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파악이 안 되는 놈의 턱주가리에 발차기를 날렸다. 그 새끼는 피하려고 했지만 팔다리가 묶인 상태로는 여의치가 않았다. ─퍽!! 걷어차여서 애벌레처럼 구르는 해적 두목.
【끄아악……!!】
【아프냐? 니새끼가 내 아내들한테 좆 같은 소릴 했을 때 내 마음이 딱 그랬어. 일어나 씹새야. 오늘의 나는 까만 마음 흑구야.】
배에 할 일도 없는데 이번에 각 잡고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수련이나 해야겠다.
잘 됐군. 안 그래도 티르시랑 베로니카가 파티에 가입한 뒤로는 내 포지션이 딜탱이 돼 버려서 기껏 배워놓고 쓸 기회가 적어진 참이었는데.
하는 김에 다른 마법도 써 가며 무영창 작 하면 되겠네. K-RPG의 노가다에서 익숙해진 작업이다. 이제 하다 못해서 존나 현실 마비노비를 다 해 보네.
【할 거면 나도 같이 가. 심문에 쓰는 방이 있어.】
코트를 벗은 우르실라가 그리 말했다.
해적 두목은 간신히 지 처지가 이해가 됐는지 얼굴이 죽을 상이 되었다.
우르실라는 손에 작업복을 들고 있었는데, 그게 꼭 생존마를 쫓는 살인마가 입는 고문복 같았던 것이다. 와. 이 선장님 카리스마 있네.
“이 새끼 고문할 건데 같이 갈 사람?”
나는 파티원들에게 질문했다. 존나 이따구로 상큼발랄하게 권할 일은 아니었지만, 저 새끼의 도발에 빡친 건 다들 마찬가지였기에 지원자가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같이 가겠다는 사람은 베로니카 뿐이었다.
“머임? 프랑이나 라리루라는 그럴 것 같았지만, 다나 너도 안 가게?”
“심문할 거라매. 저 새끼 사는 거 포기하면 줘패는 중에도 실컷 욕할 텐데, 나는 그거 듣고 빡칠 걸.”
“아, 그르네.”
좆 같이 굴어도 패버리면 되지만 심문이 안 끝났는데 맞아 뒤지는 것도 좋지 않았다. 나는 파티에서 유일하게 거수한 모 바이콘을 쳐다봤다.
“근데 베로니카, 너는 왜 따라올려 하냐? 고문이 취미야?”
“멍청한 소리. 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뿐이니라.”
“물어보고 싶은 거? 섬의 위치에 대한 단서 같은 거?”
“그렇다.”
내 물음에 수긍하는 베로니카였다.
─○○산의 항구에서 하루를 직진해서, 인면(人面) 바위가 보이는 곳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이틀 밤낮으로 나아간 곳.
이것이 섬의 위치를 가리키는 바이콘 족의 전승이었다.
“다른 선원들은 몰랐지만, 그 놈이라면 혹시 모르잖느냐.”
‘인면 바위’라는 알아보기 쉬운 랜드마크가 있었는데도 우르실라나 골데네 시프의 선원들은 전원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러므로 가서 헤매지 않게 물어보려는 모양이었다.
【사, 살려다오!! 뭐든지 말할 테니까 살려다오!!】
【살려는 드릴게. 일단 시끄러우니까 진실의 방으로.】
나는 해적 두목 몰토를 독방으로 데려갔다. 쇠창살이 있는 걸 보면 붙잡은 해적을 가둬넣는 공간인 듯 했다.
【내가 하는 고문은 보기 싫을 텐데, 비위는 괜찮아?】
전투복 위로 작업복을 입으며 우르실라가 우리를 걱정했다.
나도 약간 걱정되기는 했다. 내가 이세계에 적응하기는 했지만 고문은 처음이니까. 싸이코패스가 아닌 이상에야 손톱발톱을 뽑으면 기분이 나빠질 만 했다.
솔직히 종이에 손가락이 베이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 게 보통 사람 심리 아닌가.
사람은 상상도 못 할 고통보다는 상상이 가능한 고통이 더 공감가고 무서운 법! 이 새끼 부랄을 몽키스패너로 부수거나 하면 나도 공감각을 느끼며 안짱다리가 돼 버릴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저희 쿨하고 펀하고 섹시하게 가죠.】
그러므로 나는 미개한 중세랜드의 고문법을 따라할 생각이 없었다.
