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 (198/1,009)

그러니까 지금 프랑이 보여주는 맹목적인 사랑을 즐기도록 하자.

근데 그 와중에 ‘빨아준다’는 말에 반응하는 내 좆 실화냐?

내 성욕은 정말 전설이다. 우리 아내들은 신이고.

“앗, 앗! 맞아! 그래서 있지? 내가 노르 방에서 잤더니 노르 꿈을 꿨다는 얘기를 하니까, 다나도 나 없는 사이에 노르 침대에서 몰래 낮잠 자다가 들키고 그랬다? 다나 무지 귀엽지!”

“프랑!! 너, 너!! 너 내가 그거 비밀로 해 달라고 했잖아!!”

“으읍으읍읍!!”

─우당탕! 의자를 넘어트리며 일어난 다나가 프랑의 입을 막아버렸다. 힘 싸움을 일으키면 프랑이 이기겠지만, 그렇게 해서까지 저항할 생각도 없었는지 한 덩어리가 돼 버린 우리 아내님들.

그 시트콤에 베로니카가 자기 허벅지를 지긋이 꼬집었다. 절대 웃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것이었는데, 벌써 우리 집을 제 집처럼 여기는 좆냥이 쉑과 대비되서 좀 웃겼다.

“푸하앗!!”

그때 다나한테서 빠져나온 프랑이 목욕 가운을 여미며 물었다.

“하여튼아무튼어쨌든!! 노르!! 잘 다녀왔어!! 다친 덴 없지?”

“당연하지. 집에서 너희가 기다리는데 내가 어떻게 다쳐서 오냐.”

“지랄. 갑옷 꼬라지 보니까 또 어디서 뭐 미친 짓 하다가 왔구만.”

다나는 날카로운 판단력을 선보이며 반박했다.

아니, 내 딴에는 존나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아버린 것이지. 머쓱해지네.

“크흠. 세상이 날 가만히 안 냅두더라고. 어쩌겠어. 이렇게 잘난 남편을 둔 눈나가 참아.”

“큭큭. 잘났다. 석사아다 떼고 말하든가. 개웃겨 시발.”

“쉬잇! 조용히 하렴, 박사 비처녀야.”

“야 이 씨팔것아. 존나 마누라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다?”

“네, 140% 팩트죠? 할 말 없죠? 까르륵!”

여튼 그렇게 나를 반겨주는 아내들과 꽁냥거리다가 본론에 들어갔다.

프랑은 몸을 다 말리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다나가 대충 있는 차를 내주었다. 나는 집 주인이라서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브리타니아의 예의랜다.

‘만약 일처다부 가정이었으면 내가 아내 손님한테 차를 내 줬어야 하나?’

그것은 몹시 고도의 젠더론적인 문제였기에 고민하고 있자 시간이 쏜살같이 달아났다.

베로니카는 상사 집에 끌려온 대리처럼 입술이 말라갔는데, 그 긴장감은 프랑이랑 다나가 테이블에 앉자 더욱 강해졌다. 얘는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건지.

아니, 위치선정이 긴장할 만 한가?

우리 가족끼리 셋이서 앉고 베로니카만 진짜 면접처럼 딱 혼자 앉은 포지션이었다.

‘이제부터 내가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왜 자리 상태가 일케 됐지?’

근데 아내들을 건너편에 두고 내가 베로니카랑 앉을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래서야 씨발 불륜 취조 현장 같지 않은가! 나는 고작 해 봤자 베로니카의 알몸을 보거나, 뿔을 잡고 내 정액이 묻은 좆 앞에다가 흔들어댄 게 전부인데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베로니카한테 참아달라고 하는 수밖에. 암튼 내 잘못은 아님.

“자, 이제 프랑도 나왔으니까 얘기 좀 해 봐. 쟨 누군데?”

─꾹꾹. 다나가 손가락으로 내 뺨을 찔러댔다. 기다리다가 지쳤다는 것처럼.

