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3화 (213/1,009)

프랑의 검지에 앉아서 진짜 참새처럼 깃털을 고르는 참새 골렘. 아마 정령화의 술식이라는 건 대충 골렘을 원격 드론으로 만드는 마법이 아닐까.

내가 육포랑 말린 생선으로 소환하는 바이오 생체 드론에 비하면 뒤졌을 때의 양심의 가책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겠군. 지속력과 사정거리는 동물들이 더 뛰어나겠지만 말이다.

자고로 옛말에 이르길, 세상에 약한 스탠드란 없댔으니까.

“부탁해.”

프랑은 참새 골렘과 이마를 맞대고 창밖으로 날려보냈다.

룬 마법을 부여한 청동 거울을 꺼내자 참새 골렘의 시야가 거울에 비쳤다. 말하자면 골렘 사역마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참새 골렘은 어색하게 날개짓하며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물을 조사하자 당연하다는 것처럼 발견되는 큰 구멍! 참새 골렘은 바닥에 착지해서 구멍에 들어갔다. 날개짓은 마나랑 소리 때문에 들키기 쉽기 때문이었다.

구멍 안은 뒤지게 캄캄했다.

빛이 없어도 앞이 보이는 골렘이 아니었다면 답이 없을 정도였다. 태생부터 눈깔이 없는 자토이치 참새라서 다행이다. 장님이라 살았다.

음성지원이 안 되는 청동 거울에 구멍을 비춰가며 대쉬를 하는 참새 골렘. 30분 정도를 이동하자 횃불이 보였다. 역시 안에 누군가 살고 있다. 존나 우리의 집단 지성이 제대로 당첨을 뽑은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밝혀진 유물의 비밀 통로의 정체에 프랑은 작게 신음했다.

“……지하 묘지(Catacombs).”

망령도시의 지하에는 수백 구(軀)의 백골이 잠들고 있었다.

‘아니 씹, 지하묘지라고?’

청동 거울을 들여다보던 나는 우물 안으로 이어진 묘지의 꼬라지에 인상을 썼다.

웬 지하묘지? 우리가 찾는 고대문명의 유적이 아니라, 이 도시의 옛날 묘지일까? 씨발거 우물가 근처에 백골이 쌓여있다니 소름이 돋았다. 24시간 원효대사 해골물이라니, 식인종 식당도 아니고.

“잠깐만요, 프랑 언니. 일단 숨어요! 횃불이 있으니까 누가 돌아다닐지도 몰라요!”

“아니, 숨기 전에 묘지의 양식부터 비춰 줘! 연도부터 분석해야지!”

“다나. 자중해야 한다. 이 마법으로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누가 접근해도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니라. 몸을 피하는 것이 옳다.”

─소근소근. 의견을 내뱉는 파티원들. 사공이 많아서 배가 맨틀로 가는군.

“일단 숨을게.”

프랑은 숨는 것을 택했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었다. 침착하게 가도록 하자.

어둠에 숨어서 돌멩이처럼 굳어버린 참새 골렘은 감시 카메라처럼 묘지를 촬영했다. 아즈테카의 유적처럼 두개골이 벽면에 빼곡히 박혀 있어서 존나 징그러웠다.

저기 있는 단지는 설마 유골함인가? 죽음의 기척이 가득한 공간에 우리는 침을 삼켰다.

라리루라가 팔뚝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여기, 저희가 찾는 유적은 아니겠어요. 포션을 이런 곳에 보급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직 몰라. 묘지 양식은 고대문명 말기랑 비슷해. 대전쟁 도중이라면 병사들이 임시 셸터로 썼을 수도…… 아니, 그랬어도 백골에 시트 정도는 씌웠을 건데.”

고뇌하는 다나. 나는 일단 청동 거울에서 고개를 돌렸다.

작은 손거울이었기에 사탕을 둘러싸서 핥는 강아지처럼 프랑을 포위한 파티원들. 상황이 이런데도 다나는 고양이 자세라서 좀 음란해 보였다.

안전지대로 기어오는 언데드나 다른 모험가가 없는지 보고 다시 청동 거울을 조사했다.

“……움직인다?”

프랑은 파티원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참새 골렘을 날렸다. ─호다닥! 기둥이나 쥐구멍 같은 곳에 숨어서 다음으로 숨을 곳을 미리 찾고 달린다. 리얼타임 솔리드 스네이크였다.

