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0화 (200/1,009)

이제야 이해가 갔다. 자각몽을 꿔 본 적도 없던 내가 그런 이상한 꿈을 꾼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니.

‘것보다 존나 비처녀 레이더 정확도 봐. 섹스 횟수까지 다 파악하네.’

아, 너무 무섭다. 베로니카는 나랑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내가 다나랑도 섹스했다는 걸 다 알아차렸다는 말인가? 씨발 갑자기 부끄러워지네.

나는 뉴런이 흑역사를 기억하려는 것을 멈추며 말했다.

“야, 잠만 기다려 봐. 그런 거면 네가 상대가 아니어도 돼. 프랑이나 다나랑 하면 되잖아.”

아내들이랑 으쌰으쌰를 해도 셰이드의 의식이 성립된다면 베로니카가 나를 상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존나 당연한 결론이었는데, 그러므로 베로니카는 이미 다 생각해 봤다는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랬다가는 내가 그대의 꿈을 주도할 권한을 나눠갖지 못하느니라…….”

그런가. 저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두 번째로 심층세계에 진입했을 때였다. 베로니카는 저번처럼 되지 않고자 대책을 세우고 왔었는데,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대로 알몸이 돼 버리거나 했었다. 꿈의 주도권이 전부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꿈을 조종해서 오딘의 기억을 찾으려면, 베로니카가 나의 꿈을 주도해야 하는 것이었다.

“……셰이드란 게 정확하게 어떤 건데?”

나는 고민하다가 물었다.

우선 그것부터 알아두기로 한 것이었다. 베로니카는 셰이드=섹스는 아니라고 했다. 프랑이 잘못 알았을 뿐이고, 의외로 대단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를 일 아닌가!

잠깐 침묵한 베로니카가 대답했다.

“셰, 셰이드란…… 상대방의 남근을 훑어서 사정시킨 다음, 그것을 섭취하거나 몸에 바르는 걸로 충분하다. 삽입까지는 안 해도 되느니라.”

“아니 씹펄, ‘뭐가 성교와는 다르니라’야!! 그게 섹스지!!”

나는 기함하며 소리쳤다. 내 안의 언데드 유교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었다!

손만 잡아도 바람을 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널렸거늘─나부터가 그랬다─, 어찌 대딸과 정액 후루룩 냠냠이 섹스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것은 대딸방은 성적 유흥업소가 아니라며 주장하는 것에 버금가는 궤변이었다!

베로니카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성행위가 맞았으니까 그렇겠지. 오랄 섹스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그런데 그때였다. 얘기를 다 들은 아내들이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 것은.

당혹감에 입이 벌어졌다. 여기서 왜 그러냐고 묻는 멍청이는 뇌나 좆 중에 하나를 떼고 살아도 건강한 새끼일 것이었다.

나는 단박에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안 해. 난 베로니카한테 손 댈 마음 없어.”

“……왜?”

프랑이 물었다. 잔뜩 단어를 이어붙여서 길게 물어볼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도 프랑이 예시로 들거나 의문으로 생각할 말들을 다 알고 있었다.

진심에서 나오는 물음에 나는 진솔하게 대답했다.

“셰이드인가 하는 걸 안 한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여기서 베로니카랑 동침하는 건 핑계를 위한 핑계야. 안 해도 곤란할 게 없는데, 이유가 생겼다고 넙죽 손을 댄다? 그건 아니지.”

생각을 해 봤다. 프랑이나 다나가 같은 이유로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걸 그냥 넘어갔을까? 내가 없는 곳에서 같이 유사 성행위를 하고 돌아오는 것을 아~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넘어갔을까?

개소리도 섬머솔트킥이다. 나한테 손끝발끝부터 큐브 스테이크처럼 해체당하고 싶지 않으면 그딴 지랄은 하지 말기를 바라겠다.

내가 아다 시절이었으면 망설이는 척 하다가 수락했겠지. 존나 헤드뱅잉하다 경추가 뽀각나서 죽은 락 스타가 빙의된 것처럼 머리를 끄덕이며 말이다.

