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화 (222/1,009)

“라리루라 너도 남아 있어도 돼.”

나는 다나의 말을 인터셉트해서 말했다. 라리루라는 기쁜 것처럼 얼굴이 밝아졌다.

“아핫♡! 역시 선배는 사람 보는 눈이 있으셔! 저, 입 꾹 닫고 평생 비밀로 할게요♥!”

“비밀 얘기는 안 할 건데. 대충 뭔 일이 일어났는지만 말해줄 거야.”

“앗, 따돌림인가요? 역시 이거 따돌림이죠? 그치만 그 정도가 타당하겠네요!”

상하 헤드뱅잉 운동을 하며 기운을 차리는 라리루라.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나는 라리루라를 믿었다. 이 녀석도 우리랑 같이 다니면서 위험을 겪고 있는데, 언젠가 헤어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아예 얘기에서 소외시키는 건 진짜 아니지 않은가.

회사로 치자면 열심히 일하는 사원을 곧 이직할 것 같다며 따돌리는 것이니까.

사촌 중에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거 존나 오래 간다. 명절 때마다 자기 예전 회사를 욕하면서 취직 잘 해야 한다며 떠들더라.

회사에서는 사내(社內)의 비밀을 감추려고 떨어트려 놓은 모양이었는데, 그 사촌은 따돌림 당한 앙갚음으로 아는대로 다 말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아마 라리루라라면 괜찮겠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며 손을 들었다. ─슈왁! 야수회귀가 발동해서 손바닥을 덮었다.

“얘기 시작할게.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렇게 설명하는 나.

얘기는 야수회귀가 특수한 마나를 연공하는 기술인 것 같다는 말로부터 시작됐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 마나(=구신의 마나)가 쌓일 수록 야수회귀는 강해진다.

그 마나가 늘어나는 계기는 분노이다. 나는 그 탓에 분노조절장애가 좀 생긴 것 같다.

날뛰었던 것은 손쓸 도리도 없이 분노에 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분노의 계기는 프랑이 쓰러진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쌓아왔던 특수한 마나가 폭주했고, 마법 능력이 강화됐었다.

대충 그런 설명이었다.

“분노라…… 프랑 때문에 그랬단 거지?”

다나는 내 설명의 첫 장이 끝나자 심란한 듯 턱을 괬다.

그러고는 힐끔거리며 나를 훔쳐본다. 존나 알기 쉽다. 나는 쌉진지하게 말했다.

“다나, 네가 다쳤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걸.”

“……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 티나냐? 아닐 텐데?”

“들키기 싫으면 귀엽게 굴지 말라고. 해 봤자 ‘내가 다쳐도 우리 서방님이 아무렇지 않아 하면 어쩌지?’ 같은 생각이나 했겠지.”

“아 씨발, 그렇게 잘 아는 새끼가 그 말 하면 내가 쪽팔려 할 건 왜 모르는데!!”

날라온 베개를 태극권의 묘리를 살려서 받아냈다. 아니까 말한 거지 이 누나야.

“아무튼 이제부턴 누나 몸 조리 잘 해. 누나가 어디 가서 두들겨 맞고 오면 그날부로 누나 남편 모가지에 현상금 걸리는 거야. 존나 처신 잘 하라고.”

“내가 병신한테 코 꿰인 거 티 좀 내지 마, 씹새야.”

다나는 가족끼리만 있었으면 내 위에 올라타서 목을 물어댔을 것처럼 으르렁댔다. 프랑은 쿡쿡 웃다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노르 말대로라면 강화된 건 마법능력 뿐 아니야? 그렇다고 보기에는 그…… 위력 같은 게 무척 대단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 안 그래도 그것도 얘기할려 했어.”

이번에는 지하묘지의 기능을 설명하는 나.

런닝 타임 3시간짜리 영화처럼 중간에 쉬야 타임을 넣어주는 배려심. 이게 문명인이지.

추리 내용은 거의 망상 수준이었지만─증거가 없으니까─ 로지컬한 내용에 반발을 가지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신뢰받아서 기쁜 느낌이 반이고 부담되는 느낌이 반이다.

“그 음산하던 지하묘지가 성스러운 마나를 모으는 유적이었다니, 곧바로 믿겨지지는 않는구나. 허면 그때 획득했다는 마법의 요령은 기억에 남았느냐?”

“전혀. 완전 무아지경이었어서.”

무슨 요령 같은 게 있었으면 모를까, 꼬리가 자라나서 그걸 자기 몸처럼 당연하게 움직인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도 생각을 못 했으니 기억이 남는 것도 없다.

‘듣고 보니까 아깝긴 하군. 하나라도 건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그리 생각하고 있자 라리루라가 신음을 했다.

