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8화 (208/1,009)

─툭툭.

우리가 룬 스톤의 논문을 찾아서 도서관의 후미진 테이블에 앉았을 때였다. 나는 양말을 신은 발이 내 다리를 건드리는 느낌에 논문을 읽다가 머리를 들었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글을 읽는 다나.

따분한 듯 턱을 받치고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은 상반신만 보면 그 누구도 딴짓을 하고 있는 걸로는 안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테이블 건너에 앉은 나는 내 종아리를 건드리는 엄지 발가락을 느끼고 있었다.

로드브릭 대학인가 하는 이곳의 테이블은 조금 작았는데, 그렇기에 다나는 상반신을 가만히 두고 내 허벅지 안쪽까지 발이 닿았다.

아니, 어쩌면 큰 키에 어울리는 긴 다리 덕분일까.

일단 확실한 것은 다나도 나처럼 연인이 앞에 있으면 일에 집중을 못 하는 타입이라는 것이었다. 시크하게 포커 페이스를 한 주제에 남들 눈을 피해서 남편에게 짖궂게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다나의 발은 멈출 줄을 모르고 움직였다.

종아리를 건드린 발가락은 허벅지로, 그리고 내 고간으로 이동했다. 발가락이 베테랑 폭탄 해체반처럼 다리 양쪽을 1번씩 건드렸다.

─꾸욱. 내 좆이 왼쪽 다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나의 발가락은 허벅지와 바지에 포장된 남편의 자지를 깔보는 것처럼 지긋이 눌렀다.

호수를 우아하게 유영하는 백조는 수면 아래에서는 필사적으로 물장구를 친다는데.

지금 우리 아내님이 딱 그짝이었다.

“와…….”

지나가던 너드 새끼들이 다나의 미모와 이지적인 눈빛에 매료되어 그녀를 쳐다봤다.

종이 쩐내 나는 도서관에 못 보던 미녀가 부스스한 머리로 논문을 읽고 있으니까 그럴 만 했다. 꾸미는데 관심이 없는 예쁜 찐따녀, 멋진 찐따남은 세계와 시대를 초월하는 성적 판타지였으니 말이다.

물론 나는 무언의 살의를 날려서 그들을 쫓아냈다.

뜨거운 물을 부은 개미집의 개미처럼 흩어지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들. 남자와 앉아 있는 미녀에게 말을 걸 정도 패기가 있는 새끼는 평일 아침부터 도서관에 오지 않겠지.

아무튼 테이블 아래가 막혀 있어서 존나 다행이었다. 후미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기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나가 뭘 하고 있는지까진 모르는 듯 했으니까.

그렇게 내 자지를 누르는 다나였지만, 나는 그 풋잡에 사정감을 전혀 못 느꼈다.

그럴 수밖에. 내가 아무리 정력 넘치는 남자라도 양말과 두꺼운 몬스터 가죽 바지에 포장된 자지로는 자극이 모자랐다. 근데 이대로 가다가는 다나가 하루 종일 내 자지만 누르다 집에 가게 생겼다.

‘별 수 없지.’

그래, 별 수 없는 것이다. 절대로 내가 당하고만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다나가 들었으면 개소리라고 일축했을 핑계를 대며 다나의 고간에 발을 밀어넣었다.

─움찔.

다나는 아주 작게 몸을 떨었지만 표정은 그대로였다.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사실을 예상했던 모양이다. 존나 우리 아내라면 그쯤이야 간단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는가랑 버틸 수 있는가는 다른 얘기거든.’

─스윽, 스윽.

나랑 다나는 솜씨를 겨루는 무소에 빙의하여 서로의 음부를 자극했다.

만약 누가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우리가 하는 짓을 보면 굉장히 우스울 것 같았는데, 한 5분 쯤 지나자 그럴 걱정은 없어졌다.

“흐읍…….”