어쌔신 참새가 지하묘지를 가로질렀다.

이 놈의 묘지는 얼마나 넓은 것인지 벽이라는 벽마다 백골 가득한 귀신의 집 같았다.

4자리 수에 달한 것 같은 백골들!

잘못하면 비현실적인 느낌에 무감각해질 법도 한데, 화질이 낮은 청동 거울의 영상에서는 뼈 모형 따위가 흉내내지 못할 귀기(鬼氣)가 뿜어져나왔다.

이런 곳에서 밥 먹고 잠 자는 새끼가 있다면 절대로 제정신일 것 같지 않았다. 사람 시체로 밥그릇이나 수저를 만들어 놓는 연쇄살인마 같은 놈이겠지.

“함정이 고장나 있어.”

그때 프랑이 무너진 통로를 보며 말했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역시 누군가가 먼저 이 유적을 탐험한 것이었다.

별로 놀라울 것은 없었다. 원래 이쪽 일이 다 이따위니까.

홉 고블린 때만 해도 몬스터가 신전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고대문명의 숨겨진 유적이면 어떻겠는가. 먼저 와서 밑천까지 다 털어가고 소문도 안 내는 새끼들이 똥 싸 놓고 갔을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 뉘신지 모를 새끼가 함정을 해체해 놨으니까 편하기는 하겠군.’

우리는 함정에 쫄 것 없이 안을 둘러보기만 해도 되었다.

존나게 잘 된 일이었다. 만약 ‘선객’이 안에 남아 있다면 안에서 한가롭게 골렘으로 함정을 해제하지 못 했을 것이었다. 이 주먹만 한 참새 골렘으로 미리 해체해 둘 수도 없고 말이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며 조사하는 우리.

하지만 사람의 집중력은 무한하지 않다.

1시간이 되자 지하묘지의 음산함도 적응되기 시작했으며 이 묘지에 갓 들어왔을 때의 긴장감도 사라져갔다. 방음 결계랑 상관없이 나타나는 언데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식이 산만해지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그러한 의식의 이완을 노린 것처럼 거울 속에 나타났다.

“……흡!”

참새 골렘을 조작하던 프랑이 입을 틀어막았다. 라리루라도 엉덩방아를 찍었다.

몰두하고 있었기에 자기가 실제로 잠입 중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일행은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튀어나왔을 때처럼 극명하게 기겁을 했다. 나도 밖을 경계하고 있지 않았으면 아내들 앞에서 추태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이나 참새 골렘이 발견한 시체는 이질적이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미라다.

얼굴에 쓴 가면은 박살이 나서 왼편만 드러났는데, 안구는 말린 대구처럼 쪼그라들었다.

피부색이 갈색으로 변색된 비쩍 마른 여자의 시체다.

“까, 깜짝이야, 씨발…….”

“나, 나도 조금 놀랐다.”

놀란 가슴에 손을 얹고 헉헉거리는 다나. 베로니카도 자기 뿔의 뿌리를 잡고 있다. 뭐지 시발. 바이콘 족의 멘탈 치유법인가? 뿔을 잡으면 마음이 진정되나?

아마 남자가 고추를 긁으면 기분이 진정되는 거랑 비슷한 게 아닐까.

─샤샥!

프랑은 순간의 판단력으로 로브의 후드에 파고들었다. 참새 골렘의 몸을 숨기며 조사를 하려는 생각일 것이었다. 더럽긴 하지만 임기응변 존나 오졌다.

미라의 목덜미를 비춘 프랑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죽은지 얼마 안 된 시체일까?”

“미, 미라니까 오래 된 거 아닐까까여어……?”

아직 일어나지도 못한 라리루라가 울먹거리며 대답을 했다.

“자기 몸도 못 겨누면서 성실하게 대답하기는. 자, 손.”

“으흐읏……. 역시 선배밖에 없어여어…….”

─엉엉. 눈물을 짜는 라리루라를 손을 잡아서 일으켰다. 얜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니까 우리보다 더 놀랐는가 보다. 자기 가슴을 누르며 바닥을 보는 라리루라.

“선배. 여기 어디에 제 심장 안 떨어졌죠?”

“명치에 손 대 보든가. 쿵쾅대고 있으면 붙어있는 거겠지.”

“……가슴 때문에 모르겠어요.”

“그런 거까지 일일히 말할 필요 없어요.”

─빡! 라리루라한테 딱밤을 놔 주고 거울의 영상에 집중했다.

