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루라의 눈이 반달 모양이 됐다. 요프시는 좆 됐다는 걸 느꼈는지 손수건으로 푸딩 같은 볼살의 땀을 닦아내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허허. 제가 그만 말이 헛나왔군요. <꼭두극> 마법은 <염동력(Psychokinesis)> 마법의 하위 분류죠. 부여 마법의 난이도를 고려하면 창에 부여하기 좋은 선택이십니다.”
그런 변명에도 라리루라는 불만이 남은 모양이었는데, 더 추궁하지는 않고 넘어가 주었다. 째려보는 시선이 그대로여서 저걸 넘어갔다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거기까지는 저희도 아는 부분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아, 음, 예.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가 창의 출처를 물은 건, 이 창의 봉대에는 정해진 마나를 제와하면 어떠한 마나든 튕겨내는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어째서 창대에 그런 성질이 깃든 걸까요?”
“그, 그것이 그 뭐시냐…….”
요프시는 라리루라가 날려대는 벌레 보는 듯한 시선에 식은땀을 흘려댔다.
무서워서는 아니겠지. 원래 나이가 좀 지긋한 아저씨들은 젊은 미녀한테 경멸받으면 빡돌던가 마음에 상처를 입던가 하는 법이었다.
이번 건 자업자득이라서 불쌍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저 아재의 발언은 새 핸드폰을 사러 온 손님한테 그딴 쓰레기 폰을 왜 쓰냐며 경악한 거랑 같았으니까.
차별하는 우월주의자 같은 말실수를 했어도 인성이 못된 사람은 아니었는지, 요프시는 시무룩한 느낌으로 상처를 받으며 답했다.
“이런 문제는 말이죠, 성장할 때부터 강력한 마나를 받은 나무에서 발생합니다.”
“강력한 마나라니요?”
“예. 사람으로 빗대자면 어릴 적부터 고급 음식만 먹어 본 아이가 다른 음식을 편식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목재를 키우는 실험실도 있기 때문에, 저는 그런 고급 소재로 창을 만드셨다는 것에 놀랐던 겁니다.”
“……그런 거였군요.”
생각나는 것은 부러졌던 창을 회복시킨 마법이다.
폭주하던 내가 다나의 치료 마법을 분석하고 개조해서 발동했던 마법. 그건 잘려나가서 가공당하고 죽어 있던 나무를 되살려서 성장시키는 기술이었다.
존나 심정지한 시체를 전기 쇼크로 되살리는 것처럼 말이다.
‘내 마나에만 반발하지 않는 건 그래서인가.’
그 치료마법은 망령도시의 마나를 내 걸로 치환해서 갈긴 것이었다.
그걸 요프시가 말한대로라면 해석하자면, 뭐든 주는대로 처먹던 내 창대가 존나 비싼 스떼끼를 먹어 보고서 흑화했다는 뜻일까?
이제 입맛 버리는 다른 음식은 손도 대기 싫다 이거지.
씨팔럼이 무생물 주제에 꼴받게 구네.
“쓰읍……. 무기로 쓰기에는 불편하겠군요.”
“아뇨, 그럴 리 있습니까! 마나를 튕겨내는 창이니 마법을 파훼하거나 막아내는 일에 쓰면 됩니다! 노르드 씨의 마나는 받아들이면서 적의 마나를 튕겨낸다니! 이 창은 아주 훌륭한 창이며 방패가 돼 줄 것입니다!”
내 말에 요프시는 정직하게 기겁을 했다. 같은 길드원+준 길드원을 상대로 감정에 구라를 까자니 좀 곤란한 걸까. 내 무기인데도 존나 높고 후한 평가였다.
아니면 뒤에서 노려보는 라리루라 덕분인가.
공갈협박범이 어깨 깡패 깍두기들을 델꼬 다니는 게 이래서였구나. 나는 깨달음을 얻으며 창을 쓰다듬었다.
‘주인을 알아보는 무기라.’
딱히 창에 자아가 생기거나 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어딘지 모르게 귀엽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간사한 것이었다.
내가 만족하는 걸 보고 라리루라도 눈에 힘을 풀었다. 요프시도 가슴을 쓸어내렸고 말이다.
“좋은 감정 감사합니다. 단지, 이래서야 제가 다른 사람에게 창에 마법을 부여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건 힘들겠군요?”
“예. 이럴 때는 창의 반발치보다 훨씬 높은 마나를 투여하거나, 마법 부여자와 노르드 씨의 마나 일치율을 높이거나, 다른 아이템을 붙여야 할 겁니다.”
“마나 일치율을 높인다는 건 어떤 방법입니까?”
