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빔은 말할 것도 없이 <얼어붙는 손길>과 <구름 소환>의 술식 결합.
예르나를 뒤쫓은 비행도 <구름 소환>.
피날레를 알린 불꽃축제는 베로니카가 썼던 룬 마법.
그리고 이 모든 기술을 뒷받침한 마나는 망령도시에 퍼진 어둠과 음의 마나를 수취(收聚)해서 발동한 것이었다.
유적을 찾아온 흑마법사도 다루지 못 했던 자연의 마나를 자기 수족처럼 다루는 마법 솜씨라니! 내가 내 의지로 저지른 일인데도 얼떨떨해서 믿겨지지가 않았다.
써재낀 마법들도 개조에 개조를 가해서 원형이 쥐뿔도 안 남은 수준이었다. 존나 어떻게 하면 손바닥이 시려지는 수족냉증 마법이 진(眞) 썰렁포가 되는지 몰겠다.
하긴 세상의 현상을 룬 문자 수십 개만 있으면 전부 설명할 수 있다는 오딘이다.
훈민정음이 기본 자모 24개와 복합 자모 16개로 별의 별 말을 기록할 수 있는 것처럼, 오딘 급의 매지컬 IQ가 있으면 마법의 기본 형태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떻게 쓰는 건지는 마법이 풀리자마자 까먹어버렸지만, 내 머리로 직접 마법을 분석하고 개조하면서 느낀 바로는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안다는 느낌이었다.
‘내 마법 재능은 좋게 쳐 줘도 평범한 수준인데.’
지금까지 애들도 돈만 내면 배울 수 있는 쪼렙 마법이나 배우던 나다. 그런 내가 버프기 하나로 저렇게나 바뀔 줄이야.
그야말로 마법의 신으로써의 면목약어(面目躍如)였다. 저런 능력의 원래 주인인 오딘이 신화시대의 종말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는 게 오싹할 정도다. 대체 뭐랑 싸우다가 뒤졌니.
씨발 원시 고대 이세계 존나 무섭다. 그 시절에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우주를 날아다니면서 방사열선을 쏴댔을 것 같다.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몸에는 부작용도 없는 듯 했다. 뒤처리까지 확실한 버프였다.
‘그래서 시발, 그 버프는 어쩌다 발동한 거죠.’
그게 제일 궁금한데 말이지.
일단 오딘이나 그 분신이 오다 주웠다며 버프를 나눠줬을 확률은 0%였다.
꿈에서 나는 뒤졌으니까 도움은 안 된다고 못을 박고 갔던 도이치 괴력난신년 아니던가. 뭣보다 예르나를 줘패고 갈아버린 건 내 의지였다.
짐승처럼 날뛰었던 것도 그렇다. 그때 나는 진상 손님을 상대하다가 빡쳐서 눈이 돌아간 알바생 같은 상태였다. 분노에 이성을 잃어서 저지른 일이긴 한데, 내가 벌인 일은 맞다는 뜻이다.
‘것보다 오딘이 대리랭을 뛰었다면 제대로 된 마법을 썼겠지.’
마법의 신이 뭐 땀시 궁여지책으로 남의 대가리에 저장된 마법을 고쳐가며 쓴다는 말인가! 그리고 가장 커다란 이유는 내가 그 분노에 잠식되는 듯한 감각에 데자뷰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야수회귀.
야수회귀. 야수회귀다. 모든 궁금증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직감했다. 내심 생각하고 있던 추측을 이제는 가설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을.
‘야수회귀는 분노를 내 힘으로 바꿔.’
그리 확신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오딘도 분노가 나를 키우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었으니 이건 팩트가 맞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었다. 야수회귀의 레벨 업 조건은 강렬한 빡침이다.
그런데, 그리 말하기에 앞서 오딘은 이렇게도 얘기했다.
광기에 물들지 말고 분노를 길들이라고 말이다.
오딘이 그 조언을 생전에 남겨뒀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 찐퉁 TS 닉 퓨리는 내가 어떤 꼴을 겪게 될지 그때부터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아마 이렇게 분노에 휩싸여 날뛰는 것은 빠른가 늦은가의 문제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야수회귀를 얻은 뒤부터 쭉 그랬던가.’
유적 경비를 하며 야수회귀를 습득하고 나서부터.
아니지, 정확하게는 내 쥬지가 일척쥬지가 된 뒤로부터인가.
