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륵!
내면세계에서 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화려한 마나가 나를 감쌌다. 나는 창대에 이마를 대고 기도를 바치는 것처럼 마나를 끌어올렸다.
응축돼 있던 분노가 해방되어갔다.
감정이란 소모재이기에 낭비하면 사라진다.
그렇기에 나는 지난 시간 동안 예르나 년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아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몇 달에 걸쳐서 농후하게 모아둔 분노를 해방했을 때, 나는 그것이 내 의식을 송두리째 휘저을 만큼 강력한 증오를 동반했어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화르르르르르륵─!!!
시야를 물들이는 순백의 분노! 폭발하는 감정이 잘 벼려진 창으로 화(化)했다!
나는 모아온 분노를 포효와 야수회귀의 마나로 뿜어내었다.
“모가지 딱 대, 이 개썅년아아아아아!!!!!!!!!!!!!!!!!!!!!!!!!!!!!!!!”
전속력으로 보법을 밟으며 예르나에게 근접했다.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혀를 찬 예르나가 손을 뒤로 당겼다. 마나가 그 손바닥에 모여들었다.
“재미없기는. 기대 이하였어.”
슈르르르륵─!
─퍼어엉!!!
예르나는 마나로 생성한 물의 구체를 물뿌리개처럼 우리한테로 흩뿌렸다. 물이라고 해서 얕봐서는 안 된다. 무영창으로 썼지만, 저것은 박하사탕보다 굵은 물방울을 고압력으로 사출하는 물 속성의 고위 마법이었다!
깔보다가 제대로 쳐맞으면 샷건에 맞은 돼지 정육처럼 뼈와 살이 분리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좆도 신경쓰지 않고 눈만 가리며 대쉬했다. 등 뒤에서 다나가 으르렁거리는 외침을 내질렀다.
“내 남편한테 손 댈 생각 마, 방부제 할망구야!!”
─파아앗!!
북극에서 보이는 오로라 커텐처럼 실드가 나의 앞을 지켰다. 다나가 펼친 방어마법이 예르나의 마법을 차단해버린 것이다. 내가 이유도 없이 우리 눈나를 힐탱이라고 불렀겠는가.
“아하하하핫!! 어설퍼!!”
하지만 다나의 무영창 마법 솜씨를 예르나가 모를 리 있나. 예르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빛의 커텐이 사라지는 걸 기다렸다가 2번째 마법을 뿜어냈다.
─퍼퍼퍼퍽!
내 몸에 물방울이 총알처럼 부딪혔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눈을 부릅뜨는 예르나에게 사나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법 내성? 룬이구나!”
“템빨이야, 썅년아!!”
공격 마법 내성을 높이는 ᚦ(Thurisaz)의 룬!
그것을 매직 아이템으로 만들어서 파티원들한테 나눠준 건 게르마니아에 오기 전의 일이었다. 실제로 물방울의 산탄은 다른 파티원들에게도 작렬했지만 부상자는 없었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다들 제대로 장비하고 있는지 확인까지 했다.
예르나의 마나가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게 아니라면 광범위 마법으로 우리를 쓸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아하하하핫!! 기대 이하라는 말은 취소할게!! 아이템이 의존하는 건 꼴사납지만!!”
“능력이 되면 템빨도 실력이지!!”
나는 일갈하며 찌르기를 날렸다. 내 창은 예르나의 모가지가 있던 곳을 헛방쳤다. 예르나가 물 찬 제비처럼 창을 피해낸 것이었다.
예르나는 마나로 신체를 강화할 줄 아는 년이다. 나도 간단하게 맞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예르나는 내 창과 라리루라의 <마법의 화살>을 회피했지만, 손을 들며 작은 압축 실드를 무영창으로 펼쳤다.
카앙─!
실드에 부딪혀서 금속 불꽃을 피우는 나이프!