첫 번째랑 세 번째는 대충 각이 잡혔다. 편식쟁이 창에게 억지로 마나를 멕이거나, 타뷸라의 가면에 붙이는 나무 부적처럼 외장 하드를 장착하라는 것이겠지.
‘근데 마나의 일치율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것도 있나?’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 남녀가 마음을 나누며 깊은 통정(通情)을 하면 되지요.”
틀딱답게 손수건으로 목 뒤까지 닦아대던 요프시의 대답.
근데 이 씨발이 통정이 어쩌고 저째요?
“통정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리루라는 브리타니아 어의 어휘를 못 알아들은 듯 했다.
그런데 그 침착하고 순진한 반응과 우리 관계를 어떻게 오해한 걸까. 불독처럼 생겨먹은 매지컬 틀딱은 푸근하게 미소지었다.
“예. 게르마니아의 옛날 의식에도 비슷한 것이 있죠. 통정을 통한 마나 일치율은 1~2시간이면 낮아집니다만 궁합이 정말 잘 맞는 사이라면 서로의 성장에도 보탬이 되기도 한답니다.”
“궁합, 궁합인가요? 아핫♡! 저랑 선배가 이래저래 완전 찰떡이기는 해요!”
라리루라야. 그거 아니야. 지지야 지지. 내가 멘탈이 까마득해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라리루라는 칭찬이라도 받은 듯 기뻐했다.
아무래도 게르마니아가 성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것은 존나 일반론이었는가 보다. 하긴 성진국이니 뭐니 하던 일본이나 미국도 보수적인 사람은 존나게 보수적이었고 그랬지.
“역시나! 척 보기에도 몹시 친밀해 보이더니, 제 눈이 아직 옹이구멍 소리를 듣기에는 이른가 보군요! 허허허!”
저 세상 순박하게 웃는 불독을 개방적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스멀스멀.
일부러인지는 몰라도 대놓고 성희롱 발언이었기에 약간 빡침이 올라왔다.
하지만 오딘의 말도 있고, 저 불독한테도 악의는 없어 보였으니 참기로 했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커플들한테 이렇게 성희롱 섞인 칭찬을 해대는 것도 일상다반사였다잖은가.
참자, 참아. 전집중 라마즈의 호흡, 제 1의 형이다.
“……요프시 씨. 다시 한 번 감정 감사합니다.”
나는 요프시의 어깨를 짚고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초면인 상대에게 하기에는 무례한 행동이었는데, 요프시는 어째선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진짜 어째서일까. 와! 신기해!
“계속 폐를 끼치는 것도 죄송하니까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예, 옙!!!”
우리가 가겠다고 했는데 요프시는 먼저 도망쳐버렸다. 그 묵직한 멧돼지 대쉬를 구경하던 라리루라는 신기해 하면서 물었다.
“선배, 왜 화나셨어요?”
“몰라시팔레후.”
얘한테 통정이라는 말의 뜻을 알려줘야 할까.
나는 그런 고민을 잠깐 했는데, 암만 생각해도 그건 미친 짓 같았다. 나중에 이 일이 돌고 돌아와서 나를 괴롭히게 되더라도 오늘 바로 설명하는 건 나한테는 과중한 일이었다.
“앗. 언니들 저기 계시네요!”
그렇게 내가 미래의 나에게 책임을 던졌을 때였다.
대기소에서 기다리던 파티를 발견한 라리루라는 놀이터에 엄마가 찾아온 꼬맹이처럼 손을 저으며 신나게 외쳤다.
“언니들! 마법사 아저씨가 그러는데요~! 저랑 선배랑 통정하면 궁합이 무지 좋을 거래요♥!”
“Ah.”
이 집 복선 회수 잘 하네.
<……저, 이 도시를 떠날 때까지 로마니아 말만 쓸래요.>
내가 프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다나가 귓속말과 제스쳐로 설명을 해 주자.
쇄골까지 빨개진 홍익인간 라리루라는 그렇게 선언했다.
사람이 정말로 수치심의 극한까지 내몰리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져서 기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어때.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사람들이 마구 돌아다니는 곳에서 자기가 어떤 남자랑 속 궁합이 좋은지 소리치는 미친 년은 세상을 뒤져도 저밖에 없을 걸요.>
그건 그래.
나는 라마즈 호흡으로 단련한 초인의 인내심으로 간신히 그 말이 입밖에 나오는 걸 억제했다. 18살 사춘기 소녀에게 저딴 소릴 했다가 밤에 목 매달면 어쩌려고.
아무튼 라리루라의 그런 폭탄 발언에 프랑과 다나는 별로 놀란 것 같지도 않은 반응을 보였다.
“헤헤. 나는 또 무슨 얘기인가 했네. 둘이서 점이라도 보고 온 줄 알았어.”
