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대화하는 마법으로 죽은지 얼마 안 된 오크의 혼이랑 접신한 것이었다. 나는 손가락에 묻은 피와 흙을 털며 말했다.
“안녕, 돼지뇨속들. 때깔이 좋은 걸 보니까 밥들 잘 쳐먹고 뒤진 모양이구나.”
─이, 인간! 네놈은 누구냐!
“알 필요 없다.”
벡터-근엄하게 말하기를 사용하며 소울(Seoul)-오크 중에 가장 쎄 보이는 놈에게 아이언 클로를 사용했다.
“취익!!”
내게 얼굴을 붙잡힌 오크 전사는 본능적으로 펀치를 날렸다.
하지만 영혼 주제에 물리현상을 일으킬 수는 없는 법! 근육빵빵한 오크의 죽빵은 내 얼굴을 통과했다.
─아, 아닛?!
“마 니 똘개이가?”
사악해 보이는 비웃음을 띄우며 오크 전사의 얼굴을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그러자 예상대로 그 새끼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우리 성불놀이하자! 너부터 시작이야!!”
나는 손으로 오크의 입을 틀어막았다.
험상궂은 새끼는 마치 영하 15도의 날씨에서 집에 돌아와 전기장판을 킨 침대로 들어간 것처럼 몸에서 힘이 빠져갔다.
슈화악─!
그렇게 오크 전사의 영혼은 드라이 아이스의 연기를 방불케 하며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나의 자비로운 손길 덕분에 저 새끼도 골렘에 갇혀 있던 영혼들처럼 명계로 떠난 것이었다.
─취췩! 말도 안 돼!! 척고르가 저렇게 허무하게!!
─이건 현실이 아니야!! 우리는 삶과 죽음의 틈새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멍청할 수록 생긴대로 논다고 했던가. 제일 쎄 보이는 놈으로다가 기선제압을 했더니 효과가 아주 적절했다.
역시나 지금 그 새끼가 이 오크 부족에서 가장 쎈 오크였던 모양이다. 생전에 그 실력을 목도했던 놈들이기에 충격이 컸던 걸까? 오크의 영혼들은 나를 보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아주 좋다. 내가 원하던 반응이었다.
오크답게 취익취익 우는 것에도 가산점을 주마. 100점 만점이면 성불이다.
“크흐흐. 이 몸에게 네까짓 돼지 놈들을 영원한 굶주림과 안식이 없는 지옥으로 보내주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니라.”
나는 아다 유니콘 흑마법사의 흉내를 내며 말했다.
그 새끼랑 나의 공통점은 성별밖에 없다.
나는 유니콘도, 아다도, 흑마법사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도 나는 1달 전까지는 아다였고, 파티원들도─우연의 일치이지만─ 전부 처녀이며, 마법도 쓸 줄 알았다. 잘 생각해 보면 절반 정도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취이이익……. 악몽이다…….
그래서일까. 내 연기에 오크 놈들은 속아넘어간 듯 했다.
뛰어난 동족 전사를 고작 3초만에 후루룩 뚝딱 해 버리는 가면의 이종족이라니! 시발, 인간이라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쫄아서 오줌을 지리고 말겠지.
나는 사악한 마법사처럼 가오를 잡아가며 클클댔다.
“말해라. 네놈들을 죽인 것은 누구지? 대답한다면 더 이상 행패는 부리지 않으마.”
─취으윽!! 우리는 명예로운 오크의 일족이다!! 죽었다고 해도 협박을 두려워할 쏘냐!!
내가 본제를 꺼내자 반발하는 놈이 나타났다. 이 새끼도 전사인지 식스팩이 있다.
얘네한테는 돼지라는 말을 쓰기도 뭣하군. 나는 그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놈에게 손을 휘둘렀다.
─취어억!! 이럴 수가…….
─취아아아악!!
달군 프라이팬에 떨어트린 물방울처럼 증발하는 오크! 그 허무한 최후에 어린 오크가 비명을 질렀다.
‘아니 근데 이 씹새들이?’