말이 좋아서 미라지, 정식 의식을 거친 찐퉁 미라랑은 달라 보였다. 막말로 걍 말라붙은 시체였다. 눈깔까지 고대로 남아 있지 않은가. 다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시발. 난 이런 애매한 시체는 연도파악 못 하는데.”

“나도 시체를 조사하는 방법은 몰라…….”

우리 아내들은 백기를 들었다. 다나는 전공이랑 거리가 좀 달라서였고 프랑은 아예 문외한이어서였다. 하긴 사망추정시간을 조사하는 법이라니, 보통 살면서 배울 기회가 없겠지.

“야, 남편님아. 너 이런 거 잘 알지 않냐?”

“잘 알다고 하지 마. 라리루라가 날 무서운 새끼로 보잖아.”

“네? 저 그런 적 없는데요?”

“아니 좀.”

자기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는 것처럼 0.1초만에 말꼬리를 잡는 라리루라.

하여튼 얘도 은근히 골치 아픈 녀석이었다.

“됐다. 봐 볼게.”

나는 21세기 영화와 드라마에서 본 지식을 총동원했다.

FBI부터 한국 감식반까지 온갖 배우들이 나불대던 지식을 나의 엘리트-대갈통에서 퍼올렸다. 영화 감독들의 프로 의식을 믿어보자. 부디 그들이 고증을 제대로 해 줬기를.

“프랑. 골렘을 옷 안으로 들어보내 줘.”

나는 근처에 사람이 없다는 게 확정되자 지시를 내렸다.

내가 시킨대로 로브에 파고드는 참새 골렘.

여성이라도 비쩍 마른 미라 시체는 음심을 품을 부분이 좆도 없었다. 까놓고 말해서 징그럽기까지 하다. 도움이 못 될 거라며 눈을 가린 라리루라가 부러울 정도였다.

‘부패 증세가 없군.’

사람의 시체는 하루만 지나도 혐짤로 변해버린댄다.

피부가 얇은 배, 고간, 겨드랑이에서는 혈액 때문에 변색이 생기며, 시간이 계속 흐르면 부드러운 부분은 부패 가스로 팅팅 부풀어오른다던가.

이 미라에는 그런 증세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공기가 안 통하는 지하묘지에서 시체가 미라가 되다니?

나는 입술을 깨물고 질문했다.

“베로니카. 저 묘지의 마나, 온도, 습도 같은 건 어떻게 알아낼 방법 없어?”

“들어가 보지 않는 한은 어렵다.”

“역시 그런가. 프랑, 싫은 일을 시켜서 미안해. 계속 찾아봐 줘.”

“아냐. 괜찮아.”

프랑은 남편놈 한정수량의 헤픈 웃음으로 나에게 대답했다. 나이트 비전의 참새 골렘이 미라의 몸을 조사했다. 썩어가는 시체가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일까.

─바스락바스락. 음성 지원이 됐다면 그런 소리가 들렸을 것 같은 움직임 끝에 참새 골렘이 로브에서 나왔다. 부리에 뭔가를 물고 있다.

다나는 그것을 알아보고 입을 딱 벌렸다.

“……꽃?”

하얀색 꽃이었다. 단언컨대 시체랑은 전혀 안 어울린다.

다나가 뭔가 말하려는 것을 어깨에 손을 얹어서 막았다. 품 안의 노트를 꺼내서 예전에 네페르티티가 해줬던 얘기를 다시 읽었다.

‘이 새끼…… 임모르탈리스의 흑마법사 아냐?’

유니콘 흑마법사랑 같은 단체에 가입한 사악한 씹새!

물론 이 미라가 병신새끼 마냥 지들 단체에 소속감을 가지고 유니폼을 입거나 문신을 하지는 않았기에, 확실히 그렇다는 단언은 못 하겠다. 하지만 느낌적인 느낌이 그랬다.

나는 임모르탈리스의 정보를 적어둔 페이지를 펼쳤다. 관계자한테 들키면 좆되는 정보였기에 암호화는 해 두었다. 한글을 바탕으로 개조를 거친 노르드 문서다.

‘셊곖쵮곲횞삾콦낪밊’ 같이 써 놨으니까 들켜도 인생 종칠 걱정은 덜 해도 됐다.

‘어디, 그 새끼 이름이…… 아비두스였지 참.’

노트에 적어둔 이름을 보자 그 씹새의 얼굴도 떠올랐다.

