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팟!! 부채로 땅을 가리키는 셀레나.
“빚도 갚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은 돈을 위해서라면 가족조차도 파는 악한으로 전락할 뿐!! 이것도 세계 경제를 쥐어잡는 위대한 대상(大商)이 되기 위한 투자라면, 저희는 기꺼이 여기 계신 노르드 씨에게 발견된 유물의 소유권을 양도하겠어요!!”
짝짝짝짝─!! 디스뮤크인가 하는 집사는 마음의 쿠퍼액을 짜대며 박수를 쳤다.
아가씨의 성장에 감탄을 하는 양부모 같아서 감동스럽기는 한데, 나는 말이 엄청 빨라서 반쯤 흘러들었다.
그래서 대충 열정 페이로 뛰어주겠다는 얘기로 알아듣고 땡 쳤다.
“그, 그렇군요. 그러면 네이슨 씨께는 탐사 호위 의뢰를 기준으로 유물의 값을 나눠드리는 걸로 하고, 셀레나 양의 팀은 이번 싸움으로 빚을 갚는 셈 치죠.”
“좋고 말고요!! 그런 뒤에야말로 저희는 동등한 입장에서 상담(商談)을 나눌 수 있는 긴밀한 사이가 될 수 있겠죠!”
“하, 하하. 셀레나 양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렇게 빠른 속도로 말을 하면서도 침은 절대 안 튄다는 게 존나 대단했다. 거의 리즈 시절의 티르시를 방불케 하는 랩 속도다.
“허기 지실 테니까 식사부터 하시죠. 이계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식량을 많이 구해 왔습니다.”
그때 티르시가 가방을 놓으며 말했다. 몸을 잘 구기면 나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빅 사이즈의 가방이었다.
“이렇게 감사할 때가!! 디스뮤크!! 장부에 달아두세요!! 이 식량들은 지상으로 돌아가면 5할증으로 갚아드리겠어요!!”
1.5배라니 애매하게 쪼잔하구만.
퍼센테이지로 말해서 큰 돈을 쓴다는 것처럼 말하는 게 딱 21세기 대형 마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셀레나였다.
─와글와글.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 연합팀은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식량을 먹게 됐는데.
“암, 우리 남편님은 존나 대책 없는 욕심쟁이 새끼지. 이 새끼한테 반한 게 내 원죄겠네. 아암, 그렇고 말고.”
“……노르. 나도 탐사라면 다음에 다시 왔어도 됐다고 생각해.”
두 아내님들의 시선이 존나게 매섭습니다 여러분.
나는 육포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 기분으로 눈을 피했다.
‘뭐가 문제였지? 완벽한 작전이었는데!’
─유부남들이여,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
그 위대한 선인들의 멘트를 떠올리며 저지른 일이었는데, 용서는 좆도 쉽지 않았다. SKY 붙기 VS 인서울 하기 정도의 밸런스였나 보다.
존나 나는 전과목 8등급의 꼴마초이고 말이다.
“이계에서 돌아온 직후인데 무모한 작전이기는 하죠. 저도 가능하다면 반대하고 싶었어요. 저희 의견을 말할 틈이 거의 없었지만요.”
육포를 조신하게 삼킨 티르시도 짐짓 중립인 척 꼽을 줬다.
여러분. 나 아파요. 독설 많이 아파요.
“에이~ 뭐 어때요☆! 좋게좋게 생각하죠!”
그런 취조실 같은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준 건 라리루라였다. 녀석은 텐션 높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저희끼리 도전하기엔 무모한 작전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힘을 보태면 분명 간단할 걸요? 다나 언니도 유적을 완전히 파악해 두는 게 더 좋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너 웬일로 이 녀석 편을 든다?”
다나가 놀라운 것처럼 말하자 라리루라는 눈알에 진도 2의 작은 지진을 일으켰다.
그것은 엄청 작은 반응이었기에 눈치챈 것은 나 뿐이었던 듯, 라리루라는 다나를 향해 손사레를 쳤다.
“아핫♡! 그랬나요~? 제가 오랜만에 맹활약을 펼쳤다 보니까 의욕이 앞섰던 걸지도요!”
“그래? 뭐, 네 얘길 듣는 한에는 어떤 브딱또라이 창쟁이 새끼보단 나은 것 같더라.”