프랑이 예르나의 회피를 예측하고 던진 투척 공격이었다. 실드를 펼친 것은 그리 하지 않았으면 못 막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후후후, 생각보다 실력이 있구나! 모험가들 상대로는 따분했는데, 지루하지는 않겠어!”
예르나는 식었던 물이 다시 끓는 것처럼 광소를 터트렸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저 년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최소 골드 클래스 모험가에 버금가는 마법사였다. 지하묘지에 둥지를 텄던 흑마법사 년을 족친 것을 보면 힘을 숨기고 있었을 가능성도 컸다.
지금은 다구리를 까고 있지만 예르나가 진심을 내면 누구 하나는 반드시 다치고 말 것이었다. 저 년이 방심하고 있을 때 모가지를 따 놔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5대 1은 조금 귀찮은걸!!”
“그러게 누가 아싸로 살랬냐 찐따년아!!”
무시하고 공격하려고 했던 나는 발에 밟히는 이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잉! 이끼에서 화살처럼 튀어나온 넝쿨 줄기가 내 턱주가리를 노렸다!
“──씨이팔!”
뺨에서 3cm 떨어진 곳을 날카로운 넝쿨이 관통했다. 숨이 턱 막혔지만 찰나지간에 회피에 성공한 것이었다. 나는 이끼에서 물러나며 혀를 찼다.
존나 성큰 콜로니도 아니고, 이건 또 뭐라는 말인가! 이런 마법은 예르나 년이 같이 탐사를 하면서 보여준 적이 없었다!
‘역시 실력을 감추고 있었나.’
내가 이끼가 핀 곳을 주의하며 대처를 생각했을 때였다. ─휘익! 예르나가 지하묘지의 벽에서 레버를 내리는 것처럼 손을 휘저었다.
와르르르르─! 토사에 벽이 무너지며 백골이 쏟아져나왔다. 뭘 하려는 건지 모를 리가 없었다. 베로니카가 룬의 마나를 끌어올리며 경고했다.
“그대여! 묘지의 마나가 움직인다! 강령술이다!”
“정답이야! 신들에게 버려진 짐승 치고는 눈치가 빠른걸!”
숨 쉬는 듯한 패드립은 언데드의 퍼레이드를 동반했다. 묘지를 뒤흔들며 기상 나팔을 울리는 뼈 병사의 군세는 마치 잘 나가던 시절의 추억에 사로잡힌 틀딱과도 같았다!
“Hyaaaaaaaaaaaa!!!”
바닥을 부수며 기상하는 스켈레톤들! 나한테도 친절하게 3마리나 붙여준 모양이었다. 바이킹 투구를 낀 쌍도끼 스켈레톤들은 180cm인 나보다도 등빨이 컸다.
“이 개씨팔 통뼈 새끼들!!”
“Huuuuuuuuuyaaaaaaaa!!”
내츄럴 본(Bone) 언데드들은 도저히 생물로는 안 보이는 끔찍한 꼬라지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것들의 안와에서 불을 뿜는 푸르스름한 불꽃을 보고 승기를 파악했다.
“너희가 온 곳으로 돌아가라!!”
창대를 놓았다. 나는 월드컵 우승팀의 선수가 리프팅을 하는 것처럼 창대의 끝을 발로 찼다. 무게중심, 타격점, 기술력 점수가 모두 10점 만점인 선수만이 가능한 절기였다.
쐐애액─! 팔의 3배 각력을 가진 창은 스켈레톤 바이킹의 대가리에 직격했다. 언데드는 그것 정도로는 죽지 않았다. 자기들 동료의 머리가 막대를 단 츄팝춥스가 됐는데 다른 2마리한테서는 망설임을 볼 수 없었다.
타앗─! 창을 찬 발로 진각을 밟으며 도약했다. 내가 있던 곳을 스켈레톤 바이킹들의 도끼가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랐다.
나는 아크로바틱한 회피를 성사시키며 머리에 창대가 꽂힌 스켈레톤의 턱을 잡았다.
