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3화 (253/1,009)

아니, 끼어드는 건 지 맘인데 왜 우리를 사이에 두고 끼어드는 거야 시부랄.

난입할 거면 10걸음만 더 앞으로 가서 하면 오죽 좋냐. 저 드워프 도끼남이 우리도 일행인지 아닌지 각 보고 있잖아.

【가게에서 소란을 피면 쓰나. 장인은 실력으로 말하면 될 것 아닌가?】

─휘적. 금발 태닝 양아치는 장갑을 낀 손을 털면서 우리 옆을 지나쳐서 걸어갔다.

【댁이 실력이 모자라서 수익을 못 내는 걸 그렇게 남 탓을 해서 어쩌자고. 우리도 자선 사업이 아니란 말이지.】

의외로 옳은 말만 골라서 하는 양아치. 그런데 내가 보고 겪은 삶의 꿀팁을 하나 알려주자면, 취객이랑 또라이랑 진상한테는 정론이 안 통하는 법이었다.

왜냐?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얻으려고 화를 내는 거지, 정당한 이유로 빡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이익!! 너는 또 뭔데 끼어들고 지랄이야!!】

격분한 도끼남은 손토끼를 투척했다.

나는 날아오는 도끼에 얼탱이가 터져버렸다. 아무래도 니다벨리르 드워프들의 빨리빨리 정신을 얕봤던 모양이다.

【이크, 위험해라!】

키 작은 양아치는 날렵하게 도끼를 피했다. 여기서 문제. 내 앞에서 깝죽대던 새끼가 지만 피하면 그 뒤에 있는 나는 어떻게 되게요?

당연히 빗나간 도끼가 내 명치를 노리고 날아오지 시발아.

나는 도끼를 낚아채서 잡으려다가 이목이 끌리기 싫어서 걍 피해버렸다. 양아치가 놀라서 사과했다.

【어어, 거 미안합니다. 내가 아직 경비 일에 익숙하질 못해서리. 안 다치셨슈?】

【피했으니 됐습니다. 하던 일이나 마저 하시죠.】

나는 대충 대답했다. 도끼가 프랑한테 날아갔으면 분노조절장애를 참기 힘들었겠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니 넘어가주도록 하자.

【고맙수다! 생긴 것만큼 남자다워서 멋지시구만!】

장갑을 낀 손으로 인사한 양아치는 도끼남한테 파고들며 그 목 뒤를 손날로 쳤다.

【끄엑!】

흰자위를 보이며 간단하게 뻗는 도끼남. 나는 좀 놀랐다.

‘생긴 거랑 달리 꽤 실력이 되네?’

드워프의 내츄럴 탱커 보디에다가 단련까지 한 듯 보이던 도끼남을 저렇게 간단히 쓰러트릴 줄이야. 이만한 길드의 경비원으로 근무할 만 하군.

【조이드 님!】

─우르르. 뒤따라서 나타나는 남자들.

양아치랑 같은 옷을 입었으니까 아마 경비원들이겠지. 조이드라고 불리운 양아치는 드워프에게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연행해. 시 경비대랑 연계해서 체포 요청하고.】

【예!】

경비원들이 도끼남을 끌고 갔다. 남겨진 일행은 끌려가는 친구를 보며 멍청하게 서 있게 됐는데, 조이드는 목소리를 깔면서 말했다.

【친구가 잡혀가서 유감이게 됐구만요. 드워프가 대낮부터 취했을 리도 없고, 댁도 고생 많았겠수다.】

【아, 아니…… 저 친구가 저런 친구가 아닌데…….】

【어엉? 뭐야? 이거 이제 보니 댁도 저 친구랑 같은 의견이신가? 같은 길드원이래도…… 아니지. 같은 길드원이니까 더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안 그렇수?】

제이드는 팔짱을 끼며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이 힘든 시기인 건 다들 마찬가지여. 우리 같이 으쌰으쌰 해서 좀만 참읍시다. 응? 나도 요즘 저런 길드원들이 늘어서 마음이 아파.】

【……으음. 미안허이.】

드워프는 그 말에 납득한 것처럼 떠나갔다. 인사성이 바른 걸 보면 착한 사람 같았다. 왜 저런 급발진 도끼남이랑 같이 다니던 걸까.

난장판이 된 상황을 정리한 조이드는 접수원을 토닥여주곤 나한테 말을 걸었다.

