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1,009)

아니 뭔 씨발.

안 그래도 정액 마려워서 뒤지겄는데 왜 이 누님은 자꾸 잠도 덜 깬 남편을 꼴리게 만들고 지랄이실까.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 할 거면 깨워서 해 달라는 소리지.”

나는 햇빛이 눈부시건 말건 표정을 풀면서 다나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침에 신부가 쥬지를 만져주고 있었다고 화를 내는 새 신랑이 어디 있겠는가.

“누나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자다 깼는데 내가 누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열심히 만져대고 있으면 어쩔래?”

“어……………… 안 깬 척 참는다?”

와.

존나 이게 석사와 박사의 차이인가.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박수를 쳤다.

우리 눈나는 내츄럴 본 천재가 맞다. 자지를 화나게 하는 천재 말이다.

어떻게 하면 저런 발상이 인풋된 지식도 없이 튀어나오지.

“기억해 둬. 내가 나중에 누나 자고 있으면 잠 안 깨우고 보내놓는다.”

“미친놈아. 범행예고냐.”

“합의 하에 하면 범죄 아님. 뭐 아무튼, 잘 잤어?”

“그래. 너랑 안고 자니까 따듯해서 존나 좋더라.”

존나 솔직도 하셔라. 나는 낄낄대며 말했다.

“좋았으면 자주 여기 와서 자. 아, 근데 누나 오늘도 출근해?”

“아니. 지도는 복구 용액에 묵혀둬야 해서 가 봤자 할 일 없어. 아마 내일 모레에는 다른 연구원들도 올 거니까, 그 전에 지도는 여기로 옮겨둬야겠지만 말야.”

“그래. 할 일 없으면 일어나서 밥이나 차려 두자.”

그렇게 나랑 다나는 어제 먹고 남은 요리를 그릇에 담아서 아침을 준비했다.

“후아아…… 좋은 아침……. 아침 차려 줘서 고마워.”

“우으…… 선배한테 뻗친 머리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채 못 했어요…….”

숙취로 늦잠을 잔 프랑과 나날이 게을러지는 자취생 라리루라는 조금 있다가 1층으로 내려왔다.

나는 빵을 화덕에서 뎁혀서 내놓다가 말했다.

“세수할 거면 거실 안쪽에서 오른쪽으로 가. 수건도 있어.”

“이빨 닦고 올게요. 밥 먹을 거지만 저 지금 입 냄새 날 것 같아서 무서워요…….”

“그러자. 칫솔 여러 개 사 둬서 다행이다.”

저기압인지 기우뚱 거리면서 씻으러 가는 라리루라와 그런 라리루라를 따라가는 프랑이었다.

이세계에서도 여자들은 화장실을 같이 가는구나. 남자들이 담배 피러 몰려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데, 나는 흡연자가 아니라서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 비유였다.

“근데 티르시가 늦네. 생각보다 잠이 많나?”

“어? 그 사람도 자고 갔어?”

포크랑 스푼을 깔던 다나가 놀랐다. 아, 그러고 보면 다들 아직 몰랐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잠깐 방문만 노크하고 온다. 설명은 모이면 할게.”

“그러든가. 존나 생각 없이 방에 들어갔다가 사고 치지 말고.”

“누나. 내가 병신이야? 손님방 문을 내 맘대로 열어대게?”

시트콤도 아니고 그딴 바보짓을 하겠는가. 나는 2층으로 올라가서 손님방 문을 두드렸다.

“티르시. 아침입니다. 오늘은 일 없어요?”

“──꺄아아악!! 얼른 옷만 입고 출근할게요!! 죄송해요!!”

아니 이걸 직장인 PTSD가 터지네.

하수도 이후로 간만에 듣는 티르시의 생목 비명소리였다.

─우당탕탕!

─후다다닥!

방 안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던 티르시는 잠이 덜 깼는지 방문을 열었다.

“미안해요, 루시!! 깨워 줘서 고맙──── 어?”

문을 열고 그리 말한 티르시. 존나 나는 방문을 노크했을 뿐인데 왜 이걸 시트콤으로 받는 것이지.