“극사(極死)──”
초인의 완력에 짐승의 야성이 더해졌다. 나는 야수회귀와 신체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서 스켈레톤을 이불을 털듯이 휘둘렀다.
“──툼스톤 파일 드라이브.”
콰아앙─!! 스켈레톤이 머리부터 땅바닥에 내려꽂혔다.
“Hyu, oooooo…….”
묘비(Tombstone)가 돼 버린 스켈레톤이 증발하며 관절을 대신해서 뼈를 이어주던 마나가 끊어졌다. 안와에서 영혼의 빛이 사라졌다.
스켈레톤은 분류하자면 레이스나 고스트 같은 사령(死靈) 몬스터!
뼈만 남은 몸으로 움직이는 것은 마나와 영혼이다. 그리고 이 놈들은 영혼으로 움직이는 놈들이었다. 안와에서 엿보인 불꽃은 이 새끼들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저 3마리가 지하묘지의 최대전력일까. 생전에는 강력한 전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군.”
그리 읊조리자 내 뒤통수를 귤처럼 쪼개 버리려는 2쌍의 도끼가 휘둘러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창에 깃든 마법을 발동했다. ─팽그르르! 내 룬으로 강화된 <꼭두극>이 도끼를 쳐냈다.
시간으로는 1초도 되지 않는 한 순간의 길항! 나는 창대가 힘겨루기에서 밀려나기 전에, 스켈레톤들의 갈비뼈를 수도로 두들기며 백스텝을 밟았다.
“내가 너희를 기억하마.”
─툭툭. 간지럼조차 못 느낄 약한 접촉이었다. 소매치기도 이것보다는 강하게 부딪힐 것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 닿은 고대문명의 바이킹들은 심장을 도둑맞은 것처럼 삐그덕거리다가 무너져내렸다.
뼈 무더기로 돌아간 놈들의 안와에서 영혼의 빛이 꺼졌다.
저것은 심령사진처럼 보통 사람도 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영혼이었다. 저리도 강력한 영혼을 가졌으니, 저 새끼들은 지저의 탑에서 랜덤 가챠로 튀어나오던 대장 벌레놈에도 지지 않을 강력한 언데드였겠지.
손에 닿는 영혼을 모두 성불시킬 수 있는 내가 아니었다면 고생 좀 했을 것이다.
“흐음. 실버 클래스 모험가 팀도 생채기 하나 안 입고 해치운 언데드들이었는데, 그걸 순식간에 해치워 버리네?”
예르나가 흥미로 놀람을 감추었다. 나는 창을 회전시키며 손아귀로 붙잡았다.
가오를 잡거나 적의 칭찬에 설레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저 썅년의 분위기가 1초가 머다하고 진지해지는 것이 불길함을 불러일으켰다.
“아하하하핫!! 노르 너, 정말 몰라보게 강해졌구나? 하여튼 간에, 인간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사는 걸 너무 서두른다니까.”
섬뜩하게 웃은 예르나가 드디어 진심으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삶을 서두르면, 그만큼 죽음도 가까워지는 법인데.”
─쿠오오오오. 국소적 천재지변처럼 공기가 떨렸다. 겁먹을 이유는 좆도 없었지만 나는 제자리를 고수했다. 접근하면 바닥에서 솟아난 식물이 공격할 것니까.
“Hyaaaaaaaaa!!!”
그래도 가만히 있었다가는 스켈레톤들에게 다굴을 맞게 될 것이었다. 나는 뼈 병사의 군세를 관찰했다. 대충 봐도 저 놈들은 양산형이다.
보통이라면 좋게 봐야겠지만, 영혼이 없는 언데드라면 내가 성불시켜서 해치우지 못할 것이었다. 싸구려 적이 오히려 더 처치 곤란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마나를 끌어올리는 예르나에, 10미터 앞에서 쏟아지는 수백 구의 스켈레톤들!