왜냐하면 다나가 자신의 쾌락을 참기 위해서 발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공격은 최고의 방어이다. 공격을 포기했다는 건 다나가 더 이상 공세를 취할 여유가 없다는 뜻! 냉정한 척 하며 입술을 깨무는 다나였지만 내가 멈춰줄 이유는 없었다. 선전포고도 없이 선빵을 때린 것은 다나니까.

나는 무자비하게 발가락을 놀렸다. 청바지와 팬티를 넘어 다나의 보지를 밟았다. 엄지 발가락을 좌우로 조금씩 비틀어가며 돌렸다. 페이지를 넘기는 다나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조용하게 다나의 보지를 노크했다.

주인의 방문에 열광하는 하녀처럼 다나의 청바지 위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열기와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아내의 보지를 괴롭히면서도 내 상반신은 침착하게 논문을 읽는 학자의 자세를 선보였다.

“……흑, 큭.”

─꾹꾹. 고요 속의 괴롭힘이 이어졌다.

나는 회중시계를 꺼내서 테이블 위의 다나한테 내밀었다. 해 봤자 10분 지났을 뿐이다.

발에 쥐는 안 나냐고? 나는 초인이다. 이 정도 움직임은 별 문제도 안 됐다.

“……츠으으….”

침을 삼키며 다나가 목울대를 울렸다.

이제 논문에는 눈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양 팔꿈치를 몸에 붙이고 입술을 깨무는 다나. 고개를 숙인 얼굴은 앞머리에 가려져서 보이지를 않았다. 간혈적으로 떨리는 몸은 억누르지 못한 쾌락의 반동이었다.

─움찔움찔. 다나는 이를 악물며 허리를 뒤로 뺐다.

그래도 의자를 빼거나 하며 싸움에서 도망가려고는 안 하는 모양이었다. 과연 야만족의 피가 흐르는 학자라고 해야 할까. 태생과 노력이 쌓아온 자존심이 도망은 용납하지 못 하는 거겠지.

그런데 세상사가 어디 자기 자존심만 가지고 헤쳐나갈 수 있을 만큼 녹록하던가.

후퇴도 작전의 하나였다. 그것을 납득 못 한 이상, 다나는 고작 발가락 하나에 자기 보지가 패배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마나로 예민해진 내 촉각이 다나의 고간에 차오른 습기가 절정 직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나의 보지를 마사지하듯이 밟았다.

다나는 참지 못하고 절정했다.

“……앗, 흣…!”

테이블에 80도의 각도로 몸을 숙이는 다나. ─파들파들. 제 몸의 떨림을 숨길 여유도 없는 것인지 우아하게 폼을 잡던 상체까지 떨어댄다.

원래 무너지기까지 시간 문제였던 성벽이다.

보지를 밟는 발에 힘을 더 넣자 다나는 나한테 절을 하는 것처럼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조차 안 나는 모양이라서 내가 대신 망을 봐 줬다. 나한테는 그럴 여유가 충분히 있었으니까.

퓨우우우….

그때 내 발바닥에 희미하게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두꺼운 양말에 숨어서 아주 약하게 시냇물을 맞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내가 한 말이지만 정확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휴으, 휴우…… 휴우…….”

다나의 허덕임이 조용하게 빨라졌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존나 궁금하긴 했는데, 여기서 아내한테 얼굴을 보여달라고 강요할 만큼 못된 놈은 아니었다.

나는 회중시계를 회수해서 시간을 봤다.

“16분. 오래 버텼네. 만족했어?”

다나는 고개도 들지 못했다.

여자는 현자타임을 못 느낀다고 하는데, 내가 아는 다나는 저지른 다음에 후회하는 타입이었다. 말하자면 정신적인 현자 타임을 느끼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지기 싫어서 억지를 부리거나 자기한테 안 맞는 반박을 펼쳤다가 죽고 싶어하던 게 대체 몇 번째던가. 사르가디스에서도 존나 자주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보통 이렇게 역관광을 당하든 운 좋게 이겨버리든 1~2일은 이불킥을 해대고는 했다. 그러고도 안 고쳐지는 걸 보면 이게 다나의 천성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늘도 무정하게도, 오늘의 다나한테는 현자 타임을 느낄 시간도 없는 모양이었다.

