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5화 (255/1,009)

배불리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서 다 같이 침대에 뒹굴었다.

“후아아아……♡ 선배, 큰일났어요. 섬에서도 배 터지게 밥 먹고 그랬는데, 육지에서도 그러면 살 찌는 거 아니에요?”

다나의 위에 스스럼없이 누운 라리루라가 말했다. 인간 샌드위치 상태다. 다나도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남자였으면 죽빵부터 날아갔을 텐데, 이세계에서도 여자들끼리는 스킨십에 거리김이 없는가 보다.

“걱정은. 몸 쓰는 사람이 살 찌는 게 어디 쉽냐?”

마나로 강화한 몸은 일반인보다 칼로리 소모가 크다.

대충 내 체감으로는 기본 2배에서 많으면 3~4배다. 이유는 모르겠고 딱히 관심도 없다. 몸에 해는 없으니까 체지방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라리루라는 내 대답에 불만스럽게 다리를 까딱거렸다.

“마나를 써서 움직여야 살이 안 찌죠! 최근에 너무 헤이해졌어요. 게으름보 라리루라에요. 광대 옷을 입었을 때처럼 펑퍼짐한 옷이 아니면 뱃살이 쫌 나와도 잡아떼기 힘들다구요?”

“여기 축제 중이잖아. 소규모 공연이라도 해 볼래?”

“으음…… 으으으음…… 뭐, 며칠 더 생각해 보구요!”

“그게 그렇게 고민할 일임?”

속세에 물든 전직 아이돌 같구나. 시골로 귀농한 연예인들처럼 몇 년 정도 일에서 떨어져 있어야 무대가 그리워지든가 할래나.

“다들, 우리 디저트 먹지 않을래?”

그때였다. 프랑이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면서 말했다.

“이 주변에 엄청 맛있는 케이크 가게가 있는데.”

“케이크요?! 갈래요, 갈래요! 야호♡!”

“쿡쿡. 살 찔 것 같다던 우리 막내 오데감?”

상쾌하게 일어나서 거수하는 라리루라. 밑에 깔려 있던 다나도 피식거리면서 웃었다.

군살을 걱정하던 프리실라를 댓번에 엿 먹여 버리는군. 네 이년 라리루레로! 프리실라의 몸에서 썩 나오지 못할까!

“케이크는 오랜만에 먹는 거라서 살 안 찔 걸요!”

“밤에 먹는 사과는 몸에 나쁘다 급으로 근본없는 소리네.”

여기에 생일날 케이크 먹는 풍습이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세계에 배달음식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라리루라야.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던 사람한테 자유를 주면 이렇게나 해이해지는가 보다.

─스윽. 아무튼 다 같이 일어나는 여성진.

영양분을 섭취하고 컨디션을 회복하던 베로니카만 일어나지 않았다. 참고로 빨래를 갖다놓고 와서 짐을 푸는 게 늦어진 나도 말이다.

“선배? 선배는 같이 안 가시게요?”

“난 짐 마저 풀고 쉬련다. 너희끼리 천천히 다녀와.”

“아쉽네요☆!”

좆도 아쉬운 느낌이 아닌데.

라리루라는 미친 텐션으로 신나하면서 자기 지갑을 챙겼다.

“케이크~♡! 케이크~♡! 아, 선배 것도 포장해 올게요?”

“그려. 여자끼리랍시고 얕잡아 보는 멍청이들 조심하고.”

“네에~! 다녀오겠습니다~♡!”

빵끗 웃으며 먼저 나가는 라리루라. 나는 그 녀석이 떠나는 걸 기다렸다가 말했다.

“……나 왠지 벌써부터 딸을 키우는 듯한 기분이 들어.”

“라리루라는 저런 면이 순수해서 좋지 않으냐.”

“그른가.”

그치만 친해질수록 애가 되는 것 같다.

