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5화 (195/1,009)

나는 입맛을 다셨다. 생각을 바꾼 것이었다.

‘그 예언이라는 말이 거슬린단 말이지.’

바이콘들의 예언. 그건 어떤 내용일까.

내 억측으로는 내용을 알 수 없다. 하지만 21세기의 멀티미디어로 단련된 강북호의 직감은, 그 예언이 바이콘들에게 걸린 저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베로니카. 이따가 그 예언이라는 게 뭔지 물어봐도 되냐?”

【그리 하자꾸나. 애시당초 그대에게는 들려줄 생각이었다. 오우거 놈이 훼방을 놓아서 뒤로 밀려났다만.】

“고맙다. 그래도 말할 생각이 있었으면 어제 자기 전에 들려주지 그랬어.”

【후후. 아마 잠에 못 들었을 것이다. 그대는 기대 받으면 부담을 느끼는 성격인 듯 하니까.】

“이걸 들키네.”

베로니카는 웃었지만 나는 같이 낄낄댈 수가 없었다. 쓰벌. 뭔 부탁을 하려고 저러지.

그래도 저 녀석은 은원을 칼같이 지키는 성격이니까 그만한 대가는 준비를 해 뒀겠지. 부탁을 받고 안 받고는 내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까 부담감이 좀 가라앉았다.

회중시계를 봤다. 앞으로 30분밖에 안 남았다.

30분인가. 잡담을 나눌 시간도 촉박했다. 우리는 룬 스톤을 닥치는대로 가방에 넣었다. 노인이 나오는 룬 스톤은 다른 가방에 넣어서 내가 맸다.

“다른 짐은?”

【없다. 인간의 돈을 조금 가지고 왔으니 그때그때 내 소지금으로 사마.】

“그러던가.”

나한테 왔을 때도 챙긴 짐은 없었던가. 원래는 숲에서 살던 녀석이니까 자급자족 스킬이 높은 모양. 나는 가방을 매고 바깥으로 나와서 힐데가르트의 등에 탔다.

힐데가르트는 우리가 들고 온 가방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많이도 챙겨왔는걸. 그걸 다 가져가게?】

“해주 연구에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아하. 그거라면야. 베로니카도 허락한 것 같고.】

【내 목숨값이니 당연하다.】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벌새로 변신해서 내 어깨에 올라탔다. 쇠질로 넓어진 어깨라서 쬐끄만 벌새가 앉을 공간은 많았다.

근데 이렇게 뜬금없이 다른 동물로 변신할 줄은 몰랐네.

“뭐야. 너 말 말고도 변신할 수 있냐?”

【ᛒ(Berkanan)의 룬의 응용이다. 변신 마법은 내 마법 적성과도 잘 맞느니라. 허나 기실 본체와 말 형태 외에는 변신하는 의미가 별로 없지.】

“뭐 그렇겠지. 근데 그럼 왜 벌새로 변신한 건데?”

바이콘 모드가 아니면 처녀인 베로니카의 셀프 도트뎀은 유지될 것이었다. 저주의 설계가 그 모양이니까.

저주가 반만 풀려서 앞으론 신족의 모습이 베이스 상태로 설정된 그녀다. 마나를 써서 변신한다면 말로 변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내가 그리 묻자 진짜 새처럼 목을 까딱거리는 베로니카.

【나는 발이 느려서 말이다. 서두른다면 힐데가르트의 등을 빌리는 게 빠르다. 부탁하마.】

【얼마든지. 가벼워서 뭐가 탄 것 같지도 않네.】

바닥을 발굽으로 긁은 힐데가르트가 마법진까지 달렸다. 그 속도는 동굴로 갈 때보다 더 빨랐는데, 아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힐데가르트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마법진에는 인파, 아니 말떼가 가득했다.

베로니카한테서 설명을 들은 바이콘들이 집결한 모양이다. 나는 말의 기분 따위 모르지만, 그들은 인간에 가까운 바이콘이어서인지 그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기대감이 절반, 의심감이 절반이다. 그래도 눈치없이 뭔가 지껄이는 놈은 없었다.

─파앗! 베로니카는 시위하는 것처럼 신족 형태로 변신해서 말했다.

【잠시 작별이다. 다음에는 더 좋은 소식을 들고 오지.】

자칫 오만방자하게까지 들리는 단언이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결과를 얻기 때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의사표명이기도 했다.

작별인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나한테서 옥새를 받은 베로니카가 마법진을 기동했다. 바이콘들은 고행을 떠나는 동포를 배웅하는 눈빛으로 엄숙하게 우리를 지켜보았다.

꿈에서 오딘이 말했던 ‘후계자’란 무슨 뜻일까.

정말로 내가 이들의 저주를 풀 방법을 가지고 있는 걸까?

