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0화 (240/1,009)

불결하다고 하지 마 씨발. 인싸 같다고 해 줘.

올라오면서 더워서 땀이 나긴 했다. 웃통을 안 입은 것도 그래서다. 나는 더위에 혀를 빼물면서 에일 뚜껑을 땄다.

“술 마시면 좀 낫겠지. 너도 마실래?”

“인간의 술이더냐? 무척 흥미가 돋는다만…… 잔이 한 잔 뿐이구나?”

“내가 병나발 불면 됨.”

“……그대여. 똑같이 달을 벗 삼아 마시는 술이라도, 잔에 따르느냐와 병 채로 마시느냐로 보이는 느낌이 천지 차이일 듯 하다만.”

그건 그렇다. 혼자 바다를 보며 술잔에 술 따르는 놈도 좀 미친 새끼 같지만, 병나발을 부는 새끼는 뛰어들지는 않을지 걱정하게 만드는 비쥬얼이 되겠지.

“혼자 마시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어. 그리고 이거 나무 잔이랑 에일이라서, 나는 뭘 어떻게 마셔도 바바리안 직행 풀 코스임.”

“후후. 야만전사라. 뇌신님께서 좋아하시겠군. 하기사 우리 주인님에게 품위를 바란 내가 어리석었다.”

“확 배 밖에 던져버린다. 바닷물 맛 보기 싫으면 처신 잘 하라고.”

내가 술잔에 에일을 따라주자 베로니카는 기쁘게 받았다.

“조심하마. 해수욕은 주인님에게 농락당하면서 물고기들과 춤을 췄던 걸로 충분하니. 당분간 물고기는 냄새도 맡기 싫구나.”

“그럼 안에 들어가 있지 그랬냐. 여기 생선 바베큐 냄새 풍기잖아.”

밑에 해변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선원들이 때문이다. 베로니카가 잡은 생선을 굽고 있으니 냄새가 올라올 수밖에.

─찰랑. 베로니카는 에일이 든 술잔을 구경했다.

“사실 그럴까 했다만, 관뒀느니라. 그대가 와 줬으니.”

“쮸인님이 왔으면 더 눈치 보면서 튀어야지. 괴롭히면 우짤라구.”

“후후. 윗사람이 권하는 술에서 도망쳐서 쓰겠느냐.”

우리는 떠들면서 바닷바람을 안주로 술을 마셨다. 에일을 입에 댄 베로니카가 단 숨을 내뱉었다.

“하아……. 시원하구나. 마법으로 식혀 두었느냐?”

“어. <얼어붙는 손길> 숙련도 올리는 중이라서. 여긴 어째 밤에도 일케 덥냐. 내일 탐사 나갈 때가 걱정이네.”

“섬의 기후는 자연현상과는 거리가 머니 말이다. 불의 마나 때문인지 확실히 덥기는──”

그리 중얼거리던 베로니카는 갑자기 말을 바꿨다.

“아니, 춥구나. 음. 추워서 감기에 들 것 같으니라.”

“이 날씨가 춥다고? 니 더위 먹었냐?”

“나는 멀쩡하다. 멀쩡하지 않은 적이 없느니라.”

이상한 어법으로 말하면서 베로니카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주인님. 그 윗옷, 안 입을 거라면 빌려다오. 내가 감기에 걸리면 탐사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겠지? 방에 돌아갈 쯤에는 돌려주마.”

“옷? 그러던가.”

어차피 더워서 웃통 벗고 있는 나다. 입을 예정도 없으니 대신 들어준다면 줘도 되겠지.

─꿀꺽. 꿀꺽.

그리 생각해서 옷을 준 나였는데, 베로니카는 남은 에일을 원샷 때리고서 갑자기 내 옷에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스으으으읍…… 하아아아……….”

“아니!!! 미친년아!!! 머해!!!”

뜬금없이 내 냄새는 왜 맡고 지랄이란 말인가? 당황한 내가 옷을 당겼지만 베로니카는 억세게 버텼다.