내 추리대로라면, 그 아다 유니콘 흑마법사에겐 2개의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이란 네페르티티를 골렘 엔진으로 가공하는 것과 지저의 탑을 찾는 것이었다. 그 벌레박이 유니콘이 짰던 작전은 궁극적으로 그러한 2가지 목표를 위한 포석이었을 것이다.

‘아비두스가 지저의 탑을 찾던 이유는 99% 엘릭서 때문이었겠지.’

엘릭서는 부러진 뿔을 고치든 연구비로 바꿔먹든 개이득인 아이템!

그 새끼는 자기 뿔을 고치고 네페르티티를 골렘으로 만들 재료비까지 구해서 사르가디스를 날를 생각이 아니었을까. 나는 노트를 회수하며 혀를 찼다.

존나 상상도 못한 곳에서 잊어버리고 있던 적이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네페르티티가 개인주의 집단이라고 해서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습한 지하에서 미라가 된 여자와 그 시체에서 자라나 있는 꽃! 나는 100% 진심을 담아서 진절머리를 냈다.

모즈리운의 지하묘지에게 우리 파티는 세 번째 방문자였다.

처음 와서 함정을 해체한 생전의 미라가 첫 번째.

그 여자가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 죽인 자가 두 번째다.

“프랑. 일단은──.”

거기까지 생각한 내가 프랑에게 골렘 조작을 부탁하려고 했을 때였다.

“윽……?!”

청동 거울의 영상이 갑자기 끊기며 프랑이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나는 하려던 말도 잊고 화들짝 놀라서 프랑을 붙잡았다.

“프랑!! 왜 그래?!”

“아, 아냐. 골렘이랑 연결이 끊겼어. 머리가 살짝 지끈거린 것 빼고는 멀쩡해.”

이마를 붙들은 프랑이 대답했다. 청동 거울을 주워서 손바닥으로 쓸어본 베로니카가 정색을 했다.

“정찰을 보냈던 골렘이 물리적으로 파괴됐구나. 들켰을 가능성이 크다.”

“들켰다고?”

꽃을 뽑아버린 게 원인인가? 아니면 골렘의 시야의 사각에 있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골렘을 박살냈다는 얘기는 묘지의 새로운 주인이 우리의 정찰을 눈치챘다는 소리였다.

두두두두두두…….

그 생각을 뒷받침하려는 것처럼 들려오는 발구름 소리! 내 품에 안겨 있던 프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좀비야! 숫자는…… 최소 수십 마리!!”

망령도시의 언데드들을 조종하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나는 프랑을 놔 주고 창을 집었다. 파티원들이 전투할 준비를 했다. 창밖의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좀비떼가 접근해 온다!

“다들 준비해! 우물로 들어간다!”

“들어갈 셈인가?! 그대여, 여기서는 도망치는 게 현명하다!”

“거리로 나가봤자 중과부적이야! 숫자 차이가 너무 나!! 저 안에 들어가서 입구를 막는다!!”

암만 초인이라도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마나랑 맞다이를 뜰 수 있겠는가! 우리는 창밖으로 뛰어내려가 우물로 달렸다. 이 파티에 2~3층 정도 점프해서 다칠 사람은 없었다.

─휙! 우리는 끊어져가는 우물 도르래를 잡고 내려갔다.

라리루라의 꼭두각시도 몸을 비틀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높이였다. 우물이 상당히 깊었지만 밧줄이 튼튼했기에 착지는 간단했다.

“OOOOAAAAAA!!!”

바닥에 내려온 나는 위를 봤다. 씨발, 보지 말 걸! 좀비들이 우물 구멍을 내려다보며 신음을 흘려대고 있었다!

“줄! 줄 끊어!”

프랑이 나이프로 도르래의 줄을 끊었다. 탈출? 빠져나갈 방법이라면 목숨부터 챙기고 생각하자!

“저, 저 미친!!”

뭔가 마법을 쓰려고 했는지 성표를 겨누던 다나가 갑자기 포기하고 비명을 질렀다.

“야!! 빨리 들어가!! 저 새끼들 뛴다!!”

그 새를 못 참고 줄 없이 번지 점프를 해대는 좀비들!

우리는 물 위에서 말라 죽어가던 민물장어처럼 지하묘지의 구멍에 달려들었다. ─콰지직!! 추락해서 죽어가는 좀비들이 체액을 튀겨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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