나 노르드는 이세계 꼴마초이며, 한편으로는 21세기 지구인이기도 하니까.
‘미스터 테슬라. 힘을 빌려주세요.’
고문도구 중에 쇠막대를 찾아서 들고 주문을 외웠다.
“천공을 흐르는 번개의 마나여. 한 가닥의 손톱이 되어 꿰뚫어라. <부여(Enchant)>, <번개의 화살>.”
─파지지지직!!
쇠막대기 끝에서 스파크가 튀겼다. 출력을 존나 낮춘 <번개의 화살>가 부여된 것이었다.
나는 국산 영화에서 본 대로 준비를 계속했다. ─촤악! 야수회귀의 손톱으로 해적 두목의 바지에 둥글게 구멍을 내고 <물 생성>으로 그 놈의 바지를 흠뻑 적셨다.
【뭐, 뭐야!! 이 씨발!! 뭘 할 생각이야!!】
내가 너무 망설임없이 움직인 탓일까? 상상을 불허하는 끔찍한 고문이 다가오고 있다는 직감에 해적 두목은 저항하며 비명을 질렀다.
우르실라가 대충 눈치를 채고 그 놈을 의자에 앉혔다. 쇠사슬이 그 몸을 묶었다.
【보아라. 미개한 제국주의 시대의 해적놈.】
산업혁명과 함께 태어난 스마트한 고문법을 받아라.
【──이것이 문명의 불꽃이다.】
【허어어어어어어어어억!!】
─파지직! 약한 전기가 젖은 피부를 타고 흘렀다. 공포에 눈에서 즙을 짜대던 해적 두목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자 허세를 부렸다.
【크, 크하하하!! 이, 이까짓 걸로 이 몰토 님을 어떻게 할 생각이었다면──】
【──삐까삐!!!】
【며며, 며며!! 며어어어어며며몇몇며!!!! 며며며!!!!!!!!!!!!!!!】
─파즈즈즈. 스파크가 허벅지를 타고 올라가서 불똥을 튀겨댔다.
──나와 같은 시대(=90년대)를 잼민이로 살아온 자들이라면, 학교 앞 문방구 게임기를 야바위로 켜 주던 전기 스위치 딱딱이를 알 것이다.
가끔 보면 그 위험한 물건을 친구 몸에 대고 켜던 씹새들이 있었는데.
내가 지금 하는 고문은 그것의 19금 잔혹동화판이었다.
【돈 어디 숨겼어 레보스키!!】
【으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듣기 무서울 만큼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떠는 해적 두목. 맥박 치는 것처럼 떠는 꼴이 조금 위험해 보여서 출력을 좀 낮췄다. 씨발, 출력 조절하기 어렵네.
‘이거 사람마다 맞는 출력을 찾기가 힘들겠군.’
이세계인은 마나를 쓰면 몸이 튼튼해지니까 같은 고문에도 아픈 놈이 있고 안 아픈 놈이 있겠지. 몰토 이 새끼 생각보다 물몸이다.
그래도 전기 고문은 이점이 많았다.
이거랑 창만 있어도 고문도구도 필요 없다. 그냥 때리는 수준의 고통에서 죽는 것 다음으로 아픈 수준까지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존나 내가 떠올리고도 소름 끼치는 상상이었는데, 나보단 이 고통으로 몸으로 말해요를 즐겨야 하는 이 새끼가 훨씬 더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뭐든지 말씀하씨는대로 하겠씁니다!! 북해의 마녀님께 충썽을 맹쎄합니다!!】
전기 고문을 멈추자 이 씹새는 0.1초만에 백기를 들었다. 효과 확실하구만.
【그렇다는데요, 마녀님? 어쩔깝쇼?】
익살맞게 묻자 우르실라는 해적 전기 통구이의 맥박을 짚었다.
그러고선 쿨하게 말했다.
【더 지져. 고문의 기본은 체력을 없애는 거야.】
【삐~ 삐~!! 삐까삐!!】
마스코트처럼 외치고 쇠막대의 나무 손잡이를 쥐는 나.
해당 구호는 실존하는 인물, 단체 등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삐까라는 게 사실 일본에서 온 거거든요. 삐까고 피카고 다 그냥 ‘반짝’이라는 의태어에 불과하다.