방향 급 선회로 다시 나를 때리는 다나.
언어의 폭력이란 이리도 무자비한 것이었던가. 권태기의 가장이 집에서 쭈구리가 되는 이유를 알겠다.
사족이지만 나랑 라리루라가 겪은 일은 벌써 설명을 끝냈다.
설명은 라리루라가 맡았는데, 나랑 저 녀석이 살을 맞대며 체온을 나눴다는 부분은 뺐다. 가끔씩 나한테 눈치를 주던 걸 보면 나중에 알아서 말하라는 뜻인 듯 했고 말이다.
“……피임에는 꼭 신경 써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좌불안석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프랑이 본심이 흘러나온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번에 나는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구, 노르의 노력을 응원하고는 있지만…… 잘못하면 애 떨어질 것 같아.”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건빵을 깨작거렸다.
하루 종일 굶었지만 어째선지 과일 건빵은 더럽게 맛대가리가 없었다.
좆같은 건포도 때문인 걸로 하자.
언제였나. 예전에 우리 아버지께선 주식에 손을 대셨던 적이 있었다.
100만원을 꽁으로 날려먹고 어머니한테 쪼인트를 까이기 전까지 아버지는 도박 중독자처럼 핸드폰에 코를 박고 사셨었는데.
그때 급락한 주식이 다시 떡상하면 아버지는 이게 인생이란 거란다 라시며 훈계를 해 주시곤 했었다.
그 주식이 떡상할 때는 아버지가 치킨을 시켜주셨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사실 5년도 안 된 최근 일이기도 했거든.
아무튼 아버지가 그러실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후까시를 좀 작작 부리라며 혼을 내셨지만, 남자아이는 커서 아버지의 기분을 이해하는 법이라고 하던가.
나는 아까 전에는 어머니께 혼쭐이 난 아버지의 기분을 배웠고, 이번에는 떡락한 주식이 부활했을 때의 기분을 배웠다.
왜냐하면 내 앞에 나타난 것은── 마법으로 굳세게 막힌 거대한 문이었기 때문이다.
일행 중에서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이해한다. 몬스터들을 돌파하고 지하 5층에 도착한 우리를 가로막은 것은, 코찔찔이 잼민이한테 물어봐도 여기에 뭐 있을 듯? 하고 대답할 듯한 비쥬얼의 문이었기 때문이다.
“암호인가요?”
셀레나가 그리 말하며 팔짱을 꼈다.
문이 있는 벽에 비밀번호 패드처럼 꽂힌 석판!
그 석판에는 못 읽는 사람은 절대 해석하지 못할 독자적인 글자 뿐이었다.
A를 ◆로, B를 △로 표기하는 식의 환자(換字) 암호였다.
이런 암호를 풀려면 우선 어떤 언어를 암호화한 것인지 알아내고, 그 문자를 모조리 사전과 대조해 가면서 해석하는 과정을 걸쳐야 했다.
“호오. 굉장히 엄중한 봉인 마법입니다.”
그게 골드 클래스 모험가 팀의 마법사의 말이었다.
그는 뭔지 모를 신기한 마법을 써대다가 감상을 내뱉었다. 너드족인 마법사답게 장소의 분위기가 좆창난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지식을 나불대는 것이었다.
“툴리퍼들 방식의 봉인. 음성 문자를 정해진 횟수 안에서 정확하게 읊어서 해제시키는 자물쇠(Lock)군요. 틀렸다가는 문에 담긴 마나가 방어 마법으로 전환되겠어요.”
“네 지식 자랑은 됐으니까 해제법이나 말해.”
“나는 못 하지. 이건 내노라고 하는 영재들도 몇날 며칠을 분석에 쓰게 만드는 난이도의 암호야.”
네이슨의 말에 마법사는 손을 들어서 항복을 했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해석된 문자도 수수께끼나 자기들만이 알 수 있는 힌트일 걸? 책의 문구라든가, 시의 구절 같은 거 말이야.”
“제 동료는 저렇게 말합니다만, 어쩌시겠습니까?”
“저희 학자를 불러 보겠어요!! 대학에서 석사로 5년을 활동했다는 인재랍니다!!”