나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렸다. 누가 보면 내가 진짜 나쁜 놈인 줄 알겠네.
정확한 원리 같은 건 모르지만, 영혼이 내 몸에 닿으면 이세계의 유령들은 성불한다.
나는 이것을 21세기 지구인의 심령현상 나가리 빠와라고 추측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발명이 심령사진이니 UFO니 하는 것들을 싸그리 없애버렸듯, 과학력의 시대에 살던 21세기인은 이세계의 쌰바쌰바 분신사바 같은 것들에 내성을 지닌 거라면 말이 딱 되지 않겠는가!
……뭐, 진짜 원리가 뭐던 간에, 아무튼 이 성불이라는 건 절대로 고통스러운 느낌이 아니었다.
골렘에 갇혀 있던 영혼들도 그랬으며, 내가 아까 성불시켜준 오크들도 편안한 느낌으로 눈을 감으며 사라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입까지 막았구만.’
내가 없앤 영혼이 입을 헤─ 벌리고 행복하게 가버리면 나에게 위압감이 생기겠는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공포다.
몬스터를 상대로 설득을 해 봤자 좆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새끼들을 쫄게 만들어서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면 나도 가오를 잡아야 했다.
내가 이런 방식을 취한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이 말씀.
“두 번 세 번 묻게 하지 마라. 원하지 않는 답이 돌아올 때마다 지옥에 떨어지는 버러지는 더 늘어날 것이다.”
─까드득! 나는 무언가를 움켜쥐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며 다시 물었다.
“네놈들을 죽인 건 누구지?”
─……끄으으췩. 취익…….
“10초 기다리마.”
아니지 시발. 이 새끼들한테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한가 모르겠다.
─텁!
나는 오크의 영혼 중에서 제일 쬐끄만 놈을 골라다가 붙잡았다. 포유류 치고 새끼한테 매정한 생물은 별로 없다. 나의 수의학 지식이 빛을 발한 것이었다.
“다음은 이 놈으로 하지. 대답하지 않는다면──”
─오우거다!!
내가 말을 끊고 어떤 오크가 비명처럼 외쳤다. 오우거라고?
─팔이 4개 달린 끔찍한 오우거가 우리를 습격했다!! 그 놈은 불을 뿜고 번개를 떨구면서 전사들을 전부 죽였고, 어린 새끼들까지 죽이고서야 만족한 것처럼 사라졌다!!
─오우거는 오크를 잡아먹는다!! 우리를 먹으러 온 것이다!!
─취췩!! 내 가족들도 놈에게 잡혀갔다!!
댐이 무너지는 것처럼 대답이 쏟아졌다. 처음부터 이럴 걸 그랬다. 나는 어린 오크를 계속 붙잡고 물어보았다.
“다완(多腕) 오우거인가. 거기에 마법까지 썼다고?”
─마법이라는 게 뭔지는 모른다! 불과 벼락을 뿜었다!
─힘도 강했다! 척고르가 새끼처럼 목이 부러졌다!
존나 모르면 좆 되고 알아도 좆 같은 정보였다. 가면을 쓴 내 얼굴은 계속 일그러지기만 했다.
오우거는 강력한 식인 몬스터의 필두였다.
오크처럼 죽이기만 하는 게 아니고 인간을 솔선수범해서 잡아먹는 몬스터!
식인을 하는 것은 고블린&코볼트도 그렇지만 오우거들은 고기 중에서도 인육을 가장 가장 선호했다.
‘염병. 팔 4개 달린 오우거 주술사? 이름부터 병신 같네.’
일단 주술사라고 확신하는 것도 지레짐작이었다.
나도 룬 마법사지만 주먹질이나 창질이 평타였다. 남아도는 거라고는 존나 쎈 힘 밖에 없는 저능아 오우거라면 몽둥이를 4개 들고 4몽류 오의를 펼치며 패기까지 다룰지도 몰랐다.
“얼마나 강했지? 너희가 본 오우거의 능력은 뭐가 있었고?”
나는 오크들한테 생각나는대로 질문을 던졌다.
