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9/1,009)

“──그 이상 움직이면 이 년의 목을 뽑아버리겠어!!!!”

예르나가 발작하며 소리쳤다.

─꽈아아아악! 그리 말하는 예르나의 넝쿨은 프랑을 묶고 있었다. 지하묘지의 숨겨진 공간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인질로 프랑을 납치해 온 것이었다.

어디에 쓸 인질인지는 생각할 것까지도 없다.

나를 보는 예르나의 눈에는 공포 뿐이었기에.

“……너는 대체 뭐야.”

예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을 보는 것처럼 공포에 떨었다.

나는 그 반응을 보고 분신이 느낀 통증이 본체에게도 전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겠지. 그만큼 정확한 조종을 위해서는 프랑이 골렘에게 했던 것처럼 시야만 대충 연결해서는 부족할 것이다.

쉽게 해제할 수도 없을 만큼 긴밀한 패스(Path)를 연결한 것이 아니고서는, 고통에 몸서리를 치는 그 추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배교자 놈들의 성공작? 말도 안 돼. 논외야. 불가능해. 비어있는 신좌는 더는 없어. 나이도 많아. 나를 압도할 실험기 따위, 시그룬느 정도밖에 없었을 텐데…….”

─으드득. 까드득. 예르나는 미친 사람처럼 입에 손가락을 몇 개씩 넣고 씹었다.

혼잣말과 자해 증세를 보이며 예르나는 몸을 떨었다. 내 공격은 무의미하지 않았던 걸까. 흰 자위가 전부 빨갛게 변해버릴 만큼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예르나는 좀비보다 더 좀비 같았다.

“……왜? 왜야? 왜 나만 이런 꼴을 당해야 해?”

예르나는 머리를 쥐어뜯어대며 자기 손가락을 잘근댔다. 그 상처는 재생되지 않았다.

“이런 건 어불성설이야. 신입에 이어서 나까지 이런 추태를……. 이래서는 돌아가도 설 자리가……. 애초에 용아병단이 협력만 해 줬어도……. 지척에 있을 <편찬대대>를 어떻게 피해서 본국으로────”

뇌에 들어간 데미지가 광증을 일으킨 듯이 중얼거리던 예르나는 갑자기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광인 그 자체인 행동거지였지만 이유는 있었다. 내가 발을 움직인 것을 핏발 선 눈으로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뿌드드득!! 프랑의 몸을 감은 넝쿨이 끔찍한 소리를 냈다.

예르나가 조종하는 넝쿨은 기존에 비해서 몇 배는 얇아져 있었는데, 그래도 기절한 사람의 목을 꺾는 것은 가능할 것이었다.

몸을 구속하던 넝쿨이 프랑의 목을 옆으로 돌려댔다.

아주 약간만 더 힘이 들어간다면, 그대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만큼.

“작작 좀 해, 이 개 같은 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격분하여 악을 썼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를 갈자 지나친 힘에 잇몸에서 피가 넘쳐 흘렸다. 이성이 침전하면서 내면세계의 태양에 흑점이 피었다.

안 된다. 분노가 다시 폭주의 기준치에 가까워져간다.

눈을 뜨려는 검은 마나를 때려눕히듯 억제했다. 나는 아까 제대로 싸우기 전에 예르나를 지하묘지 밖으로 날려보냈다. 이성을 잃은 내가 피아 구분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게는 폭주를 컨트롤할 방법이 없다.

아니, 있어도 문제다.

여기서 넝쿨이 프랑의 목을 비트는 것보다 먼저 프랑을 구해낼 수 있을까?

예르나는 미쳐가면서도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기를 광증으로 몰아넣은 원인이 나여서일 것이다. 저래서는 마나가 회복되어도 프랑을 탈환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다나랑 다른 파티원들은? 혹시 예르나가 빠져나오기 전에 해친 건 아니겠지?

어쨌든 조력은 바라지 못한다. 예르나는 피에 젖은 손가락을 입에서 뱉더니 나를 가리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생각 마……!! 만약 쫓아왔다가는, 내 목숨이 끊기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계집만은 죽여놓을 거야!!!!”

사납게 경고한 예르나가 돌아서지도 않고 후퇴했다. 내게 뭔가를 명령할 생각조차도 없는 것처럼 나를 두 눈으로 죽어라고 노려봤다.

“……라….”

깨어난 프랑이 목이 졸린 새처럼 읊조렸다. 하지만 예르나는 그런 프랑에게 프랑에 낭비할 시간이나 집중력 따위는 없다는 것처럼, 나만을 보고 있었다.

──그것이 예르나가 저지른 최대의 패착이었다.

꽈악…! 프랑이 목을 조이는 넝쿨을 붙잡으며 망치를 꺼내들었다. 야수회귀 상태의 나와도 비견되는 프랑의 완력은 얇아진 넝쿨을 쥐어뜯었다.