“다나 베르베이아 박사님?”

우리에게 어느 여성이 말을 걸었다. 브리타니아 어였다.

나는 저 사람도 옆을 지나가는 이용객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약간 놀랐는데, 도서관에서 애액으로 하초를 적신 채로 자기 이름을 불린 다나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멍하니 고개를 든 다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다나 뒤에 서 있는 여성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말했다.

“하트리엘 학장님이 부르십니다. 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 지………… 지금, 이요?”

죽을 힘을 다해서 평정을 가장해서 대답한 다나. 조각하다 만 바비 인형처럼 엉망진창인 얼굴이었기에 말을 건 여성도 조금 놀란 듯 했다.

“컨디션이 안 좋으시다면 시간을 드릴 수는 있지만, 저는 베르베이아 박사님을 데려오라는 지시만을 받아서 시간 조정까지는 못 해드려요.”

“……그, 그, 저기, 적어도, 10분 정도만이라도….”

얼어붙은 얼굴로 말하던 다나는 자기 어깨에 걸쳐진 코트에 나를 쳐다봤다. 내가 몰래 일어나서 우리 아내님 옆으로 온 것이었다.

“다나. 교수님도 아니고 학장님이라시잖아.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세상 다정하게 다나가 벗어서 의자에 뒀던 코트를 입히고 단추를 끝까지 다 채웠다. 자, 이걸로 그라데이션이 생긴 우리 아내님의 축축한 하반신은 아무도 못 보겠지.

지금 잠깐 보니까, 말도 못 할 정도로 느껴버린 것 치고는 고간만 살짝 젖은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 아…….”

설마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몰랐는지 다나는 어휘도 잊고 절망을 해버렸다. 근데 존나 당연하게도 나는 뉘신지도 모를 학장한테 내 아내의 개껄리는 추태를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품위 있게 웃은 나는 학장의 심부름을 온 여성에게 사죄를 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아내가 뱃멀미도 참고 연구를 하러 왔다가 컨디션이 무너졌나 봅니다. 10분 정도만 휴게실에서 쉬었다가 찾아뵈도 되겠습니까?”

“10분 정도라면요. 휴게실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절대 딴길로 못 새게 하려는지 아예 안내까지 도맡는 여성. 나는 몸을 떠는 다나의 어깨를 안으며 일으켜세웠다. 몸을 떠는 다나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렇게 된 이상은 어쩔 수 없어. 휴게실에서 말려줄게.”

…………끄덕.

야외 플레이(절망편)의 현실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우리 아내님.

휴게실의 칸막이에서 내 <타오르는 손길>에 고간을 다림질 당한다는 희대의 굴욕까지 겪은 다나는, 이성을 조금 되찾고 눈물 고인 눈으로 말했다.

“씨발……. 이제 뒤지는 한이 있어도 집 밖에서 이런 미친 짓은 안 할 거야.”

“진짜로? 좋아하는 것 같던데.”

취향의 문제 이전에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배덕감은 성적 쾌락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아다가 첫 경험에 긴장해서 삽입하자마자 싸버리는 것처럼.

내가 그리 말하자 다나는 십자가로 왕복 뺨따구를 쳐맞은 서큐버스처럼 나를 쳐다봤다.

“너, 혹시라도 프랑한테까지 이딴 짓 하는 날에는 나한테 뒤진다.”

“이건 프랑이 나한테 가르친 건데.”

다나는 자기 미래를 본 목장의 양처럼 딸꾹질을 했다.

다나의 옷을 말려서 우리의 음란 풍기문란 유사 성행위를 안 들킬 거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우리 부부는 학장실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와 주셔서 고마워요, 베르베이아 박사. 내 자네에게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어서 소식을 듣고 불렀습니다.”

