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화 (199/1,009)

프랑의 말에 대답한 베로니카는 왕후에게 간언하는 것처럼 허리를 숙였다. 나한테도 보였던 것처럼 유별나게 공손한 태도였는데, 내가 오딘의 후계자라는 걸 믿고 있기에 나오는 자세인 것 같았다.

물론 우리 프랑은 그런 태도에 되려 거북함을 느끼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저, 저어…… 그냥 서로 편하게 말하면 안 될까요?”

허둥지둥거리며 불편해 하는 프랑. 마치 자기 발에 안 맞는 신발을 신고 춤춰야 하는 발레리나 같았다. 프랑의 제안에 다나도 끼어들었다.

“맞아. 댁도 우리 모지리 남편놈의 비밀까지 다 들었잖아. 그냥 말 놓고 지내도 되지 않겠어?”

세상 쿨한 제안을 하는 다나였다.

다나의 기탄없는 제안은 그만큼 베로니카를 믿을 수 있다는 뜻이었는데, 베로니카도 자기 자신에게 저주까지 걸어서까지 신뢰를 얻은 보람이 있는 모양.

근데 신뢰받아서 기쁜 것과 반말을 하는 것은 다른 얘기였던 걸까? 베로니카는 입을 뻐끔거렸다.

“마, 말을 놓으라는 말씁이시옵니까? 아니되옵니다. 제까짓 계집년이 감히, 천공신님의 후계자께서 반려로 택하신 분들께 그런 경망스러운 짓을 하다니요!”

“이 놈한테는 말 놨더만 뭘. 우리한테만 존댓말 쓰는 게 더 이상하지.”

─꾹꾹. 다나는 머리로 내 어깨를 눌러댔다. 귀엽게 구네. 확 덮쳐버릴까 보다.

반격하는 느낌으로다가 다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이 눈나 머리에 손을 댄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약간 색다른 느낌이었다.

아무튼 다나의 말에 프랑도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맞아요. 말 놓으세요. 아니, 놓자. 너도 나도 조금씩 양보하는 게 맞을 것 같아. 나두 말할 때마다 극존칭을 듣는 건 별로 내키지가 않네.”

“그, 그렇, 더냐? 그렇다면, 응, 그리 하마.”

베로니카도 둘한테만 극존칭을 쓰는 게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말투 문제가 해결되고, 화제는 다시 내가 밝혔던 비밀로 돌아왔다.

─슥. 프랑이랑 다나는 눈빛을 교환하고서 말했다.

“노르. 우리끼리 잠깐 얘기하고 와도 될까?”

“응. 뭣하면 내일 다시 얘기해도 되고.”

나도 필요하다면 아내들한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줄 생각이었다. 프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잠깐이면 돼. 아, 그래두 베로니카는 데려갈게.”

“응. 다녀 와.”

내가 그러라고 하자 아내들[email protected]는 셋이서 거실을 나갔다.

저 면면으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나는 엘리트 대갈통에다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으나, 지친 머리는 녹슨 맷돌처럼 무디게 움직이기만 했다. 내 몸에서 24시간 팔팔한 것은 좆몽둥이 뿐이군.

3명은 10분 정도 있다가 돌아왔다. 결론을 내고 온 것이다.

자리에 착석하는 우리 아내들[email protected] 아까 전의 베로니카와 내 입장이 바뀌었다. 나만 그녀들과 떨어져서 혼자 앉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베로니카만 부외자인 것처럼 의자에 앉지 않았다. 아마 우리 가족 사이끼리 할 얘기인 모양이었다.

“다나랑 얘기해 봤어. 나는 당연하고, 다나도 속으로 많이 놀랐다더라구.”

내가 그리 눈치채자 프랑이 말했다. 다나가 말을 꺼내는 역할을 양보한 듯 했다.

“그런데 노르가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 사이에 바뀌는 건 없다고 생각해.”

─끄덕. 진지하게 수긍하는 나. 입을 놀려서 뭐라고 떠드는 꼴사나움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때때로 이렇게 묵직하게 말 없이 있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프랑은 그런 내가 믿음직스럽다는 것처럼 헤프게 웃었다. 내가 아내 바보인 것처럼 우리 프랑도 남편 바보인 것이다.