“왜 그러느냐. 나는 그저 얼굴이 차서 옷으로 가린 것이다. 스으읍…….”

“구라를 깔 거면 씁하씁하 거리질 말든가!!”

보물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힘을 주길래 나도 팔에 힘을 더 넣었다. 그러자 베로니카는 비틀거리면서 내쪽으로 끌려왔다.

“으음, 곤란하군. 취해서 그런지 발이 꼬이느니라. 이대로 가면 주인님의 가슴에 부딪히겠어.”

”않이, 머라구요?“

“취한 나를 억지로 당겨서 품에 안는다니, 그건 반쯤 바람 아니더냐? 프랑과 다나에게 이르마. 마님들께서 경을 치셔서 내 잠자리가 마굿간이 돼 버리면 주인님이 책임져 주겠지?”

아니 씹, 요즘 이것들이 나란히 왜 이럴까.

다나, 라리루라, 베로니카 셋이서 돌아가면서 꺅꺅 거리니 이건 뭐 마초이즘을 즐길 새가 없다.

‘역시 내 마음의 오아시스는 프랑밖에 없나.’

얘들이랑 이러고 노는 것도 즐겁지만 가끔은 힐링 타임도 필요하다.

그냥 프랑이 자는 방으로 가서 찌찌에 누워서 잘까. 그럼 개꿀잠 뽑기 확정인데.

존나 내 자식 새끼들은 어쩌냐. 프랑 찌찌에 안기면 밥도 안 먹고 잠만 쿨쿨 자다가 미숙아가 되 버리고 말 것이었다.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됐다. 돌아갈 때 주기나 해.”

내가 그리 말하며 옷가지를 놓자, 베로니카는 옷에서 코를 떼더니 내 눈치를 봤다.

“……주인님, 화나셨어요?”

“됐으니까 술이나 더 마셔. 마시고 꽐라 되면 취해서 그런 걸로 쳐 준다.”

내가 마시던 병을 내밀자 베로니카는 싱글벙글대며 술잔을 들었다.

“후후. 주인님께 까분 대가가 고작 벌주로군요. 호화로운 벌역(罰役)이네요.”

“말투.”

“음! 반말이니라☆!”

“목소리 뭐야.”

─꼴꼴꼴. 채워지는 나무 잔. 나는 베로니카한테 술을 따라주고 다시 병나발을 불었다.

“니 말투 들으니까 생각난 건데, 라리루라는 어쩌고 있냐?”

“……배를 구경한다며 나갔느니라. 혈기왕성도 하지.”

“구경? 걔 점심에도 몇십 분 배에 있다 오지 않았냐? 그땐 구경 안 했나?”

오일 다 바르고 나서 우리가 낚시하고 있을 때 혼자 배에 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안 했을 것이다. 그래서 혈기왕성하다는 거다만…… 뭐, 되었느니라.”

그리 말하고 술잔을 기울이는 베로니카. 저건 또 무슨 소리일까. 아무리 눈치가 빠른 나라도 전혀 정보가 없어서야 알아먹질 못하겠다.

나는 대충 잊기로 했다. 중요한 거면 베로니카가 말해줬을 것이었다.

쏴아아아아…….

바다가 파도를 쳤다. 베로니카는 그걸 구경하다가 말했다.

“밤바다는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구나. 별이 없는 만큼 하늘보다 더 어둡고 말이다. 마치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언가가 뛰쳐나와서 끌고 들어갈 것만 같다.”

“글게. 까매서 꼴 뵈기 싫긴 하네.”

술을 마시며 대답하는 나.

잼민이 강북호도 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있었을 때가 있었다.

태권도장 건물에 있던 목욕탕에는 황토색의 온탕이 존재했는데, 다른 탕에는 들어갈 수 있던 ADHD 잼-북호조차 그 탕만큼은 들어가지 못했었다.

