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을 생각해 보면 알기 쉽다.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실패하면 일가실각이다.
자기 목숨을 걸고 투자하는 사람은 실패 한 번에 한강물 온도가 궁금해지는 법!
칼질로 오래 먹고 살려면 돈에 연연하지 않고 목숨을 애낄 줄도 알아야 했다. 그렇지 못한 놈은 강해질 시간도 없이 일찍 뒤져나간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 했던가.
오랜만에 꺼내는 찰스 다윈의 쥬지선택설이다.
【꺅! 허, 허리! 허리 빠졌어!!】
그런데 어떤 여자 선원이 그리 말하면서 무릎을 꿇었다. ─기우뚱. 같이 들고 있던 사람이 그래버리니까 당연히 장치가 옆으로 기울었다.
【야, 야! 붙잡아! 쟤 깔린다!! 잡아서 내려!!】
【조심하세요!!】
얼굴에 흉터가 있는 선원이 외쳤다. 아, 저 사람 저택에서 봤던 메이드다. 역시 선원 출신이 맞았는가 보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대쉬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일단 내려놓죠.】
【네? 아, 아! 네!】
─척. 당황한 선원들이랑 같이 쓰러지려는 장치를 받쳐서 옆에 내려놓았다. 진짜 무겁긴 하네. 존나 뭘로 만들었대냐.
【이 시발!! 허리 빠졌으면 다냐!! 발등 찧일 뻔 했잖아!!】
【미, 미안해!!】
다구리를 쳐맞는 허리 빠진 여자 선원. 흉터 메이드 씨는 그런 동료들을 찐친에게만 보낼 수 있는 병신 보는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르드 씨셨죠?】
【예. 마침 지나가던 길이라서 다행이군요. 많이 무거워 보입니디만, 옮기는 것도 도와드릴까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손님이 아니라 비지니스 파트너라서 그런지 사양도 않는군. 나는 베로니카한테 손짓을 했다.
【그대여, 까딱까딱은 무슨 뜻이지? 먼저 가라는 것이냐?】
【존나 너도 와서 도우란 뜻인데.】
【그럴 수가. 풀만 먹느라 기운도 없는 종자에게 못할 짓을 하는군.】
【죄송합니다. 신세를 지네요.】
흉터 메이드 씨의 사과에 베로니카는 팔짱을 끼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음. 신경 써라. 마음 가는대로 걱정해도 좋다. 나를 대신해서 우리 몹쓸 주인님께 시종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법을 알려주면 고맙겠구나.】
【네? 어, 그……?】
【무시하십쇼. 쟤는 게르마니아 어를 잘 모른답니다.】
【주인님께서 이제는 학대를 위한 거짓말까지 하시는군.】
그리 말하면서도 베로니카는 수류조작장치를 창고까지 옮기는 걸 도와줬다. 상명하복이 착실해서 좋구만.
─철컹.
장치를 창고에 넣고 자물쇠를 잠그는 흉터 메이드 씨.
‘근데 자물쇠가 좀 낡아 뵈는데.’
뭐, 도둑이 들 걱정은 안 해도 되려나.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데려온 항해니까.
【물건을 넣기 전에 수량 검사는 했습니다. 도둑맞아도 알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아, 실례했습니다.】
눈치 조따 빠르네.
물론 나는 도둑질 하려던 게 아니고 그 반대였다. 누가 몰래 쌔벼가지 않을지 걱정됐던 거다. 아마 선장인 우르실라는 도둑질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가 보다.
‘본인이 돈에 집착하지 않는 타입이기도 하고 말이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신삥 해적선 배때지에 노빠꾸로 구멍을 뚫어주는 걸 보면 모를 수가 없다.
우리 앞에서 잠수함(다신 못 뜸)이 돼 버렸던 배는 도당체 얼마 짜리일지.
‘아마 빼앗아도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생각한 거겠지.’