“그래. 내가 다 설명할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면서 설명을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 두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을 설명할 마음을 먹었다. 저번부터 올해가 가기 전에 설명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정색을 하고 베로니카에게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건, 베로니카 너한테는 말할 수 없는 내용이야.”

“그, 그게 무슨 뜻이더냐?”

내 말에 당황하는 베로니카.

놀랄 만도 했다. 베로니카는 오늘밤 내가 털어놓을 얘기가 바이콘의 저주나 오딘의 후계자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설명을 생략한 것에 그치지 않고, 베로니카가 반론을 하지 못하도록 평소의 장난치는 분위기를 싹 지웠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을 마음이 있다면 ᚷ(Gebō)의 룬으로 서약해라.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은 절대로 내 비밀을 남들에게 발설하지 않겠다고.

목숨은 걸 필요 없다. 단지 비밀 엄수만은 맹세해라. 이게 여기 남는 조건이다. 네가 이 말을 따를 수 없겠다면, 다음에 자리를 다시 마련하겠다.”

나는 어색한 것을 참고 가오를 잡았다.

방금 전과 일변하여 위압적인 태도를 취한 탓일까. 프랑과 다나도 군말 없이 베로니카를 쳐다보았다. 내가 악의적으로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 것이었다.

─꿀꺽. 침을 삼키는 베로니카.

입장이 반대였다면 헛구역질이 나올 듯한 엄숙함이었는데, 과연 내가 인정한 멘탈갑은 달랐다. 베로니카는 고작 10초 쯤 생각하고 마법을 발동했다.

“ᚷ(Gebō).”

손가락에 떠오른 룬이 저번처럼 나와 베로니카를 연결했다.

베로니카는 그 룬에 대고 고향의 말로 맹세했다.

【저, 베로니카 에클립시스가 신들께서 주관하시는 계율에 맹세하옵니다. 저는 결코 허가 없이 생명의 은인 노르드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겠사오니, 이를 애시르(Æsir)의 혼과 의(義)의 실천으로 증명하겠나이다.】

서약의 룬이 효과를 발휘했다. 베로니카의 그림자가 ᚷ 모양으로 변했다가 돌아왔다.

나는 그것이 마법의 행사라는 것을 알았지만, 더한 신중을 기해서 말했다.

“네 입으로 프랑과 다나한테 설명해 줄래? 어떻게 되는지 알아두고 싶어.”

내 부탁을 들어줬으니까 이제 위협은 하지 않았다. 지금의 요구는 팩트 체크일 뿐이었다. 그걸 아는지 베로니카도 한결 진정을 한 얼굴로 말했다.

“■■■■■■■■.”

사람의 말이 아니라, 거꾸로 뒤집어서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돌리는 듯한 소리였다.

손으로 입을 덮는 베로니카. 자기 목소리에 베로니카 자신이 제일 놀란 듯 했다. 겉으로 티는 안 내려고 했지만 나도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마나가 목소리 변조를 일으킨 건가?’

내 영감은 룬의 마나가 베로니카의 발음에 뭔가의 작용을 일으키는 걸 캐치할 수 있었다. 나랑 같은 것을 느낀 다나가 중얼거렸다.

“저거, 기아스(Geis) 같은데.”

“기아스?”

내가 되물었다.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 잘 아는 단어였기에 놀란 것이었다.

기아스.

역사의 기록에도 종종 나오는 마법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한테 거는 저주다. 어떠한 조건을 정하고,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제약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저주 말이다.

자기한테 거는 셀프 저주라니, 병신 같은 짓 아니냐고?

병신 같은 짓 맞다.

존나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이세계인들이라고 뇌에 좆 박은 것도 아닌데 좋은 거면 다들 따라했겠지. 그 왜, 민간신앙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얼스터 인들만의 문화로 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길 바란다. 차이나 드레스는 중국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다 보기 좋아하지 않던가!