“그 엘프의 분신은 유적의 마나를 훔쳐서 팔다리를 뽑아도 트롤처럼 쑥쑥 자라났다구요? 선배는 도시의 마나를 조종해서 그걸 때려잡았구요?”

“그래. 저기 있는 마법진을 개조해서 분신에다가 직접 마나를 보냈던 모양이더라.”

본체가 싸우다가 다칠 위험을 줄이고 마나 중독도 피하는 이중구조였다.

존나 이세계에서는 멍청하면 범죄자도 못 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멍청함을 감당할 만큼 뒤지게 쎄든가.

“……몸 괜찮으신 거 맞죠?”

“괜찮다니까. 마나빨이랑 강화빨로 마스터 클래스 뺨치게 쎄져서 줘패버렸으니까 한 대도 안 맞았어.”

진짜 내 힘이 아니만큼 자랑거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말에 프랑은 고개를 모로 꼬았다.

“마스터? 소드 마스터 같은 거?”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아크메이지에 가깝지 않을라나.”

응. 아크 메이지인 걸로 하자. 스피어 마스터는 깐지가 안 나니까.

아크메이지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마스터 클래스.

일신의 무력만 갖고도 국가의 중책을 낼름할 수 있는 이세계의 슈퍼맨 슈퍼걸들.

‘마스터 클래스 쯤 되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개쩔어서 국가에 소속된 경우가 더 드물다던가 했었지.‘

골드, 플래티넘, 미스릴 등의 모험가는 스카우트 당해서 더 좋은 곳으로 가지만 뚝심 있게 남아서 자기 신념을 지키는 모험가들 중에서는 마스터 클래스가 나오기도 한댄다.

물론 그래도 모험가 중에서는 2명인가밖에 없다.

현재 마스터 클래스인 모험가는 처음부터 굳건한 심지가 있어서, 자기는 어디에서 뭘 하든 성공할 거라는 자부심을 갖고 남아 있던 거라던가 했다.

그 꼰대 같은 마인드를 흉내내다가 다리 찢어지는 볍새 모험가들도 많다. 존나 어디 사는 석사 동장쉑 얘기 같군.

‘사람은 다들 자기가 남들하고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법이니까.’

그러다가 뽑기겜에 100만원 꼴아박고 원하는 캐릭터를 못 뽑아보면 자기 분수를 알게 되는 것이지.

이세계에서는 그 판돈이 돈 대신 목숨이 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도시에 가득하던 어둠과 음의 마나를 마음껏 퍼다가 썼던 나는 냉정하게 봐도 그쯤은 됐다. 마스터 클래스. 모험가의 등급에서 최고위 바로 아래의 실력자가 말이다.

그랜드 마스터는 거의 명예직이니까 마스터가 보통 말하는 최고 등급이 맞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폭주하면 무조건 마스터 클래스만큼 세진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검술의 달인도 무기가 이쑤시개밖에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에 존나 큰 차이가 생겨나지 않겠는가. 내 기본 마나통은 그 지하유적의 천장도 완전히 뚫지 못했을 것이었다.

“상상하긴 싫지만 다시 그런 꼴이 되더라도 그때처럼 존나 쎄지지는 못할 듯.”

게임이나 만화에서야 폭주하든 말든 잘 풀리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지만, 내가 직접 이성을 잃고 날뛰게 되면 느낌이 다르다.

주머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수류탄을 넣고 다니는 기분.

컨셉이 아닌 진짜 분노조절장애 환자도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데, 나는 끓는점은 높지만 역치를 넘긴 뒤에 일어나는 사건의 크기가 남다르니 곤란한 것이다.

‘……마나가 더 많았으면 어땠을려나.’

모즈리운 같은 특이 케이스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원인을 알았으니까 나도 분노를 참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말이다. 존나 전집중 라마즈 호흡의 달인이 되야겠구만.

“그대여. 오리할콘을 꺼내다오. 기능을 시험해 보자꾸나.”

“어? 아, 그래.”

석판에서 하얀 사각뿔을 꺼내서 줬다. 이 마법진을 잘만 분석하면 짐을 들고 다니는데도 편할 것 같은데, 뭔가 방법이 없으려나.

─파아앗!

베로니카는 태양을 상징하는 ᛊ(Sowulo)의 룬으로 기둥을 비추었다. 오리할콘의 주위로 날아간 빛 속성의 마나는 소용돌이를 치면서 기둥 밑으로 가라앉았다.

“……마나의 제어를 포기했더니 밑으로 흘러가는군. 정말 얘기로 듣던 오리할콘이 맞는 듯 하구나.”

마치 전설로만 듣던 도시가 발견된 고고학자 같은 리액션의 베로니카였다. 나는 물처럼 고여있는 빛 속성의 마나를 보며 물었다.