쟤 진짜 내년이면 성인 맞나. 돈까스에 낚여서 병원에 끌려가는 중학생처럼 낚여버리니까 내가 다 미안해지네.

‘뭐, 20살도 충분히 애이긴 한데.’

30살 40살을 먹고도 철이 못 들어서 미성년자 때보다 나을 게 없이 구는 사람도 자주 보이지 않던가. 라리루라한테도 말했던 것처럼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된다는 법은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막 건방지게 굴기도 했었는데.’

아마 요즘은 미움받을 것 같아서 참는가 보지.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지만, 눈치가 좋은 라리루라니까 좀 사리는 게 아닐까. 환경이 바뀐 곳에에 선을 넘을락 말락 깔짝대면 위험하다.

주거환경이 바뀌면 예민해지기 쉬웠다.

그 왜, 인내심의 한계가 낮아진 시기에 까불면 한 소리 듣기 쉽지 않은가.

‘여행 중에 싸워서 사이가 틀어지는 친구 사이도 흔하니까.’

유랑 경험이 많으니만큼 서커스단에서 비슷한 일을 겪어본 걸지도 모르겠다. 저기압인 알렉산드라 씨한테 장난치다가 크게 꾸중이라도 들었다든가.

아무튼 라리루라가 제대로 나가는 걸 본 다나는 우리── 그러니까 나랑 베로니카한테 말했다.

“2~3시간 정도 밖에 있다가 올게. 샤워할 시간 포함해도 그 정도면 될 거야.”

“그대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고맙구나.”

인사하는 베로니카에게 다나는 손을 저어보였다.

“뭘. 처음인데 그 정도 배려는 해 줘야지. 같은 남편 밑에 모인 사이잖아.”

“으음. 그러니까 더 감사를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 다음에 논문 쓰기 괜찮은 얘기 있으면 들려주라. 1달 넘게 출장 나가서 완전히 공치고 돌아가면 평가 깎일 것 같아.”

“내가 아는 이야기로 좋다면, 얼마든지 그리 하마.”

“땡큐~.”

웃으며 손바닥을 내미는 다나. ─짝! 베로니카는 처음 보는 동작이라서 그런지 잠깐 얼 타다가 손뼉을 맞추었다.

“다녀올게.”

─살랑살랑. 프랑은 손을 흔들면서 방문을 잠갔다.

이제 이 방에 우리 둘만 남은 것이었다. 나는 짐을 전부 다 풀고서 말했다.

“베로니카. 좀 이따가 방 하나 따로 잡을 거야.”

“여, 여기서 하는 게 아니었느냐?”

우리끼리만 있는 걸 의식해서일까. 베로니카는 약간 긴장한 모양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드가 없어지잖아.마법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같은 여관의 다른 층 방으로 잡게.”

“으, 으음. 알겠다. 나도 준비하마.”

잠시 후, 다른 파티원들이 멀리 나갔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에 우리는 카운터로 내려갔다.

【2인실 하나를 잡고 싶은데요.】

내가 그리 말하자 접수처의 올백 머리 아재는 잠깐 눈을 깜빡거렸다. 오늘 4번째로 뵙네요. 이러다 존나 정 들겠네.

【……대실이면 되겠습니까?】

【예.】

눈치가 빠르시군. 방 열쇠를 받고 오니 베로니카는 홍조를 띄우며 쑥쓰러워했다.

“……저 접수원, 우리를 바람 피우는 불륜 상대로 보는 건 아니겠지?”

“흐흐. 맘대로 생각하라 그러라지.”

베로니카의 어깨를 감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어차피 난 이렇게 예쁜 아내를 두고 있는 행운아 아니냐. 너랑 이러고만 있어도 딴 남자들의 질투를 안 살 수는 없어.”

“……후, 후흥? 우리 주인님도 속물적이시군. 시종이 자기 여자가 되자마자 이토록 칭찬이 가벼워지다니.”