【어…… 뭐냐. 아까는 진짜 미안했수다. 내 사과하겠수.】

【흐흐. 신경 안 씁니다. 정 미안하면 돈으로 주시죠.】

히죽거리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조이드는 한 방 먹었다는 것처럼 폭소했다.

【크하하하! 그렇군! 돈은 맺고 끊는데 늘 최고지. 받으셔.】

─피잉! 동전을 튕겨 날리는 조이드. 나는 손바닥을 펼쳐서 받아냈다. 10쿠퍼 동전이었다.

와, 시발. 여기서 10만원을 쿨하게 쾌척한다고? 그럼 인정이지.

나는 금융치료 한 방에 기분이 좋아졌다. 진상질을 잠깐 상대해 준 걸로 사죄금이 10만원이라니! 여기 오래 있으면 돈 좀 벌리겠네.

【옆에 아내랑 마실 술값에 보태슈. 내 추천은 벨로스트 지방에서 만든 맥주요. 묵직한 목넘김이 예술이지.】

【참고하죠.】

나랑 프랑의 반지를 알아본 건가. 역시 실력자였다.

적의 무장을 관찰하는 실전 경험자의 기초 능력이니까. 걍 버릇이 돼서 쎄 보이는 상대가 있으면 관찰하게 된다.

【입은 거랑 가진 걸 보니 모험가구만. 2층이 무기, 3층이 철 갑옷, 4층이 가죽 갑옷에 5층이 매직 아이템이외다. 주문 제작은 1층 저쪽이고. 그럼 수고하시게.】

메뉴얼을 읽듯 설명해준 조이드는 바람처럼 떠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터졌다가 수습돼서 정신이 없었다. 내 손에 쥐어진 10만원 현찰만이 현실감을 주었다.

“그래도 깽값으로 10쿠퍼면 개이득 아냐?”

“선배? 깽값 노리다가 도끼에 맞으면 죽어서도 눈 편히 못 감으실 걸요.”

“안 뒤질 거니까 괜찮음.”

솔직히 맞거나 낚아채도 안 다쳤을 것이었다.

우리는 갑옷 주문 제작을 접수하고 안내받은 대로 길드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호오! 멋진 가죽이군요!”

거인의 푸른 가죽을 확인한 접수원이 감탄했다.

그가 보고 있는 가죽은 감정을 위해서 작게 잘라온 가죽이었다. 통째로 들고 오면 무겁고 눈에 띄니까 말이다.

“흐흐. 칭찬 감사합니다.”

드워프가 저렇게 놀라니까 나도 조금 의기양양해졌다. 꼴마초는 사냥을 취미로 삼는 생물이기에 사냥감을 칭찬받으면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눈 훤히 뜨고 코 베이는 게 이세계의 거래니까.

“질감도 좋은 것이 아주 훌륭하군요. 직접 잡으셨댔나요? 어떤 몬스터였습니까?”

“하하. 별 것 아니었습니다. 게르마니아에서 오던 길에 웬 동굴에서 마주친 놈이었죠.”

접수원의 말을 ‘태극권’ 하는 나.

처음 보는 가죽이니까 정보를 캐내려는 모양인데, 이상한 일에 휘말리긴 싫거든. 그치만 구라는 안 깠다. 동굴에서 찾은 건 맞지 않은가.

드워프 접수원은 청산유수로 말했다.

“흐음, 흐음. 만져보기만 해도 살아 생전에 얼마나 강력한 몬스터였는지 상상이 갑니다. 이런 놈이었으면 한 지역의 산군이었겠죠. 어디에서 이런 거물을 만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지역만이라도 특정해 볼라고? 미안한데 걔 존나 유니크 몹이야.

게다가 내가 동굴에서 마주쳤다고 밑밥을 깔아서 육로로 왔겠지~ 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배를 타고 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착각하도록 일부러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 거지만 말이다.

“이거 죄송합니다. 보다시피 무식한 몸이라, 외국 땅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가이드 뒤만 열심히 따라와서요.”

“흐음…… 그러셨군요. 어떤 작업을 원하십니까?”

포기했군. 프랑이 만들어 준 디자인 밑그림을 건네주었다.

“갑옷으로 만들어 주십사 합니다. 여기 아내의 그림입니다. 이대로 만들어 주십시오.”

