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헷. 운이 나빴구만. 우리 일을 방해한 걸 신전 침대에 누워서 후회하셔. 다리 몽둥이 정도는 부러트려 놓을 테니──】
【아니, 전원 죽여라.】
양아치들의 말을 끊고 가면과 터번을 쓴 남자가 말했다.
아니 시발 뭐?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죽이라는 지시에 놀란 건 아니었다. 하찮은 도적놈들도 살인을 좆으로 아는 세상인데 고작 살인교사 가지고 놀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근데 저 새끼들은 양아치잖아.’
양아치와 도적의 가장 큰 차이는 흉악범죄를 저지르는가 아닌가였다.
공권력에 체포당했을 때 이력서가 아니라 목에 빨간 줄이 그어지는 게 도적&살인마.
그리고 삥을 뜯고 폭력을 저지르지만 진짜 중도범죄는 피하거나 무서워 하는 게 양아치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저 새끼들은 양아치가 분명했다.
살인에 익숙한 도적이었더라면 우리를 보자마자 무기부터 뽑고 프랑과 라리루라에게 성희롱 일발 장전 정도는 했을 게 분명하니까.
그야말로 우르실라가 지금쯤 경비대에 넘겨버렸을 해적 두목 새끼처럼 말이다.
【예? 주, 죽일 것까지 있습니까?】
아무튼 당황한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얼굴을 가린 양아치도 말을 더듬었다.
터번과 가면을 쓴 남자가 그들의 상관인가? 그게 아니면 의뢰주일 수도 있겠다.
【뒷처리 걱정은 마라. 마침 뒤가 절벽이잖나. 죽이고 던져버리면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다.】
터번 남자는 시시하다는 듯 턱짓을 하며 말했다.
【염료값도 못 내서 자기 손으로 캐러 오는 종자들이다. 그만한 신분도 없겠지. 축제로 바쁜 영주의 병사들이 실종자에 신경 쓰겠나?】
【……얼씨구 시발. 지랄 나셨네.】
지켜보던 나는 그리 뇌까렸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겠다. 저 터번 새끼는 다른 양아치들이랑 비교해서 수준이 한 단계 높다.
‘아니, 수준이 더 낮다고 해야 하나.’
도덕윤리와 인간성을 제물로 이쪽 바닥에서 레벨 업을 한 쓰레기 새끼 같은 느낌이었다. 폭력과 유혈사태에 익숙한 씹새였다.
【아, 알겠습니다! 준비해!】
─채앵!
우스운 것은 그의 명령에 양아치들은 주저하면서도 무기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보통 저렇게 법과 상호존중을 개무시하는 새끼들이 꼬리를 만 개처럼 구는 건 드문 일이다.
자기가 세속 사회의 범주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착각하는 새끼들!
그들이 눈치를 보는 상대는 자기들이 갖힌 작은 뒷골목이나 범죄조직의 상부층이었다. 깍두기나 양아치는 절대 조직의 핵심이 되지 못하는 시다바리 총알받이 아니던가.
‘딱히 저 새끼들 뒷배에 관심은 안 들지만…….’
치안이 안 좋은 나라에 치안이 안 좋은 도시니까 뭐 밑바닥 인생을 사는 병신들이야 널렸겠지. 남일에 관심을 가질 만큼 한가롭진 않았다.
‘그래도 질문 정도는 해 볼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한 나는 손을 들었다.
손바닥에 룬의 만다라를 펼쳤다.
눈치를 보며 우리를 포위하려고 움직이는 놈들을 겨누면서 마법과 만다라를 결합시켰다.
ᚦ(Thurs)의 룬이 흰색으로 변했다.
마법과 마법의 결합에 성공한 것이다. ᚦ(Thurs)의 룬을 전개시킨 만다라에 <구름 소환>이 더해졌다.
냉동빔에 비해서 결합이 쉬운 것은 조합하는 마법의 숫자가 적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법 간의 궁합이 좋아서일까.
예전에 내게 <구름 소환> 마법을 알려주었던 변발의 엘프는 말했다.
<수면(Sleep)> 마법과 <구름 소환> 마법은 조합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결합시킨 마법을 앞쪽에 분사했다.
푸화아아아아악─!!
【뭐, 뭐냐!!】
【구름? 연막이다! 당황하지으오에에에…….】
소화기 3~4개를 동시에 분사한 것처럼 퍼져나가는 증기!