문화 승리란 그런 것이었다. 야수회귀의 효과가 쥬지 확장 뿐이었다면 누군들 자기 신념을 안 접었을까. 얼스터 혐오종자도 매일 아침 회개하며 얼스터인 군락이 있는 곳에다 삼보일배를 했겠다.

베로니카는 자신의 입술을 만져보다가 말했다.

“서약은 이루어졌다. 이제 나는 발설은 당연하고, 필담이나 서약의 해지 등의 방식으로도 그대의 비밀을 알릴 수 없게 되었느니라.”

내 눈으로 효과를 봤으니까 계속 의심하는 것도 무례한 짓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 고맙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서.”

“되었다. 그대가 억지로 강요했어도 나는 따를 수밖에 없었느니라. 그대는 실리로도 명분으로도 날 멋대로 다룰 입장에 있으니 말이야. 오히려 나야말로 그대의 온정에 예를 표하마.”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만드는 베로니카.

슈퍼 갑인 내가 자신을 생각해 주었다는 것에서 안심감을 느낀 것일까. 베로니카가 나를 대하는 눈빛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그러면 이제 얘기할게. 꽤 길어질 것 같으니까, 궁금한 게 생기면 그때그때 물어.”

그렇게 운을 떼자 프랑이랑 다나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들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어쩌면 내 아내들은 내가 숨기고 있던 비밀을 약간씩 눈치 채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거짓말하는 재능은 꽤 있지만, 그 거짓말을 계속 이어나가는 재능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전부 까발려버릴 생각이었다.

“사실 나는, 다른 세상에서 왔어.”

내가 3년 반 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말이다.

21세기 지구에는 이세계물(異世界物)이라는 장르가 있었다.

이건 아주 전형적인 판타지의 탬플릿이었기에 여러 매체나 작품에서 애용되는 플롯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장르의 주인공들은, 자기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자기 친구나 연인한테도 잘 밝히지 않았던 듯한 기분이 든다.

비밀을 터놓고 말하는 놈들은 처음부터 동료들한테 얘기를 하고 다니거나, 아니면 작품의 설정에서 지구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세계인들한테도 알려져 있거나 했는데.

정작 비밀을 숨기던 놈들이 뒤늦게 말을 하는 케이스는 그다지 없더라.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는 소설이나 드라마의 작가가 아니니까.

하지만 억지로 추측해 보자면.

아마 섞여버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인공이 지구에 대해 말하면 이세계는 지구와 섞여버리고 만다.

지구와 섞여버린 이세계는 원래 세상과 격절된 ‘다른 세계(異世界)’가 아니게 된다.

21세기 지구인들한테 ‘지구’는 별로 그립고 행복한 세상이 못 됐다. 금수저나 직업만족도 최상인 사람을 빼면 다들 자기 직장보다 자기 취향의 판타지 세상에 가슴이 뛰겠지.

사실 나도 이제 동물병원보단 1달밖에 안 살아본 이 집이 더 맘에 든다.

그리 생각해 보니까 공감이 가는 것도 같다.

예전 세상에 버리고 온 과거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다른 세상에까지 쫓아온다니. 개시팔 호러 영화 그 자체였다. 나까지 뭔가 생리적으로 역한 기분이 들었다.

내 유치원 시절의 친구였던 벡터맨 타이거가 갑자기 이쪽 세상에 나타나서 우리 집 문을 두들겨대는 듯한 당혹감!

니가 뜬금없이 왜 튀어나오냐는 느낌의, 그런 원시적인 거부감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 목표가 전대미문의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팩트를 인정했다.

모니터 속에서 발생하는 미지의 조우조차도 이렇게 끔찍할진대, 진짜로 지구와 이세계를 완전히 연결해 버리면 어떤 패닉이 일어나겠는가!

다른 문명권, 다른 세계와의 조우!