“우리끼리 암만 생각해 봐도, 노르가 우리한테 알려주지 않은 부분보다 알려줬던 부분이 많았어. 노르도 내가 하프 드워프가 아니라 하프 엘프였다거나 하면 깜짝 놀라겠지만, 그렇다고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 거지?”

“당연한 거 아냐? 어디서 태어난 누구였든지 간에 너희는 내 가족인데.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게 되도 너희가 같이 가지 못한다면 나는 여기에 남을 거야.”

“응. 우리도 그래. 고향이 어디든 노르는 노르니까.”

프랑이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나도 자기 개털머리를 쓸어넘기며 말문을 열었다.

“네 고향 얘기는 놀라웠지만 니가 다른 세상에서 왔답시고 딱히 바뀌는 것도 없더만. 나도 프랑도, 니 부모님을 찾아뵈러 가는 날이 조금 멀어진 게 다라고 생각하련다.”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손을 휘젓는 다나.

가슴이 찡해질 만큼 고마운 말이었는데, 고맙다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끼리 감사인사는 자주 할 수록 좋은 것이지만 지금의 난 묵직한 꼴마초 노르드니까.

절대 목이 메여서 그런 게 아니다. 목울대가 떨리는 것은 감동 때문일 따름이다.

‘씨발. 이거 진짜 기분이 이상하네.’

사람의 몸은 정말로 신기했다. 결코 울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눈가에 물기가 생겨나니까 말이다. 나의 눈물 포인트가 스스로도 파악이 안 되는군.

그리 생각하던 나는 불쑥 떠올렸다. 축하연에서 티르시가 내 얘기에 눈물을 보였던 것을 말이다.

그때 그녀가 왜 그랬는지 약간 알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의 비밀을 남에게 이해받는다는 건 무의식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칭찬이나 격려를 받은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말이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팔불출이었지만 칭찬이나 격려는 잘 안 해 주시던 분들이었으니까. 사실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다 칭찬에 인색한 면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럴 때에도 허세를 유지하는 것이 상남자!

‘벡터-눈물 죽이기.’

나는 내 눈물을 안구로 흡수하며 흘러넘치는 것을 참았다. 아내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은 남자로서 당연한 본능이니까.

건물 안에서는 비가 온다는 핑계도 못 대지 않겠는가.

그렇게 내가 눈물을 죽여 참는 상남자의 오의를 발동했을 때였다.

“어흠. 그, 그대여. 밤이 늦었구나.”

시녀처럼 정중하게 우리 얘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베로니카가 말했다. 마치 손님이 이제 그만 돌아가 보겠다는 말을 꺼내는 서두(序頭)처럼 들렸는데, 당연히 그런 뜻은 아니었다.

“아, 그렇지.”

나는 더 중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뒤로 제껴뒀던 얘기를 떠올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간단한 설명은 했었지. 베로니카가 내 꿈속에서 오딘의 기억을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만 말이다.

눈물을 만화경 사륜안처럼 빨아들이고 코를 훔치는 나.

“프랑, 다나. 돌아오자마자 미안한데, 오늘밤에는 나 혼자 자야 될 것 같아.”

“아니 씹, 니는 뭐 우리가 너랑 같이 자고 싶어서 안달복달 났던 것처럼 말하냐?”

“아니었어? 나만 우리 아내님들 품이 그리웠나?”

다나가 입술을 삐쭉이길래 테이블을 빙 돌아가서 우리 눈나를 꽉 끌어안아줬다. 부끄러운지 내 허그를 두 팔로 밀어내는 다나.

“말은 잘 해요. 하여튼 뭔데? 혼자 자겠다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화제를 돌리며 다나는 베로니카를 바라봤다. 얼굴이 빨개져 있지 않았으면 벌써 권태기가 왔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을 것이었다.

베로니카는 이번에도 무심코 공손하게 대답하려다가 관절이 고장난 로봇처럼 멈췄다. 그 놈의 후계자가 뭔지, 반사적인 존댓말이 발사될 뻔 했던 모양.