그에 맞춰서 사람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수면가스를 마신 양아치들이 ᚦ(Thurs)의 룬의 효과로 딥 슬립에 빠진 것이었다.
【독 가스다! 마시지 마!!】
【뭐래. 그냥 꿀잠 재워주는 아로마야.】
독 가스라니 남 듣기 안 좋은 소릴 하는군. 드루이드라고 다 독이니 역병이니 쓴다는 법은 없다. 드루이드 혐오를 멈춰주세요.
그나저나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구름 소환>을 압축 분사 외의 방법으로 쓴 적이 하도 오랜만이라서 출력 가감을 잘못한 모양이다. 내 마나통이 성장기 잼민이처럼 쑥쑥 컸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평소에 공격 강화에 쓰는 증기가 이렇게 많았나.’
그야 뭉게뭉게 총이 그렇게 셀 만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연기 안에서 바람이 불었다.
거센 바람은 수면 가스를 걷어서 날려버렸는데, 출력 고자인 <구름 소환>은 버티지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다.
‘──마법사인가?’
눈을 반개한 나는 마나를 운용하는 양아치 둘을 발견했다. 역시 평범한 양아치 집단은 아니었군.
【씨발놈의 새끼가!! 죽여버려!!】
【창을 들었지만 마법사다!! 잔재주를 부릴 틈을 주지 마!!】
먼저 시비를 걸어놓고 선빵을 맞자 풀발하는 양아치들.
좀 꼴사나운 모습이었는데, 나로서는 기쁠 따름이었다. 저 새끼들도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살인에 익숙한 쓰레기들이었다는 뜻이지 않은가.
‘살인이 아니고 쓰레기 분리수거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도 없지.’
개기려 드는 양아치들을 보며 창을 어깨에 맸다. 하도 실력 차이가 커서 그런지 긴장감도 안 들었다.
“라리루라. 헬라 씨를 지켜. 프랑은 틈 나는대로 주변경계 부탁한다.”
믿음직스러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주먹을 들었다.
【백열권풍아(百列拳風牙).】
─퍼버버버벅!
야수회귀 버프를 얹은 잽 연타를 5명의 턱주가리에 때려박았다. 어설픈 놈들이라면 내 양쪽 어깨가 프레임 낮은 카메라로 촬영한 것처럼 흐리게 보였을 것이었다.
【컥?!】
【왝!!】
【뚜핥!!】
세 놈은 턱에 직격을 얻어맞고 혼절했다. 동체시력으로 내 움직임을 쫓은 놈은 딸랑 두 놈이었다.
【브헤악!!】
【끼요욥!!】
그마저도 한 놈은 피하려다 앞니가 나가버렸다. 다른 놈이 그나마 내 주먹을 검으로 막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의미는 없어보였다.
─파킨!!
반응속도는 나름 좋았는데, 장비가 쓰레기였는지 방어한 무기가 개박살이 나고 만 것이었다. 파편이 얼굴에 꽂혀서 개나리 춤을 추는 양아치.
【끼요야아악?!】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양아치라. 이건 또 희귀생물이군.】
워킹-킹 고라니와의 사투가 떠올라서 잠깐 감성적인 기분이 드는 나였다.
박살난 앞니를 쏟아내는 새끼를 걷어차서 기절시켰다. 칼 조각에 얼굴이 벌집피자가 된 새끼는 창대로 후려갈겼다.
풀밭에 갑옷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물딜 양아치 파티.
아까 뿜어낸 수면 가스에 꿀잠을 자버린 놈들까지 포함해 13명이 순식간에 전멸이었다.
죽일 것도 없이 제압이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일단 살인은 자제했다. 확인사살이야 언제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제, 제기랄!!】
내가 자기네 동료들을 간단하게 제압하자 후방에 있던 양아치 매지션들은 비명을 지르듯이 욕을 내뱉었다.
【남방에 흐르는 불꽃의 마나여──!】
입을 벌린 그대로 주문 영창에 들어가는 마법사들!
하지만 대처가 어수룩했다. 능력이 되는 한에서 무영창을 사용하든가, 지들끼리 분업해서 내 발을 묶을 CC기와 딜링기를 동시에 발동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이렇게 접근을 허용하게 되니 말이다. 나는 냉정하게 그런 분석을 내리면서 마법사들한테 대쉬했다.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로 요격하는 건 안 돼.’