“오호. 이걸 옆의 아내분께서? 아내 분께서 미인이신데다 능력까지 좋으시다니, 참 부럽습니다.”

그렇게 아부를 떠는 접수원과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요금을 책정했다.

예상 기간은 10일. 내가 추가로 요구한 것까지 다 하면 좀 더 걸릴 수도 있댄다. 그래도 2주일 이상은 아니라고 하니까 복귀계획에는 지장 없을 듯 했다.

드워프 접수원은 서류에 펜을 놀리며 말했다.

“옵션까지 다 해서, 갑옷 제작비는 6실버가 되겠습니다.”

아이고 시발.

제작비 존나 비싼 것 봐라. 6실버면 600만원이잖아.

아까 10쿠퍼 줍고 기뻐하던 내 처지가 병신 같아지네. 그래도 성공하고 나서 돈 쓰는 씀씀이가 커졌던 만큼 빨리 정신을 차리는 나였다.

“요금표를 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서류를 받아서 프랑이랑 나눠보았다. 라리루라도 좀 궁금한지 끼어들길래 약간 옆으로 밀어줬다.

백화점에서 고급 양복을 몸에 맞춰서 주문하면 막 몇 백씩 깨진다고 하던데, 이세계의 전투복이니만큼 6실버 정도는 들 법 하겠지. 아마도.

그런데 내 생각에 핀잔을 주는 것처럼 옷깃을 잡아당기는 프랑. 테이블 밑이라서 접수원한테는 안 보였을 것이다.

나는 0.1초만에 내 의견을 뒤집었다.

“잠깐 일행과 상의하고 오겠습니다. 3분만 기다려 주십쇼.”

“예? 아, 금액이 모자라신 거라면──”

“흐흐. 갔다 와서 마저 얘기하죠.”

대출을 권하거나 남는 가죽을 팔라고 할 게 뻔하니까 컷. 세 사람이서 문 밖으로 나왔다.

“프랑, 왜? 가격이 비쌌어.”

“네. 염색비이 무지 비싸던데요?”

대답은 라리루라가 했다. 얘는 어케 아는 거지. 내 그러한 의문을 눈치챈 것처럼 라리루라는 자기 옷을 잡아당겼다.

“아핫♡! 선배도 참~. 저처럼 챠밍한 여자애가 옷이랑, 그 옷에 색을 내는 염료도 모를까 봐요? 서커스는 눈길을 사로잡는 예술이라구요?”

“아아, 그렇구만. 나는 염색비는 생각도 못 했네.”

훔쳐 들었던 거지만, 아까 도끼남이 풀발하게 된 계기도 그 염료 값 때문 아니었나?

프랑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라리루라 말대로 엄청 비싸더라구. 세르페라는 건 주머니 한 봉다리 무게인데, 3 세르페가 1실버랬지? 이러다가 갑옷 제작비의 반은 염료 값에 들어가겠어.”

“그거 은근 큰일이네.”

기술을 존중하는 나라이니만큼 인건비가 높은 건 이해를 해 줄 수 있지만, 옷을 염색하는데 돈을 수백 씩 깨먹는 건 조금 에바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파란 갑옷을 입고 다니는 건 좀.’

거인 가죽이 예쁘기는 해도 상하의 청청 패션은 에바다.

내 은신 경험을 생각해 보면 검은 옷을 입는 게 여러모로 편하기도 하고 말이다.

“……노르.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우리 프랑은 도적이기에 그런 점을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아내님은 2분도 걸리지 않아서 집안 가계부를 도맡는 가정주부로서 절약 꿀팁을 방출했다.

“작업을 맡겨놓고, 빈 시간에 염료를 찾으러 가 보면 되지 않을까?”

염료를 직접 구한다고?

나는 프랑의 제안을 곱씹어 보았다. 여기는 마법이 있는 세상이지만 그 마법도 마나라고 하는 자원과 법칙에 맞춰서 움직인다.

예전에 꿈에서 마법으로 만든 옷을 입었던 베로니카도 내 손짓 한 방에 알몸이 되지 않았던가. 이세계인들도 마법으로 한 염색은 문제가 있으니까 염료를 사서 쓰는 거겠지.

옷을 색 바래지 않게 염색하려면 멀쩡한 염료는 필요했다.

‘것보다 이제 베로니카도 내 아내니까 거리낌 없이 생각해 내고 발기해도 되겠군.’

