 티를 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 이번 유적 탐험 때 말고는 이 녀석이랑 같이 있을 땐 보통 밝았던 것 같다.

밤에 고양이 밥 주다가 만났던 게 거의 유일하게 늦은 시간대였던가?

“불빛이 있으면 괜찮아요. 아니, 그보다는 어두운 곳에서 빛 한 줌만 있을 때가 제일 안정되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완전 어둡기만 한 곳은 조금 싫어요.”

묘연하게 윤곽만 보이는 라리루라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플랑궁쿨라 서커스단의 서커스 쇼를 떠올리게 되었다.

어두운 공간에서 빛나는 포근한 불빛이라.

그 서커스단의 공연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관두자, 관둬.’

나는 생각을 끊었다. 내 엘리트 대갈통이 라리루라가 고아라는 사실을 토대로 저 꼬맹이가 서커스단을 만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추측하려 들었던 것이다.

존나 건방지게도 말이다.

“그래라. 옷도 젖었고, 체력 뺏기면 안 되니까 붙어서 체온이나 나누면 되겠네.”

“이 정도는 입고 있으면 마르지 않아요?”

“그거 네 체온으로 마르는 거야. 마나가 바닥나면 감기 든다.”

“……벗어서 말릴까요?”

라리루라가 물었다. 내가 말하기 힘들까 봐 먼저 제안을 해 준 모양이었다.

“모닥불을 피운 다음에. 옷을 말리고 계속 돌아다녀 보자. 그래도 물이 바닷물처럼 염분이 들어 있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구만. 찝찝함이 덜 해.”

“아핫. 믿음직스러우셔라♥ 선배랑 같이 와서 다행이에요.”

“너 버리고 갈 생각 없으니까 아부하지 마셔.”

“흐흥. 진심인데요? 선배 지금 이마에서 빛이 나서 멋져요.”

“내가 대머리냐? 대가리가 빛나게.”

시발, 무슨 스탠드 취급이네. 돌겠네.

‘아, 그런가. 룬 문자는 마법 사용 중에는 빛나지 참.’

나는 몰랐지만 머리카락에 덮인 내 이마는 빛을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존나 그래서 옆에 와도 되냐고 물은 거였냐고.

“실례합니다아~.”

그때 라리루라가 나한테 어깨를 기댔다.

체온이 좀 낮았다. 보온 효과가 있는 야수회귀를 사용하며 걸었던 나랑 달리 쭉 젖은 옷을 입고 다녀서 그런 것 같았다.

‘이거 독이 있을 걸 각오하고 불을 피워야겠네.’

이런 상황에서 얘가 감기까지 들면 답이 없으니까.

나는 어둠 속에서 ᚲ(Kenaz)의 룬으로 강화된 오감을 믿고 주변을 경계했다. 내 엘리트 대갈통은 집음(集音)에 철두하며 이 이계에서 벗어날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벌레 새끼들이 발견되기만 하면 돼.’

여기가 그 벌레 새끼들의 고향이 맞다면 만사 OK다.

유적으로 이어지는 고대문명의 소환진은 이곳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니 말이다.

나는 잠깐 쉬고 동굴에 뻗은 이상한 식물을 뜯어왔다.

“나한테만 이 덩굴 잎이 사람 손으로 보이냐?”

“손가락이 6개니까 사람 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존나 상상도 못한 의견이군. 요 장애인 차별자 같으니.”

아무튼 좆 같은 이계는 식물까지 좆 같이 생긴 모양이다. 나는 그 풀을 뜯어서 목에 문질러 보거나 쬐끔 떼서 혀 밑에 넣었다.

“선배, 독이 있는지 확인하시는 거에요? 맹독풀이면 어쩌실려구 그래요?”

어둠 속에서 내가 하는 짓을 알아본 라리루라가 물었다.

쉬는 동안에 눈이 적응해서 그런가. 우리는 불빛이 없어도 상대방의 실루엣 정도는 볼 수 있게 되었다.

“흐흐. 내 간을 믿는 거지 뭐. 요즘 술도 덜 안 먹었거든. 가끔 이렇게 일할 거리를 던져줘야 게으름을 안 피우지.”

“무모한 짓 하지 마세요. 선배가 돌아가시면 제가 언니들을 볼 면목이 없잖아요?”

“면목이 있으면 죽어도 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제 책임이 아니라는 유서라도 써 주실래요? 저도 똑같은 내용으로 써 드릴게요.”

“아내들한테 보내는 첫 편지가 유서였다간 내가 10년 안에 좀비로 부활당할 듯.”

그리고 스켈레톤이 될 때까지 쳐맞겠지.

아무튼 해독 포션을 믿고 한 짓이지만 혀가 아릿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퉤. 나는 풀을 뱉고 포션을 약간 마셨다.

새끼손톱 반의 반도 안 되는 양으로 혀가 아플 정도의 맹독이라면 여길 빨리 떠나야 할 것이었는데, 그렇지는 않은 듯 해서 다행이었다.

“<부여>. ᚨ(Ansuz).”

창날에 룬 마법으로 강화한 <타오르는 손길>을 써서 불을 붙였다. 이번에도 불꽃은 몇 초 못 가고 꺼졌다.

‘효과가 확실하면 이걸로 <수사의 랜턴>을 쓰려 했는데.’

그래도 육손 클로버에 불은 붙일 수 있었다. 연기를 맡아도 매캐하지는 않다. 락스처럼 조용하게 파고드는 독성만 아니면 아마 안전하겠지.

시발거, 나무가 없으니까 별 걱정을 다 하게 되는군.

“이제 옷 벗어도 돼요?”