“노르드님의, 아니, 노르드의 꿈에서 심층 기억을 조사해 볼 생각이다. 노르드의 정신세계에 천공신님의 안배가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흐응. 신이 남겨둔 안배라. 듣기만 해도 거창하군.”

다나는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치료마법을 습득하고 수녀 같은 전투복을 입고 다니는 게 거짓말처럼, 우리 눈나의 신앙심은 바닥을 치는 듯 했다.

“어쩌면 노르가 이 세상에 오게 된 것도 오딘 님이 무언가 손을 쓰셨다든가?”

호기심을 보이며 그리 질문을 던지는 프랑이었는데, 나는 다행히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당사자의 분신? 인가 하는 양반은 아니라고 하더라.”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냐? 니 성격에 궁금한 건 꼬치꼬치 캐물었을 것 같은데.”

“이 여편네가 벌써 바가지를 긁네. 누나가 내 침대에서 뭐 했는지도 꼬치꼬치 캐물어 줘?”

“……씨발. 핀잔 좀 줬다고 협박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쫑알대는 다나. 진짜 뭘 했길래 저러지. 내 냄새를 맡으면서 몰래 딸이라도 쳤나. 존나 내 침대보에 코 박고 싶어지는 상상이었다.

“나도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는데 물어볼 시간이 안 났었어. 게다가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도 아니더라. 후계자란 놈한테 남길 전언이랑, 그걸 설명할 지능만 남겨놓은 영혼의 골렘 같았지.”

21세기의 표현을 써도 된다면 영혼이 깃든 A.I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랑은 골렘이라는 말에 고개를 모로 꼬았다.

“오딘님의 기억을 찾아보는 건 나도 찬성이야. 후계자라는 말씀에 어떤 저의가 있는지도 모르면 곤란하니까. 그치만 노르가 신이 된다든가 하지는 않겠지? 나, 신님이 돼 버린 노르랑 아기를 만들 순 있을까?”

“의식의 흐름이 마지막에 몹시 개성적이 됐다만, 후계자=신이라는 생각은 과장 같긴 해.”

신화에서 오딘은 역할이 존나게 많은 신이었다. 그중에서 뭐 하나만 제대로 이어받아도 인간한테는 대단한 업적이 아니겠는가.

이세계 꼴마초 노르드에서 폭풍의 꼴마초 노르드로 전직이라니 출세도 여만 출세가 아니었다. 프랑은 내 말에 세상 진지하게 되물었다.

“아기 만들기는? 이것도 엄청 중요한데.”

“……베로니카?”

“……애시르 신족이라면 인간과의 새끼치기 정도는 가능하느니라.”

“새끼 치기요?”

존나 신족다운 표현력이다. 아들딸들을 숨풍숨풍 낳을 것 같은 워딩이로군.

뭐, 브리타니아 어에는 별로 빠삭하지 못해서 저러는 거겠지만 말이다. 난데없이 유부남&유부녀의 자식 계획에 말려든 베로니카다. 외국어 표현력까지 바라지 말자.

“기실 그라니부터가 신마님께서 범상한 말과 몸을 섞어서 낳은 아이의 후손이 아니더냐. 신족이라고 하여도 다른 종족과 후손을 못 만들지는 않겠지.”

“그렇게 말하니까 너희의 생태에 대해서도 갑자기 호기심이 생기는데. 따지고 보면 신마의 부모님인 로키 신부터가 좀…… 그 왜, ‘그거’잖아?”

슬레이프니르는 로키 신과 거인의 말 사이에서 태어난 말이라고 전해진다.

히힝 퍽퍽 뷰루룻 푸르릉 응애인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무엄한 의문이로구나.”

베로니카는 천벌이 무섭다는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모든 신화마다 동물박이 수간충이 존재하니까 그렇게 기겁을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뭣보다 나랑 성이 비슷한 게르마니아 노씨가 트루-말박이였다는 건 팩트잖아요. 느그집 가계도 말박이 인간박이 이종간 생태교류 보고서.