그것은 UFO에서 외계인이 내려와서 초능력 개조 공룡을 풀어놓는 것보다 컬처 쇼크를 선사하겠지. 내 꿈은 온갖 의미에서 조심스럽게 시도해야 하는 무모한 도전인 것이었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얘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야.”

대충 3시간 정도 걸린 썰풀이를 그런 말로 매듭지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거실이 조용해졌다.

예비군 강연을 마친 직후의 강당이 이러할까? 경악한 아내들의 질문 러쉬에 대답하기 바빴던 것도 처음 1시간이 다였다. 그 뒤로는 설명에 설명을 반복할 뿐인 2시간이었다.

초반부가 좀 강렬했기 때문인지 뒷부분에서는 리액션도 거의 없었다. 바이콘이니 오딘이니 하는 얘기에도 고개만 까딱거렸을 정도로 말이다.

존나 생각하지도 못한 쇼크 용법이었다.

“……우리 푼수 남편놈이 톡톡 튀는 새끼라는 건 존나 알고 있었지만, 다른 세계라.”

다나는 수십 분의 오뇌에서 벗어나서 뇌까렸다.

우리 눈나는 다음과는 다른 나의 매력에 마음을 뺏겨버린 사람이었다. 당연히 내가 노멀 타입 키타이 촌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인지, 다나는 피곤한 것처럼 내 어깨를 찔러댔다.

“바다에 가라앉은 고대문명의 물고기 인간이었다느니,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사도라느니, 그런 건 각오했지만 말이야. 지저의 탑과 연결된 이계처럼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온 거라고?”

“어. 너희한테 거짓말 하느라 가슴이 찢어지겠더라. 그래서 말해주고 싶었어.”

“응……. 그건 나두 기쁘게 생각해.”

내가 대답하자 프랑도 대화에 참여했다. 한숨을 참는 것처럼 뺨을 주무르는 프랑.

“조금 너무 놀라서 현실감이 없어. 노르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얘기에는 깜짝 놀랐는데, 나는 마법 쪽으로는 완전 꽝이니까.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그렇게 말한 프랑은 턱을 짚고 있다가 손을 들었다.

나는 순간 프랑이 내 뺨을 갈기려는 건가 했는데─오랫동안 구라를 까 왔으니까 맞을 만 했다─, 당연하게도 우리 착한 프랑은 질문을 하려 한 것이었다.

“노르. 중요한 얘기가 한꺼번에 왕창 쏟아져서 따라가기가 힘들지만, 궁금한 게 있어.”

“뭐든지 물어 봐. 나는 이제 숨기는 거 아무 것도 없어.”

나는 3시간 동안 비밀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까발렸다. 아, 꿈속에서 베로니카한테 저질렀던 성희롱만 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 빼면 진짜로 내가 남들한테 숨겨왔던 모든 것을 다 말했다.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10분컷으로 요약해버렸지만, 이세계 생활 3년 반의 비밀부터 노르드 톱 시크릿까지 다 송출해버렸다. 그야말로 노르드 TV 서프라이즈.

“우리를 믿고 말해준 건 고맙다고 생각해. 그치만, 한꺼번에 이렇게 잔뜩 말해줘도 내 머리는 얘기에 못 따라간다구.”

그런데 프랑은 내 대답에 삐진 것처럼 내 뺨을 찔러댔다. 아니, 못된 언니랑 어울리더니 안 좋은 손버릇을 배워왔네. 내 볼살을 만져대서 뭐 좋을 게 있다고 이러실까.

“노르가 말해준 건 한두 개만 알아도 머리가 아파질 비밀이잖아. 그런 걸 우다다다 말해버리면 나는 어디서부터 놀라야 할지 모르겠단 말야.”

“그래. 내 말이 그거야.”

다나가 말했다. 눈꼬리를 회초리처럼 치켜세우면서 말이다.

“남편님아. 그러니까 너는 다른 세상에서 왔고, 그 세상에는 우리 세상이랑 비슷한 신화가 전해진단 거냐? 그리고 너는 두 세계에 공통되는 신화가 있으니까 세상을 연결할 방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고?”