“……속 궁합 점? 그딴 게 영업허가가 나오나? 애초에 저 푼수떼기 남편님이 프랑이랑 날 기다리게 두고 다른 여자를 꼬실 놈이었으면 우리집 방이 앳적에 미어 터졌겠지.”
존나 뭐지. 믿어주는 건지 아닌지 몰겠네.
그래도 화를 내는 느낌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다. 우리 아내님들의 마음은 내 대흉근만큼 넓구나. 나는 가슴을 쓸며 라리루라에게 말했다.
<로마니아 어로 말하는 건 좋은데, 로마니아랑 게르마니아랑은 사이 별로 안 좋다? 네가 로마니아 어 쓰고 다니다가 문제 생길 수도 있어.>
“히이이…….”
그 사실은 라리루라도 들어본 바는 있는지 몸이 굳었다.
“……선배. 저 모자 살래요. 모자.”
얼굴이라도 가리려는 걸까. 그 정도라면 안 될 것 없지.
“일 다 끝나면. 이제 내가 필요한 것만 사고 나갈 건데, 뭐 필요한 거 있는 사람?”
“아, 잠깐 기다려다오. 마법진의 해독서를 사고 싶구나.”
베로니카는 그리 말하며 마법서 가게를 가리켰다.
해독서라니? 내가 눈을 껌뻑이자 텔레파시가 날아왔다.
【석판의 마법진을 해석하고자 하느니라. 그대의 목적에도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공간이동이나, 못해도 아공간 마법 정도는 재현할 수 있겠지.】
【뭐? 진짜로?】
텔레파시 송수신으로 회화하는 우리.
공간이동의 재현은 어렵겠지만 아공간 마법 정도라면 비벼볼 만 했다. 아공간은 존나 고위 마법이지만 현대 이세계 기술로도 재현은 가능하니까.
다시 말하면 저 연구가 성공하면 한국형 판타지의 국룰인 인벤토리를 획득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베로니카가 말한 것처럼 차원이동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말이다.
차원이동과 공간이동은 우주여행이랑 항공기 연구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한데, 노하우나 지식에서 공통되는 점은 있지 않을까.
‘게다가 아공간 마법은 돈으로 사기 힘든 마법의 필두지.’
이세계판 코카콜라 레시피── 까지는 조금 과장인가.
그래도 대충 중견기업의 영업기밀 정도의 레어도는 있다.
‘현물을 분석해서 재현하는 건 기자재랑 돈이 많이 들 테니 생각도 않았는데…….’
나는 포기했었지만 베로니카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킹능성이 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나는 눈을 빛내며 콧김을 뿜었다.
【와 씨, 진짜 고맙다! 내가 뭐 도와줄 것 없냐?】
【개의치 마라. 그대의 집에 신세를 지면서 따로 할 일도 없는 차였으니 말이야. 우선 인간의 마법체계에서 몇 가지 기술을 배울 생각이다. 그러면 분석의 중도과정을 훨씬 줄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니.】
【땡큐. 응원할게. 아, 근데 마법진 연구라면 너희 성지랑 연결된 슬레이프니르의 이동마법진도 연구해 보면 어때?】
아니, 것보다 바이콘 족은 그걸 연구해 볼 생각은 없었던 걸까?
베로니카는 내 그런 텔레파시가 완전히 의외였다는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어리석은 것. 그대라면 몰라도 우리가 그런 짓을 했다간 신성모독이다.】
【쓰벌. 고작 연구 좀 했다고 신성모독까지 가냐?】
쓰라고 남겨준 마법진을 해석하는 것조차 신성모독이라니? 개씹 빡빡한 교리에 나는 인상을 썼다. 존나 교리가 빡센 종교 중에서 멀쩡한 곳을 거의 못 봤는데.
【‘고작’인가. 이렇게 사고방식에 차이가 나오는구나.】
베로니카는 그런 내 리액션이 신기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법도로 금지된 행위는 아니니라. 허나 별 수 있겠느냐? 우리 일족은 수천 년을 넘는 세월 동안 신들께 벌을 받으며 살아간 죄인이다. 몸을 사리는 모습이 한심해 보일지 모른다만, 부디 이해해 다오.】
【아니,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 위험할지도 모르면 안 하는 게 맞지.】
그치만 그런가.
조상인 슬레이프니르가 말처럼 생겨먹었다지만, 바이콘 족의 자의식은 인간형이니까.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 앞에서는 곰이나 호랑이로 변하는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는 하려나.
곰이나 호랑이야 존나 멋지긴 한데, 사람 사는 곳에 나왔다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살당하지 않는가. 베로니카도 우리랑 만났을 때 비슷한 꼴이었고 말이다.