“그래서, 싫어? 너한테만 좋은 말 아껴줘도 되는데.”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처럼 1년에 1~2번만 사랑한다고 말 하는 츤데레 남편 노릇도 가능하다.

“싫지는…… 않다.”

내 그런 짖궂은 말에 베로니카는 입술을 삐죽였다.

‘싫지는 않다’라. 나는 베로니카의 뺨에 키스했다.

“기왕이면 좋다고 해 주라. 나는 베로니카 너를 좋아하는데, 정작 너는 싫지 않다~ 나쁘지 않다~ 그러기야? 너희 주인님 무지 섭섭하다?”

“……멍청한 놈.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안길 것 같으냐?”

“흐흐흐흐. 말로 해 달라는 얘기지.”

애정을 담아서 허리에 손을 감고 새 방으로 갔다. 입술에 키스하고 싶지만 참자. 축제 중이라서 여관에도 사람이 많다.

베로니카는 방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에도 어깨를 떨었다.

침대에 먼저 가서 앉는 나. 베로니카도 가져온 가방을 내려놓았다. 방에 있는 술병을 까서 잔에 따랐다.

“한 잔 하고 긴장 풀어.”

대답도 않고 잔을 받은 베로니카는 입으로 들어가는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마셨다.

나도 잔에 따른 술을 입에 댔다.

접수원이 나이가 있는 만큼 짬이 높았는지, 레드 와인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딱 좋은 도수와 달콤함이었다.

침대에 앉아서 내 다리를 쳤다.

베로니카는 잔을 두고 그 위에 앉았다. 우리 아내들 중에 제일로 키가 큰 베로니카지만, 다리가 길어서인지 품에 들어오면 이마에 키스하기 적당한 높이에 안착한다.

내 다리에 옆으로 앉아서 입술만 꼬물거리는 베로니카. 난 그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많이 긴장했군.’

긴장하지 않은 척 하려고 애 쓰는 게 보기 짠할 정도였다.

─쿵쿵. 커다란 가슴과 거리 차이를 아랑곳 않고 그녀의 심장 소리가 전해져 왔다.

나는 의식해서 베로니카가 온 신경을 집중해서 언제 오나 긴장하고 있을 부위를 피했다.

아내들이 어쩌다 보니까 전부 처녀였기에 본의 아닌 아다 폭격기가 돼 버린 나다. 행위 전의 애무와 긴장 완화가 진짜 중요하다는 건 숙지의 사실이었다.

“……베로니카. 내 심장 소리 들려?”

자세를 조정하면서 베로니카한테도 내 심장 소리를 들려줬다.

내 가슴에 귀를 기울인 베로니카가 중얼거렸다.

“들린다. 무척 듣기 좋은 소리로 뛰고 있구나. 그대도 긴장하고 있느냐?”

“그야 긴장하지. 사랑하는 아내한테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려고 하는 참인데. 하지만 긴장이랑 기대는 한끗 차이야.”

나는 베로니카와 손가락을 깍지끼며 그리 말했다.

심장 소리랑 연인의 체온, 등과 머리에 닿는 스킨십은 긴장 완화에 좋다던가. 귀동냥 지식의 효능은 프랑이랑 다나가 몸소 실연해 보였었다.

로마니아 드레스 차림의 베로니카를 쓰다듬으며 그 어깨에 손을 뒀다.

‘이대로 어깨에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리 생각하던 내 눈을 베로니카의 뿔이 찔렀다. 어깨에 둔 손을 느낀 베로니카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갸아악!”

“괘, 괜찮으냐?!”

베로니카는 칼로 찌르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면서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뭐, 그리 아프지는 않은데 나도 집중하던 차였기에 심장이 크게 뛰고 말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자 멈칫하는 우리.

“……푸훗.”

“……크크크.”

우리는 긴장감을 잊어버린 것처럼 입술을 포갰다가 떼었다.