그 황토가 보글거리는 물거품에서 접근하면 갑자기 카이저 씨호스가 팔을 뻗어서 나를 하수구 속으로 데려갈 것만 같은, 그런 유년기다운 공포감이 들었더랬다.

나이를 먹고도 거따가 똥을 지린 걸 다른 손님이 황토팩인 줄 알고 발랐다는 썰을 보고서는 얼씬도 안 했지만 말이다.

“근데 너 수중 생물로는 변신 못 하냐?”

“후후. 그건 본질적인 의문이로군. 저항할 수단이 있다면 공포는 사라지는가? 하는 의문 말이야.”

선문답이었는데 대충 무슨 말인진 알겠다.

방탄복 입었다고 총이 안 무서운 건 아니잖은가.

“공포는 미지에서 온다더라. 머릴 맞대고 생각하면 뭐라도 답이 나오겠지.”

“그거 참 듣기만 해도 멋진 일이구나.”

저주로 인해 타종족과 소통하지 못했던 베로니카는 웃으며 그리 말했다.

우리는 나무 잔과 병을 부딪히고 남을 술을 털어 마셨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섬을 탐색하러 나갔다.

화산까지는 길을 약간 헤맸기 때문에 2시간 10분이 걸렸다.

“흐엑~. 덥네요~.”

라리루라는 신음하며 나한테 달라붙었다. 나는 대답 않고 <얼어붙는 손길>과 <구름 소환>의 술식 결합 마법을 얼굴에 쏴 줬다.

“흐아아아……. 살겠다아…….”

에어컨 냉동빔에 화색이 되는 라리루라.

화산으로 갈 수록 기온이 올랐기에 다들 더위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프랑은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화산에 입구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산을 올라야 할까?”

“있기를 바래야지. 죽은 화산이라도 이 날씨에 등산은 좀 아니야.”

다나도 건틀렛을 벗고 손 부채질을 했다. ─화아악!! 나는 아내들에게 냉동빔을 쏴서 땀을 식혀줬다. 그러고 있자 정찰 나갔던 베로니카가 날개를 접으며 착지했다.

“화산 골짜기 안은 굳은 용암으로 막혀 있더구나. 테두리 일대를 둘러봐야겠다.”

“으엑.”

똥 밟은 것 같은 라리루라의 목소리가 우리 모두의 심경을 대변했다. 와 시발, 우르실라는 이런 곳을 주먹구구로 탐사한 건가? 모험가라는 칭호는 선원들한테 주는 게 맞을 듯.

“베로니카 언니이…… 기둥 주세여……. 제가 들래여…….”

“네가 들기엔 무겁느니라. 그냥 가까이 오거라.”

“아싸♡!”

라리루라는 기뻐하며 베로니카와 밀착했다.

차가운 물의 마나를 넣어둔 기둥은 아이스팩처럼 생명줄이 돼 주었다. 우리 아내님들은 내 손길에 평소보다 집착하는 판국이었고 말이다.

“……흐음?”

그때였다. 화산 주변을 걷던 베로니카는 오리할콘의 마나 파장─레이더 같은 것─을 확인하더니 고양이 귀를 쫑긋댔다. 뭔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쪽으로 가자꾸나. 더위가 강해질 테니 대비하거라.”

“대비…….”

라리루라는 고민하다가 베로니카랑 더 밀착했다. 저래봤자 체온 때문에 덥기만 할 테지만, 정작 우리 3인 부부도 형편은 비슷했다.

잠깐 걷자 절벽이 나왔다. 베로니카는 안심한 것처럼 말을 하더니 걸어나갔다.

“이곳이군. 안은 또 얼마나 더울지.”

혀를 내두르던 베로니카는 그대로 절벽으로 걸어갔다. 뎃?

“아흣?!”

당연히 벽에 얼굴을 찧는 베로니카. 뭐하는 거야.

“베로니카. 더위 먹었냐? 잠깐 쉴까?”

“아, 아니. 뭔가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있구나.”