우리는 나포한 해적선을 10일 넘게 끌고 다닐 방법이 없다.
이번 항해에서 골데네 시프에는 우르실라의 주도 하에 신용 있는 선원만 모였기에, 다른 배에 배치할 잉여 인원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팀을 2개로 쪼개놔도 제대로 굴러갈 거라는 생각은 중소기업식 사고방식이다. 해적들을 살려놓고 뱃일을 시키는 건 어불성설이고 말이다.
최소 인원만 배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2~3명이서 배를 조종할 수 있겠는가?
‘아니, 있어도 문제겠군.’
또 몬스터나 해적이 나타나면 어쩌려고?
해적선에 배치한 조타수[email protected]가 게살버거 패티 되겠다. 짜잔! 당신의 선원, 플라잉 더치호로 대체되었다.
게르마니아 앞바다에 새우 잡으러 왔다가 그물에서 휴먼-물만두를 건질 어부들에게 묵념이다.
그리 생각해 보면 우르실라는 냉정하게 생존을 우선하는 우수한 선장이었다. 모험을 즐기면서도 안 죽고 성공할려면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가 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르실라가 우리만 놔두고 출항해버리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사실 그것도 문제 없지. 나나 베로니카 없이는 결계를 못 뚫을 거 아냐.’
뭍에 돌아가서 소문을 내? 아, 우리 없이 어떻게 결계 뚫을 거냐니까?
섣불리 자원이 풍부한 열대야 섬에 대해서 소문을 냈다가 거짓말쟁이 노랜드 꼴이나 안 나면 다행이겠다. 그래, 하와이는 바다에 가라앉은 거야!
【으음. 그대여. 팔이 아프구나. 아주 많이 아파. 이토록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나 같은 마법사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르게. 짐 나르는 건 시종이 할 일일 텐데.】
【찍 소리도 못 하겠군. 팔이 아파서 책을 못 들면 전부 다 그대의 잘못이다. 이건 주인님께 나 대신 글을 낭독해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겠어.】
【뭘 찍 소리도 못 해. 존나 잘만 떠드는구만.】
【찍찍.】
하나도 안 웃겨 이 년아.
【언제든 말만 하거라! 나는 쥐로도 변신할 수 있느니라!】
【안 물어봤고 원한 적 없고 텔레파시 쏘지 마.】
존나 신났구만. 니 거리감이 지나치게 줄어든 거 아니냐.
시팔 됐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보다는 나은 걸로 치자.
마레 해협까지는 반나절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독도보다 작을 것 같은, 거의 암초나 다름이 없는 섬에다 배를 정박하고 선내에서 하루를 묵었다.
밤에는 뭔가를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우르실라의 생각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렇게 안 해도 됐을 것이었다.
오늘 아침이 밝기 전부터 베로니카는 목적지를 발견했으니까.
쏴아아─.
골데네 시프는 베로니카가 알려준 곳으로 바람을 받고 나아갔다. 갑판에서 배의 난간에 몸을 기댄 프랑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로 뭐가 보여? 나는 지평선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저곳에 거대한 결계가 있다. 섬을 덮은 결계인 듯 하군.”
베로니카는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존나 암 것도 없는디.’
결계가 안 보이는 건 내 눈에도 그랬다. 구신의 마나 어쩌구 하는 이유로 나도 섬이 보일 거라고 내심 생각했었는데, 뭔가 조건이 안 맞는가 보다.
나한테 머리를 기댄 다나는 의외였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존나 별 것 없네. 괜히 긴장했구만. 무슨 소용돌이나 흉폭한 몬스터 같은 게 있으면 어쩌나 했다.”
“그러게나.”
무슨 특이한 해류가 흐른다는데,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좆도 몰겠다.
중학생 시절에 차 조수석에 앉아서 가끔씩 아버지가 클락션을 울리실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때랑 비슷한 기분이다.