【씨이이이바아아알!!!! 시키는대로, 시키는대로 한댔잖아!!】
【그럼 존나 가만히나 있어. 사실 나 처음이라서 잘 못해. 너도 고문 당해보는 건 처음이지? 우리 불 끌까?】
【꺼흐흐흑……. 씨팔새끼. 도끼만, 도끼만 있었어도…….】
【있으면 뭐. 니가 도끼의 신이더냐? 그러게 내 머리를 노렸어야지.】
이제 와서 즙 짜 봤자 늦었다. 울어서 순수를 증명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이었다. 간살, 살인 강도, 그밖의 여러 범죄를 저지른 쓰레기 새끼라서 양심의 가책도 안 느껴졌다.
두꺼비집 ON.
【두껍아 두껍아~ 전기 줄게~ 정보 다오~.】
그렇게 나는 심문 기술 일타강사이신 북해의 마녀님께 강의를 받아가며 <번개의 화살>을 마스터했다.
필드 보스몹이라서 그런지 숙련도 개꿀이네.
【남해 바다의 해적 세력권에 변화가 있었나. 귀찮긴.】
해적 두목에게서 캐낸 정보를 기록하며 우르실라가 말했다.
우리는 매캐한 고기 냄새를 <정화(Clean)> 마법으로 날려보내고 집무실에 온 것이었다. 몰토? 그 아재는 벌써 공짜 정보 자판기가 돼 버렸단다.
【하지만 섬에 대한 지식은 없었군. 생각보다 헤매이게 될지도 모르겠어.】
아깝다는 것처럼 중얼거리는 베로니카. 밀폐공간이었지만 본인 빼고 전부 후다라서 그런지 베로니카도 크게 힘들진 않은 듯 했다.
【흐음. 이 근처에서 특수한 바다라고 하면 마레 해협 정도인데.】
【마레 해협?】
우르실라는 자기 말을 덥썩 무는 베로니카에게 지도를 보여주었다.
【특이한 해류가 흐르기로 유명한 해역이 있거든. 자연스럽지가 않은 해류 때문에 내가 군에 있을 때도 탐사대가 가곤 했어.】
【그래서, 어땠지?】
【말짱 꽝. 인양(引揚) 부대가 근처에 가라앉은 배를 인양해다가 세금에나 보태고 끝났어. 하지만 그 녀석들이 발견 못 한 뭔가가 있을 가능성도 커.】
특이한 해류인가.
나는 엘리트-대갈통으로 주판을 두들기고 말했다.
【그 해협은 많이 위험합니까?】
【아니, 별로. 내 주관을 빼고 봐도 안전한 바다야. 해류가 이상해서 항해할 때 신경 써야 한다는 것 말고는 말이지. 잠깐 들렀다가 가도 위험하진 않아.】
【거기부터 가 보죠. 뱃사람 분들께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저는 대륙 촌놈이라서 수상하게 느껴지네요.】
【그래.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니까 근처의 양도(洋島)에서 정박하든가 할게. 더 위험한 바다로 나갈 것도 염두하고 왔으니까 상관 없어.】
【그래도 마레 해협에서 끝나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깝겠는데? 자랑하고 다닐 무용담이 하나 날아가버리니까. 안 그래?】
존나 좆도 안 그런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섬에 도착하는 게 우선입니다. 보수는 확실하게 나눠드릴 테니 양해해 주십쇼.】
【그래. 너희도 기대해. 해적 놈들한테 뜯어낸 보물이나 마도구 값은 반으로 나눌 거니까. 수류조작장치는 값이 꽤 나가거든.】
우르실라는 농담처럼 그런 말을 남기고 일을 하러 갔다.
이 집무실에 있을 이유도 없어서 나도 베로니카랑 복도로 나왔다. 베로니카는 지나다니는 선원을 의식한 듯이 텔레파시로 질문했다.
【그대여. 마레 해역이라는 곳에 선지자님의 섬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 거기에만 이상한 해류가 생긴다잖아. 그리고 그 섬은 사시사철 열대기후라며.】
몇 번째인가 거듭해서 말하는 열역학 제 2법칙.
온도는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
【성수의 결계도 인상미채 효과라면 온도까지 차단하지는 못할 거 아냐. 섬의 기온에 덥혀진 파도가 주변 바다와는 안 맞는 어색한 해류를 낳는 걸지도 몰라. 걸어볼 만 해.】
아아, 이것은 ‘엔트로피’라는 것이다. 물리학이지.
‘게르마니아 인들은 결계에 감춰진 섬을 못 찾았을 거야.’
그래서 파도가 생긴 이유를 모르고 ‘미지의 원인’으로 퉁쳐버렸을 가능성도 컸다.