인질이 스스로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사태에 예르나도 과연 눈을 돌렸다.

프랑의 망치에 골렘 소환 마법의 흙이 생겨나 뭉쳤다. 그 흙은 사람을 흉내내는 듯한 팔다리를 기르지 아니하고, 대신 진흙 이상의 경도로 압축되었다.

그 형태, 그야말로 암석으로 조각한 드워프의 망치.

프랑이 넝쿨에서 빠져나와서 바닥을 디뎠다. 몸보다 두꺼운 망치를 어깨 너머로 넘긴 그녀가 풀 스윙으로 예르나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투콰아아앙─!!! 사람의 몸을 때린다기보다는 폭발물을 잘못 터트린 것만 같은 효과음이었다. 예르나는 오토바이에 치인 살쾡이를 방불케 하며 회전하다가 벽에 부딪혔다.

“아각, 헤켁, 까가각 악……?!”

“……당신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꼭 이렇게 해 주고 싶었어.”

오줌을 흘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예르나에게 프랑은 낮게 뇌까렸다.

“……나는, 노르의 족쇄가 되지 않을 거야.”

─툭. 툭. 상처에서 피가 흘렸다.

“나는 누가 봐도 부럽다고 할 만큼 멋진 가정을 꾸려서, 노르가 나를 사랑할 걸 후회하지 않게 할 거야. 하늘나라에까지 들리도록, 노르랑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할 거야!!!”

─쾅!! 작은 발이 투지를 일으키며 진각을 밟았다. 땅을 디디는 힘이 전신을 딛고 올라가자 아름다운 대형 망치가 홈런을 치는 야구 배트처럼 반월을 그렸다.

“나랑 노르를, 방해하지 마────!!!!!”

프랑은 푸른 안광을 빛내며 암석의 망치를 거칠게 날렸다. 예르나가 실드를 폈다. 운동 에너지의 폭력에 실드는 설탕 유리처럼 박살났다. 예르나의 다리가 젤라틴처럼 뭉개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반격하려는 것처럼 솟아난 넝쿨은 프랑을 노리지 않고 채찍처럼 주변을 날뛰었다. 내가 프랑이 벌어준 시간 동안, 예르나의 지척에 다가갔기 때문이다.

─타탓! 몸이 무겁다. 마나를 회복할 방법은 가지지 않았다. 회피에 낭비할 마나도 없다.

──그렇다면 소모되지 않는 마나로 메울 뿐.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도 전부 못 피할 공격 속에서 저지르기에는 터무니없이 미친 짓이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내면세계의 태양이 호응했다. 나는 흑점이 사라진 태양의 빛을 전신에 흘리며 태양의 환상에 손을 뻗고──

움켜쥐었다.

─파츠츠츳!!!

구신의 마나가 움직였다.

내가 꿨던 꿈이 주마등처럼 뉴런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어째서인지 가장 인상 깊게 뇌리에 남겨진 자각몽은 아버지랑 보낸 지리멸렬한 술자리였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여서일지도 몰랐다. 상황도 잊고 우스움이 앞섰다.

“……변산의 아홉 구비 굽은 길에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는다(邊山九曲路 石立聽水聲).”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문구를 읊었다.

네페르티티는 말했다. 마법의 술식처럼 기술을 만들라고. 자신의 몸에 가장 맞는 것이 가장 강하다고. 그렇다고 한다면 이 주문보다 내게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없고 없으며 없음 또한 없으며, 아니고 아니며 아님 또한 아니다(無無亦無無 非非亦非非).”

주마등이 계속된다. 기절하기까지 얼마 안 남은 몸은 본능처럼 가장 효율적인 투로를 밟았다. 무겁던 몸이 거짓말처럼 빨라졌다.

─투카가가각!! 나는 불규칙한 넝쿨이 쏟아지는 공간에서 【게르튀르】의 초식을 펼쳤다. 넝쿨은 마나도 거의 안 남은 인간 본연의 완력에 썰려나갔다.

순전한 육체의 기술이 마법의 위력을 초월했다.

“묘묘하고 현현한 현묘한 이치는(妙妙玄玄 玄妙理).”

창날이 마나의 반짝임을 물며 노호성을 질렀다.

“없고 없고 있고 있는── 없는 가운데 있음이다(無無有有 有無中).”

나는 예르나의 몸을 지키는 넝쿨을 창날의 예리함으로 베어가르며 간격을 잡았다. 창날이 예르나의 몸통을 썰기에 가장 적절한 위치에서 보법을 밟았다.

─파앙!!

그때, 예르나가 최후의 찰나에 소환한 꽃을 폭발시켰다.