그때부터 나는 내 분노를 컨트롤 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 나는 그 사실에 위화감은 느끼지 못했었다. 암만 빡쳐 있을 때라도 내 자의식은 선명했었기에 그냥 착각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론으로 보자면 그래. 분노를 끝까지 억눌렀던 적은 없었어.’
내 행동의 이유를 모두 야수회귀의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남들이 봐도 내가 빡돌았을 때는 누가 봐도 빡쳐 마땅한 상황 아니었던가.
미친 새끼처럼 끼에엑 거리거나 빡돌면 전부 때려부수고 싶어 하는 기질은 분명 나한테도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한테나 비슷한 기질은 있을 것이었다. 상사 죽빵 갈기고 퇴사하는 상상 안 해 본 사람 손.
그치만 문명인이라면 참을 줄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원래 나는 존나 문명인이었다. 논문을 도둑맞았을 때까지는 분명 그랬다. 아마도.
나도 내가 어떤 놈인지는 MBTI 성격 검사로밖에 알아본 적이 없어서 100%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자기 성격이 어떤지 철저하게 분석하는 사람은 보통 없잖아.
가격을 후려치려는 새끼를 돌로 후려치거나, 제자를 성추행을 하고 논문을 빼돌리는 새끼를 참교육해 주고 머리털을 잡아 빼버리는 행위는 내가 까놓고 보면 ‘할 법한’ 일이 맞았다.
‘근데 시발, 심증이 한둘이어야지.’
분노를 참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말고도 의심가는 게 있다.
지구에서도 그랬지 않은가. 분노의 신 오딘을 섬기는 베르세르크들은 웃통 까고 또라이처럼 싸우는 광전사의 원형이었다고 한다.
그 광전사란 상대가 무례하게 굴면 대가리에 모히칸 모양으로다가 도끼를 심어주는 바바리안의 원류이기도 했다.
절대 분노를 참지 않고 행동하는 오리지널 꼴마초. 씨발 존나 멋잇네. 이세계와 지구의 신화는 유사점이 존나 많으니 이것도 증거로 채용해도 될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분노를 컨트롤하라는 조언부터가 너는 앞으로 분노조절에 심각한 애로사항을 느낄 거라는 암묵적인 표현인 것도 같다.
야수회귀가 강해질수록 그랬다. 나는 분노할 때마다 눈에 하얀 불꽃이 튀는 듯한 환상을 느꼈고, 그 환상에다가 교수 슬레이어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
이 마법에 부작용이 없을 거라고 말했던 티르시한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마법에는 문제가 없다. 야수회귀가 내 목에 대고 분노 바이러스를 주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으면 나도 벌써 위화감을 느꼈을 것이며 티르시도 술식에서 문제를 찾아줬겠지.
즉, 야수회귀는 ‘내가 느낀’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분노조절장애를 유발하는 마법이다.
그리고 이 가설과 내 경험을 조합해 보면 한 가지 가설을 추가로 세울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어째서 저런 폭주 모드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해소하는 가설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퍼즐 조각은 있었다. 내가 눈치를 못 챘을 뿐이었다.
‘야수회귀의 진짜 용도는 아마도──’
나는 어째서 꿈에서 오딘을 보고 후계자를 만났는가.
그 답은.
‘──마나 연공법이야.’
이 마법의 궁극적인 용도가 ‘구신의 마나를 쌓는 기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룬 술사가 룬 문자 하나를 10년 씩 수련하며 룬의 마나를 깨닫는 것처럼, 내가 야수회귀의 높은 적성을 가지고 있어서 순식간에 구신의 마나를 쌓은 것이라면?
그거라면 설명이 됐다.
룬을 못 쓰던 내가 타뷸라에게 구신의 마나를 가졌다는 소리를 들은 이유는 그거다.
야수회귀란 오딘을 흉내내는 마법! 베로니카에게 듣고 나서 그 사실을 눈치채지 않았던가. 구신의 마나를 쌓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면 앞뒤가 맞았다.
그리고 나는 그 구신의 마나가 어떤 것인지도 눈치를 채는 것이 가능했다.
‘──내면세계에 있던 하얀 태양.’
내가 분노할 때마다 보이던 불꽃의 환상.
그것이 다름 아닌 구신의 마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 사건에는 인과가 있다.
하지만 원인이 있어야 비로소 결과가 생기는 법 아니던가! 오딘의 꿈, 검은 마나의 폭주, 그밖의 미지의 사태는 내가 오딘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인과관계가 역(逆)이다.
오딘이 어쩌구 하기 이전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기에── ‘조건을 충족한 자였기에’ 오딘의 분신은 내 꿈에 나타나 나를 후계자라고 부른 것이었다!