몰락한 신족의 구세주라니. 나한테는 과분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베로니카는 내 손을 잡고 마법진으로 끌어당겼다.

【그대여. 준비가 끝났다. 가자꾸나.】

“어어.”

나는 바이콘들을 등지고 마법진에 섰다. ─파아아앗! 발동한 마법진이 우리를 원래 있던 장소로 돌려보내고자 시공간을 비틀었다.

그렇게 우리는 브리타니아의 숲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해가 거의 다 뜬 시간이어서일까? 어제 벌인 전투의 흔적이 남은 숲에서는 마법진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후으읏……! 푸하.】

베로니카는 할 일을 끝마친 회사원처럼 기지개를 폈다. 나한테 말은 안 했지만 동족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심력을 많이 쓴 것 같았다.

“고생했다. 힘들면 돌아갈 때에도 새로 변신해 있던가.”

【후후. 저주 때문에 힘들겠지. 무얼. 나는 발은 느리지만 체력엔 자신이 있느니라. 뭐니뭐니 해도 이 넓은 대륙을 내 다리만 믿고 돌아다녔으니까.】

─찰싹. 대놓고 드러난 자신의 다리를 두들기는 베로니카. 말 그대로 말벅지인 베로니카의 다리는 늘씬해서 조각상의 일부 같았다.

근육빵빵한 그리스 조각상이라기보다는 비너스 상 같지만 말이다.

“흐흐. 자신 있나 봐? 여행을 오래 해서 그런가?”

나는─마법진 시간에도 맞췄으니까─ 비행기 좌석에서 잡담을 하는 것처럼 생각 없이 물었다.

【흐응. 이래봬도 신족의 말예다. 인간은 장거리 이동에 자신이 있다는 모양인데, 나 역시 체력 하나는 그대와 견주어도 모자랄 곳 없다고 생각하느니라.】

베로니카는 자기가 자랑을 했는데도 무시당하자 약간 불만스러운 것처럼 대답했다.

하긴 자기 체형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상대한테 관심이 있고 없고 이전에 몸매를 무시 당하면 발끈하는 법이다. 나도 어떤 씹새가 내 마초 바디를 보디빌더 대회 예선 탈락급 인스타용 장식 근육이라고 놀리면 빡이 치고 말 것이었다.

이럴 때는 솔직한 칭찬이 효과적이었다. 나는 경망을 떨며 말했다.

“그건 대단하네. 여행은 몇 년이나 했는데?”

【글쎄. 10년인가, 그 정도다.】

“10년? 아니 니 몇 살이길래요?”

나는 경악스럽게 소리쳤다.

뿔을 빼면 사람이랑 똑같은 모습이라서 나도 모르게 외모 기준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긴 저렇게 많은 룬 스톤을 모으려면 그 정도는 필요했을 것이었다.

내가 나이를 묻자 베로니카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인간 나이로 환산하면 스무살이다.】

“존나 미용실 뽀삐 주인 아줌마 같은 소리 말고.”

물론 수의대생이었던 나는 강아지 나이-인간 나이 환산법 같은 공식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애견인들의 멘탈 관리를 위한 수식 아니던가! 베로니카의 생물학적 나이는 300살 이하라는 것밖에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미용실 아줌마들은 왜 강아지 귀를 염색시키는가에 버금가는 생물학계의 미스테리였다.

【아무튼, 내가 그리 여행을 해 왔던 것도 따지고 보면 예지자로서의 일이었느니라.】

베로니카는 나이를 밝히기 싫은지 화제를 돌렸다.

존나 20톤짜리 덤트럭이어도 전복하고 말 정도로 무리한 드리프트였는데, 막으려 들었다가는 말려들어서 뒤질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아가리를 했다.

【그 자, 양각수의 운명을 해방할 만수(萬獸)의 계도자이니. 신마의 후예에게 하사될 자비는 시대가 저무는 황혼의 때에 도래하리라.】

농담을 따먹던 분위기를 일신하여, 의례에서 경전을 낭독하는 것 같은 경건한 말투! 저것이 바이콘들의 사이에 내려온다는 예언인 듯 했다.

【이르기를, 짐승으로 영락하지 않는 광전사. 야성과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는 자로되, 몰락한 짐승에게 안식을 주는 왕. 그가 왕림하는 날에 모든 짐승은 권좌를 비우고 왕을 배알하라.】

“……안식을 주는 뭐시기?”

그거랑 비슷한 소리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착각일까. 나는 타뷸라의 유언 컷신에서 똑같은 문구를 들은 기억이 나자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 새끼는 게르마니아의 신족인 바이콘족에게 전해지는 예언을 어떻게 알았지? 같은 지역 출신의 야만족─베르세르크─의 촌락에도 비슷한 예언이 전해지는 걸려나.