혼이 시체에 묶인 오크들은 도망도 못 치고 내가 묻는 말에 전부 대답을 했다.
그나저나 영혼 상태여서 그런지 오크 언어가 아니네. 번역능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알기 쉽게 취조하지는 못했을 것도 같다.
─오우거는 몽둥이를 2개 들고…….
─가죽이 두꺼워서 내 무기가 안 박혔다.
─이상한 고함을 지르면 불꽃과 벼락이 쏟아졌다.
─우리 앞에서 보란듯이 동족의 팔을 뜯어먹으며 남은 세 개의 팔로 공격을 했다.
얘기를 들을 수록 대충 인상이 잡히는 느낌이다. 나는 혀를 찼다.
‘룬 주술이로군.’
룬 주술.
홉 고블린이 쓴 것처럼 일부의 몬스터들이 쓰는 룬 마법이었다. 짧은 주문은 룬 어의 영창이 아닐까.
거슬리는 정보는 맨손인데도 불꽃과 번개를 뿜었다는 것이었다. 매개체 없이 그런 효과를 발동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룬의 ‘참된 의미’를 깨달은 상당한 강자일지도 몰랐다.
오우거는 멍청한 새끼들이지만 마법까지 쓸 수 있다면 그냥 지 좆대로만 사는 앰생 자연인이겠는가!
‘메사추세츠 공대를 졸업한 자연인!’
그것은 그야말로 머리가 좋은 공학자가 버려진 송전탑을 구매해서 기지로 삼은 것이나 다름 없다!
‘머리가 훼까닥 한 새끼란 뜻이지. 상종하면 안 되겠군.’
그 좋은 대학을 나와서 왜 야생인 노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세상에나 마상에나. 학위를 따 놓고 모험가를 하는 새끼만큼이나 머리가 이상한 놈이로군. 정상인인 나는 그딴 또라이의 생각은 존나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자고로 범인은 현장에 돌아온다고 하였던가. 나는 갑자기 이 오크 취락에 남아 있는 것이 미친 짓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제 그 뇌에 블루 스크린 뜬 고학력 야생 오우거 새끼가 여기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닷지각 떴군.’
다행히 더 이상 캐낼 정보도 없다. 나는 벌벌 떠는 새끼 오크를 쥐어 터트리듯이 성불시켰다.
─헤윽.
새끼라서 그런지 영혼의 힘도 약한 걸까? 내 허리까지 오던 오크는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취이이이이이이익!! 뺘고르으으──!!
─역시 거짓말이었구나!! 비겁한 인간이여!!
어린 오크가 안식을 맞이하자 오크들은 미쳐 날뛰며 내게 저주의 말과 주먹을 날려댔다.
새꺄, 진정해. 이게 다 몸에 좋은 거야. 어? 형 못 믿냐?
“이제 네놈들에게 용무는 없다. 편히 쉬어라.”
나는 컨셉을 끝까지 유지하며 폭주하는 오크들 사이를 누볐다.
─취이이이익……!!
“전두엽 함몰 펀치!! 이 주먹이 나의 십자가다!!”
─이 악마 놈!! 어째서 웃느냐!! 이딴 짓을 벌이며 즐거운 것이냐!! 취칙!!
“나는 프로이기 때문에 일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고인물이 쪼렙 던전에서 반사뎀을 켜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오크의 영혼은 내 몸에 닿자마자 성불했다.
그들은 뒤지는 순간에는 하나 같이 편안한 표정으로 이승을 떠났는데, 굉장히 빡친 탓인지 다른 오크들은 그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비열한 인간족이여, 취익……. 저주하겠다…….
최후에 남은 것은 족장처럼 늙은 얼굴의 오크였다.
그는 꼭 원시 샤먼처럼 머리카락을 땋았는데, 오크의 무자비한 와꾸 밸런스에 깜찍한 빨간머리 앤 헤어가 더해지자 존나게 언밸런스했다. 솔직히 보고 있기 버겁다.