“내가 아내를 여려 사람 들이기로 한 건 맞아. 하지만 거기에도 선이란 게 있어.”

나는 중요한 기준을 말했다. 마침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내 생각을 말하는 날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내가 아내를 들이는 기준을 확실히 해 두자.

“내가 아내로 들이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그리고 나는 내가 아내로 들일 생각이 없는 사람한테는 절대 손을 대지 않을 거야.”

존나 당연한 소리지만 이게 중요하다.

전혀 연애감정이 없는 사람한테 손을 대고 나서, 이제 내 아내가 되라! 같은 지랄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내가 후회하지 않을 최소한의 보더 라인이었다.

‘후회하지 않을’이라는 말에는 나랑 아내들의 관계에 금이 가지 않게 한다는 뜻도 있었다.

좆을 좆대로 놀린 결과물은 파멸밖에 없다.

베로니카는 다나처럼 나를 좋아하던 것도 아니잖은가.

‘나더러 귀족들의 하렘처럼 바닥의 돈을 줍듯이 새 아내를 들이라고?’

그것도 그냥 꼴리는가 아닌가 하는 기준으로?

그렇게 해서 생겨난 하렘이 내가 원하는 미래인가?

개쌉소리다. 나는 프랑과 다나랑 쎄쎄쎄 쎅쓰하며 사는 게 훨씬 행복했다. 내가 함부로 다른 여자한테 손을 댔다가 우리 가정이 붕괴하거나 소홀해 진다면 어쩔 셈인가.

‘한순간의 쾌락이나 욕망 때문에 그딴 미친 짓을 하는 건 또라이 짓이지.’

프랑보다 헌신적이고 착한 여자가 한 트럭 있어도 프랑이 웃지 못하게 되면 좆도 의미가 없다.

다나보다 마음이 맞는 여자가 쓸어다 버릴 만큼 많아져도 다나랑 마음이 안 맞게 되면 나는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이었다.

아내들의 마음에 구멍을 뚫어가면서 품에 안을 여성을 늘리는 이기주의자 새끼는 꼴마초가 아니었다. 그냥 씨펄롬이지.

여자한테 손을 대고 책임을 안 지는 것도, 뇌에 좆 박은 것처럼 덮어놓고 다 책임을 지겠다고 설치는 것도 병신 새끼나 하는 짓이다.

결혼을 한 이상, 책임도 나 혼자 지는 게 아니게 됐으니까.

나는 눈을 반개하며 말했다.

“핑계가 생겼다고 기회주의자처럼 여자를 건드는 건 절대 사양이야. 나는 아내를 늘리는 것보다, 너희랑 꾸린 가정에서 후회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게 더 중요해.”

이세계의 문화에서, 하렘이나 역하렘의 멤버─싫은 표현이지만 딱 맞는 단어였다─는 자기 남편이나 아내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풍조가 있었다.

근본을 따져보면 일부다처-일처다부제는 원시 인류가 암컷이나 수컷을 독점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문화다.

이걸 나는 개인적으로 합법 노예라고 표현했지만, 까놓고 말해서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새끼들도 있을 것이었다. 내가 번역기로 갈려나갈지도 모른다고 다나가 말해줬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되기 싫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내가 신경쓸 일도 아니고.”

다나를 아내로 들였을 때 결의하지 않았는가. 남한테 칭찬 받는 삶은 좆까고,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해피니스 꼴마초가 되겠다고 말이다!

뭣보다 힘과 권력을 앞세워서 획득한 전리품을 아내라고 부르는 씹새가 되어 버려서야, 프랑이랑 다나한테 아침 뽀뽀도 못 받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냥 내가 꿈을 조작하는 방법을 배울게.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급하게 갈 이유가 어딨겠냐. 너희랑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던데.”

이건 진심이었다. 지난 1달 동안은 프랑이랑 다나가 내 침대에서 수련회에 온 것처럼 떠들면서 지냈는데, 존나 하루가 1초처럼 지나서 금방 승급 시험 날이 다가오지 않았던가!