“어, 어어. 그렇지.”

요점 노트를 만드는 것처럼 내 말을 요약하는 다나에게 난 거짓없는 본심을 말했다. 그러자 프랑도 자기가 들은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질문을 했다.

“노르는 우리 세상에 넘어오고서부터 다른 사람이나 동물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들린댔지? 이유는 몰라도 하말이나 바이콘 족의 저주를 해주해 줄 수 있구, 그 바이콘들이 사실은 저주를 받아서 원래 모습을 잃어버린 게르마니아 신님들의 후예였다구 그랬어. 맞아?”

“네, 넵.”

“최근에는 오딘 신이 룬 문자를 만들었을 때의 기억을 엿본데다가, 당사자한테는 후계자라고 불리셨다? 그런데 오딘은 벌써 목숨을 잃은 것에 가까운 느낌이고, 후계자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감도 안 잡힌다?”

─끄덕끄덕. 나는 내가 쓴 반성문을 교무실에서 읽혀지는 것처럼 가시 방석에 앉아서 수긍했다. 무언의 대답이었다.

“티르시 씨랑 갔던 일에서 사람의 말을 하는 오우거랑 싸웠댔지? 그 오우거는 고대문명의 룬 스톤으로 과거의 기록을 본 듯 하구, 노르의 꿈에 오딘님이 나오신 것도 같은 마법으로 노르한테 전언을 남겨주신 것 같댔나?”

“아, 아마도?”

“그리고 바이콘 일족의 성지에 전해지는 예언이 있는데, 거기 나오는 구세주가 오딘의 후계자=우리 남편님일 가능성이 크다? 네가 예전에 쓰러트렸다는 베르세르크 족도 너한테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베로니카의 생각이 맞으면.”

내가 그리 덧붙이자 다나는 마지막으로 한숨을 쉬며 베로니카를 가리켰다. 내 설명을 듣던 베로니카는 놀람 때문에 집중력이 못 버텨서 망아지 모드로 변신한 상태였다.

“그래서 뭐야? 저기 앉아서 낑낑대는 베로니카라는 바이콘은 아직 저주가 반 밖에 안 풀리기도 했고, 네 꿈에서 오딘의 기억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데서 데려왔단 거?”

“응. 그걸로 내가 오늘 한 얘기는 다 끝이야.”

존나 내 3시간의 설명충 과거회상 타임이 5분컷으로 끝나버렸네.

이거 우리 아내님들한테는 유튜브 리뷰어의 재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스타워즈 9부작도 30분 짜리 영상으로 요약해 버릴 것 같다.

“노르드 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들으니 저도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사옵니다. 제게 서약을 명하신 것도 납득이 가옵나이다.”

─파앗. 우리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신족 형태로 돌아온 베로니카가 말했다.

이건 사족이지만, 프랑은 뿔을 보고 베로니카가 저번에 봤었던 바이콘일 거라고 예상했었다고 한다. 망아지 모드도 신족 모드도 뿔의 형태는 똑같으니까. 우리 프랑 눈썰미 끝내준다.

프랑도 베로니카의 생김새가 인간처럼 변한 것에는 놀랐는데, 아마 변신 마법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는 모양. 설마 망아지 모드가 신들의 저주에 걸린 모습이며, 원래는 신족 출신이었다고는 상상도 못했댄다.

“베로니카 씨…… 님? 께서도 이 이야기는 처음 들으신 거죠?”

아무튼 그런 프랑은 베로니카에게 뻣뻣하게 질문을 했다.

저번에 만났어도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기에, 사실 이번이 첫 만남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사옵니다. 【중간 가지】 외에도 독자적인 문명을 설립한 이계가 있었다는 말씀에는 놀라움밖에 없었사옵니다. 헌데, 에이트리넨님. 부디 제게는 말씀을 낮추어 주시옵소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