“……그대여. 유희신님은 변신 마법이 특기셨다. 예상이 안 가는 것도 아니잖은가.”

“아니 나도 그건 알지. 그니까 내 말은, 말 상태로 했냐, 인간 상태로 했냐 이거지. 이거 존나 학술적인 토론임. 실제 종교색이 일절 없다.”

“그대는 니플헤임에서 떨어져도 걱정이 없겠구나. 벌만 받아도 따분할 틈이 없겠어.”

조금씩 이 미친 새끼가 정녕 천공신님의 후예인가 하는 눈빛이 되어가는 베로니카였다. 얘가 뭘 모르네.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인데 의외로 지낼 만 할지 누가 아냐?

“그런 태초의 신대는 전승되지 않았다. 단지 신마님께서는 바이콘과 유니콘의 선조님께 성은을 내리셨을 때는 인간의 모습이셨다고 하는구나. 우리의 원래 모습이 인간과 닮은 것은 그래서겠지.”

“유니콘도 바이콘도 저주를 받기 전에는 말의 모습이랑은 거리가 먼 종족이었다는 거?”

다나가 호기심을 드러내자 베로니카는 고개를 까딱이고 계속 말했다.

“우리 종족의 생태도 대단할 것 없느니라. 불청객이 오지 않는 성지에서 원래 모습으로 회임하고, 아이를 낳는다. 어린 바이콘은 신족의 모습으로 자라나다가 99세에 성년이 되면 성지를 나올 자격을 얻지.”

다시 말해서 베로니카는 최저 100살, 최대 300살이라는 건가.

동족들의 대우를 보면 쟤도 민증이 따끈따끈한 나이는 절대 아니다. 대충 200살 언저리라고 보면 될까. 삼단논법의 유효활용이다.

‘존나 연상녀 수준이 아니네 시부럴.’

나는 실감이 안 가는 나이 단위에 혀를 내둘렀다. 개인적으로 나이가 100살을 넘어가는 존재는 이종족이라는 생각부터 들어서 그런가, 나이를 세는 의미가 없는 느낌이더라.

막 65살, 77살, 이 지랄을 하면 할매할배 같지만 나이가 100살을 넘으면 3백 살이나 3천 살이나 다 거기서 거기 같은 느낌이다. 대충 일주일 된 생선과 통조림의 차이였다.

‘겉보기 나이로는 10대에서 20대인데.’

솔직히 베로니카는 나보다 젊어 보였다. 혼자 사르가디스의 평균 연령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녀석이 챠밍한 20대 와꾸로 새초롬하게 구는 건 비겁하지 않나?

개시팔 좆 같은 종족 격차사회 같으니. 혈통빨 가챠로 삶의 질부터 양까지 싹 다 정해져버리는 호모 이세계피언스들에게 묵념이다.

“하지만 그러면 임신 상태에서 말로 변하면 큰일 아니냐?”

“문제가 됐다는 얘기는 따로 들어본 적이 없구나. 그, 그것보다 말이다. 그대는 왜 바이콘 족의 생태에 관심을 가지지?”

“원래 세상에서는 동물 전용 의사가 꿈이었거든. 단순한 호기심이야.”

틀린 말은 아니어서 본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주에 걸린 바이콘은 진또배기 말박이 외에는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생각한 것만으로 제정신 수치 깎이겠다.

욜로의 신 노씨. 나는 댁의 후계자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 그러한가.”

베로니카는 시무룩해져서는 자기 뿔을 쓰다듬어댔다. 지금 한 말에서 기운이 없어질 내용이라도 있었던 걸까? 내가 그리 생각하고 있자니 베로니카가 말했다.

“헌데 말이다……. 그대의 꿈에서 심층세계에 간섭하려면, 꼭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

“절차?”

“으, 음. 셰이드(Seiðr)라고 하는 신화시대의 의식인데…….”

“──셰이드?! 노르랑, 네가?!”

경악한 것은 프랑이었다. 나는 그 사실에 놀랐다. 마법적인 지식은 나랑 다나보다 많이 부족한 프랑이 신화시대의 의식에 대해서 알고 있다니?