당연히 나는 눈치 빠르게 천장을 보고 눈을 가렸다. 자기 방이랑 남의 집이랑 구분도 못 할 정도로 아침에 약한 티르시니까, 어떤 꼴로 등장할지 모를 일이었다.

“──죄, 죄송해요!! 잠이 덜 깨서!!”

“문부터 닫읍시다.”

─쿵! 놀란 티르시가 문을 닫고 나서야 나는 눈을 뜰 수가 있었다. 긴장이 저렇게 풀릴 정도로 잠자리가 편했다는 걸로 받아들이도록 하자.

“아침을 준비해 놨으니까 몸단장 끝나면 내려와서 같이 한 숟갈 드시죠. 출근은 안 늦었나요?”

“네, 네! 오늘은 휴일이에요!”

그거 다행이다. 우리 집에서 잤기 때문에 지각했으면 조금 미안했을 거니까.

“식사 하실지는 시간 보고 정하셔도 됩니다. 억지로 권하지는 않을게요. 저는 먼저 내려갑니다.”

그리 말해두고 밑으로 내려왔다. 뭔가 하숙집 아저씨가 된 기분이었다. 집이 넓어서 그른가.

“좋은 아침이에요~☆!”

찬물로 씻었을 건데도 존나 활기찬 라리루라가 프랑을 동반하고 돌아왔다.

한 발 빨리 식사를 하고 있자 티르시도 1층으로 내려왔다. 내가 미리 말을 해 둬서 프랑이랑 라리루라는 안 놀랐다.

그나저나 티르시 옷은 어제 입은 것 그대로였는데,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에 갈아입지 않으면 이상한 오해를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프랑은 빵을 쪼개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티르시 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네, 네에. 덕분에 잘 잤어요.”

소긋하게 자리에 착석하는 티르시. 다나가 스프를 떠서 그 앞에 두었다.

그렇게 식사 동안에는 잡담을 하다가, 밥을 다 먹고 그릇을 치우기 전에 내가 얘기를 꺼냈다.

“프랑. 라리루라. 내 실버 클래스 승급 시험 말인데.”

얘기 내용은 어제 한 것과 같았다.

티르시는 승급 시험을 치룰 수 있는데, 그걸 우리 사정 때문에 미루게 만드는 건 미안한 일이다.

티르시도 같은 파티원이고 저번에도 나랑 라리루라 때문에 고생을 했으니까 가능하면 도와주고 싶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선배가 괜찮다면 저는 좋아요! 저야 실버를 달려면 한참 남았다고 하셨으니까요~.”

“나도. 티르시 씨는 하수도 때도 흑마법사 때도 노르랑 날 많이 도와주셨는걸.”

라리루라와 프랑이 말했다. 사람 좋은 사람만 모여서일까.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순탄하게 승낙하는 분위기였다.

티르시는 감동했는지 허리를 깊이 숙였다.

“두 분, 고마워요. 꼭 합격해서 올게요.”

“네. 가능하면 노르랑 같이요.”

“물론이에요.”

대화는 그렇게 훈훈하게 끝났다.

처음부터 파티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부탁하면 이렇게 쉬웠을 걸, 좋게도 나쁘게도 티르시의 성실한 성격이 발목을 잡았던 모양이었다.

“말씀하셨던 대로, 시험 마감일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응시하도록 합시다.”

나는 이야기를 끝맺는 것처럼 그리 말했다.

하도 브딱이가 감당 못할 싸움을 거듭해 왔기 때문일까? 별 긴장 되는 느낌도 없을 정도였다.

나는 승급 시험 마감일까지 남은 시간을 창술을 연마하는 일에 사용했다.

제대로 된 창술을 알려줄 사람이 없어서 남은 돈으로 창술 교본이라는 책을 샀다.

저자의 약력에 ‘사르가디스 경비병식 창술 교관’이라는 항목이 있어서 약간 불안했지만 내용은 멀쩡한 편이었다. 이세계 란나찰이라는 뇌피셜 무공을 수행하던 나한테는 이것만 해도 충분한 가이드 라인이다.