뺨에 닿는 손의 체온이 따듯해서 기분이 진정된다. 긴장을 풀어주려던 내가 역으로 릴렉스를 당하고 있었다. 내 심장 소리를 레이더처럼 탐지하던 베로니카도 그걸 눈치챘다.

“나의 그대여. 나는 부끄럽게도 인간의 교합(交合)에 대해 거의 모르느니라.”

한결 편해진 안색으로 베로니카가 말했다.

“해서, 그대만 허락해 준다면 지식으로 아는 셰이드 의식을 나의 첫 경험으로 삼고 싶구나.”

“셰이드를?”

“그래. 무얼. 보통 성교와 대단한 차이는 없느니라. 그저, 내가 익숙한 절차대로 움직여 보고 싶다. 그대가 내게 좋은 추억을 주고 싶듯이…… 나도 그대가 풋내 나는 처녀를 상대하느라고 즐기지 못하길 바라진 않는다.”

자신의 소중한 첫 경험이니까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아도 될 텐데, 베로니카의 눈빛은 진지했다.

아마 내가 하지 말자고 말린다면 시키는대로 따르겠지. 하지만 그녀가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론에 트집을 잡는 건 아내바라기 꼴마초에게 걸맞지 않은 행위였다.

“좋아. 그렇게 하자.”

나는 베로니카의 제의를 수락했다.

처음에는 바이콘의 법도에 따르는 것이 신족인 베로니카와 내가 원만하게 지내기 위한 예의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첫날밤이라고 한 번만 하고 끝낼 생각은 없었다.

셰이드의 효과는 잠에 들어야 나오는 것 아니던가. 그녀가 편하게 파과(破瓜)의 공포를 극복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됐다.

섹스를 의무나 무서운 걸로 생각하는 건 안 좋으니 말이다.

“받아들여 줘서 고맙구나. 바로 준비하마.”

그리 말한 베로니카는 가져온 가방에서 공간마법이 걸린 석판을 꺼냈다.

바닥에 룬을 수십 글자씩 새기고 타오르는 가지를 축으로 재료를 배치하자 그럴싸한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준비는 그게 끝이었는지 베로니카는 침대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다가왔다.

…파앗.

빛무리가 베로니카의 드레스를 휘감았다가 사라졌다.

“……부끄러우니까 탐미하는 듯 보는 것은 참아다오.”

마법으로 만든 옷이 사라지자 베로니카의 나신이 드러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을 벗으려고 했는데, 베로니카가 손짓으로 말렸다. 의식의 일부인가? 어정쩡하게 든 손을 내리자 베로니카는 내 옷을 직접 벗겼다.

옷의 구조를 몰라서 잠시 헤매면서도 상의를 벗기고, 밑의 옷을 벗기는 베로니카였다.

베로니카의 손길은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웠다. 마치 우리가 농담처럼 얘기하던 주종관계가 사실이 된 것처럼 말이다.

꼴사납지 않게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발기를 참았다.

선지자의 지식에 셰이드는 없었다.

본인은 달인이었겠지만 후예한테 전할 지식은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아무리 이게 신대의 문란한 의식이어도, 진지하게 임하는 베로니카 앞에서 발기를 하는 건 미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속으로 그리 생각했던 나는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현대에 순결을 중시하게 된 게르마니아 지방이지만──

그 문화가 수천 수만 년 전에도 그랬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겠는가.

베로니카는 신께 바치는 보물이라도 들듯이 공손하게, 내 불알을 손바닥으로 받쳤다.

남근숭배사상은 이세계에서도 자주 있던 일이던가.

나는 발기를 참는 내 좆기둥을 다른 손으로 들어올리는 베로니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쪼옥.

더위에 늘어진 뱀을 드는 것처럼 내 자지와 불알을 받쳐든 베로니카는 그 귀두 끝에 키스했다.

그것은 마치 신상(神像)에 순결을 바치는 처녀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음탕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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