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209/1,009)

“……알겠습니다. 괜한 수고만 끼쳐드렸군요.”

학장 할매는 다나의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알 수는 없었겠지만, 최소한 다나한테서 원하는 답을 듣지는 못할 거라는 사실은 알았나 보다.

하긴 이렇게나 싫어하는 티를 내는데 눈치 못 챌 정도면 그 사람은 살면서 눈치를 발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었다. 그런 인간은 일류 대학의 학장 자리를 따지 못 했을 것이고 말이다.

“바쁘신 와중에 감사했습니다. 돌아가 보십시오.”

“예. 환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나는 학장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인사는 중요하다. 다나가 박사급이라서 나와준 거지, 원래는 학장 씩이나 되는 사람이 시간을 변통해서 질문할 일은 아닐 것이었다.

여기서 무례하게 굴면 학계에서 안 좋은 소문이 나고 말 것이었다. 개인의 원한을 애먼 사람한테 화풀이하는 짓은 어느 집단에서든 욕을 먹으니까.

우리는 복도로 나와서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중에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할 말이 없거나 분위기가 곱창나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시도서관에 온 우리는 벽을 등지고 누가 다가오면 바로 보일 곳에 앉아서 필담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행방불명. 그거 때문이겠지?

나랑 붙어앉은 다나가 노트에 글자를 썼다. 나도 펜을 들었다.

─쫓기는 건 확실하다고 본다. 문제는 왜 쫓기냐는 건데.

─남편 바보야? 짐작가는 게 그 논문 말고 달리 있어?

내 발을 아주 살짝 밟으면서 글자를 적는 다나.

단락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었다.

내가 타뷸라의 지령서를 찾았던 것은 논문을 닌자당하고 1달도 안 된 뒤였다. 그 사이에 예르나가 타뷸라네 집단에 미친 어그로를 끌진 않았을 것이었다.

예르나 년이 예전부터 어그로를 끌었던 게 이제 와서 터졌을 확률도 0%에 수렴했다.

‘만약 옛날부터 위협을 받았었다면, 내가 그 년을 따라서 유적을 탐사다닐 때 타뷸라 짭들한테 습격을 당했겠지.’

하지만 카르미나 대학에서 나간 투어에서 예르나를 쫓아와 죽이려고 한 놈들은 없었다.

즉, 예르나 년의 실종은 최근에 벌어진 무언가가 원인이라는 점에는 나도 동의했다.

최근 벌어진 일 중에 가장 커다란 사건이, 나한테서 쌔벼간 논문으로 학계에서 이세계판 노벨상을 탄 일이라는 것도 존나 팩트였고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이 말은 언뜻 로지컬한 결론인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단 말이지.’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근데 생각해 보니 납득이 안 가더라고.

─?

─생각해 봐. 만약 천익장을 받은 논문 때문에 그 사단이 난 거라고? 그럼 우리한테는 왜 아무런 어프로치가 없지? 저 학장 할매처럼 우리를 잡아다가 위치를 캐는 게 효율적이지 않아?

천익장.

그 이세계판 다운그레이드 노벨상은 예르나 그 쌍년이 나한테서 닌자해간 논문으로 획득한 상이었다.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만큼 예르나의 신상도 사방으로 퍼졌고 말이다.

입술을 핥은 다나는 반듯한 글자로 할 말을 적어내려갔다.

─씨발, 그렇네. 그 논문은 예르나가 브리타니아의 카르미네 대학에서 쓴 거라고 알려졌으니까, 거기 소속이던 우리한테도 그 놈들이 찾아왔어야겠네.

─그리고 와서 좋게좋게 말하고 가지는 않았겠지. 듣기론 최소 1달은 예르나를 못 찾고 있었을 거 아냐. 추살 인원의 일부를 우리한테 돌려도 됐을 텐데, 안 그랬잖아.

타뷸라네 검은 조직이 뭐하는 집단인가는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그 논문이 원인이라면, ‘논문을 쓰는 걸 도왔을 수도 있는’ 카르미네 대학 고고학부의 연구원생들한테도 뭔가 손을 쓰는 게 보통 아닐까.

이래서는 마치 예르나 년 외에는 좆도 관심이 없어 뵌다는 듯 하지 않은가.

─니가 말해준 대로라면 단체(團體)로는 어떨지 몰라도, 그 새끼랑 그 새끼의 윗대가리한테서는 구신이니 제물이니 하는 종교색이 보였어. 자기네 교리에 엿 먹이는 논문이라서 쫓아갔다든가,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 그치만 그 이유란 게, 신성모독자는 닥치고 몰살한다든가 하는 느낌은 아냐.

만약 그랬다면 논문 내용이 학계에 퍼질대로 퍼져버린 지금은 고고학계=이교도라며 죽이고 돌아다니는 놈들이 나왔을 것이니까.