짜잘한 서론은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해서.

그 하트리엘이라는 이름의 학장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예르나 그라시에 교수의 제자셨다죠. 맞습니까?”

“그라시에 교수…… 님, 말씀이십니까?”

다나는 인상을 쓰며 본의가 아니라는 것처럼 예르나에게 존칭을 썼다.

경직된 학계에서 자기 스승이었던 교수에게 말을 까는 건 미친 짓이었다. 이제는 같은 랩실에서 일하는 사이가 아니어도 그년이 다나보다 짬과 경력은 더 높았으니까.

하지만 나를 향한 연심을 눈치채고 내 아이를 낳겠다고까지 마음 먹었기 때문일까?

다나는 카르미네 대학 시절이랑은 전혀 다르게 예르나를 진심으로 혐오하고 있었다. 마지 못하며 붙인 존칭은 그래서였겠지. 다나는 방금 전까지 쪽팔려하던 걸 잊어버리고 진지한 자세가 되었다.

당연히 나 역시 그 씨팔련의 이름이 나오자 간만에 눈썹이 꿈틀했고 말이다.

“그라시에 교수는 카르미네 대학과 계약이 만료되고 저희 대학으로 전근을 왔답니다. 혹 모르셨나요?”

우리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학장 할매는 부연설명을 했다.

여기에 예르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처럼 대학이랑 식자층이 흔하지 못한 이세계다. 나라마다 대학이 수십 개씩 존재할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물류 이동이 활발한 교역도시에 떡 하니 자리를 잡은 로드브릭 대학은 게르마니아의 탑급 대학이었다. 예르나를 교수로 고용할 정도로.

일부러 여기에서 논문을 조사하러 온 것도 로드브릭 대학이라면 빠트린 논문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그 년이랑 만나봤자지.’

나랑 다나는 이번 출장 중에 예르나를 족치는 건 시기상조라고 생각을 했었다. 학계에 우리 목소리가 훨씬 더 커지기 전에는 그년을 조지는 게 별로 좋은 답은 아니었으니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어쩌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내가 지금 당장 예르나 년의 목을 딴다고 내 논문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은가?

역으로 예르나의 논문을 탈취하려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언론몰이를 당할 수도 있었다. 이세계판 노벨상인 천익장 수상자를 살해한 천하의 씹썅놈년들로 여겨지면 우리가 좆 된다. 이겨도 이긴 게 아닌 것이었다.

“알고는 있었습니다. 일부러 찾아뵐 마음은 없었지만요.”

“……그러셨습니까?”

다나가 싸늘하게 대꾸하자 학장 할매도 대충 분위기가 굴러가는 걸 눈치깐 모양.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가 씹창난 랩실은 권태기가 온 중년 부부만큼이나 널린 것! 다나가 예르나를 혐오해도 좆도 이상하지 않으니, 이 할매도 눈치가 있으면 대화의 물꼬를 바꾸겠지.

‘애당초 이 할매는 어떻게 다나의 경력을 알고 있지?’

예르나 그 년이 설마 자기 노예를 자랑하고 다녔겠는가.

우리는 이 대학에 정식으로 출입 기록을 남겼다. 다나는 고고학 박사, 나는 그 호위인 실딱이 모험가로 서명했다. 다시 말해서 로드브릭 대학 놈들이 우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신분과 이름 뿐이었다.

근데 이렇게 다짜고짜 불러서 예전 경력을 읊는다니?

이건 사전에 다나의 이름과 신분을 알고 있었다는 말밖에는 안 됐다.

거기다가 왠지는 몰라도 대학에 방문한지 몇 시간만에 학장한테 소식이 들어가거나, 호출을 내리거나 한 것 아닌가. 이건 예르나 년한테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소리였다.

‘다나를 타겟으로 잡고 조사한 것은 아니겠지.’