셰이드. 나는 모르는 마법이다. 프랑은 게르마니아와 가까운 니다벨리르 태생이라서 아는 걸까? 베로니카는 프랑이 자기 말을 알아들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미, 미안하다!!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풀썩! 베로니카는 왕한테 물을 쏟은 메이드처럼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물 흐르는 듯한 큰절이다. 조선 시대의 말로는 고두배(叩頭拜)라고도 하던가.

뭔진 몰라도 죽여주시옵소서 모드다. 저주 때문에 파래진 안색이 기냥 하얗게 질렸다. 다나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질문했다.

“뭐, 뭐야? 셰이드라는 게 뭔데? 쟤 뭐 때문에 저러는데?”

나도 묻고 싶은 말이었다. 어떤 의식이길래 말만 꺼냈는데 저런다는 말인가?

뭐 인신공양처럼 내 가슴을 갈라서 심장을 꺼내거나 하는 그건가? 화타처럼 도끼를 들고 와서 예로부터 이게 약이었다 이 지랄을 하면 어쩌지. 리빙 미라가 되면 암만 쥬지드라라도 발기를 못 할 텐데.

“그, 그…… 내가 아는 게 맞다면…….”

그런데 프랑은 입을 뻥끗대더니 거북하게 대답했다.

“섹스…… 비슷한 건데.”

“………………뎃?”

짹짹(섹스)?

“다, 다르다! 성교와는 다르니라, 성교와는!”

베로니카는 무릎을 꿇고 펄쩍 뛰며 고개를 저어댔다. 과한 리액션에 긴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뭔데 시발. 누가 맞는 건데. 우리의 눈빛을 받은 베로니카는 허겁지겁 주워섬겼다.

“셰, 셰이드란 천공신님이나 예지자님이 시전하셨던 의식의 일종이다. 육체적인 접촉을 통해서 마나를 교류하는 것인데, 이걸 통해서 시전자들은 영혼의 심층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걸 노르랑 하겠다고?”

다나가 물었다. 화가 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베로니카는 그렇다고 안심할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던 모양. 1초라도 빨리 설명하려는지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져나왔다.

“예지나 치료까지 용도가 많은 의식이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터부시 되어서 사라졌다고 알고 있다. 그대여, 떠올려 보거라. 내가 그대의 꿈에 휘말렸을 때는 그대가 아내들과 정을 통한 날이 아니었더냐?”

정을 통했을 때.

다시 말해서 섹스를 했을 때다. 내 뉴런이 번쩍거리며 내 뇌속의 섹스 촬영기록.avi를 뒤졌다.

‘……맞네?’

그리하여, 내 브레인-곰 플레이어는 대답했다.

베로니카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말이다.

프랑을 기절시키고 나도 잠들었던 밤에만, 난 이 녀석과 자각몽을 꾸었었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는 정액이 묻은 쥬지를 베로니카한테 흔들거나 했었지.

그 뒤로 두 번인가 더 만났지만 매번 전날에 프랑과 거친 섹스를 했었었다.

‘유일한 예외는 이번에 승급 의뢰를 나갔을 때 뿐이었지.’

그리 생각하자 뉴런의 기억이 하나둘 집결하여 합체했다.

프랑의 마나 각성을 돕기 위해서 섹스를 할 때였나. 나는 말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원초적인 마법은 다름 아닌 섹스라고.

내 불알이 상식을 밥 말아먹은 양의 정액을 뿜어내던 것도 마나의 작용이 아니던가!

몸을 겹치는 것이 셰이드라는 의식이라면, 나는 어느샌가 그 의식의 달인이 돼 있던 것이다! 세상에! 우리는 연인끼리 섹스를 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복선으로 돌아오다니!

존나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말을 잃은 나에게 베로니카는 주저하며 말했다.

“꿈에서 만날 때마다 그대의 경험 수는 비상식적으로 늘곤 하더구나. 그게 셰이드로 성립될 때가 있던 거겠지. 나는 그대와 룬의 연결을 남겨두었기에 그 결과에 휩쓸렸던 것이다.”

“……그랬구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