‘그런 저주에 걸렸으니 몸을 사리는 건 어쩔 수 없지.’
어떤 바이콘이 용기를 내서 신들의 흔적을 조사하려고 해도 동족들한테 뭇매를 맞을 것이었다. 니새끼 때문에 저주가 더 심해지거나 풀리지 않게 되면 책임질 거냐고 말이다.
베로니카가 룬 스톤 같은 인간 사회의 흔적만 쫓던 것에도 그런 사정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내가 오딘의 후계자라는 사실은 베로니카에게 존나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선지자의 예언과 신의 후계자라는 쌍수방패라면 일족의 꼰대들을 무시해도 반발이 없을 테니까.
“둘이서 무슨 얘기 해?”
프랑이 텔레파시를 나누는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기에 나는 그런 생각을 멈추었다.
아무튼 공간이랑 관련된 연구는 언제든 환영이다. 파티원들에게도 대충 설명을 해 주고 마법진의 해독서를 몇 권 정도 샀다.
【브리타니아 은화다. 값은 이걸로 치뤄도 상관없겠지?】
【예. 저희 나라의 화폐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마법서는 돈에 미친 이세계인들의 정품 에디션답게 존나게 비쌌는데, 놀랍게도 그 책 값은 전부 베로니카가 사비로 지불했다.
어쩌면 우리 파티에서 제일 갑부인 건 베로니카일지도 모르겠다.
길드를 나오기 전에 내가 창에 마법을 부여할 매지컬 외장하드도 사고, 우리는 항구로 향했다. 도시를 관광하기 전에 뱃편을 잡아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존나 씨발맞게도.
【배에 여자를 태우라고? 그것도 4명을?】
우리가 얘기를 꺼내면 선원 새끼들은 싸그리 싹 다 판에 박힌 대답을 돌려줬다.
【딴 곳을 알아보시지. 내 배에 여자가 탈 공간은 없어.】
그딴 성차별 발언을 일삼으면서 말이다.
“존나 나까지 마초이즘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는군.”
나는 항구에 계단에 로댕의 똥 싸는 남자처럼 앉아서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저 씨발 바다 게이 새끼들. 뭐가 문제길래 여자를 배에 태우는 걸 극혐하는 것이지?”
씹새들이 선실에 오나홀 전시관이라도 만들었나. 왜 우리 파티원들이 탄다는 사실에 저렇게 질색팔색정색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벌써 몇 번인가 말했지만 이세계는 의외로 남녀평등 사상이 뿌리박힌 곳이다.
일처다부제 같은 사천왕 급 예시를 데려오지 않아도 게르마니아라는 나라부터 그러했다.
마초이즘의 국가지만 그 실태는 모계사회(母系社會)!
게르마니아는 국내의 일거리를 여자들이 처리하는 나라다. 귀족의 남녀 성비가 4:6인가 3:7인가 할 정도로 높은 관직엔 여자가 많다.
‘현 국왕도 여왕이니까 말 다 했지.’
나의 상식에 따르면 이런 모계사회는 지구에서도 있던 문화다.
그런데 이토록 남녀의 등용에 차별이 없을 줄 알았던 나라가 남성우월 젠더론으로 우리 일정에 빅 엿을 날리다니!
존나 K-드라마에 낚인 외국인들은 송중기나 공유를 보러 한국에 왔다가 안경 쓴 왕감자들이 굴러다니는 걸 보고 환상이 깨진다던데,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랬다.
이제는 해안가에 보이는 선원들이 세일러 게이 전사로 보일 지경이다.
“프랑. 존나 뭐 짐작 가는 거 없냐?”
다나가 프랑을 백 허그로 안으며 물었다. 우리 아내들이 저렇게 시루떡처럼 붙어있는 걸 보니까 저 사이에 끼어들고 싶어지는군.
“전혀 모르겠어. 게르마니아 문화는 어릴 때부터 많이 듣고 자랐지만, 해안가는 내륙지방이랑 풍토가 많이 다르잖아.”
“아, 그도 그런가. 내 고향도 북쪽 섬이어서 알지. 처음에 브리타니아 중부로 내려왔을 때는 고생했걸랑.”
들어보자니 프랑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베로니카한테는 물어볼 것 없었다. 뿌리가 게르마니아여도 인간 사회를 모르기로는 우리 파티에서 제일이니까.
“선배~? 저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그때 내 옆구리에 손가락을 찔러넣는 후배가 한 명. 밀짚 모자를 쓰고 광대왕을 꿈꾸는 핑크 머리 미성년자는 우리 파티에 얘밖에 없다.
“뭔데? 라리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