“그래도 특이하지 않아서 다행인 거 아니냐? 바다 위에 딱 보이는 뭔가가 있었으면 다른 학자들이 가만히 안 놔뒀을 걸.”
“그것도 맞네. 존나 평소에도 그렇게 맞말만 하고 살면 좀 더 똑똑해 보일 텐데.”
“대체 지금 대화에서 뭘 어떡하면 남편을 때리는 멘트가 나오는 것이지?”
“울 서방님의 좋은 점을 거꾸로 말하면 됨. 존나게 많아서 암거나 골라도 되더라.”
“욕 만들고 남은 칭찬은 다 어디로 간 데스?”
“그거 엄마가 저금해 뒀어. 나중에 꼭 돌려줄게. 니 자식 낳으면 걔한테.”
존나 놀랍군. 이름도 안 지어준 자식 새끼가 벌써부터 내 척추에 빨대를 꼽고 있었다니.
흘리는 말로 은근히 섹스 어필을 하는 우리 누나였다. 이러다간 나도 프랑처럼 욕을 먹으면 흥분하는 취미 생기겠다.
“선배~. 여기에 다른 배는 코빼기도 안 보여요~.”
─휘리릭! 리듬체조 선수처럼 돛대에서 내려온 라리루라가 말했다. 결계를 들어가는 걸 다른 배가 보면 귀찮아질 수가 있으니 정찰을 하러 갔다 온 것이었다.
참고로 본인이 해 보고 싶다며 자원한 거다.
베로니카는 비서처럼 안경을 올려쓰며─섬에 깔린 결계를 간파하는 매직 아이템이라고 구라를 깐 물건이다─ 우르실라를 돌아봤다.
【우르실라. 곧 도착한다.】
【흐음. 아무 것도 안 보이지만, 알겠어. 전원 착륙 준비!!】
【착륙 준비!!】
우르실라의 호령을 떼창한 선원들은 잔말 않고 따랐다.
배는 물살을 가르며 아무 것도 없는 바다로 나아갔다. 안경 모드 베로니카가 타이밍을 맞추듯이 읊조렸다.
【5, 4, 3, 2, 1…… 지났군.】
그 순간, 풍경이 역변했다.
─화아아앗!
신기루가 사라지는 것처럼 시야에 열대 정글이 나타났다. 멀리서도 나무에 풍요롭게 핀 열매들이 보였다. 관광지로 아주 좋을 듯한 섬이었다.
【하하하하하!! 진짜잖아!! 따라오길 잘 했는걸!!】
선드러지게 웃은 우르실라는 검을 뽑아서 하얀 모래사장을 가리켰다.
【닻을 내려라!! 전방의 해안에 정박한다!!】
【옛서!! 내박 준비!!】
【내박 준비!!】
─콰르르르르륵!!
그렇게 골데네 시프 호는 모래사장에 정박하고 선하물을 내렸다. 자박거리는 모래를 밟던 라리루라가 찌는 듯한 더위에 휘파람을 불었다.
“진짜 뜨겁네요~? 꼭 여름 같아요.”
“다들 여름옷 챙겨왔지? 열사병 걸리지 않으려면 탐사하기 전에 갈아입기야?”
프랑은 자기 짐에서 가벼운 옷을 꺼내며 말했다.
자식들 데리고 소풍 온 엄마 같다고 잠깐 생각해버렸다.
프랑이 그 말을 들으면 좋아할 것 같지만 말이다.
아무튼 여름이란 우리처럼 싸울 일이 많은 사람에게는 불편한 계절이었다. 갑옷 아래로 땀이 찰 때의 좆 같은 기분은 겪어보지 않으면 논할 수 없는 불쾌함의 극한이니까.
─주륵. 짐을 내리느라 가슴골에 땀이 맺힌 베로니카는 그걸 손수건으로 닦았다.
“여름은 싫구나. 땀띠 때문에 힘들고, 다른 모습일 때는 체온이 올라가서 머리가 어지러우니.”