─발기잇. 그리 생각하자 쥬지드라가 환호하며 포효했다.

솔직히 태어나서 두 번째로 봤던 여성의 전라인데 덤덤할 리가 있나. 아내밖에 모르는 남자인 척 했어도 남자는 자기 본능에는 거짓말 하기 힘든 것이었다.

아무튼 지금 신경쓸 건 염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우리가 구해 보겠다고 얘기해 놓고, 못 구하면 돈 주고 사지 뭐.”

고민할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당장 돈이 많다고 펑펑 썼다간 나중에 좆 된다. 신혼집을 사자마자 거지가 됐던 시절을 반복하게 될 것이었다. 여기에 아우둠라 길드가 있다면 오랜만에 길드 의뢰에서 중복할 수 있는 걸 찾아보도록 하자.

상담실로 돌아가서 그런 취지를 전했다. 드워프 접수원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사실 모험가 분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재료를 구해오시고는 합니다.”

쉽게 수락한 접수원은 제작비에서 염료 비용을 깠다. 그러고서 연금술 길드의 위치를 안내해 주었다.

수수료도 못 받는데 염료 제작까지 도맡기는 싫다는 길드의 취지일까? 나도 연구원생 시절에 교수들이 겸사겸사 맡기는 업무를 존나 싫어했기에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절차대로 발주를 넣고 연금술 길드로 이동했다.

“대도시라서 그런지 연금술 길드도 분가했구만.”

“말이 간단해서 연금술이지, 하는 일은 다양하니까요~.”

그렇긴 하다.

연금술 학파는 가깝게는 포션 같은 제약부터 멀게는 금속 가공까지 광범위했다. 대도시에서 연금술 길드가 독립해 있는 것도 당연하다. 퀼리티도 다르겠지.

대충 대형 마트의 부속 다이소랑 다이소 건물 정도의 차이.

그건 그렇고, 예전에는 연금술사라고 하면 짝팔 짝다리 만화 캐릭터가 먼저 떠올랐는데 요즘은 티르시가 떠오르는군.

‘티르시는 요즘 뭐 하고 있나 몰라.’

겨울이면 길드 일도 별로 바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모험가 일도 오우거 잡으러 갈 때 했던 말을 생각해 보면 한가할 것이었다.

‘돌아가기 전에 선물이나 사 가자.’

출장 갔다가 오면서 업무로 안면을 튼 지인들한테 선물을 뿌리는 것! 사회생활이 편해지는 요령이었다. 나도 해 보는 건 처음이지만 말이다.

“최근에 가장 인기가 많은 검정 염료는 ‘가마 상수리나무’ 숯이군요.”

연금술 길드에서는 검은색 염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주변에서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염료를 물어본 것이었다.

상수리나무라. 처음 들어보는군.

“어떤 나무의 숯이죠?”

“오크 나무의 일종입니다. 수액도 이파리도 검고 성장도 빨라서 최근에 많이 쓰는 염료죠. 이쪽이 그 염료로 염색한 색이고요.”

녹색이 아닌 나무라니, 엽록소도 없이 어케 광합성을 한대.

생각해 봤자 쓸모도 없을 것 같아서 카탈로그나 구경했다. 내 엘리트-대갈통은 육류에서 추출한 단백질과 아내들의 사랑을 양분으로 움직인다.

피곤하게 남 일에 머리 쓰기 싫다 이거에요.

그나저나 색이 좀 마음에 안 드는데.

미용실의 염색 색깔 표본처럼 물들인 천을 둥글게 잘라붙여 놓은 카탈로그였다. 하지만 그 뭐시기 나무의 색깔은 싸구려 느낌이 강했다.

‘기껏 좋은 가죽을 얻었는데 이건 좀.’

나는 옷차림에 연연하지 않는 꼴마초지만 내 아내들 욕을 먹게 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귀빈들이랑 상대할 때도 그럴 것이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의 옷차림을 따진다. 옷의 실밥이나 마감까지 전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내가 싸구려 염료로 염색한 옷을 입고 있다?

내 실력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입을 털기 전부터 평가가 깎이고 들어갈 것이었다. 딴 사람들이 우르실라처럼 맞짱으로 YES/NO를 정하지도 않을 것이니까.

나는 카탈로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검은색을 꼽았다.

“여기 있는 워르 색(色)으로 염색하면 비용이 어느 정도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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