“……프랑.”

“응, 알아. 다나.”

아내들은 이번에도 아이컨택을 했다. 존나 나 없는 사이에 뭔가 존나 단짝친구가 돼 버린 느낌. 좋은 일인데 외톨이로 버려진 남편놈 생각도 좀 해 주지.

나는 쓸쓸하게 그리 생각했는데, 과연 우리 아내님들은 달랐다.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둘이서 나를 양옆으로 안아준 것이었다.

노르드 가(家)의 명물인 마누라 샌드위치다. 비매품이라서 주인장만 처먹고 있다.

“아니 근데 뭐야? 왜들 이래? 나 행복하게.”

“그냥. 우리가 남편 하나는 잘 뒀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나가 내 어깨에 턱을 괴고 말하자 프랑이 백 번 옳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루. 그치만 이러면 우리 사이에 들어오고 싶은 애가 생겨도 걔는 많이 힘들겠다.”

“당연히 힘들어야지. 만약에 나를 보고 ‘두 번이 어렵지 세 번부터는 쉽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했다면 내가 뭐가 돼! 딴 녀석들도 나처럼 속 좀 썩여 봐야 된다고.”

“얘들아. 남편을 사이에 두고 귀에다가 속삭이지 말아요.”

내가 무슨 실 전화도 아니고 양쪽 귀에다가 섹시&큐트한 보이스를 다이렉트로 어택하지 맙시다. 진지한 얘기가 아직 안 끝났는데 아내들이 자꾸 매력적으로 구니까 곤란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내들의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베로니카한테 가서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한 것이었다.

“너희 종족의 저주는 내가 꼭 풀어줄게. 그러니까 이걸로 납득해 주라.”

오딘의 기억이나 과거의 유적은 나한테도 여러가지로 관계 깊은 일이었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니까 중간 과정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다.

아니, 중간에 비어 있던 미싱 링크를 채운 느낌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찾아 헤매는 것보다는 대충 방향이라도 아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보다 웬종일 나불댔으니까 걍 그렇다고 해 주라. 여기서 아니? 같은 소리가 나오면 얘기만 복잡해 진다고.

“……본심을 말하자면, 나는 그대에게 안겨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씨팔. 룬 마법으로 전음이라도 날릴 걸.

베로니카는 깊은 한숨을 쉬며 그리 말했다. 너 존나 내 마음의 소리가 안 들렸니?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대답에 내가 불판에 올린 오징어처럼 얼굴을 꿈틀대자 베로니카는 쿡쿡 거렸다.

“그러지 말거라. 내가 사과하마. 나도 모르게 그대를 예언의 당사자라고 믿고서 전부 떠맡기려 했던 걸지도 모르겠구나. 조바심에 저지른, 낯뜨거워지는 실책이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지경이다.”

“거 안 됐네. 우리 집에 있던 쥐구멍은 다 막아버렸거든.”

“아까운 짓을 했군. 테레사의 몇 안 되는 즐거움이거늘.”

테레사라는 건 저기 굴러다니는 전직 헤이스벤트 길냥이의 이름이던가?

저 표현이 베로니카의 ‘이 집에서 신세를 지겠다’는 완곡한 의사표명이었던 모양이다. 존나 귀족식 표현 같다. 내가 엘리트-대갈통을 풀 가동 안 했으면 못 알아들었다, 이거.

“부끄러움을 모르던 제안은 취소하마. 직전의 추태는 잊어다오.”

베로니카는 내가 내민 손을 양손으로 공손하게 잡더니 밑으로 내렸다.

어쩌면 그게 자기 분에 넘치는 악수를 사양한다는 애시르 신족의 예의라도 되는 것이었을까. 손을 놓은 베로니카는 대신에 자기 드레스 자락을 가볍게 들었다.