─뭐하는 집단이든지, 걔네는 확고한 이유에 따라서 활동을 하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타겟이 되지 않은 거야. 어쩌면 그 놈들 사이에서 예르나만 죽이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온 거 아닐까?

내가 그렇게 적자 다나는 빠르게 이어가던 필기를 멈췄다.

그러다가 종이 끝에 작게 적었다.

─예르나를 찾으면 어쩔 거야?

아, 이 화제는 저번에 얘기할 때도 따로 안 했었던가.

내 인생의 범위나 목표가 마구잡이로 늘어났다 넓어졌다 하고 있어서일까. 그때는 설명하면서 예르나에 대한 얘기가 낄 여지가 없었었다. 주제에서 조금 엇나간 내용이기도 했고 말이다.

다나가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솔직하게 적었다.

─용서할 일은 없어.

그 년에게 무슨 이유가 있고, 이 세상에 어떤 또라이 새끼들이 돌아다니고 있든.

나는 그 여자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 날, 나랑 다나는 해가 질 때까지 로드브릭 대학의 도서관을 조사했다.

하지만 룬 스톤의 진짜 쓰임새에 대한 논문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하나도 말이다.

우리는 노을 물든 도시를 내려갔다.

나랑 다나는 점심 먹는 시간을 빼고 5시간 반을 도서관에 죽치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 전에는 돌아가겠다고 말해놨기에 아까 막 대학을 나온 상태였다.

“야. 노르.”

다나가 아무렇게나 한 말에 응답하는 나.

나는 이마에 ᚲ(Kenaz)의 룬을 새기고 발동했다. 룬 스톤의 버프 효과가 적용되는 것인지 평소보다 오감이 약간 더 예민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장비한 룬 스톤이 많다고 효과가 몇 배로 늘어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옥새와 ᛏ(Teiwaz)의 룬 스톤을 가지고 있지만 저번에 썼을 때보다 효과가 강해진 느낌은 안 들었다.

약간 아까웠지만 당연한 일이니 넘어가자.

‘단품의 버프 효과는 옥새가 더 세군.’

신화시대의 창술 수련법을 저장한 룬 스톤이어도 룬 마법의 버프 효과는 돌의 질에 좌우되는 듯 했다. 마나 배터리 능력이 있는만큼 옥새에 쓴 룬 스톤은 품질이 뛰어난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쫓아오는 사람은…….’

나는 강화된 감각으로 인기척을 조사했다. 추격자는 없었다.

“천천히 가. 안전해.”

“흐응. 대학은 멀쩡한가 보네.”

다나는 입맛을 다셨다. 안심감 반, 아쉬움 반이라는 느낌이었다.

나도 애석한 기분으로 이마를 긁었다.

‘타뷸라네 조직이랑 로드브릭 대학은 무관계인가.’

대학은 흑막이 아니었다. 그냥 돈을 주고 고용한 교수가 1달째 월급 루팡질을 해서 빡쳤을 뿐. 만약 대학 새끼들한테 켕기는 게 있다면 우리한테 사람을 붙였을 것이었다.

그래서 만에 하나를 걱정한 나는 여관에 돌아갈 때까지 ᚲ(Kenaz)의 룬을 유지했는데, 나랑 다나를 쫓아오는 인기척은 없었다.

─끼익. 방으로 돌아와서 복귀인사를 박았다. 여관의 문은 기름칠을 존나 했는지 매끄럽게 열렸다. 파티원들이 침대에서 노닥거리다가 일어났다.

“선배~. 어서오세요~♥!”

“다녀왔구나.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옛날 생각 나서 좋았지.”

“구라까고 앉았네. 좋아가지고 테에엥~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애~ 이 지랄했냐?”

“사실 대학 시절 생각나서 헛구역질 났음.”

나는 유일하게 인사를 안 해준 베로니카를 찾다가 침대에 박제처럼 뻣뻣하게 굳은 망아지를 발견했다. 그래도 발굽은 깨끗해 보여서 다행이다. 침대가 더러워지진 않았겠다.

근데 이 방 침대가 4개인데 쟨 오늘 어디서 자냐.

“베로니카는 왜 저래?”

“아핫♡ 저한테 괴롭힘 당하셨거든요! 기어이 1번은 완전 기절하셨다가, 프랑 언니가 쓰다듬어주셔서 아까 전에 깨어나셨답니다.”

“아아. 상성빨에 떡발린 거구만.”

새우 알레르기 환자한테 간장새우초밥을 계속 먹인 거랑 비슷했다.

바이콘의 저주가 목숨의 위험은 없다지만 생리적인 혐오감에 기절하기 딱 좋은 모양.

“조사는 어땠어?”