일도 안 나가고 집에 박혀서 막대기를 갖고 노는 것 같아서 기분이 불편하던 것도 옛 일이었다.

이제는 제법 능숙해진 느낌으로다가 창을 휘두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물론 내가 그러는 동안에도 다른 파티원들은 꽤 분주하게 생활했는데, 라리루라는 프랑에게 도움을 받아가며 브론즈 클래스 승급을 마쳤다.

“선배! 저 브론즈 승급했어요! 축하해 주세요!”

“내가 승급했을 때는 너한테 뭐 못 받았는데요.”

그런 식으로 내가 따로 도와줄 것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브론즈 플레이트를 들고 나타나서 솔직히 좀 놀랐다.

하긴 얘라면 혼자서도 해낼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도착한 연구원들과 기자재를 돌리고 연구소를 관리하느라 우리 누나도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거의 밤 늦은 시각이라서 내가 연구소 앞까지 자주 마중을 나가줬을 정도다.

“으윽……. 남편님아. 누나 존나 피곤해 뒤지겠다.”

“힘내. 안마해 줄게.”

“……야. 안마라면서 왜 손이 가슴으로 가고 지랄인데.”

“내 가슴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음.”

“입으로 똥 싸지 마라. 뒤진다.”

“미안. 실은 니 가슴이 시킴.”

“진짜냐? 개 충격이네. 나 이 껌딱지한테 배신 당한 거냐? 나도 아직 너한테 명령 못 해 봤는데…… 앗♥”

감히 말하건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게 인생을 낭비한 느낌이었다. 허송세월도 이쯤 되면 기네스북 올려줘야 된다.

“……노르. 나는 안 만져줘?”

“프랑 너도 와. 천만다행히도 내 손은 2개임.”

“미친 새끼……. 고새 발딱 섰네.”

아무튼 그렇게 쥬지육림을 즐기며 꼴마초력을 단련하는 개꿀 인생이었지만.

행복한 시간만 즐기고 살기에는 내 인생은 짧고 목표는 저 하늘 위에 있는 법이었다.

“노르드. 오늘이에요.”

내가 창술 교본을 보며 창을 훈련한지 2주일 쯤 되던 날.

풀 무장 상태의 티르시가 우리 집을 찾았다.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짐 가방을 매고 창을 쥐었다.

벌써 시험 응시서는 넣어두었다. 이제는 같은 파티로 짜여 있기를 바라며 오크 토벌을 나가면 될 일이었다.

“준비는 해 뒀습니다. 가죠.”

“네. 가족 분들이랑 인사는요?”

“10분 전에 키스까지 하고 창문에서 쳐다보고 있는 시선에 세상 어색하던 참이었어요.”

나는 2층 창문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아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아우둠라 길드로 향했다.

실버 클래스 승급 시험은 1달에 걸쳐서 치뤄진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미 1달 전에 응시해서 오크 토벌을 나간 모험가들은 벌써 실버 클래스(진)을 달고 있으며, 우리처럼 응시 기간 막바지에 출발한 편법 팀 인원은 오늘부터 10일 안에 오크를 파티원의 숫자 × 2만큼 사냥하면 되었다.

“후. 긴장되네요. 따로 떨어지면 정해뒀던 대로 합류할 수 있게 파티원들을 설득해 봐요.”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몇 번이고 얘기해서 다 아는 말을 다시 반복하는 티르시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길드 게시판에 붙은 파티 리스트에서 우리 이름을 찾았다.

─제 4조.

[파티장: 티르시 아르마슈나스.]

[파티원: 노르드.]

정말 다행인 점은 우리 이름이 같은 파티에 있었던 거고.

“비건 할로보스입니다. 윗퉁을 벗은 것은 우리 집 룰이다. 이해 바라외다.”

“아서스 모드블루일세! 흐하하하하!! 걱정 마시게!! 내가, 어? 이래봬도 이 시험이 4번째거든!!”

정말 좆된 점은 나머지 두 파티원이 생긴 것부터가 존나 트롤러라는 것이었다.