“이 베로니카 에클립시스, 애시르 신족의 말예로서 자부심을 갖고 천공신님의 후계자를 모시겠다. 이 한 몸 바쳐 성심성의를 다해 그대의 뜻과 목숨을 지키마.”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하고서 장난스럽게 윙크를 날렸다.

“그대가 우리 일족의 숙원을 풀어주거나, 먼 길을 떠나는 날까지 말이야.”

“죽거나 저주를 풀어주지 않으면 평생 식객을 달고 살아야 한단 소리냐? 임마가 끔찍한 저주를 거네.”

“그리 걱정하지 말아라. 값은 치루마.”

“셰이드로?”

“금화인 게 당연하겠지. 이 천치 같은 것아.”

이제는 원래 태도를 100% 되찾은 베로니카였다.

음. 나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설명충 빙의 OFF해도 되겠다. ─짝짝!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살핀 프랑이 장소를 일단락 짓는 것처럼 박수를 쳤다.

“모두 얘기하느라 수고했어. 목욕물 다 식었겠다. 내가 가서 데워놓을게!”

“아, 그럼 난 밥 차린다? 더 늦게 먹으면 살 찌니까.”

“요리할 거지? 나도 도와줄게.”

“일하다 온 놈은 쉬고 있으셔. ……체력 남으면 밤일에나 힘 써 주던가.”

─후다닥! 작게 쫑알거린 다나는 부끄러운 것처럼 도망을 쳤다. 며칠 못 본 동안에 뜨거운 밤이 그리웠던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

“크크크.”

우리 아내들 다 뒤졌다 씨발. 5일 동안 응어리진 내 쥬지드라의 람쥐 싼다를 우리 아내님들께서 감당할 수 있을까 몰라.나는 그런 흐뭇한 미래를 상상하며 찻잔을 치웠다.

그때 베로니카가 내 등에 대고 말했다.

“허나 그대여. 방금 전의 말대로라면 그대도 어련하구나.”

“엉? 뭐가.”

나는 찻잔을 정리하느라 바빠서 무성의하게 대답했는데, 그게 실수였다.

찻잔 같은 건 나중에 치우고 뒤를 돌아봤더라면── 베로니카가 그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나 다른 계집들이 그대에게 호감을 가지더라도, 그대는 아내들만 있으면 충분하다면서 먼저 손을 대지 않는다는 뜻 아니더냐.

허면 그대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계집은 제 속내를 모두 털어놓고 그대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 하니, 그 계책이 참으로 악랄하다 하겠다.”

전혀 생각도 못한 해석에 나는 놀라서 베로니카를 돌아봤는데.

거기에 있던 것은 한 마리의 뿔 달린 고양이 뿐이었다.

【보통 인간은 평생 홀몸으로 살아도 이상하지 않을 사고관이다만, 그게 천공신님의 후계자라면 얘기가 바뀌지. 뛰어난 자는 많은 것을 얻는 법이니까.】

베로니카는 전직 길냥이 테레사랑 장난을 치면서 ᚴ(Kaunan)의 룬으로 텔레파시를 날렸다.

【천공신님께서 사적으로 높게 평가하신 인간은 룬 문자를 하사받고 신대의 왕이 됐다 했던가. 그렇다면 신들이 침묵한 이 시대에, 그대는 본신(本身)의 힘으로 어디까지 올라설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야. 니 다시 존댓말 쓰고 싶냐?”

【쿡쿡. 멍청한 것. 이미 늦었느니라.】

나를 후계자로 모신다는 년은 다 뒤졌는갑다. 베로니카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보다 건방진 웃음소리를 남기고 2층 위로 사라졌다. 자기가 빌려쓸 방을 보러 간 듯 했다.

사르가디스로 돌아오면서 2층 손님방을 쓰다가 다른 방에 가구를 채워 넣든가 하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존나 뻔뻔한 녀석도 다 있군. 유능하니까 봐 줬다.

그리 낄낄대며 찻잔을 손에 들고 부엌으로 갔다.