─취이익!! 그 사악함의 대가로 저주받으라!! 네놈이 오는 것을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나 같이 착한 사람은 지옥 못 가.”
애초에 이 씨발럼들은 남이 열심히 성불시켜 주고 있는데 왜 저주를 날려대지. 사람 빡치게.
나는 그 오크 족장의 목을 창으로 베어냈다.
─썩둑!
슈화아악─!!
오래 산 짬이 있는 덕분일까? 오크 족장의 영혼은 빛기둥을 일으키며 하늘로 올라갔다. 생명의 존엄성을 돌이켜보게 만들어주는 장엄한 승천이었다.
“나는 명계탐정 노르드. 사신이죠.”
성호를 그으며 나는 절절하게 읊조렸다.
“너희도 천국에서 내 맘을 이해해 줄 날이 올 거야.”
몬스터의 영혼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우주를 매우는 암흑물질의 정체처럼, 고민해도 알 수 없는 철학적인 문제일 것이었다.
“아,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오크 새끼들 코부터 잘라가자.
그 트롤러 새끼들이랑 상종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어깨춤이 멈추질 않았다.
나는 15개의 코를 루팅하고 마을로 복귀했다.
퀘스트 템인 코 외에는 챙겨갈 게 좆도 없었다. 취락에 있던 거라고는 허접한 돌 무기가 전부였다. 원시 고대인들의 간석기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쓰레기 말이다.
오크는 자쓰가리우 종족이라서 애국 마케팅으로 자기들이 만든 무기만 쓰는 어리석은 새끼들인 것이었다.
‘디지털 세대의 감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것일것.’
모험가들의 시체에서 챙긴 칼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돈 될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아쉬웠다.
이래서는 공짜로 장례식을 벌여준 게 되는데.
그래도 내가 뭐 애미애비 터진 무례한 장례 보험사 직원도 아니고, 방금 상을 치룬 집에서 눈치 없이 돈 될 거 없나 하고 주판을 두들기는 것은 양심적으로 쵸큼 그랬다. 별 수 있나. 포기해야지.
아, 맞다. 취락에서 불탄 흔적을 찾았는데, 그 오우거 새끼의 불꽃 마법은 내 불꽃 수도(手刀)랑 필적하는 화력으로 추정이 되었다.
어떻게 아냐고? 옆에다가 내 기술도 갈겨봤거든.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밤이 늦기 전에 여관으로 돌아와서 티르시한테 오늘 겪은 일을 설명했다.
“팔이 4개인 오우거가 오크를 몰살해 놓고 떠났다구요?”
이야기를 들은 티르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처럼 그리 말했다.
신선한 오크 코를 증거로 제출해도 믿지 힘든 것일까. 뭐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필 우리가 마을에 찾아왔을 때 오크들이 뒤져나가서 하루만에 퀘스트템을 전부 모을 수 있었다니? 이대로 길드에 보고하면 접수원들도 믿지 못할 것이었다.
“예. 그래도 신선한 코니까 그냥 며칠 쉬다가 돌아가도 될 것 같은데요. 물론 오우거에 대해서는 보고 때려야겠고요.”
나는 티르시가 따라준 물로 목을 축이며 그리 말했다.
왕복 시간을 고려하면 오크 코가 한 4~5일 방치된 물건이라도 빠꾸먹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저번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이세계의 마법 수사에는 ‘어떤 상처가 발생한지 얼마나 됐는지를 알아보는’ 마법이 있다.
예를 들어서, 티르시의 방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 마법을 쓰면 구멍이 생긴지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있다.
이세계판 루미놀 용액이라고 하면 알기 쉬울까.
아마 그런 마법이 실버 클래스 승급 시험에도 사용될 것이었다. 응시자들이 ‘미리 구해둔 오크 코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지 아닌지’ 검사하는 형태로 말이다.
‘마나로 덮어버리거나 하면 검사를 못 하게 되지만, 우리가 이 코에다가 마법을 걸 것도 아니니까.’
지문을 닦아내는 것처럼 그 수사 마법은 마나로 흔적을 없애서 대책을 세울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