마치 프로그램대로 짜인 NPC처럼!
‘……제물이나 대가가 필요 없을 만 하군.’
발동 조건이 설정된 것부터가 술식의 일부다. 내가 습득한 마법을 발동하는데 대가가 들지는 않으니까.
정확하게 어떤 걸 해야지 후계자 판정을 때려주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 가설은 설득력이 높아 보였다. 비슷한 마법인데도 타뷸라의 변이 마법과 내 폭주 마법이 격의 차이가 컸던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타뷸라의 마법이 힘을 +100한다면, 내가 쓴 마법은 지능을 +10000 정도 하는 느낌이다.
그 새끼가 나한테 구신의 마나가 뒤지게 많다느니 했으니까 그때보다 몇 배는 강해진 내가 저런 마법을 쓰는 것도 말은 됐다.
이성을 잃는 마법이기에 자주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발동의 방아쇠도 분노다.’
프랑이 다쳤을 때, 나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분노에 시달렸다. 아마도 그 분노가 구신의 마나와 반응해서 마법의 형태를 갖춘 듯 했다.
‘……이것도 시험의 일종인가.’
분노의 신 오딘의 후계자로서 그 격노를 컨트롤하는 자가 진짜 후계자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 신화체계의 주신의 후임이라면 그것 정도는 해 줘야 수지타산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눈에 밟히는 게 있는데…….’
아무튼 오딘의 꿈을 탐사해야 할 이유가 더 늘어났다. 이 세상에서 사라진 신화시대의 기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씨발. 그딴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나는 상처를 입은 프랑을 생각하며 주먹을 으스러트리듯이 쥐었다.
프랑은 괜찮다. 다나가 치료해 주고 있을 것이었다. 내가 가 봤자 좆도 도움이 안 될 게 틀림없다. 그 자리에 옥새도 떨구고 왔으니까 다른 파티원들이 어떻게든 해 주겠지.
‘……해 주겠지, 는 지랄이.’
아무리 냉정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다친 아내의 곁에 가 주고 싶은 것은 남편의 본능이었다. 프랑이 생사를 헤맬지도 모르는데 딴짓을 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수 없다. 필요한 일만 빠르게 해치우자.
나는 맛이 간 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머리를 쓰는 동안에 체력은 조금 회복됐다.
하긴 내 몸이 잘 움직였다면 딴 생각을 하지도 않고 프랑한테 달려갔을 것이다. 마나는 여전히 바닥을 쳤지만 이거라면 할 수 있다.
‘예르나의 영혼을 찾아야 해.’
그 년한테서는 들어야 할 것이 많았다. 논문을 쌔벼간 이유 같은 사적인 것 말고도 존나 질문거리가 산적했다. 타뷸라의 조직이 뭔지, 왜 쫓기는 건지도 물어봐야지 않겠는가.
“후우우우…….”
나는 심호흡으로 근성을 가불받고, 남은 마나를 다 쓸 생각으로 룬을 발동했다.
하지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내 눈이 닿는 곳에 예르나의 영혼은 없었다.
존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마지막에 날린 마법은 베로니카가 쓰던 열선을 광범위하게 쏟아붓는 고위마법이었으니 당연했다.
그 폭발에 휘말리면 영혼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 세상의 혼은 마법이나 미스릴 같은 희귀금속에 당하면 사라져버리고 마니까.
“……으큭!”
통증을 느끼고 룬 마법을 멈추었다.
내 마나는 이제 감지하기도 힘들 정도로 줄어들었다. 나는 혀를 찼다.
씨부랄. 옥새를 떨구고 오지만 않았어도 마나를 회복할 수 있었을 텐데. 예르나의 영혼은 못 찾더라도 그 년이 쌔볐을 유적의 아티팩트 정도는 찾아 봐야──
‘──어?’
그리 생가갛던 나는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사고가 멈춰버렸다.
노련한 인디언이 경험으로 날씨를 짐작하는 것처럼, 나는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직감했다.
지금 뭔가, 절대로 좌시해서는 안 될 사실을 놓쳤다.
‘……유적의 아티팩트?’
뉴런에 잘려나간 전깃줄처럼 전류가 튀었다. 뇌세포가 죽을 정도로 혹사된 뇌가 무의미해 보이던 정보를 나열했다. 내가 놓친 무언가가 끔찍한 퍼즐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느껴진 이질감이 말로 정리되었다. 나는 그것을 속으로 되뇌였다.