럭비공 같은 씨앗이 수류탄의 파편처럼 내 골통을 부수고자 쏟아졌다. 최후의 기습이다. 반격을 시도하면 공격에 돌릴 마나는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그 공격을 무시했다.

─쐐애애액!! 퍼버버벅!!

단단한 것끼리 부딪히는 소리. 씨앗은 내 털끝 하나도 스치지 못하고 빗나갔다. 프랑이 던진 나이프가 씨앗을 튕겨내며 나를 지킨 것이었다.

두개골의 내용물을 쏟아내야 했을 반격이 실패로 돌아갔다. 눈을 뜨자 예르나가 지척에 보였다.

완벽한 간격이다. 자비는 두지 않았다. 질문이라면 영혼을 뽑아내서 하면 된다.

팔을 휘둘렀다.

오딘은 나더러 작명 센스부터 고치라고 했던가. 하느님의 뜻이라면 따르도록 하자.

나는 이미 없는 신에게 바치듯이 절기의 이름을 지었다.

“무무역역무(武無亦力無).”

【게르튀르】의 초식의 하나가 유수처럼 매끄럽게 예르나의 가슴을 가르고.

“성성만금(星成萬禽).”

─푸확!!!

그것을 3번 거듭한 끝에, 한때 나의 스승이었던 여자의 목숨을 수확했다.

“……………아.”

예르나는 쏟아지는 피를 멍하니 손으로 받으며 우리 부부를 보았다. 눈에 광기가 사라지고 삐뚤어진 총기가 돌아왔다. 그 눈빛은 회광반조처럼 프랑을 향했다.

“……하. 종족도 태어난 곳도 다른 주제에, 꼴에 가족이다 이거야?”

그리 염세적으로 중얼거린 엘프는,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이 눈을 반개했다.

“……열받네, 정말.”

고개를 꺾은 예르나는 손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렇게 이세계에서 내가 맺은 최대의 악연은 두 번 다시 하늘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기나긴 악연은 이로써 끝났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명을 다했음을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쿵. 프랑은 망치를 놓치듯이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이긴 거, 맞지?”

말을 하면서도 기운이 빠진 것처럼 상처를 누르며 신음하는 프랑.

아, 젠장. 이 년 뒤진 것 가지고 감상 같은 거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치료하러 가자. 이딴 년 시체보다 네 몸이 더 중요해.”

프랑도 나도 몸이 걸레짝이라서 포션 남은 것도 없었다. 내가 조심조심 안아들며 말하자 프랑은 피곤해 하며 웃었다.

“헤헤. 고마워. 나두 한 방 먹여줘서 만족했어.”

“진짜 잘 했어. 저 멍청이가 혼자서 튀었으면 아마 놓쳤을 거야.”

예르나는 내가 다시 폭주할 것을 두려워한 거겠지만, 현자 타임에 습격당했던 내가 폭주 모드를 다시 킬 수 있었을 것 같지 않다.

탈출구가 우물밖에 없었어도 프랑을 냅두고 빡세게 튀었더라면 분신을 내보낸 보람이 있었을 것을. 그런 생각을 하지 못 할 정도로 정신이 몰려있던 거겠지.

하긴 그만큼 쳐맞고 걸레가 됐다가 세탁했다가 다시 걸레가 되지 않았던가. 담당일진이 근처에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오줌을 지리면서 튀고 싶을 만도 했다.

─퍼덕! 퍼덕!

그때 새로 변신한 베로니카가 다른 파티원들을 태우고 지하묘지에서 올라왔다.

어떻게 베로니카인 줄 알았느냐면, 존나 큰 덩치에 뿔이 달린 새는 베로니카 외에 없을 듯 했기 때문이었다. 지상으로 오자마자 변신을 푼 일행이 달려왔다.

“선배!! 프랑 언니가── 아.”

“그대여!! 상황은…… 읏.”

제정신을 유지한 두 파티원은 뒤진 예르나의 본체와 우리 꼴을 보고 상황을 감 잡은 듯 했다. 나는 다나가 안 보이는 것을 신경썼는데, 묻기도 전에 베로니카가 대답했다.

“다나가 프랑을 치료하다가 돌연히 뒤에서 나타난 저 여자에게 공격당했다. 하지만 걱정을 말아라. 예비용으로 들고 온 그걸 썼다. 룬의 결계에서 요양하고 있느니라.”

“여기요! 프랑 언니도 어서!”

라리루라가 이 난장판에도 멀쩡한 유리병을 내밀었다. 그 병의 내용물은 반 가까이 줄어있었기에 다나도 만만치 않게 다쳤다고 상상이 갔다. 나는 예르나의 시체에 눈을 부라렸다.

‘씨발련.’

