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185/1,009)

몇 가지의 위협적인 부분도 대처할 수 있을 걸로 보였다.

비록 상성빨을 못 받는다지만 아다 유니콘 흑마법사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적이었다. 내 말에 아서스는 혀를 내둘렀다.

“말은 잘 하는군. 질 가망이 있을 때 도망가야 내 나이까지 사는 걸세. 모험가로 오래 살려면 본인 실력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게 제일이라네.”

“흐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어쩌다 그러고 계십니까.”

말하는 본인이 자기 몸으로 본인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지 않은가. 콧방귀를 뀐 아서스가 말했다.

“말년에 등급 욕심을 낸 게 잘못이었지. 그 놈의 은색 플레이트가 뭐라고.”

“치료받고 돌아가면 딸 수 있을 텐데요 뭘. 물론 그러러면 저희가 살아돌아오도록 응원해 주셔야겠지만요.”

“크크. 크하하하!! 그거 맞는 말이군!!”

내 말에 아서스는 배를 붙잡고 웃어댔다. 그러자 마을의 한 명밖에 없다는 사제가 비건을 치료하다가 말고 눈을 부라렸다.

“웃지 마십시오! 상처가 덧납니다!”

“이크. 미안허이. 아무튼 키타이 친구, 이거부터 받게나.”

아서스는 베개맡에 뒀던 돌멩이 같은 것을 내밀었다. 그리 하고 나서 지루한 일과 예정표를 읽는 것처럼 말했다.

“저 멍청이가 얻어맞기 전에 오우거의 옷에다가 위치 추적 주술이 걸린 뭔가를 붙였다네.”

위치 추적이라니?

나는 아서스가 준 포츈 쿠키를 닮은 돌멩이를 쳐다보았다. 신경을 집중하자 마나가 느껴졌다. 제대로 된 매직 아이템이 맞다는 증거였다.

“자네한테 준 물건은 오우거의 위치를 알려주는 매직 아이템이라고 하네. 손바닥에 두고 움직이는대로 쫓아가면 된다더군. 그밖에도 뭐라뭐라 설명을 하던데, 아시다시피 말을 못 하는 놈이라서 이해는 못 했지.”

모자를 집은 아서스는 카우보이처럼 그것을 얼굴에 덮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저 놈이 건네주라고 해서 건네준 걸세. 그걸 도망을 치는데 쓰든, 오우거를 쫓아가는데 쓰든, 그건 자네들 자유야.”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내가 탐색에 자주 쓰는 ᚲ(Kenaz)의 룬을 빼앗겼기에 이제 어떻게 오우거를 쫓을지 막막하던 참이었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설마 저 외노자 비건한테 이런 재주가 있었다니.

암만 트롤러여도 실버 승급 시험을 칠 정도의 실력은 있던 것이었다. 나는 반달모양 돌멩이를 챙기며 그의 완쾌를 빌어주었다.

“죽지 마시게. 자네들이 없으면 내가 대신 길드에 보고를 해야 하지 않은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아서스는 우리가 떠나려는 것을 느끼고 그렇게 말했다.

일하는 중에 술이나 마셔대는 사람 치고는 말에서 걱정이 묻어나와서 조금 웃겼는데, 그래도 배려는 고맙게 받아두기로 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름만 신전인 치료소에서 나왔다.

“티르시. 저랑 저기 바이콘 녀석은 이제부터 그 오우거를 사냥하러 갈 겁니다만, 어쩌시겠습니까?”

“……후훗. 왠지 노르드랑은 매번 이런 느낌이네요.”

내가 오는 길에 룬의 마나를 빼앗겼다는 설명을 했었기에, 티르시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것처럼 손사레를 쳤다.

“저번에는 논문이고 이번에는 마나입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요.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도둑놈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어딜 가든 똑같겠죠. 그리고 당연히, 같이 갈 거에요.”

티르시가 말했다. 치료소와 부숴진 마을을 보고서 말이다.

“노르드는 제 괜한 오지랖을 ‘짊어질 필요 없는 의무’라고 하셨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틀렸어요. 저에게는 이것조차 거쳐야 하는 예행연습인걸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악수를 끝으로 대화를 마쳤다.

나는 잠깐 궁금증이 솟아났지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깊이 파고들어서 뭣하겠는가.

누구든지 커다란 꿈을 품을 자격은 있을 것이었다.

【그대여. 방금 전에 말했다시피 해가 뜰 때까지는 그 오우거도 마법진을 기동할 수 없다.】

베로니카는 그걸로 얘기가 끝났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말했다.

【동틀 녘까지는 앞으로 5~6시간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맞느냐?】

“어. 5시간 정도 남았어.”

시계를 확인하고 그리 대답했다. 그보다 정확도 오지네. 이게 그 체내시계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그렇다면 싸울 준비를 마친 다음에도 1~2번 정도는 시도를 해 볼 시간이 남는다.】

“그래. 실패해도 손해는 없으니까. 티르시. 혹시 괜찮다면 저희를 좀 도와주시겠어요?”

“이길 가능성이 늘어난다면요. 어떤 걸 도우면 될까요?”