존나 절체절명이라는 말도 버거울 상황이었는데, 나는 침착하게 상황의 역전을 기다렸다.
오늘은 우리 파티의 메인 딜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으니 말이다.
“빛의 검(Claiomh Solais).”
다나가 읊조리며 손을 들었다. ─채앵! 검이 칼집에서 뽑히는 것만 같은 소리를 내며 공중에 빛으로 이루어진 양날검이 생성되었다.
빛의 검이 바닥에 꽂혔다.
파아아앗─!! 아무 것도 없는 바닥에 꽂힌 검은 섬광탄처럼 빛을 뿜어냈다. 빛을 쐰 스켈레톤들은 전기 오븐에 노출된 살얼음처럼 녹아버렸다.
“Hyaaaaaaa?!”
다나가 딱 하나 배웠다는 대 언데드 퇴치 마법! 유적에서 나오는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상성에서 우위를 얻는 공격이라 습득했다고 들었다.
다음 타자는 베로니카였다. 신족 모드에서 발동하는 그녀의 마법은 이번에도 명불허전이었다. ᛊ(Sowulo)의 룬이 커다란 크기로 베로니카의 등 뒤에 날개처럼 떠올랐다.
일렬로 피어난 6개의 룬 마법진!
태양을 방불케 하는 빛과 불꽃의 이중속성 마법이었다. 활 시위를 놓는 듯이 해방된 마나가 뜨거운 압축 불꽃의 열선(熱線)이 되어서 이끼로 덮힌 묘지의 구석을 마구 휘저었다.
쿠화아아아아아아악─!!
6마리의 작은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는 것처럼 지하묘지가 불타올랐다. 지하에서 쓸 기술은 아니었지만 공간이 넓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었다.
“화끈해진 레후.”
불꽃은 자비 없는 신의 심판처럼 피어올랐다. 베로니카는 그 불꽃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일까. 불은 이끼 밖으로 번지 않으며 예르나가 있던 장소를 불태웠다.
화르르륵─!
타닥, 타닥…….
스켈레톤 군세는 전멸했다. 예르나도 불꽃에 감싸여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전투태세를 유지했다.
‘다나의 마법은 예르나도 알고 있어.’
내가 예르나의 물방울 산탄 마법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저 년도 다나의 빛의 검 마법을 잘 알았다. 다나가 유적을 탐험하며 저 마법을 쓴 것은 한 손으로 꼽지 못할 만큼 많았으니 말이다.
‘스켈레톤은 시간 끌기에 불과해.’
어디까지나 유적의 방어 시스템을 가지고 놀았을 뿐이다.
교수급의 고고학자라도 전문 흑마법사도 아닌 저 년이 어찌 언데드들을 수족처럼 조종한다는 말인가? 이 유적의 원래 용도가 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이걸로 싸움의 승패가 갈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타닥…… 타닥…….
1초가 10분 같은 일시소강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예르나가 깔아두었던 이끼가 불살라지고── 거기 남은 것은 백화(白花)의 꽃봉오리였다. 마차도 감쌀 것 같은 초대형의 꽃! 그것이 아침햇살을 맞은 나팔꽃처럼 펼쳐졌다.
그 꽃잎 틈새에서 진녹색의 무언가가 움직였다고 생각한, 바로 그때였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든 0.1초의 순간, 꽃잎이 튕겨나며 수류탄이 터지는 것처럼 벌려지더니 굵은 넝쿨이 나에게로 날아들었다.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기적이었다.
콰앙──!!!!
방어에 성공했는데도 운석이라도 맞은 것처럼 의식이 잠깐 날아갔다. 신음이나 비명을 내지르지도 못했다. 방어한 창대가 부러져서 반토막이 났다!
애미, 이게 얼마짜린데!
“──이게!!”
내가 무릎을 꿇자 분개한 프랑이 나이프를 휘둘렀다. 허나 넝쿨은 눈이 달린 것처럼 그 공격을 피해버렸다.