곱게 간 거랑은 거리가 멀었지만 조금 더 고문하다가 보냈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내가 성장해서 다시 만났다면 이 년도 오늘 주워간 마나로 뭔가 저질렀겠지.

이 분신도 그렇고, 지하묘지에는 아직 뭔가가 숨겨져 있는 듯 했다.

“이리 줘. 내가 양 조절할게.”

나는 라리루라한테서 유리병을 받았다.

사망자나 부상자가 나오지 않게 사르가디스에서 한 병 꿍쳐 온 엘릭서를 말이다.

─쪼르르. 적당히 물로 희석해서 프랑에게 용법에 맞는 양을 마시게 했다. 주사기가 없는 게 아쉬웠다. 프랑이 다친 부위는 등허리였기 때문이다.

내가 액체형 순금이나 다름없는 고가의 엘릭서를 조심하며 손에 따르자 프랑은 기겁을 했다.

“노, 노르! 그만해! 남은 상처 정도는 포션으로 나을 거야!”

“내버려두면 흉터 진다. 금화가 100장 들어도 우리 프랑의 몸에 흉 지면 안 되지.”

약은 쓰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쏟기 전에 얼른 오라는 말로 프랑을 불러서 상처를 치료했다.

고대문명의 마법 포션은 제 이름값을 했다. 빛을 뿜으며 닻에 쓰는 밧줄에 갈린 것 같던 프랑의 상처가 사라졌다. 존나 신체 결손도 고치는 포션인데 이 정도야 뭐.

나는 안 깨진 병에 희석한 엘릭서를 타서 프랑에게 줬다.

“내장을 다쳤을 수도 있으니까 이거 마셔 둬. 가서 제대로 진료 받고. 네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기면 행복한 가정은 절대 못 만든다?”

프랑은 자기가 예르나를 줘패버리기 전에 했던 멘트를 떠올렸는지 얼굴을 붉혔다.

사람은 극한상황에 몰리면 본심이나 순간적인 말실수가 나온다고 한다. 그 고함은 프랑이 내 앞에서 말로 꺼내지 않았던 본심이겠지.

‘……행복한 가정이라.’

프랑이 내게 헌신적인 아내로 있으려는 이유를 약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선배? 프랑 언니는 다 나은 거에요? 선배는요?”

라리루라가 내 옷을 멋대로 걷어붙이며 물었다. 아니 얘는 점점 스킨십에 거리낌이 없어지네. ─빡! 딱밤을 놓아서 비키게 만들고 어깨를 풀었다.

“나는 안 다쳤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자.”

전부 개인적인 추측인데다가 좀비가 어슬렁거리는 도시에서 할 얘기가 못 됐다.

내가 상당히 뺏어다 썼다지만 지하묘지가 있는 동안에는 이 망령도시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아니, 게르마니아에서도 마나 발전기의 존재를 알면 절대 원상복귀 시키려고 하지 않겠지.’

그러나 냅두자니 악용의 소재가 너무 많았다.

아무튼 자세한 것은 지하묘지 아래로 내려가 봐야지만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회복도 끝났겠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베로니카를 보았다.

베로니카는 눈치 빠르게 품에서 옥새와 또 하나의 룬 스톤을 꺼냈다.

“자, 원하는 물건은 이게 맞으냐? 저 여자와 싸우면서 떨어트렸더구나. 그 말도 안 되는 힘을 보면 혹시 쓰러트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가지고 왔느니라.”

“잘 했어. 고맙다.”

“……흠흠. 이 정도로 뭘. 쑥스럽지 않으냐.”

빨개져서 헛기침을 하는 베로니카한테서 ᛈ(Perth)의 룬을 새긴 돌을 받았다.

오우거 새끼를 족치고 얻은 룬으로 만든 물건이었다.

저번 경험에서 영혼을 겁박하는 걸로 정보를 얻는 게 매우 번거롭다는 걸 알았기에, 룬의 마나를 써서 습득한 룬으로 손수 만든 것이었다.

ᛈ(Perth)의 룬은 건강의 회복과 발전, 감춰진 비밀과 그걸 해소해 주는 열쇠 등을 뜻하는 룬이다. 현대 이세계인들은 이 룬을 수정이나 주사위에 부여해서 썼다.

치료마법 같은 효과는 나도 베로니카도 적성이 없어서 못 쓴다. 베로니카는 이것을 주로 점술에 쓴다는 모양인데── 내가 쓸 응용법은 달리 있었다.

나는 옥새에 충전해 둔 마나로 MP를 채우고 룬 스톤을 시신에 겨눴다.

역방향의 ᛈ(Perth)는 ‘비밀을 감추는 상자’를 뜻했다.

이걸 영혼을 다루는 마법의 적성이 높은 내가 쓴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로마니아 이단 심문관이랑 해피해피 술래잡기를 해야 하는 게 되는 마법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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