프랑이 내 외투를 받아들며 물었다. 다나는 장기간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목이 뻐근했는지 어깨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헛걸음이었어. 룬 스톤 논문도 그렇지만 우리가 갈 유적의 정보도 없더라.”

“……후자는 당연하다 치더라도, 전자는 잘 된 일이구나.”

베로니카가 말했다. 앓는 소리가 불치병 말기 환자의 유언 같았다. 그리 말한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가 내 얼굴을 보고 말을 바꾸었다.

“아니로군. 그대한테는 일이 잘 풀린 것이라 여겼다만,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지? 표정이 별로 좋지만은 않구나.”

“그래. 생각하기 나름으론 룬 스톤을 연구하는 건 포기하는 게 좋겠더라.”

직접 말하고 나니까 생각보다 배알이 꼴렸는데, 놀란 것은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라리루라가 내 안색을 살폈다.

“갑자기 왜요? 선배, 무슨 일 있었어요?”

“이제부터 말할게. 그런데 베로니카? 혹시 너 여기서 나누는 대화가 바깥에 안 들리게 할 수 있냐? 남이 엿들으면 곤란한 얘기인데.”

“간단한 부탁이구나. 맡겨다오.”

신족 모드로 변신한 베로니카는 작은 돌조각을 방 곳곳에 깔고 룬을 발동했다. 여관방의 벽이 번쩍거렸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 영감은 벽을 덮은 마나를 파악했다. 결계였다.

“소리가 바깥에 나가지 않게 했느니라. 1시간은 괜찮겠지.”

“땡큐. 다들 이리 모여. 오늘 알아낸 것부터 얘기해 줄게.”

파티원들을 모아서 예르나의 소식과 조사 결과를 자세하게 얘기했다.

“……그래? 그 사람이?”

예르나가 행방불명이 됐다는 얘기에 프랑은 입술을 一자로 만들었다. 여기서 혼자 예르나 년이랑 내 옛날 얘기를 모르는 라리루라만이 고개를 모로 꼬고 있었다.

“그 예르나라는 사람이 선배의 옛날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은 무슨. 지인~짜 나쁜 사람이야.”

라리루라의 질문에 프랑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

아이고, 우리 프랑 화내는 얼굴도 귀엽다. 나는 프랑을 안고 뺨을 마구 비벼댔다. 프랑은 얼굴이 풀렸지만 화는 안 가라앉는지 입술을 삐죽거렸다.

“라리루라. 너는 우리 남편놈 옛날 얘기 못 들었었어?”

다나가 수통의 물을 마시다가 묻자 라리루라는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댔다. 예전 기억을 되살리려는 것 같았다.

“그게요~? 선배가 입국 절차에서 착오가 있어서 노예가 됐었다는 거랑~ 지금은 고고학 석사시고, 현장직? 이라는 걸로 일하신다는 것밖에 몰라요.”

“그 정도면 개요는 다 아네.”

납득하는 다나. 분명 내가 골렘 토벌대에 참가하기 전에 이 녀석한테 얘기했던가 했었다.

그때에는 논문 도둑질을 당했단 얘기를 하기도 뭣해서 넘어갔었다.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고구마 500배인 얘기니까 알아봤자 기분만 잡칠 뿐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대충 설명을 하기로 했다. 라리루라만 모르는 것도 우스우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나는 전직 노예 석사의 장절한 비극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 논문 도둑년이 어떤 또라이 조직한테 쫓기고 있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렇게 말해주다 보니까 배에 똬리를 튼 빡침이 솟아나서 열불이 났는데, 라리루라의 반응은 나보다 극적이었다.

“……아핫♥ 완전 역겹네요?”

서커스걸의 익살맞은 분위기는 엿 바꿔먹었는지 라리루라는 진심으로 경멸을 드러냈다.

미인의 경멸 어린 표정은 임팩트가 장난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라리루라한테 저런 식으로 욕을 먹으면 마음의 상처를 입고 꿈에 나와버릴 것 같았는데, 라리루라도 내가 놀라는 걸 보고 당황했는지 허둥지둥 표정을 수습했다.

“앗, 죄송해요! 선배 때문이 아니니까요? 그 예르나라는 사람이 역겹다는 거라구요?”

─끄덕끄덕. 라리루라의 말에 100% 공감하는 것처럼 상하왕복 헤드뱅잉을 하는 우리 프랑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프랑도 예르나를 경멸하는 건 같은 모양이었다.

라리루라는 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아무튼! 그 사람, 실종되서 잘 된 거 아니에요? 여기서도 선배한테 한 것 같은 몹쓸 짓을 하다가 혼쭐이라도 났겠죠.”