풀 플레이트 메일에서 투구랑 상반신 갑옷만 벗은 외노자 빤스맨에, 벌써부터 취해 있는 드워프!

이 새끼들을 데리고 중승급전을 치뤄야 한다는 사실에 파티장을 맡은 티르시는 그만 안색이 새하얘지고 말았다.

“암컷 파티장. 나는 좋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코디만 갖고 티르시를 괴롭혀 놓고도 아직 모자랐는지, 가슴털 수북한 풀 아머 빤스맨은 좆 같은 발음의 브리타니아 어로 티르시에게 말했다.

“오크도 생명이다. 코만 잘라오면 불살.”

돌겠네 시발.

자고로 미친 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미친 놈이라는 타이틀 칭호를 단 새끼 치고 상대하면서 피곤하지 않은 놈이 없기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제일 좆 같은 새끼는 자기 생각을 남한테 강요하는 놈들이다.

“날것은 코가 없어도 산다. 오크의 코를 가져오란 얘기는 즉, 생명 중시 중점.”

모험가 길드를 나온지도 좀 됐건만, 개또라이 세미누드 외노자 새끼는 거리를 걸으며 파티에게 불살주의를 어필했다.

뭔 놈의 모험가가 불살주의 같은 걸 주장하고 지랄인 걸까. 씨발 사람 이름이 비건이었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이 새끼 얘기는 들으면 들을 수록 머리만 아파졌다.

그래서 나는 미친 놈에게는 먹이를 주면 안 된다는 지론에 따라서 아가리를 하고 있었는데, 드워프 아서스는 그러지 못하고 넌더리를 냈다.

“이 철없는 친구야! 브론즈 클래스씩이나 돼서 몬스터를 안 죽인다는 게 말이나 돼!”

“오크도 생명이다. 오크 사는 곳에 인간이 둥지를 텄다. 즉, 인간에게도 잘못이 있다.”

“예끼 이 놈!! 사람을 죽이는 놈들인데 그럼 냅둘 건가!! 싹 다 모가지를 따 줘야지!! 아주 내가 보이는 족족 싹 죽여놓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불가(不可)!! 오크!! 코만 자른다!!”

“아니 이 놈의 자식이 끝까지!!”

─절그럭! 건틀릿을 부딪히며 싸우는 숏다리와 외노자.

말 하는 것만 들으면 숏다리 드워프는 멀쩡한 새끼 같은데, 위장 주머니에 술을 얼마나 들이붓고 왔는지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환자처럼 주먹도 막 빗나가는 중이었다.

“끄악!! 때리지 마라, 갑옷 얇은 거라 구겨진다!!”

“배를 때리려고 했거늘! 잘도 피하는군!”

“나는 가만히 있었다! 드워프! 니가 빗나갔다!”

저 새끼들은 데려가도 도움도 안 될 것 같은데, 파티에서 쫓아내도 되지 않을까? 파티원 수가 반으로 줄면 오크도 딱 4마리만 잡아도 되는데.

‘안 돼, 참아. 내 안의 작은 히틀러.’

인종차별은 안 될 일이었다. 저 새끼들도 전사니까 오크 상대로 최소한 몸빵 정도는 해 주겠지.

아 시발 염병. 근데 생각해 보니까 이번 파티에는 척후 일을 할 사람도 없네. 또 내가 내 키보다 큰 창을 들고 애니멀 토크를 하다가 와야 될 듯 한 예감이 들었다.

“흐우으으으으…….”

티르시는 무료 급식소에서 준 컵라면에 찬물을 받은 서울역 노숙자처럼 계속 한숨만 쉬어댔다. 뺨을 찌르면 물수건에서 물이 흐르는 것처럼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예전에 장학금을 노리던 여자애가 조별과제에서 트롤들만 모인 조에 걸렸을 때 같은 표정! 나는 그런 티르시의 멘탈이 뽀개지기 전에 위로했다.

“티르시. 기운 냅시다. 적당한 숫자의 오크만 찾으면 티르시의 마법으로 일망타진이에요, 일망타진.”

“네……. 파티장이니까 기운 내야죠.”

위로가 도움이 됐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티르시는 기운을 차리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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