티르시가 빠릿빠릿한 분위기로 대답했다.

나는 시계를 닫으며 말했다.

“베로니카에게 걸린 저주를 풀 겁니다.”

바이콘은 원래 인간을 닮은 뿔 달린 인간형 신족이었다.

나는 베로니카의 트루 폼을 꿈속에서 본 적이 있었기에 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티르시에게는 이것도 꽤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그렇군요…….”

내가 베로니카의 말을 번역해가며 설명하자 티르시는 작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나도 방금 전까지의 진지한 분위기를 싹 말아먹어버려서 쫌 미안한데, 신족의 모습을 되찾으면 오우거랑 싸울 때도 더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왠지 베로니카도 미덥지 않다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고는 있지만 말이다.

【그대여. 그대가 제시한 방법이 정말로 정답일지 크나큰 회의감이 드는구나.】

“하말한테는 이걸로 통했어.”

【이 여관에 있던 그라니는 나도 보았다. 겉보기로는 알 수 없었다만…… 나도 그대에게 도움을 받는 입장이다. 더 이상 불평은 말하지 않으마.】

실컷 불평해 놓고 그렇게 말하기냐. 티르시는 입을 다물고 텔레파시를 송신해대는 베로키나를 보고 질문을 했다.

“그, 노르드? 베로니카 씨라는 분과는 어떻게 대화를?”

“룬 마법으로요. 이제 마음의 준비는 다 끝났다고 합니다.”

“네, 네. ……그런데 인간형으로 돌아오면 뭐가 달라지는지 여쭤봐도?”

“다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더군요. 말의 성대 구조로는 인간처럼 주문을 외우지 못한데요.”

“아, 아아. 과연. 납득했어요.”

티르시는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룬 마법처럼 몬스터의 성대로도 발음이 가능한 문자도 아니고, 다른 주문 체계는 인간의 성대가 아니면 정확한 발음을 못 하니까 말이다.

히히힝 히히헹헹 거려도 주문 영창은 발동 안 한다는 모양.

생각해 보면 당연하긴 하군.

【시작해다오.】

베로니카가 다리를 접고 앉아서 결연하게 말했다. 티르시는 부끄러운 것처럼 망설이다가 베로니카의 등에 손을 댔다.

“투르르르!!!”

효과는 순식간에 나타났다. 유니콘의 결계가 인정한 진짜 처녀의 손길에 접촉하자 베로니카는 간질 환자처럼 몸을 마구 떨어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그대여!! 빨리!! 빨리 해 다오!! 머리가 미쳐버릴 것 같다!!】

“노, 노르드!!”

종족이 다른 두 여성의 비명에 나는 건틀릿을 벗고 외쳤다.

“어디가 가렵냐! 말만 해!”

【등! 목! 발! 엉덩이에 가슴까지 전부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다!!! 히이이이익!!!! 빠, 빨리이이잇──!!!】

“그럼 대충 다 긁는다!!”

인간 효자손으로 변신한 나는 시골집 똥개랑 놀아주는 것처럼 베로니카의 복슬복슬한 털을 마구 긁어댔다.

내가 아는 저주 해소의 유일한 방법.

그것은 바로──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이었다!

【저, 정녕 신의 저주가 이런 식으로 풀리는 게 맞느냐?! 나는 그대에게 놀림받고 있는 것은 아니더냐?!】

“몰라 씨발!! 이딴 식으로 설계한 신들한테 따져!!”

저주의 해소법이 몸을 긁어주는 거라니! 신화는 해학적인 내용이 많다고는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내가 실제로 신화 속 신들의 장난에 휘말리자 좆도 웃기지 않았다.

미스터 채플린. 당신이 맞았습니다.

희극 같은 인생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군요.

【……읏!】

그때였다. 티르시랑 내가 로데오를 하는 느낌으로 망아지 모드의 베로니카를 억누르고 있자, 베로니카가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신음한 것은 말이다.

【굳어 있던 마나가 풀려서…… 서, 설마 정말로?!】

“뿔도 긁는다!!”

나는 놀랐기 때문인지 얌전해진 베로니카의 뿔을 잡고 긁어주었다.

“꺄아앗──?!”

나는 뿔을 주무른 뒤에야 뿔이 간지러울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베로니카는 총에 맞은 것처럼 몸을 크게 떨며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내 귀에 사람의 목소리로 들렸다.

─파아아앗!!!

하얀 빛이 피어오르며 베로니카의 몸이 번쩍였다.

나랑 티르시가 몸을 비키자 그 빛은 동그랗게 뭉쳐지더니 유리 세공을 하는 것처럼 사람의 팔다리가 자라났다. 인간의 형태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파앗!!

그렇게 3초도 되지 않는 기다림이 지났을 때.

【……반신반의였다만, 정말로 이런 농담 같지도 않은 방법으로 저주가 풀릴 줄이야.】

우리의 앞에, 내가 꿈속에서도 봤던 양뿔을 기른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룬 마법의 텔레파시를 사용하던 때처럼 옛날 게르마니아 어로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입을 움직이는 육성이었다.

