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179/1,009)

미친놈들.

나랑 티르시는 손절하는 것처럼 2층으로 올라왔다. 승급전 돌릴 때마다 꼭 초특급 폐급들이 팀원으로 걸리는 것은 이세계에서도 국룰인가 보다.

‘일이 다 끝날 때까지만 참자.’

여기로 오면서 코볼트 놈들이랑 조우한 적이 있었는데, 저 새끼들도 전투에 들어가면 자기 몫은 했다.

하지만 그건 좆도 위안이 안 됐다.

‘오크는 실버 클래스 하급의 몬스터야.’

물론 모험가 길드의 몬스터 등급 분류도 잡스러워서 별로 믿을 것은 못 된다.

그래도 실버 클래스를 매겨놨다는 건, 보통 브딱이한테는 그 몬스터랑 싸우지 말라는 것!

그런 오크를 8마리 잡아야 하는데 조원 중에 병신이라니. 이걸 어떻게 한숨을 참지 않고 배기겠는가. 나는 창대로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기분 같아선 뚜까 패버리고 싶지만, 참겠습니다.”

파티원들끼리 트러블을 일으키면 평가가 깎인다. 브람마톤 교수님도 이것 때문에 욕을 봤다고 저서에 적혀 있었다.

평소라면 벌써 눈이 돌아가서 창대로 온 몸 곳곳을 찜질해 놨겠지만, 승급전이라는 것과 티르시를 위한 시험이라는 점이 내 이성을 유지시켜 주었다.

“미안해요 노르드……. 이젠 정말 당신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요…….”

눈에 띄게 울적해진 티르시는 내 손을 감싸며 말했다.

나는 티르시의 어깨를 두들겼다. 솔직히 저 새끼들 생김새 보자마자 우리 둘이서 굴릴 마음이었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뭐, 위치만 파악하면 크게 어려울 건 없지 않겠습니까? 저 인간들은 머릿수를 채우는 역할이라고 칩시다. 자기들 앞가림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죠.”

나는 품에 넣은 가면을 두들기며 말했다.

“적당히 순찰해 보겠습니다. 쉬고 계세요.”

“네. 저녁은 제가 살 테니까 늦지 말아요, 노르드.”

“이거 공짜 밥을 얻어먹겠군요. 다녀오죠.”

그렇게 여관 밖으로 나왔다. 티르시와 시험을 치기로 정한 나는 몇 가지의…… 작전이라고 해야 되나, 뭐 그런 계획을 세웠었다.

지금 내가 벌이는 독단 행동은 그걸 위해서였다.

‘그래도 우선은 그 전에 정보 탐색부터.’

나는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성격 좋아 보이는 젊은 여성을 발견했다.

길에서 전단지를 뿌리면 전부 받고, 대학생으로 위장한 종교쟁이들이 서명을 요구하면 어버버 하다가 적을 인상이었다.

뭘 물어보기에는 조금 분주해 보였지만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실례합니다. 아가씨.”

나는 창이 위협적이지 않게 등 뒤로 돌려놓고 말을 걸었다.

이세계인들한테 무기는 일상의 구둣주걱이나 다름이 없긴 해도, 구둣주걱을 신발에 쑤시면서 말을 거는 새끼라면 첫인상이 씹창일 테니까 말이다.

“네? 네? 무슨 일이신가요?”

내 행색을 훑으며 대답하는 마을 처녀였다. 나는 허리를 숙이며─이세계인 기준으로─ 품격 있게 인사했다.

“아니오. 잠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을 걸었습니다만, 많이 바빠 보이시는군요. 방해가 안 된다면 질문을 드리는 대신에 제가 조금 도와드려도 될까요?”

“도, 도와 주신다뇨……?”

눈을 크게 뜨는 마을 처녀. 시골 사람들은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 그러니까 기브 앤 테이크 쌤쌤 작전이다.

마을 처녀는 내가 모험가라는 것을 눈치깠는지 경계심이 좀 가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혹시, 저희 강아지를 찾아 주실 수 있나요?”

“강아지라고 하시면?”

“저희 마당에서 닭을 지켜주던 샘리가 아침부터 안 보여서 찾고 있거든요. 몇 살 안 된 애라서 걱정이 많이 돼요.”

“그래서 가슴을 졸이고 계셨군요. 좋습니다. 도와드리죠. 좀 있다가 찾지 못하시면 이 자리로 돌아와 주십시오.”

나는 서브 퀘스트를 받는 느낌으로다가 마을 처녀의 부탁을 수락했다.

‘까짓 거 개껌이지.’

아그로스 마을은 시골답게 존나 작았다. 나한테 이런 의뢰는 케이크를 먹는 것보다 더 쉽다.

“멍멍!! (사람!!)”

“웡. 알 아르르 헥헥. (오. 너 뭣 좀 묻자.)”