【이것이 선지자님께서 남기신 예언이다. 우리 바이콘은 이 말을 의지 삼아서 구제가 내려오는 때를 기다렸다. 하염없이 말이다.】

베로니카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말했다. 마치 자기 일족의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처럼.

【그렇게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났다. 저주는 계속됐고 선지자님께서 남긴 성지도 무너졌지. 그런데도 일족은 성지에 틀어박혀서는 구원의 때만을 기다렸다. 참지 못하고 예언에서 말하는 ‘시대의 끝’을 자기 손으로 불러오고자 한 놈들도 생겼다는데도 말이야.】

그 말에 나는 뿔이 부러진 유니콘, 아비두스를 떠올렸다.

흑마법사이자 사령술사였던 그 새끼는 흑마법으로 악행을 벌이던 놈이었다.

나도 어째서 성수라고 불리는 유니콘이 그런 짓을 하는지 궁금하긴 했었는데, 사실 지금까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자주 말하는 거지만 미치광이의 생각을 이해하려 드는 것은 시간 낭비니까 말이다.

아마 유니콘한테도 저런 예언이 전해진 게 아닐까.

그래서 길을 엇나간 사이비 전도사 새끼들이 나타났다든가, 대충 그런 거겠지.

【그래서 나는 선지자님의 말을 기억하는 자를 자처했다. 인간들이 세운 황금의 도시가 무너졌을 때 소실된 기록을 룬 스톤에서 찾았고자 했지.】

“그래서 성지를 나와서 다른 예언을 찾은 거야?”

【정확하다. 뭐, 저주 때문에 그대에게는 첫 만남부터 된통 못난 꼴을 보였다만.】

베로니카는 바람에 망가진 머리를 어깨 뒤로 넘겼다. 그러고서는 가지고 있던 옥새를 들었다.

벌써 몇 번이고 주고 받고 했으므로 나는 이번에도 거기로 손을 뻗었는데, 베로니카는 그 손을 날쌔게 피했다. 밧줄에서 몸을 비키는 야생마처럼 말이다.

시발 뭐지? 갑자기 마나 배터리에 욕심이 생기기라도 했나?

나는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는데, 베로니카는 부러진 옥새의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대여. 옥새에 있어야 할 룬의 마나가 약간 줄었더구나. 내 착각이 아니라면 이건 그대가 저장해 두었던 마나를 조금 회수한 것으로 보인다만, 맞느냐?】

“어? 아, 뭐. 그렇지.”

【그러한가. 정말이지 경탄스러운 일이로다.】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튀는 질문 연쇄에 솔직하게 대답하자, 눈을 빛내는 베로니카.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베로니카는 오우거를 기습하기 전처럼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왔다.

【내 견문이 부족하여 쓰러트린 상대로부터 룬의 마나를 ‘계승’할 수 있다는 것도 들어본 바 없건만, 그대는 ᛃ(Jēra)의 룬도 없이 룬의 마나를 빼고 담았다는 말 아니더냐. 룬의 마나는 본디 주인과 불가분(不可分)할 터인데 말이야.】

베로니카가 눈을 빛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의 말을 다룰 줄 아는 것도 그렇고, 그대는 범상치 않은 능력을 참으로 많이 가졌구나. 이러니 내가 그대에게 기대를 품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느냐?】

룬의 마나가 주인과 분리될 수 없는 거였다고?

나는 뜻밖의 사실에 놀랐다. 룬 마법에 대한 지식이 그렇게 대단하지 못해서 전혀 몰랐다.

베로니카가 오기 전에 룬을 습득한 게 실수였을까?

아니, 말을 들어보면 진작에 용의주시 하고 있었던 듯 했다. 베로니카에게 주시당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조만간 결정적인 계기를 잡히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은 하필 그게 하루도 못 되서 벌어졌다는 점이겠지.

“어? 아니, 그, 나도 이유까지는 몰라. 무슨 특이체질 같은 거겠지.”

동요해서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는 나.

베로니카에게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동요를 숨기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베로니카는 내 대답을 듣자 자신의 학설에 동의하는 학계의 거물을 만난 것처럼 반색했다.

【자신조차 모른다. 그래, 그렇다, 그것이다!】

긍정형의 삼단 활용을 선보이며 베로니카는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자세의 ‘어깨’ 포즈였다.

【한 번이면 우연이고 두 번이면 기적이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세 번 일어나면 운명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느니라.】

“운명?”

【그래. 나는 그 방망한 기예단에 잡혀 있는 동안에 생각했느니라. 내 여행이란 결국 정해진 예언의 운명에 종속되었던 헛고생에 불과했던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사실로 그러했다. 나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그대들이라는 우연에 구원받지 않았더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와 베로니카가 마주친 것은 전부 다 우연이었으니까.