그런데 식사를 준비하겠다던 다나가 부엌에 없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까 지하창고에 간 것 같았다. 찻잔을 두고 따라가 보자 식재료를 찾던 다나는 날 보고 눈쌀을 찌푸렸다.

“쉬라니까 기어이 기어와요, 아주. 힘이 남아돌지?”

“근본 없는 라임인데 존나 찰지네. 그래도 내가 이렇게 움직여서 기운을 빼 둬야 우리 눈나가 밤에 혀 빼물고 기절 안 하지.”

“야 이 씹, 좆만 큰 남편님아. 나 혀까지 빼물고 기절한 적은 없거든?”

“눈 까뒤집고 기절한 적은 있으면서.”

“……그래, 니 좆 굵다 씹새야.”

니 똥 굵다도 아니고 그런 틀니 딱딱 드립을 치다니.

나이를 먹기 시작했는지 아재 개그에 빵 터진 나는 다나의 엉덩이를 주물럭대며 식재료를 대신 들어줬다. 그런데 다나는 튕기지도 않고 한숨만 쉬었다.

“야. 노르드.”

듣기평가로는 평소랑 다를 게 없는 말투였다. 하지만 이건 다나가 감정을 컨트롤할 때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걸 다나랑 첫날밤을 겪은 날에 배웠다.

내가 왜 그러냐고 말없이 묻자 다나는 한숨을 쉬며 창고의 금고를 땄다.

“……내일 말할까 했는데, 기왕 내려왔으니까 듣고 가라. 그 지도, 5분의 1정도 복원이 끝났어.”

─덜컹. 금고를 열자 나온 것은 지저의 탑에서 발견한 그 지도였다. 다나는 금고에 펼쳐서 넣어뒀던 지도를 꺼내서 나한테 내밀었다.

“유적 위치를 여러 곳 알아봤자 손가락만 빨아야 할 테니 순차적으로 복원하려 했지. 그래서 용액에 담갔다가 복구하기 쉬워 보이는 곳부터 손을 댔다.”

다른 유적들의 위치가 기록된 고대문명 말기의 지도!

대전쟁으로 이세계 인류 문명이 쇠퇴했던 시대의 단서가 될 개쩌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걸 20%나 복원했다는 소식을 알려주면서도 다나는 어쩐지 찝찝해 하는 것 같았다.

─툭. 식재료를 두고 지도를 받았다. 마법으로 제작한 복구용액 덕분일까. 두꺼운 종이는 실수로 찢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건 잘 된 일이었다.

지도를 든 내 손에 힘이 들어가도 괜찮았으니 말이다.

“내가 일부러 거기부터 복원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

인상을 쓰는 나에게 사과하는 것처럼 다나가 말했다. 그에 나는 표정을 풀었다. 나 때문에 다나를 면목 없게 만들어선 꼴마초를 자처할 수 없었다.

“아냐, 잘 했어. 역시 우리 누나야. 마침 이쪽 지방에 가볼 생각도 있었거든.”

“……언제쯤 출발할 거냐?”

“내일 프랑도 같이 불러서 상의해 보고 정하자. 그래도 이제 가을도 끝나가니까, 대충 겨울쯤에나 출발하지 않을까?”

다나의 연구소도 궤도에 오르고 있으니까 일정 조정도 꽤 큰일일지 몰랐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다나가 고쳐준 지도를 읽었다.

그 지도에서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유적의 위치가, 나라고 하는 석사따리 브딱따한테도 존나게 연관이 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후계자라고 부른 신이 군림하던 장소이며, 룬 문자와 마법이 태어난 땅!

프랑의 고향인 드워프의 국가와도 이웃한 대륙.

야만족의 대륙이라고 불리는데도, 기술력만큼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뛰어날지도 모르는 국가.

끝으로 무엇보다── 그 여자가 있는 곳.

신화의 대륙 게르마니아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내들이랑 찐한 밤을 보낸 다음날.

우리 가족과 베로니카는 아침 식사를 하며 게르마니아 행 출장계획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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