“내 설명은 지금 걸로 다 끝났어. 그 오리할콘이라는 거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은데.”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이니라. 그래, 어디부터 얘기할까…….”

베로니카는 말을 고르다가 손가락을 꼽았다.

“오리할콘이란 바이콘 족의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고대문명 시대의 금속이다. 신화시대가 끝난 이후에 발견된 물건이다만, 그때는 벌써 우리 일족이 타종족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정확한 지식은 없다.”

“뭐야. 너희도 기록을 글로 안 남기냐?”

나는 약간 놀랐다. 베로니카가 룬 스톤을 연구하던 것만 보더라도 바이콘의 지식 수준은 높았다. 신족 씩이나 되서는 그런 지식을 그냥 말로만 전하다니?

“선지자님께서 그리 하라고 하셨느니라. 지식을 글로 남기지 말라고 말이다.”

내 놀람에 간단하게 첨언하는 베로니카였다. 종교적인 이유인가.

“얘기를 되돌리자꾸나. 이 합금은 미스릴 안에 소량의 오리할콘을 심어놓은 물건으로 보인다. 그것을 그대가 말한 빛의 마나를 응축하는 일에 사용한 것이다.”

─슥. 사각기둥을 들어보이는 베로니카. 밑동에 고여 있던 빛 속성의 마나가 사라졌다.

“오리할콘의 효과는 마나 전도체이다. 그런 점은 미스릴과 같으나, 결정적으로 보존력의 수준이 다르지. 지하묘지를 세운 자는 이 오리할콘으로 마나를 고정하여 아공간에 이어진 마법진으로 흘려보냈다.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마나가 계속해서 남아 있던 것은 그래서이다.”

“마나 전도체라. 부여 마법 같은 곳에 쓸모가 있나?”

내가 아는 한, 마나를 전하는 매체에서 가장 쓸모 있는 것은 그것이었다.

“그런 것에 쓰기는 너무 아깝지. 우리에게는 마침 이것을 유용하게 활용할 방법이 있지 않으냐?

하지만 내 그런 말에 가당찮다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베로니카였다.

“이 나라에는 마법 재료를 구하러 온 것이기도 하지. 오리할콘이라면 그 재료로 차고도 남는다. 사용한다고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야.”

─파앗! 베로니카는 기둥에 마나를 흘려보내며 말했다

“바다로 가자꾸나. 셰이드에 필요한 마지막 재료는 거기에 있다.”

바다로 가자는 베로니카의 말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여기가 바다인데’였다.

며칠 전에 말했듯이 쿠드세스는 항구다. 해수욕장까지 있는 게르마니아의 유명한 교역도시라는 얘기였다. 항구로서는 인천항이나 부산항 정도로 명망 높을 것이었다.

물론 가을이라서 존나 춥다 보니까 바다 여행은 불가능한 타이밍이었다. 시발거 우리 아내님들이 수영복 입은 모습, 존나 보고 싶었는데.

“대륙에 있는 항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셰이드의 의식에 쓸 ‘타오르는 가지’가 자라나는 섬. 그곳으로 가자는 뜻이니라.”

베로니카는 우리의 궁금증에 그리 답했다.

타오르는 가지라니, 존나 시인 같은 표현이로군. 참고로 라리루라는 셰이드가 뭔지는 몰라도 대충 우리한테 필요한 게 있다는 것은 들은 상태였다.

“게르마니아에 섬도 있었나?”

나는 지도를 펼치며 지리학 지식을 끌어올렸다.

게르마니아와 브리타니아는 존나게 인접한 국가였다. 이세계의 배편으로도 며칠이면 충분할 만큼 말이다. 영해권을 둔 분쟁도 치열해서 해적과 해군이 원피스를 찍는 지역이다.

그런 나의 질문에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있고 말고. 선지자님께서도 예언의 의식에서 셰이드를 사용하실 때는 그곳으로 가셨다. 우리 일족에 셰이드의 방법이 상세하게 전해져내려오는 것도 그래서이지.”

“위치는? 너희들 기록은 안 남긴다며. 확실하게 아는 게 아니면 좀 불안한데.”

전승에 내려오는 섬을 찾아서 뱃여행이라.

‘시간이 낭비되는 건 별로 상관없어.’

왜냐면 사르가디스의 지인들한테는 최소 1달은 여기 있을 거라고 얘기해 놨으니까다. 주 목적이었던 룬 스톤 연구가 잠정적인 보류를 당하고 예르나까지 해치워버렸으니 게르마니아에 남은 볼 일은 셰이드 재료 찾기가 전부였다.

연구하러 가서 며칠만에 돌아오는 것도 의심을 살 것이니, 시간이 드는 건 괜찮다.

‘그치만 망망대해를 무작정 헤매는 것도 좀.’