그런데 베로니카는 그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베로니카가 말했다.

【전승에서 이르길, 천공신님께서도 예언을 극복하시지는 못했다고 하느니라. 운명이란 엿본 순간부터 미래가 그 결과로 고정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예언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려던 나도 결국은 예언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양자역학 같은 걸까?

오딘의 분신도 운명이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었지. 지구에서도 중2병과 히틀러가 풀발하며 빨아제끼던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는 예정된 파멸이었으니까.

근데 암만 그래도 저건 너무 끼워맞추는 느낌이었다. 나는 진정하라는 의미로 손을 저었다.

꿈에서 크레이지 눈깔 장애 여신이 했던 말으 싸그리 싹싹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예언의 당사자일지도 모르겠단 소리는 좀 비약된 생각 같은데. 그냥 우연이면 어쩌려고? 예전에도 너 같은 경험을 했던 바이콘은 있었을 거 아냐.”

【유일하게 우리 종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대가, 우연하게 나와 만나, 나의 저주를 반이나 풀어주었다. 이것이 다 우연이고 착각이라면 그것도 좋겠지.】

─빙글. 베로니카는 몸을 180도 돌렸다. 그렇게 그녀는 신마가 남긴 마법진에서 내려갔다.

【일족의 노인들이 말하더구나. 나는 아직 어리숙한 계집애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몹시 부아가 치밀었지만, 이제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운명이라는 말에 이토록 가슴이 뛰고 있으니 어쩌겠느냐.】

자신의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것처럼 가슴의 손을 얹는 베로니카.

그녀는 눈초리를 둥글게 휘며 말했다.

【나는 그대와 만난 것이 운명이라고 믿어버리고 말았다. 허나 그대는 너무 깊게 생각 말고, 그대의 사정을 우선하거라. 나도 그대에게 미움을 받아서는 본말전도 아니겠느냐.

나도 부탁하겠다. 그대는 벌써 내 저주의 절반을 풀어주었으니, 나도 그대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데 보탬이 되게 해 다오.】

겸허하게 부탁하는 태도를 취하는 베로니카였다. 나는 신음을 흘렸다. 저렇게 솔직하게 진심을 말하고 있으니 나도 말을 안 하는 것이 양심에 찔리기 시작했다.

‘시발. 이거 불에 기름 끼얹는 건 아닌가 몰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억지로 자신을 다독였다. 어차피 물어볼 생각이었지 않았던가.

“그 뭐냐, 대답도 않고 얘기를 바꿔서 미안한데. 혹시 내가 꾼 꿈을 너한테 보여줄 수 있는 마법은 없냐?”

【꿈을? 그건 또 생뚱맞은 부탁이구나.】

내 부탁에 베로니카는 고개를 모로 꼬다가 끄덕엿다.

【저주를 어느 정도 해소한 지금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대가 ᚨ(Ansuz)의 룬으로 이미지를 보내다오. 내가 그것을 마법으로 보조하겠다.】

“부탁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이라서. 놀라지만 마.”

【그대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니, 나까지 긴장되는구나.】

베로니카를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점점 저주의 부작용이 찾아오는 것을 참으며 주문을 외웠다.

【신은 만언(萬言)의 기원이니(ōs byþ ordfruma ǣlcre sprǣce). 지혜의 근본이자 현인의 위안이요(wīsdōmes wraþu and wītena frōfur), 모든 영웅의 축복이자 희망이니라(and eorla gehwām ēadnys and tō hiht).】

나는 주문이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가 룬 마법을 발동했다. 심념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이미지를 송신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내 꿈의 이미지를 받은 베로니카까지 그렇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읏?!】

꿈의 전송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머리에 들어온 이미지를 베로니카가 읽어볼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컴퓨터로 파일을 전송하는 것처럼 시간이 오래 들었다면 베로니카의 집중력이 못 버텼을 듯 했으니까.

【……하? 처, 천공신님? 어째서 여성의 모습을…… 세계수에, 궁니르까지?】

내가 꾸었던 꿈의 단편을 모으며 베로니카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후, 후계자라니?!】

몇 분을 그렇게 혼자서 앓던 베로니카가 머리채를 잡아당겨진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저번에 다른 종족들이 저주를 풀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처럼 평정을 잃은 그녀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런, 이런 꿈을 꾸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잖느냐!! 아니, 그보다 그대는 제정신인가?! 신을 상대로 말을 놓다니 대체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냐!!】

“그, 헥, 아, 꿈, 속이라서, 나도, 모르게.”

【그대는 지금 그걸 핑계라고!!!! 천공신님께 무엄하게도 말을 놓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분을 날려버리까지 하다니!? 이건 천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중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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