내가 불을 피우자 라리루라가 물었다. 화장이 엉망이지만 뺨에 그린 문양이 전부라서 보기 괴롭지는 않았다.

“근데 너는 왜 벗고 싶어서 안달이시죠.”

“쉬고 있으니까 식어서 축축하고 기분 나빠요. 조금 춥고.”

약간 쌀쌀하기는 하다. 나는 등을 돌렸다.

“등 돌리고 있을 거니까 내 몸 구경할 생각은 접어둬.”

“그러는 선배야말로~ 제가 반대쪽을 보고 있다고 몰래 뒤 돌아서 엿보지 마세요~?”

“니 등이라면 이미 봤는데 뭣하러. 아, 옷 벗으면 모닥불 옆에 펼쳐놔라. 마르게.”

뒤에서 보이는 옆가슴이라면 프랑의 압승이다. 배덕감도 3년을 부랄친구처럼 지냈던 다나의 몸을 볼 때가 훨씬 꼴리고 말이다.

─철퍽. 내 말에 라리루라는 젖은 옷을 벗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또 모르죠? 마약도 해 본 사람이 더 땡기는 거니까요☆!”

“우리 아내님들의 사랑스러움이 마약 같기는 해.”

“그럼 저는요?”

“무설탕 설탕.”

“헛소리 안 하는 선배만큼 모순적인 단어네요. 저는 옷 다 널었어요.”

“그래. 대충 마르고 나면 다시 탐색을──”

나는 벗은 갑옷과 상의를 모닥불 옆에 펼치려다가 기절할 뻔 했다.

모닥불에 가까운 곳에 놓은 옷가지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 미친 18살 고삐리(1~2년 나이 사기침) 녀석이 위아래 옷에다가 속옷까지 다 벗어놓은 것이 아닌가!

“야 이 띨빡아! 속옷은 입고 있어도 잘 말라!! 그리고 너는 바지도 입어서 말려!! 니 광대옷 바지는 면적도 적잖아!!”

“앗! 그런가요. 죄송해요, 몰랐어요.”

내가 빼액대자 라리루나는 진짜 몰랐다는 것처럼 말하고 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질색을 하며 투덜댔다.

“으으. 축축해서 기분 나빠요. 오줌싼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는데요.”

“다 입었으면 얌전히 있어라. 사람 열받게 하지 말고.”

“아핫~♡? 선배, 흥분하지 마세요? 기운 빠질라아~.”

“흥분은 무슨. 쥐방울 같은 꼬맹이 속옷 가지고 흥분하는 취미 없어.”

구라가 아니다. 그냥 내 얼굴을 다 가릴 수 있는 크기의 브래지어에 정신이 나갈 뻔 한 거다. 내 쥬지콘다도 얌전하지 않은가!

그런데 내 말에 라리루라는 울컥한 것처럼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쳤다.

“꼬마 아니거든요~? 라리루라도 몸만은 벌써 어른이랍니다?”

“호적 상으로는 아직 애라매. 머리도 애니까 애 맞음.”

“애, 애 시끄러워요. 제 머리가 뭐 어쨌는데요.”

“옆구리 좀 그만 찔러, 철부지 녀석아. 남의 옆구리에 손을 스스럼없이 가져가는 녀석은 몇 살을 먹어도 애인 거야.”

<사람은 자기 행실을 돌이켜보지 못하는 생물이네요.>

“왜 로마니아 어로 말하냐고.”

아무튼 라리루라가 진화 조건 채운 이브이도 아닌데 이번 년도가 넘어가자마자 딱 하고 어른이 되겠는가. 나는 젖은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내가 듣기로 다나네 고향은 성인식이 10살이랜다. 나이가 찬다고 어른이 아니지.”

“흥이네요~. 그럼 어른의 기준이 뭔데요?”

“어린애로 있고 싶어질 때부터가 어른인 거지. 우리 아버진 가족을 책임질 수 있게 되면 어른인 거라셨고.”

노르드 헌법에 따르면 길동이 아저씨가 피해자로 보이기 시작하면 어른인 거고, 둘리가 부러워지면 틀딱인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낄낄댔다.

“그래서 내가 나이 스물 넷에 결혼 안 했다고 뭐라시더라. 당신은 내 나이 때는 이미 내 기저귀를 갈고 계셨다면서.”

“네~? 나이 스물 넷에 결혼 안 하고 있으면 늦는 거 맞지 않아요~?”

“너 절대 실수로라도 그 소리 다나한테 하지 마라?”

“제가 암만 말괄량이래도 선배도 아니고 그런 짓 안 하죠.”

나이 언급이 사망 플래그 취급을 받는 다나였다.

하여간 불쌍한 우리 눈나. 내가 잘 보살펴 줘야지. 그걸 위해서 반드시 돌아가야 되는 것이고 말이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라리루라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라리루라. 늦었지만 고맙다. 몸을 날려가며 프랑을 구해줘서. 너 아니었으면 내가 프랑을 밀쳤어도 늦었을 거야.”

“흐흥. 좀 더 감사해 주세요~♡? 사르가디스로 돌아가면 호화로운 식사를 대접하셔도 된다구요?”

“존나 너는 사양이라는 걸 모르는구나.”

“어느 못된 어른한테 보고 배웠답니다?”

“세상에. 애한테 뭘 가르치는 건지. 존나 한심한 어른도 다 있군. 누군지는 안 물어보마. 네가 알아서 손절하거라.”

“싫~ 은데요~♡?”

목소리 뭐야. 얼굴이 보였으면 혀를 빼물고 있었을 것 같군.

“제가 좋아하는 언니를 구하려고 한 건데 선배한테 감사를 받을 이유가 어디 있나요? 남편이라도 아내 대신 인사하는 건 쫌 아니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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