팔짱을 낀 셀레나가 어느 안경 낀 남자를 불렀다. 전사의 풍모가 느껴지는 사제였다.
저 사람도 현장직인가? 그는 안경을 잡고 석판을 관찰하다가 신음을 흘렸다.
“……끙. 죄송합니다. 이 자리에서 풀기는 어렵겠어요. 이런 걸 본 순간에 해석하고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은 고고학계는 물론이고 전세계를 뒤져도 다섯 명이 안 될 겁니다.”
사실 상의 기브 업 선언! 셀레나는 입을 딱 벌렸다.
“그렇게 어려운가요!”
“난이도가 어려운 거라기보다는 해석이 번거로운 겁니다. 글자에 규칙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암호입니다. 다중문자 체계와 코드그룹라고 하죠.”
그는 안경을 밀어올리며 고개를 저어댔다.
“보통 이런 고대문명의 환자 암호는 랩실에서 1~2분기의 여유를 잡고 해석합니다. 대조문도 없는 지금은 해석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습니다.”
“시도 정도는 해 봐도 되잖아요!!”
“안 됩니다. 도전 횟수만 까먹을 테니까요. 이 세상의 문자를 거의 다 알고, 걸어다니는 사전처럼 배운 글자를 완벽하게 기억하며, 그걸 머리 안에서 대조해서 표를 작성할 수 있는 천재라면 모를까……. 그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있으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투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눈알을 굴려댔다.
‘씨발. 얘기가 너무 커지는데.’
내가 잠깐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저 문자가 무슨 ‘100년에 한 명 태어나는 천재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풀 수 없는 난이도의 퀴즈’ 같은 게 되어 버린 느낌.
아니, 사실 그게 맞기는 하다.
이걸 해석한다는 것은 한자만 가지고 훈민정음 발명 전의 조선어를 해석하는 것보다 약간 쉬운 수준의 난이도였다. 카르미네 대학의 고고학계에서도 3달은 걸릴 것이었다.
“야, 남편님아.”
그런데 어째선지 우리 눈나는 나한테 눈짓을 했다.
혹시 알고 있냐고 묻는 것만 같은 시선! 다나의 그런 행동에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조금씩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진짜 존나게 부담된다. 내 연약한 위장이 히드라처럼 위액을 뿜어지게 생겼다.
하지만.
“……크흠.”
……풀 수 있다.
나는 저 문자를 풀 수 있었다. 내 번역능력은 암호에도 작동하니까.
이건 학자한테는 도움이 안 되는 능력이었다. 내 번역능력은 해석이라는 과정을 건너뛰고 결론만 내뱉는 거라서, 그걸 증명할 증거를 내 손으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치를 모르던 사람에게 발효를 가르쳐야 하는 노릇!
그 썩은 걸 어떻게 믿고 먹느냐, 라고 물으면 나도 모르는 발효의 원리를 찾아와야 하는 부조리였다.
그렇기에 석사였던 나는 학위논문에 이것을 사용하지 못했었다.
증거를 찾기도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똥군기가 가득한 학계에서 짬찌 석사가 도전할 논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번역을 결과로 증명할 수 있는 장소라면?
오직 YES or NO로만 답을 정하는 곳이라면?
그런 곳에서라면 나는 이 문자를, 학문으로는 엮을 수 없는 지식을 말로 내뱉을 수 있다.
“──남에게 ‘이것’을 주고자 하는 자는 누구보다 많은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 석판에 적힌 암호를 해석했다. 석판에 적힌 것은 고대 로마니아 어의 문구였다.
“그렇게 적혀 있네요.”
내가 읊은 것은 브리타니아 어로 해석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불가능하다 소리쳐댄 문구를 해석하자 골드 클래스의 마법사와 현장직 석사 아재는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걸 해석하셨다고요? 농담이시죠?”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암호화를 어떻게 풀었습니까?!”
“아뇨, 그. 설명이 길어지니까 생략합시다. 중요한 건 제가 해석한 게 맞느냐 아니냐잖아요?”
나는 미친 소를 진정시키는 것처럼 손을 들어서 말을 얼버무렸다. 당신들의 말이 다 맞아요의 포즈다.
“역시 우리 남편님이라니까. 새삼 멋졌어.”