“가슴 땀띠 정도는 양호하죠. 공연할 때 높은 곳에 있다가 땀으로 손이 미끄러지면 등골이 오싹해진다니까요~.”
“그럴 때는 마직 천을 껴 두면 좀 나아. 나도 어릴 때부터 고생 많았는걸.”
“……야, 노르. 말없이 안아주지 마라. 존나 위로가 되는 게 더 빡치니까.”
나는 항의를 무시하고 다나를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눈나 나중에 애 낳고 젖 먹이기 힘들어서 프랑한테 모유 수유 NTR 당하면 어떡해.
짐을 다 내린 것인지 소매를 걷은 우르실라가 다가왔다.
【활동에 지장이 갈 정도의 더위군. 여름 초반 정도인가?】
【습도는 낮으니까 일교차만 조심하면 될 겁니다.】
【그래. 사전에 얘기를 들어둬서 다행이지. 다음 계획은?】
【탐색부터 할 겁니다. 위험생물이나 맹독 벌레가 있으면 큰일이잖습니까.】
【타당하네. 너희한테 맞춰서 5인 1개조로 짤게. 어때?】
【불만 없습니다. 몬스터는 없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십시오.】
【너희야말로. 바다의 모험가들 중 20%는 파도를 건너서 도착한 미지의 땅에서 죽는다더라?】
【듣기 좋은 말씀 미치도록 땡큐합니다.】
【그래. 있다 봐.】
우르실라는 선원들과 팀을 짜서 움직였다.
우리도 프랑의 감지 능력을 살려서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10분 정도만에 몬스터는 고사하고 다른 동물도 없는 듯 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좀 작은 섬이긴 한데, 식물밖에 없다구요? 정말이에요?”
땅에 떨어진 열매를 피한 라리루라가 놀라며 물었다. 그에 프랑은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 비슷한 열매랑 과일들을 들고 보여줬다.
“응. 이건 엄청 많은 작은 동물들이 주식으로 먹는 열맨데, 섬의 생태계가 밖이랑 다르다고 해도 이렇게 잔뜩 바닥을 굴러다니는 건 어색해.”
“작은 동물이 없으면 그걸 먹는 다른 생물도 없다는 뜻이 되겠구나.”
열매를 받으며 베로니카가 말했다. 무릎을 턴 프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야. 발자국도 안 보이고 나무에 영역표시도 없어. 조금 더 찾아봐야겠지만, 해안가에 이렇게 동물의 흔적이 없는걸. 위험한 동물이 있더라도 거의 움직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아.”
“……그러니까 그 뭐냐. 우리가 여길 전세 냈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야?”
“아마도?”
그 대답을 들은 순간, 나는 거의 척추반사에 가깝게 입을 열었다.
“프랑!! 다나!! 수영하러 가자!!”
“그대여. 기분은 알겠다만 30분만 더 기다리거라.”
베로니카는 차분하게 짐에서 석판을 꺼내며 말했다. 나는 흥분에 찬물을 끼얹어진 기분을 낙담했다.
“이런? 우리 주인님께서 실망하신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좀 기뻐해 줬으면 좋겠군.”
뭔가 계산을 한 베로니카는 석판에서 오리할콘이 들어간 미스릴 뿔기둥을 꺼냈다.
그러고서 그걸 바닥에 놓으며 말했다.
“이 오리할콘만 있으면, 타오르는 가지를 찾으러 다닐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주인님요?”
라리루라는 베로니카의 발언에 눈을 깜빡거렸다.
아, 얘는 시종이 어쩌구 하는 얘기를 모르던가. 나는 무척 궁금해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라리루라한테 그냥 어깨만 으쓱해 두었다. 장난 반 진심 반인 주종관계니까 말이다.
─사악. 스사악.
오리할콘 기둥을 바닥에 심은 베로니카는 책을 보면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프랑은 턱의 땀을 닦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