예르나 때문에 그 년의 옛날 경력을 조사하다가. 카르미네 대학의 랩실에서 연구원생 일을 하던 ‘다나 베르베이아 석사’를 기억해 뒀던 게 아닐까.

아무튼 학장 할매는 다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지자 사죄를 했다.

“베르베이아 박사의 신원을 조사한 것은 사죄드릴게요. 제가 조급해진 나머지 실수를 했군요. 예르나 교수가 벌써 1달 가까이 행방불명이다 보니…….”

“……이해합니다. 그러실 수 있죠.”

다나는 대충 대답했다. 물론 학장 할매가 진짜로 미안해서 사과한 건 아니겠지만, 물러나는 흉내라도 내 준 것이 어디인가. 사회인이라면 타협도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것보다 학장 할매가 뱉은 말에 신경이 쏠렸기에 그 무례함을 삿되게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라시에 교수님께서 행방불명이시라고 하셨나요?”

다나는 화제를 돌리려는 학장의 말에 넘어가 주기로 한 듯 그리 물었다. 학장 할매는 슬픈 소식을 말하는 것처럼 표정을 바꾸었다.

“예. 이유는 모르겠지만 1달 전부터 연구실에 출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택에도 출입한 흔적이 없고요. 해서 저희도 어떻게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물을 수는 없을까 하다가, 베르베이아 박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죠.”

“연구나 조사로 출장을 나간 건 아니고요?”

착각이 아닌지 묻는 것처럼 다나가 고개를 모로 꼬았다.

물론 억측 가지고 일류 대학의 학장이 몸소 움직이진 않을 것이니, 다나의 질문은 좀 더 얘기해 보라는 리액션에 불과했다.

“저희 대학에서는 그라시에 교수가 언질도 없이 혼자서 길을 떠나지는 않았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라시에 교수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전폭적인 연구비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자의로 소식을 끊었을 가능성은 희박하겠지요.”

이해가 안 간다는 것처럼 말하는 학장 할매.

저 말이 맞다면 이상한 일인 것은 확실했다. 예르나 년은 수십 년 넘게 다른 귀족이나 후원자를 못 잡고 독고다이로 연구하던 년이라서, 연구비에는 악착같았으니까.

아무 말도 없이 날랐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또 나 같은 피해자를 발생시킬 생각으로 논문을 닌자한 건 아닐 것이었다. 누군가한테 쫓기고 있다고 봐야 했다.

‘짐작가는 이유도 있지.’

나는 사르가디스의 집에 엄중하게 숨겨둔 타뷸라의 지령서를 떠올렸다.

─현(現) 최우선 추살지정자. 고고학자 예르나 그라시에.

검은 종이에 뻘건 글씨로 적혀진 불길한 지령서.

그 내용에 대해서는 프랑과 다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행방불명이라는 소식에는 걱정이 많이 됩니다만, 제게도 연락은 없으셨습니다.”

다나는 들키지 않게 표정 관리에 힘썼다. 호위인 나는 소파에 앉지 않고 서 있었기 때문에 학장 할매가 속을 들여다보려는 상대는 다나 뿐이었다.

“그라시에 교수님과는 상당히 오래 알고 지냈습니다만, 아무런 연통도 없이 수십 일이나 자리를 비우시는 건 그 분답지 않은 일이긴 하군요. 모종의 사정이 있으셨던 게 아닐까요?”

“예. 그 사정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없는지 여쭤보고자 두 분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말이죠. 교수님과는 사적인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고, 마지막으로 뵀을 때도 저는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기 바빴습니다. 교수님도 전근 준비로 정신이 없으셨고요.”

정중하게 대답하는 다나. 구라를 깔 필요도 없으며 진짜로 영문을 모르기도 했기에 다나는 답을 버벅거리지도 않았다.

“저는 오늘 학계에서 맡은 연구소의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어서, 그라시에 교수님이 행방불명이 되셨다는 소식도 학장님께서 말씀해 주실 때까진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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