“그 여자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는 알 바 아니지. 정말로 누구한테 붙잡혀서 위험에 처해 있어도, 우리 남편놈의 원수인데 구해줄 의리는 없잖아? 그보다 생각해야 될 건 룬 스톤이랑 유적 쪽이지.”

─탁! 다나는 뚜껑을 닫은 수통을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다시 말할게. 조사를 하면서 필담으로 얘기를 나눠 봤는데, 나랑 남편놈은 룬 스톤 연구에서는 손 떼기로 했어.”

다나가 그리 말하자 파티원들이 동시에 입을 열려고 했다. 앞뒤를 자르고 결론부터 꺼냈으니까 의문이 솟아났던 거겠지.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받기에 앞서서 선수를 쳤다.

“다들 궁금해 할 것 같으니까 먼저 말해둘게. 룬 스톤으로 논문을 안 쓰기로 한 건, 이득에 비해서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했서야.”

“위험성이요?”

질문을 되묻는 라리루라. 뭐가 위험한 거냐고 묻는 듯 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룬 스톤의 연구 결과가 전혀 없다는 건 이상하니까.”

그 대답은 다나가 해 주었는데, 그 대답 한 번에 궁금증이 해결되지는 않았던 건지 프랑도 다나에게 물었다.

“이상해? 룬 스톤은 엄청 희귀하다며.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 수도 있잖아.”

“나도 프랑의 말에 동의한다. 신들께서 저주를 내리신 이후, 인간족, 드워프족, 엘프족에서는 룬을 배우고 가르치는 문화가 쇠퇴했지 않으냐.”

룬 스톤을 모았던 베로니카도 그 가설에 한 표를 던졌다.

“거기에 룬 스톤도 현대에는 희귀한 물건이 아니더냐. 룬 술사가 룬 스톤을 손에 넣을 확률은 잠깐 생각해 보아도 그리 높지 않다. 그대와 같은 발견을 한 자가 이제까지 없었을 만 하느니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문제야.”

“……무슨 의미더냐?”

내가 진지해 보이자 파티원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반발이 아니라 경청의 자세였다.

“룬 스톤의 영상은 룬의 마나를 불어넣기만 해도 작동돼. 암만 귀중한 물건이어도 그렇지, 수백 년 동안 이걸을 얻어서 마나를 불어넣어 본 인간족 룬 술사가 아무도 없었겠어?”

─톡. 나는 ᛏ(Teiwaz)의 룬 스톤을 보란듯이 꺼냈다.

“이건 그냥 영상 재생 효과만 있는 돌이 아냐. 룬 마법을 강화하는 돌이지. 분명 역사 상의 룬 술사 중에 누군가 한두 명 정도는 룬 스톤을 손에 넣었을 걸. 마법사라면 자기 전문 분야의 아이템을 원하는 게 당연하니까.”

“선배. 그건 더 싸고 좋은 물건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룬 스톤은 보석처럼 무지 비싸지만, 마법을 강화하는 마석 같은 건 그것 외에도 잔뜩 있다구요?”

라리루라가 손을 들며 말했다. 같은 값이면 역사적 가치와 희귀성을 평가받는 룬 스톤보다 마법 강화 효과가 쎈 마석을 구하지 않았겠냐는 소리였다.

하지만 다나는 라리루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 말도 맞지만,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얻지 못했다는 건 역시 위화감이 있어. 룬 술사도 따지고 보면 마법사야. 연구를 하려고 목돈을 들인 사람 쯤은 있었겠지.”

“……그런 건가요? 아뇨, 선배나 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거겠죠.”

라리루라는 우리를 믿어주는 듯 했는데, 사실 우리한테도 증거는 심증밖에 없었다. 정말 기적적인 확률로 나한테 연구 소재가 넝쿨째 굴러들어온 걸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만약 이게 지나친 생각이 아니라면? 나는 손가락을 손등에 세웠다.

“들어봐. 이건 가능성의 문제야. 드워프들이 팔이 짧아서 활을 쏠 줄 모른다고 하면 다들 납득하겠지만, 그래도 수백년 동안 어떤 드워프도 활을 써 본 적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으응. 그렇네. 들을수록 뭔가 이상하긴 하다.”

프랑이 자기 손을 쥐락펴락 했다. 내 비유에 실감이 오기 시작한 듯 했다.

“영상의 내용을 봐. 룬 스톤에 염소 젖 짜는 법까지 기록해 놨는데 이게 귀한 물건이었겠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룬 스톤도 보편적인 기록 매체였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흔하던 룬 스톤이 찾는 것조차 어려워졌지. 신화시대부터 고대문명 말까지 간극이 길었다지만 이렇게나 수상한 일이 쌓이면 불길할 수밖에.”

다나가 내 말을 받았다. 침대에 앉은 베로니카는 하얀 다리를 꼬며 턱을 괴었다.

“……그대들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이제 좀 알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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