내 말에 베로니카는 뿔을 만지려다가 손을 내렸다. 변신 마법으로 뿔을 감춰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인면 바위는 전승이 잘못되었는가 보군.】
【모르겠네. 세월이 세월이니 파도에 깎여나가 없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지.】
고대문명 황금시대는 존나 수천 년도 전의 얘기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옛날 옛적이 바로 신화시대다. 우가우가 원시인들이 보던 바위가 현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솔직히 없지 않을까.
섬 근처까지는 전해지는 정보만 갖고도 갈 수 있으니까, 뭐 돌아다니다 보면 알 수 있든가 하겠지.
‘고고학자 일처리 특) 일단 가고 나서 생각함.’
그러니 수상한 냄새가 나는 곳이 있다면 거기부터 가는 게 빠를 듯 했다.
결계는 우리를─혹은 베로니카를─ 들여보내줄 것 아닌가. 가 보면 뭔가 알아내는 게 있을 것이었다. 나는 무영창으로 손바닥에 전기 구슬을 띄우며 그리 생각했다.
‘배에서도 할 게 없다고 지루해 하지 말고, 마법 연습을 하든가 하자.’
바캉스라고 너무 풀어져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놀 때 놀려면 공부할 때는 공부해야지.
여행이 끝나기 전에 <얼어붙는 손길(Freezing Hand)>까지 마스터하면 좋겠다.
【자!! 셋에 든다. 하나, 둘, 셋!】
【끄응차!!】
복도를 지나가고 있자 선원들이 커다란 쇳덩이를 옮기는 게 보였다.
뭔가 했는데 겉을 쇠로 덮은 수류조작장치인 모양이었다. 해적선에서 삥 뜯은 그거겠지.
수류조작장치.
배의 조타기와 연결된 이세계판 엔진이다.
나무 범선을 지구의 배처럼 빨리 움직이게 해 주는 마도구 말이다. 해적 새끼들이 뒤지기 전에 뜯어왔다더라.
‘그야 따지자면 그 조작장치가 붙어 있던 해적선이 더 비쌌겠지만.’
그래도 우르실라가 쿨하게 수장시켜 버린지 오래다. 좆도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앵간한 스포츠카도 쨉이 안 될 금덩이를 초개처럼 버리는 걸 봐서일까? 나는 선지자의 섬에 어떤 보물이 있든, 우르실라가 돈 때문에 우리를 배신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통수칠 걸 대비하고는 있지만, 저 호쾌한 꼴페미를 의심하는 건 시간 낭비겠지.
‘칼밥 오래 먹은 놈일수록 돈에 별로 집착하지 않으니까.’
나도 최근 3달 동안 현장에서 뛰어 보고 눈치를 깐 건데, 이세계에서 칼밥 먹고 성공한 사람들은 돈에 악착같이 구는 경우가 드물었다.
물론 언뜻 들으면 당연한 소리 같기도 하다.
성공하면 당연히 돈이 많아질 거고, 부자라면 돈에 집착할 이유가 없을 것 아닌가.
‘근데 그건 존나 흙수저나 할 생각이지.’
돈이 많으면 돈에 관심이 없어진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자본주의에 무지한 티를 내는군. 마치 영어 토론대회에서 낙수효과 찬성파에 섰다가 반대파한테 논리로 좆발렸던 고삐리 강북호처럼 말이다.
시팔 그땐 찬성파가 유리할 줄 알았지. 내 금상 돌려줘요.
이렇듯 사람의 욕심은 존나 끝이 없다. 10억 원 하는 요트를 탄 백만장자도 2조짜리 크루즈를 사는 억만장자를 부러워하는 게 사람이라는 생물이었다.
자유경쟁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업가는 집에 금괴가 200톤 있어도 흙수저들을 착취하는 작자다.
이세계라고 해서 뭐 다르겠는가. 대장장이 길드의 리얼돌팔이 새끼나 이번에 시장에서 만난 아지매처럼 돈에 미친 씹새들은 많았다.
존나 못 배워 쳐먹어갖고 손님들한테 ‘제시요’ 거릴 돈미새 새끼들. 로켓단처럼 잊을 만 하면 튀어나오지 아주.
아무튼 이세계의 강자들이 돈에 초연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칼밥을 먹는다는 건, 싸움에서 목숨을 판돈으로 돈을 따간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돈 VS 목숨에서 돈을 고르는 새끼는 뒤져서 없어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