“보이지 않는 벽? 존나 잘 보이는 절벽이라면 있는데.”

“절벽……? 과연, 그런 건가.”

베로니카는 뭔가 납득한 듯 했다. 더위를 먹은 듯 하지는 않아서 나도 대충 눈치를 깔 수가 있었다.

이 절벽, 위장이로군.

“그대여.”

“어. 비켜 봐.”

나는 손바닥 위의 태양을 뭉개며 야수회귀를 켰다. 마나의 힘이 초인의 완력에 힘을 더했고, 거기에 추가로 오랜만에 쓰는 필살기를 전개했다.

“뭉게뭉게──”

진각을 밟으며 【게르튀르】의 공격기 제 2품새, 찌르기를 주먹으로 재현했다.

“──총!!!”

─콰차아아아앙!!!

3중 강화된 펀치는 한때 태권 소년이었던 내 정권 지르기를 파워 업 시켰다. 바위가 무너지는 소리가 아니라 유리창 같은 게 박살나는 소리였다.

─스르르륵.

결계를 덮은 환영이 사라지자, 거기에 입구가 나타났다.

“아핫♡! 역시 선배에요!”

“흐, 쓰벌. 이쯤이야 개껌이지.”

나는 저릿한 주먹을 감추며 허세를 부렸다.

창으로 쳐도 될 듯 했지만 일부러 주먹질을 했다. 내 주먹이야 금이 좀 가도 다나가 고쳐주면 되는데, 창은 또 부러졌다간 곤란하니까 말이다.

프랑은 내가 감춘 손을 당연하다는 듯 알아보며 만져봤다. 쓰벌 쪽팔려.

그렇게 남편놈 손이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 베로니카한테 질문하는 프랑.

“무슨 결계야?”

“손이 아픈 주인님께는 슬픈 소식이다만, 다중 결계다. 그 환영 결계 말고도 안에도 하나가 더 있구나. 환영결계도 여기 일부만 부숴졌을 뿐이고.”

“일부면 어때. 입구가 생겼으면 됐지. 무슨 결계야?”

“한 번 보마.”

대충 분석한 베로니카는 입구에 손을 뻗었다.

결계가 있단 말이 거짓말처럼 통과하는 베로니카의 손!

─파지직.

그런데 환영결계와 달리 은폐 효과가 없는 결계였는지, 그 움직임에 반응하는 마나를 느낄 수가 있었다. 베로니카는 손가락을 핥았다.

“출입 조건을 설정한 결계로군. 자격을 갖춘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느니라.”

“아, 또 그거냐. 몇 번 보긴 했어.”

“결계술의 기본이지. 출입에 무거운 제한을 걸 수록 강한 결계가 되니 말이야.”

결계술사들의 공통 빌드 같은 걸까.

그보다 자격이라는 게 뭐인지가 신경 쓰인다.

“몬스터가 없으니 파티를 나눠도 위험하진 않을 듯 한데.”

나는 내 목에도 찬 손바닥을 대며 그리 말했다.

파티원들도 동의했다. 더위 문제라면 베로니카가 오리할콘 기둥에 물의 마나를 넣어주고 가든가, 옆에 얼음 기둥이라도 세워놓으면 장땡인 일이니까.

“차례대로 확인해 봐. 우선 나부터 할게.”

나는 결계에 손을 뻗었다.

내 손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처럼 통과가 가능했는데, 나 말고 다른 파티원들은 다들 단단한 벽에 막힌 것처럼 나아갈 수가 없었다.

“으그그그극.”

라리루라가 판토마임의 달인처럼 허공에 어깨를 눌렀지만 요지부동이다. 노크하듯이 결계를 두드린 다나가 혀를 찼다.

“이거 귀찮네. 힘이 무식한 우리 남편놈이 못 만지는 이상 부술 방법이 없어.”

“베로니카. 네 마법은?”

“시간이 너무 걸린다. 마나 낭비겠지. 거기에 하루 간격의 자동복구 기능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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