살랑거리며 벽과 바닥을 기어가는 넝쿨! 물러간 것이 아니었다. 뱀처럼 치켜든 끄트머리가 프랑과 다나를 노렸다. 마치 다른 모험가들도 이런 식으로 납치했다는 것처럼!
“──이 좆 같은 귀쟁이 년이 누굴 건드려!!!!!!!”
솟아난 분노가 팔다리에 힘을 채워넣었다.
─콰아앙!! 나는 넝쿨에다 핀을 박는 것처럼 부러진 창을 내리꽂았다. 방어력은 그만큼 대단하지 않은지 넝쿨은 참수된 뱀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염병. 쳐맞은 직후에 너무 무리했나. 나는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았다. 무협지도 아닌데 살다살다 내상이라는 걸 다 입어보는군.
다나가 나를 안고 힐을 걸어주었다. 입에 고인 피를 뱉자 피비린내 맛이 났다.
수 초 간의 경악에서 벗어난 파티원들은 상황변화에 맞춰서 움직였다.
“<복사 방출(Emission of Radiation)>!!”
살기등등하게 외친 라리루라가 최대 화력의 물리 레이저 포를 꽃잎의 방패에 대고 발사했다. 단발 위력으로는 우리 파티에서 손 꼽힐 파괴력의 포격은 타겟에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날아갔다.
─콰아아앙!! 나무랄 데 없는 위력으로 적중하는 포격. 하지만 라리루라의 안색은 창백했다. 꽃잎에서 빠져나온 두 번째 넝쿨이 직격당하기 전에 포격을 방어해버렸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일까. 모기향처럼 돌돌 말린 넝쿨은 라리루라의 포격에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그걸 좋다고 생각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저것들이랑 똑같이 생겨먹은 넝쿨이 문어발처럼 지하묘지에 펼쳐졌으니까 말이다.
“미안해~? 이 마법은 힘 조절이 어렵거든~. 나도 모르게 그만 있는 힘껏 때려버렸어.”
백화의 꽃잎이 안에 있던 반투명한 진주를 뱉어냈다. 그건 실드를 펼친 예르나였다.
“그래도 안 죽고 버텨줬구나. 아주 잘 했어. 성적을 매겨줄 수 있다면 A+를 줬을 거야.”
─쿡쿡. 예르나는 넝쿨과 연결된 꽃잎에 올라서서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약하게 해 볼 테니까, 또 버텨 주련?”
상황은 존나 최악이었다.
나는 다나의 힐을 받으며 혀를 찼다. 저 니미럴 싸이코패스년. 예르나는 뉴비를 괴롭히려고 좆밥 무기로 PVP를 뛰는 든 고인물처럼 우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존나 악질적인 것은 방어구는 풀템으로 꼈다는 점이다. 존나 마법사 새끼가 버프를 떡칠하고 말뚝딜을 날려대니 앞길이 막막했다.
저 양심없는 꽃잎과 실드의 이중장벽을 뚫고 딜을 박을 수단이 있을까? 라리루라의 풀컨딜을 몸빵으로 씹는 꼴을 보니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였다.
나는 관찰력을 풀발(풀로 발휘)하여 예르나를 살폈다.
‘……염병. 체력이나 마나는 별로 소모한 것 같지가 않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베로니카의 마법을 버틴 것은 그럴 수 있다지만, 거기에 [email protected]로 라리루라의 레이저(물리)까지 쳐맞은 것이다. 아무리 목둔 철괴의 술법을 켜고 버텼어도 지친 기색이 전혀 안 보인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끕이 암만 차이가 나도 그렇지, 고등학생이 각 잡고 날린 살인 펀치를 가드하면 프로 복서도 표정 정도는 굳어야 맞았다.
저런 고화력의 연속공격을 버텼으면 지친 기색이라도 보여야 했다.
‘여유를 가장한 허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