‘……예르나는 어떻게 그 막대한 빛의 마나를 컨트롤할 수 있었지?’
생물은 마나통이 넘치면 몸이 축나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마나 포션을 마실 때도 주의해야 하며, 내가 오우거를 족치고 룬의 마나를 계승했을 때의 나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고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르나는?
그 여자한테도 그런 기미가 보이던가?
아니었다. 고대문명의 유적이 모아온, 죽음 직전에서 수십 번도 부활할 수 있는 빛의 마나를 쓰면서도 예르나는 부진이 없었다.
뭣보다 보통 상태의 나는 예르나로부터 초월적인 마나를 느끼지 못했다. 그 덕분에 유적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내가 빛의 마나를 감지했던 것은 폭주 상태에서 마법 능력이 폭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르나는 빛의 마나를 사용했지?
‘아니, 어떻게가 사용했느냐가 아니야.’
‘어디에서’ 가져왔는가. 그게 문제였다.
도구인가? 내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오우거의 옥새 같은 아티팩트에서 즉석으로 마나를 뽑아 썼나?
말도 안 된다. 예르나는 내게 당하면서 손에 가진 것 하나 없는 알몸뚱이로 내몰렸다. 아이템에 의한 마나 회복이라면 그 시점에서 재생도 멈췄어야 맞다.
─두근. 두근.
불안함에 심장이 뛰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상했다.
왜 예르나는 내 힘을 보고도 싸울 생각을 했다는 말인가.
이세계의 마법사 중에 멍청한 사람은 없다. 자기 약점을 커버하고, 계산적으로 위험을 가늠해서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들. 그게 이세계의 마법사였다.
그런 예르나가 침입자를 몸소 맞이했다고?
내가 지하묘지의 천장을 갈아버리는 것을 보고도, 마나로 재생하는 육체만 믿고 나와 정면에서 싸우려고 했다고?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고통의 연속에 정신이 망가지기 전까지 그 년은 악바리처럼 나를 죽일 생각이 만만했다. 자기 육체의 손상은 계산에 두지 않고 말이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나는 흐르는 식은땀을 닦지 못했다.
영혼 없이 움직이는 망령도시의 언데드.
생명의 탄생과 회복을 주관하는 빛의 마나.
식물을 성장시키는 마법을 쓰는 예르나.
본능적으로 예르나의 머리를 부수는 것을 피했던 폭주 상태의 나.
무의미해 보이던 정보가 섞여들며 불길한 직감에 살을 붙여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내가 뚫어놓은 지하묘지의 구멍에 눈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구멍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씨발!!!”
욕을 토해낸 나는 창을 들고 달렸다. 불기둥의 정체는 베로니카의 열선 마법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마법을 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공격을 시도했다는 건 공격할 상대가 있었다는 뜻밖에는 안 됐다.
나는 마나가 바닥나서 보통 사람의 육체나 다름이 없어진 육체를 혹사시켰다. 노력으로 만든 근육이 달리기에 힘을 보탰지만 초인의 감각에 익숙해진 오감으로는 열불이 날 만큼 늦었다.
─척!!
지하묘지의 구멍에서 뭔가가 뻗어와 지면을 붙잡았다. 나는 들끓는 증오로 포효했다. 내 눈이 삐지 않았다면, 그것은 초록색의 넝쿨이었다.
“씨이이이바아아아알!!!! 존나 끈질기네, 좀비 같은 년!!!!!!!!”
─부웅!! 꽃잎에 올라탄 로브 입은 여자가 지상으로 올라와 착지했다. 은밀하게 숨거나 도망치는데 어울리는 평범한 로브였다.
마구잡이의 행동거지에 로브의 후드가 넘어갔다. 나는 이를 갈았다. 최악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거기에 있던 것은 흰자위가 새빨갛게 변한 예르나였다.
‘역시 분신이었나!!!!’
망령도시의 언데드는 영혼이 없이 움직이는 플래시 골렘과 다름 없는 생물!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예르나도 자신의 영혼과 연결해서 지 분신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다. 신성마법도 흑마법도 죽음을 극복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종류의 마법이다. 내가 족친 아다 유니콘 새끼가 좋은 예시였다.
─끼기긱!! 나는 급브레이크를 넣으며 정지했다.
예르나는 빛의 마나를 모두 잃었지만 본체의 마나는 남아 있었다. 그것도 나처럼 거의 바닥난 듯 했는데, 그래도 마나를 못 쓰는 나를 죽이기는 차고도 남을 것이었다.
물론 내가 멈춘 것은 그딴 씹게이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