나는 적당히 육포를 들고 뒷골목을 돌아다니다가 길멍이나 길냥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샘리인가 하는 개를 찾아왔다.

아까 있던 곳에서 10분 정도 기다리자 강아지를 못 찾은 마을 처녀가 환해진 얼굴로 달려왔다.

“샘리!!”

“끼잉! (눈나!)”

─홱! 내 품에서 빠져나와서 마을 처녀에게 안기는 강아지.

감격의 가족상봉에 마음의 쿠퍼액이 흐르는군. 마을 처녀는 샘리를 안고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빨리 찾아주실 줄은 몰랐어요!”

“뭘요. 샘리가 심심했던 모양이니까, 집까지 돌아오는 길을 가르쳐주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나는 샘리 본견(本犬)한테 들은 내용을 읊어주었다.

이제 다 넘어온 느낌으로 신뢰를 하는 마을 처녀의 눈빛!

거의 선망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인터넷 썰에서 자취하는 여자를 구슬리려면 개랑 친해지면 된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도 같다.

‘시발. 유부남이 되기 전에나 인기가 있든가 하지.’

실망스럽지는 않지만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이세계인들 중에서도 촌동네 사람들은 진짜로 팔랑귀였다. 이러니까 행상인 등한테 안 속으려고 외지인을 다짜고짜 경계하는 모양이다.

나는 마을 곡식 창고도 알려줄 것 같은 느낌의 그녀에게 딱 필요한 것만 질문하기로 했다.

“저는 모험가인 노르드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아우둠라 길드에서 몬스터를 퇴치하는 자선사업으로 왔죠.”

“앗, 역시 그러셨군요! 훌륭하시네요!”

“어. 이거 벌써 눈치를 채셨었나 보군요. 현명하신데요?”

“히히. 똑똑하단 말은 자주 들어요.”

적당히 금칠을 해 주자 반응이 좋다. 나는 목에 맨 플레이트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희 같은 모험가들이 최근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까? 먼저 온 친구들이 있으면 인사를 하고 몬스터 소탕을 진행할 구획을 나눠야 하거든요.”

“모험가요? 아뇨. 제가 잘 알아서 그러는데, 최근에 마을에 찾아온 외지인은 노르드 씨네 파티 뿐이에요!”

“혼자 온 사람도 없구요?”

“그럼요! 1달 사이에는 완전히 평화로웠어요!”

그렇댄다. 받은 게 있는데 이런 걸로 거짓말은 안 하겠지.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두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만.”

“아! 정말 감사합니다! 조심하세요!”

나는 그녀랑 헤어지고 엘리트 대갈통에 타이핑을 해 뒀다.

─시험 전에 파견된 인원 없음.

─다른 모험가들과 경쟁할 일 없음.

─몬스터에 의한 피해도 아직 없음.

‘됐군.’

사전 조사는 이거면 되겠다.

시험관도 사람인데 마을에 숙박조차 안 했겠는가. 찾아온 사람이 없다면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독고다이로 쑤시고 다녀도 감점은 안 먹는다는 뜻!

‘이미지 관리도 곁들인 시험이라서 그런가. 예전에 토벌을 의뢰했던 마을마다 응시자 파티를 뿌려놓은 모양이지.’

이른바 A/S 서비스였다.

만족스러운 조사 결과다.

‘경쟁자도 없으니까 천천히 움직여도 되겠어.’

저 마을 처녀 강아지를 찾아준 것처럼 평소대로 드루이드 흉내를 내면 끝이다. 오크의 위치 정도는 쉽게 알아낼 수 있겠지.

나는 마을을 벗어나서 숲으로 들어갔다.

이마에 ᚲ(Kenaz)의 룬을 새기고 가져온 ᚲ(Kenaz)의 가면을 얼굴에 썼다.

간만에 포즈까지 잡으며 야수회귀도 ON.

벡터-어쌔신 노르드의 완성이다.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볼까.’

나는 창과 동물들을 낚을 먹이를 들고 오크의 서식지인 숲 깊은 곳으로 달렸다.

“……케엥? (없다고?)”

숲을 닌자처럼 누비며 짐승들한테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동물이란 동물들한테 전부 그런 대답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아르르릉. 케켕. (무서운 거. 없어.)”

야생을 못 버리고 나한테 덤벼들었다가 까인 들개는 배를 까뒤집고 그리 말했다.

이리라고 불릴 정도로 큰 놈은 아니다. 대충 야생 포메라니안 정도. 때리기도 미안해서 붙잡아다가 비행기 높이높이를 10번 쯤 해 주자 얌전해졌다.

근데 시발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오크가 없어? WHY?’

유적 때문에 바쁘던 건 알고 있었지만, 아우둠라가 다시 또 ‘아우둠라’한 것인가? 나는 골치가 아파서 가면을 쓴 이마를 손바닥으로 쳐댔다.