바다는 넓다. 인간이 사는 육지보다 바다가 더 넓은 것은 이세계에서도 똑같았다.

인간의 원시적 공포를 자극하는 망망대해에 어디 있는지도 모를 섬을 찾아서 떠난다? 그딴 건 뇌수가 바닷물로 된 새끼여도 못 할 짓이었다.

‘프로를 고용해도 못할 짓이겠는데.’

뱃일의 전문가도 좆망한 무대뽀 계획을 하드캐리하지는 못할 것 아닌가.

주위에 육지도 안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식량이 떨어지거나 길을 잃는다니, 존나 끔찍했다.

어디 그것 뿐인가? 바다에는 태풍, 파도, 몬스터 같은 자연재해도 있다.

뭐 때문에 바다 사나이가 꼴마초의 대표주자겠는가. 저딴 위험한 곳에 자기 실력을 믿고 달려드는 새끼들은 상또라이나 상남자가 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위치는 걱정 말거라. 넓은 섬이고 평범한 배로도 3일이면 도달할 거리라고 한다.”

대답하는 베로니카. 듣기에는 문제 없을 것 같다. 헤매는 걸 생각해도 10일치 식량 정도라면 실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가깝고 넓다는 섬이 지도에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3일 거리? 지도엔 안 나와 있는데.”

다나가 내 어깨에 턱을 얹으며 지도를 쳐다봤다. 나는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

마법 처리가 안 된 보통 배로 3일 걸리는 섬이라면 당연히 게르마니아의 영토일 것이었다. 아니, 거리 나름으로는 브라타니아랑 영토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을까.

‘그런 섬이 지도에 알려지지 않은 무인도라.’

보통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게 넓은 섬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알려지지 않았다니 다행이로구나. 인간의 손길이 닿았다면 소재가 남아나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니 말이야.”

우리의 지적에도 베로니카는 그렇게 안도하기까지 하더니 질문했다.

“그대여. 잊지 않았느냐? 신수의 숲이 어떠한 결계에 감춰져 있었는지 말이야.”

“……아아, 그렇군. 혹시 여기도?”

“그래. 동일한 결계에 감춰져 있느니라.”

베로니카는 의기양양하게 웃더니 다시 설명했다.

충분한 구신의 마나와 해박한 룬 지식이 있는 존재에게만 침입을 허락하는 결계! 바이콘 족의 선지자가 셰이드의 소재를 구하러 갔다는 섬에도 그 결계가 깔려 있다는 얘기였다.

당연하게도 파티원들은 그 말에 당황했다.

“네에? 그러면 저희가 안에 못 들어가잖아요?”

“배에서 기다려야 해? 식량을 많이 챙겨가야 하려나…….”

“아니, 그럴 걱정은 없다. 신수의 숲과는 다르게 다른 손님을 들였다는 전승이 있으니 말이야. 무엇보다 성수의 결계는 방향감각을 흐트려트리고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나와 노르드가 있다면 문제 없다.”

걱정을 불식시키려는 것처럼 말하는 베로니카.

그런가. 하긴 길치인 사람이라도 네비게이션을 킨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있으면 목적지에는 갈 수 있겠지. 나랑 베로니카가 위치를 제대로 가리켜 주면 조타수가 열일을 해 줄 것이었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질문했다.

“거기도 성지 같은 곳이야? 우리끼리만 가야 하나?”

“설마. 성지랄 것도 없느니라. 게다가 나는 선지자님의 대리로서 타종족을 초대할 자격이 있다. 표류해서 들어온 자라면 몰라도, 자격도 없이 억지로 들어온 자는 빠져나가지 못하는 섬이다만.”

아, 맞다. 얘 바이콘족에서는 나름 입지 있는 애였지.

그나저나 빠져나갈 수 없다니 약간 오싹한 섬이다. 저번에 서커스단에서 겪었던 방향상실의 결계를 범위랑 출력을 높인 거랑 비슷하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다나는 내 어깨에 턱을 두고 중얼거렸다.

“흐응. 그러면 입이 무거운 사람을 찾아야겠네. 뱃사람은 입이 가볍기로 유명하잖아?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떠들고 다니면 민폐겠고.”

“증거만 안 쥐여주면 될 거야. 입이 가벼운 만큼 허풍이 쎈 사람도 많아서, 뱃사람들 얘기는 증거가 없으면 아무도 안 믿어주거든.”

“그래? 그렇담 다행이네.”

거의 현지인인 프랑이 그리 말하는 걸 보면 맞겠지. 나랑 다나는 납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바다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항구에서 배를 구하거나 식량을 모으거나 할 방법을 상의한 것이었다. 정기편으로는 안 될 것이니 아예 배 하나를 통짜로 고용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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