【아니, 행위가 아니라 그대였기에 가능했던 걸지도 모를 일이지. 진심으로 감사하마.】

그리 말하며 로마니아의 전통 드레스를 걷으며 베로니카는 나에게 품위있게 인사하고──

【──헷?】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떴다.

【어? 아? 모, 몸이 왜 아직도 가렵…… 히야아앗──?!】

누가 목을 핥기라도 한 것처럼 생긴 거랑 안 어울리는 비명을 질러대는 베로니카. 나는 놀라서 몸을 마구 떠는 녀석을 붙잡았다.

“야, 야!! 베로니카!! 너 괜찮냐?!”

【괘, 괜찮다! 참을 수는…… 있다!!】

그렇게나 바라던 저주의 해주에 성공하고 인간형으로 돌아왔기 때문일까? 베로니카는 오기를 부리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음을 어필했다.

【하지만 대체 뭐란 말이냐!! 그대여!!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냐?! 수, 숫처녀의 냄새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숫처녀의 냄새라니 존나 어메이징한 표현이었다. 대갈통을 스친 직감에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는 티르시에게 부탁했다.

“티, 티르시!! 죄송합니다!! 잠깐만 나가 있어 주세요!!”

“네, 넷!!”

혹시 티르시 때문에 처녀 거부 반응이 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자리를 비켜주기를 요청했는데, 얼굴이 빨개진 티르시가 밖으로 나가도 베로니카의 떨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야! 어디가 가렵길래 그래!”

【가, 가려움이 아니다. 오한이, 혐오감이 막 솟아나서 토가 나올 것 같구나!】

내가 어깨를 붙들고 질문하자 베로니카는 몸을 떨며 그리 대답했다.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그대에게 닿은 부위는 아무렇지 않거늘, 어째서냐! 드디어 이 지겨운 저주가 풀린 줄 알았건만!! 이 자리에는 처녀 따위 1명도──】

한스러운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던 베로니카는 불현듯 무언가를 눈치챈 것처럼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1초.

2초.

3초.

【──아으.】

그렇게 얼굴이 불에 데인 것처럼 빨개진 베로니카는 말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해주 작업의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었다.

우리는 10분 정도 들여서 소강상태를 거쳤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티르시가 방에 돌아오자 나는 기운이 없는 베로니카(망아지 모드)에게 질문했다.

내딴에는 나도 눈치가 좀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은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티르시가 원인은 아닌 것 같은데.’

바이콘들에게 내려진 저주는 2개라고 했다.

첫 번째는 처녀 알레르기이다.

정조를 잃지 않은 순결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몸에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라나 뭐라나.

두 번째는 남들 앞에서 인간형 트루 폼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저주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말의 형상으로 바뀌어버리는 저주라고 하면 알기 쉬울까. 이것 때문에 베로니카는 본인의 자의식이 인간에 가까운데도 말의 형상으로 살아야 하며, 마법 주문도 못 외우는 것이란다.

내가 아는 게 맞다면 바이콘들에게는 이 따따블 저주가 세트로 걸려 있는 상태인데, 방금 전에는 저주가 제대로 풀릴 게 아니었다는 걸까?

“내가 있는데 인간형으로 돌아왔잖아. 두 번째 저주는 해제된 거 아니었어?”

【……ᛒ(Berkanan).】

베로니카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것처럼 다시 변신했다.

현대 이세계인이 발동할 수 없는, 참된 뜻을 담은 룬 마법이었다. 뿔 사이에 떠오른 문자는 저주가 풀렸을 때처럼 베로니카의 몸을 변신시켰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눈을 끔뻑거렸다.

“뭐야. 잘만 되네?”

【변신할 뿐이라면 어려울 것 없느니라. 모습을 바꾸는 것 또한 천공신님의 장기(長技)였기에, 룬 문자로도 ‘변화’를 뜻하는 글자 조합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나도 저주만 아니라면 인간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은 손쉬운 일이지.】

─부르르. 육성으로 그리 말하고서 베로니카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저주는 절반밖에 풀리지 않은 듯 하구나. 나 또한 이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나…… 다른 저주 쪽의 해결이 덜 되었다.】

신족 형태로 돌아온 베로니카는 몸을 떨어가며 억지로 잘 모를 고통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한파가 몰아친 날씨에 반팔티만 입고 나간 사람처럼 생리적인 반응!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 느낌에 인상을 썼다.

“그러니까 무슨 뜻? 남들 앞에서도 신족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게 됐으면 저주는 다 풀린 거 아냐?”

【………………순결한 자에 대한 저주가 남았지 않느냐.】

“처녀 알레르기 때문에 신족 상태를 유지 못 하겠다고? 너 아까 티르시가 없을 때도 못 견디던데 뭐. 그냥 저주가 제대로 안 풀렸던 것 같──”

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눈치를 깠다.

분명 아까 전에 이 방에는, 처녀충&비처녀충 말대가리 새끼들이 콤비로 처녀 마크를 땅땅 박아준 아르마뭐시기 씨는 없었다.

그러므로 티르시 때문에 베로니카가 알러지 반응이 터졌을 가능성은 0%였다. 존나 아내만 두 명인 아다 판정을 내가 받았을 리도 없고 말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