‘뭔 염병……. 진짜 한 마리도 없으면 이건 길드 잘못 아냐? 재시험 치게 해 주나?’

아니, 이런 생각을 하기는 조금 이른 느낌이 들었다.

아그로스 마을의 좆만함이 거짓말처럼 오크가 출몰했다는 숲은 뒤지게 넓었다.

얼마나 넓냐고? 영지 2개에 다 들어갈 정도로 넓다.

존나 이 정도는 되니까 오크 같은 몬스터도 튀어나오고 그러는 것이겠지. 이 숲에서는 수십 종류의 몬스터들이 지금도 이세계 야생 다큐를 촬영하고 있을 것이었다.

‘토벌당해서 마을 쪽으로 안 나오게 된 걸 수도 있어.’

싸잡아서 몬스터라고 부르지만 종류마다 지능은 차이가 난다. 오크한테도 그럴 지능은 있을 것이었다.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육식동물 치고 대가리 딸리는 놈들은 별로 없다. 어드밴스드 쥐새끼인 코볼트처럼 번식력만 믿고 사는 놈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 왜, 홉 고블린은 수준은 낮아도 마법까지 쓰지 않았는가.

아그로스 마을에서 동족이 좆발려버렸으면 저기가 위험하단 생각 정도는 했겠지.

“……크르릉 캥. (가 봐.)”

“알알!! (네엡!!)”

그리 생각한 나는 들개를 풀어주었다.

여기는 잘 해 봤자 숲 초입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짐승 수준으로는 모를 뭔가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쩐다.’

더 들어갈까?

아니면 여기서 물러날까.

‘──가자.’

나는 몇 가지 조건을 따져보고 조금 더 깊이 진입해 보기로 했다.

은신이 가능한 나니까 안 들키지, 그 병신들을 생각하면 다 모인 풀 파티로는 전투의 연속이 될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적은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하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프랑이 정찰을 갈 때는 내가 따라가겠지만.

─샤샥.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나는 곡예를 부리는 사람처럼 나무 위를 뛰어 오갔다.

라리루라한테 배운 기술은 언제나 쓸모가 많다.

다음에 뭐 과자라도 사 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나무 그림자에 숨어서 지도를 보며 전진하던 나의 후각에 익숙한 냄새가 걸렸다.

나는 닌자 대쉬 온 더 트리를 스톱하고 인상을 썼다.

‘……피 냄새?’

여기는 온갖 생물들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숲이다.

그러니까 존나 당연한 냄새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냄새가 너무 진했다. 나는 숲의 지도를 접어서 가방에 잘 넣고 나무에서 내려왔다.

내가 원숭이도 아닌데, 체중이 있는 근육 마초는 나무 위보다는 땅을 밟는 것이 더 은신에 유리했다.

소리를 죽이며 접근했다.

피 냄새가 나는 곳에 도착한 나는, 풀숲에 숨어서 그 냄새의 근원지를 발견했다.

‘……애미.’

손이 하나 뿐인 사람이 세운 것 같은 허접한 텐트가 잔뜩 쌓인 원시적인 취락!

그 취락에── 오크의 시체가 잔뜩 굴러다니고 있었다.

‘열 셋, 열 넷── 열 다섯?’

눈에 보이는 시체 숫자만 그 정도였다. 나는 그 새끼들의 코를 확인했다.

코를 뜯어간 흔적은 없었다. 마을에서 들었던대로 여기에 다른 응시자들은 안 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싸. 시험 통과 개꿀~’ 하고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병신 빡대가리가 아니었다.

긴장감이 허리를 꼿꼿하게 했다.

나는 타겟을 발견한 어쌔신처럼 침착하고 은밀하게 숨을 죽였다. 워킹-돼지 새끼들을 비료로 만들어 놓은 작자가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벌레 새끼들의 이계에서 습득한 요령으로 기척을 살폈다.

움직이는 물체는── 없다.

시체가 신선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여기를 휩쓴 습격자는 자기 일을 끝내고 돌아간 모양이었다.

이게 야생 몬스터의 짓이라면 완벽하다.

시험 통과 개꿀~ 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할 것이었다. 그딴 트롤러 새끼들이랑 고생 안 해도 된다는 점에서 나는 이 가설을 열렬하게 지지하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면 안 될 것이었다.

학자는 가설에서 추론을 시작하지만.

지금 나는 학자로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니까.

‘이 정도로 죽은지 얼마 안 됐다면──’

나는 신중하게 오크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곳으로 나아가, 그 땅에 룬을 새겼다.

명계로 떠나지 못한 오크들의 영혼이 시체에서 솟아올랐다.

─취이익?

ᚨ(Ansuz)의 룬이 효과를 발휘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