물론 내 발언을 겸손으로 해석하며 내 말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수수께끼인가. 답은…… 사랑이라든가?”
“아아! 알겠어요! 돈! 답은 돈이겠죠! 이 탑은 포션을 연구하던 곳이잖아요! 돈을 귀중하게 여길 만 하다고 생각해요!”
로마니아 어를 알아들은 다나와 셀레나가 의견을 말했다.두 사람 다 아귀가 맞는 얘기였다.
그렇기에 이 수수께끼는 알아도 풀 수 없는 것이다. 대충 아무 말이나 쑤셔박아도 말이 되기에, 이것은 ‘답을 아는 사람’이 그 문구를 떠올리게 하는 용도로 적어놓은 문구였다.
물론 나는 이 문구의 답까지도 눈치챈 뒤였다.
그리고 그게 내가 석판을 해석해 놓고도 망설인 이유였다.
이것은 내가── 아니, ‘우리’가 아는 어떤 책에 적힌 문구였으니까.
흥분한 두 학자들을 진정시킨 나는 라리루라를 불렀다.
내 호출을 들은 라리루라는 눈알이 안와 밖으로 빠져나올 만큼 크게 뜨고 있다가, 반신반의하는 뉘앙스로 뇌까렸다.
<──웃음.>
─키잉.
쿠르르르릉─!!
라리루라가 크라운 크라운의 신념을 입에 올리자, 거대한 문은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수천 년 만에 나타난 방문자를 환영하듯이.
““열렸다!!””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굴던 두 지식인들이 외쳤다.
그들은 뽑기에서 천장까지 한 발작을 남기고 원하던 캐릭터가 뜬 것처럼 경기를 일으켰다. 그들의 어그로는 정답을 말한 라리루라한테 튀었다.
“<웃음>!! 그렇군요! 암호의 힌트에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정답이라고 믿으실 수 있었습니까?!”
“어디 문헌 같은 곳에 나오는 말입니까?! 어떤 책이죠?!”
“넷? 채, 책이랄 건 없는데요! 저도 조금 들어본 얘기일 뿐이라서!”
라리루라는 지식인들이 달려들자 쫄아서 내 뒤로 숨었다. 능숙한 프렌드 실드다. 나를 꼭두각시로 써 먹다니 건방지군.
“큼. 미안합니다.”
그래도 어린 여자애(나이 구라깜)의 쫄아든 모습에 수염 숭숭 난 아재들은 냉정을 되찾았다. 못난 꼴을 보였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아니 그건 그렇고, 진짜로 정답이 맞았네.’
나는 이랏샤이마세 모드로 열린 문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정말로 그 크라운 크라운인가 하는 궁중광대의 글을 기지의 암호로 삼았던 거였다니!
‘……본인이 세운 탑은 아니겠지?’
그 궁중광대가 뭐 연봉을 수십 억씩 받는 직업이었겠는가. 이렇게 커다란 탑을 사서 전선기지로 개조한 본인이라는 선은 없을 것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어도 글의 문구가 암호로 쓰였다고 본인이 세운 건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존나 논리의 비약이었다.
그렇게 치면 내 야설 사이트 ID는 톨스토이가 만든 거게?
‘유명한 광대였다고 하니까, 설계자가 보고 들은 내용을 따 온 건가.’
그럴 만 했다. 시대배경이 거의 비슷하니까.
느낌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시대의 인물이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암호를 따 왔다는 느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암호문의 엄중한 분위기가 떡락하는 것 같다.
전선기지 물류창고의 비밀번호 찾기 질문이 유재석의 옛날 별명은? 인 듯한 느낌.
“몬스터는 있습니까?”
네이슨이 물었다. 문이 열렸으니 보스전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겠지.
그 말에 프랑과 골딱이 도적이 탐지능력을 살려서 내부를 조사했다.
“아무런 기척도 없어.”
“온도 변화도 없어요. 만약 있어도 골렘이 아닐까요.”
프랑이 스파이 드워프-센스로 온도까지 파악하며 말했다.
“조심하며 조사합시다.”
내가 학자들이 날리는 무언의 질문공세─사람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빛─을 피하며 제안했다. 시발, 나중에 뭐라 물어봐도 그냥 우연이었다고 하면서 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