마법은 스플래시 데미지가 튀기 쉽다. 원거리의 마법전을 선택하면 헬라 씨가 다칠 우려가 있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최고의 수단은 내가 앞장서서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다.
지들한테 덤벼오는 전투의 달인을 방치하진 않을 것이니까.
【불꽃의 화살!】
아니나 다를까 공격 마법은 내게로 날아왔다. 위력이 조금 낮은 대신 면적과 속도가 빠른 <화살>의 불꽃 바리에이션 마법이다.
─휘리릭! 악세서리 칸에 장비한 ᚦ(Thurs)의 룬의 매직 아이템을 발동시켰다. 공격 마법 저항의 룬을 새긴 부적이다.
가까이 다가붙자 보였다. 가면을 쓴 마법사들은 살이 피둥피둥 오른 여자들이었다. 마법 연구만 하면서 운동은 안 한 타입인지 겨냥도 어설프다.
그런 주제에 살기는 살인마 뺨치니 우스울 따름이었다.
스으으읍─!
나는 마나를 끌어올려서 사자후를 뿜어냈다.
【꾸짖을 매(罵)! 꾸짖을 갈(喝)!】
꾸짖고 또 꾸짖다!
【──매갈(罵喝)!!】
─파앙! 내게 부딪힌 불꽃의 화살은 불발한 폭죽처럼 흩날렸다. 룬에 중화된 공격 마법의 마나가 번쩍거리며 사라졌다.
【아닛?!】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마법사들!
그러나 의심하건 말건 이것은 모두 현실이었다. 그들의 마법은 어릴 적 문방구에서 팔던 권총 모양 장난감의 화약만도 못했으니까.
바닥에 내려놓고 벽돌로 내려치면 알싸하게 피어오르던 그 전장의 냄새, 화약의 풍미!
찰나의 폭발을 위해서 모아온 용돈을 쓰던 팍스-코리아메리카나의 정신!
압도적인 승산이 손아귀에 붙잡히는 듯한 감각에 나는 내 동년배들만이 이해 가능한 향수에 젖어들었다.
기억이 솟아올랐다. 친구들이 물이 새는 천원짜리 물총으로 덤벼올 때, 아는 형이 빌려줬던 3만 2천원짜리 워터-라이플로 같이 놀던 친구들을 물 먹였던 기억이.
방학에 친구들끼리 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얼음을 담근 물로 물총싸움을 했던 유년기의 추억이 말이다.
불과 얼음.
화약총과 물총.
나의 유년기의 끝을 장식했던 불과 얼음의 노래!
그것들이 내 안에 깨달음을 남기고자 내 뉴런의 바다에 바다회오리를 만들었다.
──유소년기의 추억은 그 생물의 삶을 좌우하는가?
만일 그러하다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장래에 일으킬 악행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
아빠곰 엄마곰에게 귀여움을 받아야 할 아기곰이 좆간 놈들에게 가족을 빼앗겼을 때.
그렇게 그가 자신의 영과 육을 이 세상 모든 좆간들을 죽이는데 바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과거에 그의 어머니를 해쳤던 좆간인가?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해치고자 한 타락파워아기곰인가?
어느 쪽도 아니라면 단지 운명의 얄꿎음을 탓해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나 다른 생물의 고통에서 눈을 돌리면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여가는 법이기에!
그것이 개인주의 경쟁사회의 냉혹한 진리였다.
쩌저적……!
깨달음이 나를 강하게 했다. 마법명을 외우지 않아도 어느샌가 나의 두 손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곰의 힘을 품은 지구용사의 정신이 아기곰의 슬픔에 호응한 것일까?
세상의 냉혹한 현실을 되새김질하며 자각한 것으로 인해, 나는 <얼어붙는 손길(Freezing Hand)>을 무영창으로 발동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까드득.
나는 그 차디찬 현실을 손아귀에 쥐었다.
남에게 내밀 손조차 이토록 차갑기에, 우리네 삶은 타인을 돌볼 여유가 없는 걸지도 몰랐다.
【──빙백신장.】
쩌정─!!
창을 버리고 쌍수호박의 묘리로 장타를 날렸다. 극한의 냉기를 품은 손바닥이 2명의 마법사의 실드를 박살내고 그 몸을 때렸다.
【끄꺄아아아아악!!】
명치에 냉동펀치를 맞은 그들의 몸은 종이처럼 날아갔다. 새총에 매긴 돌멩이처럼 날아가서 나무에 부딪힌 그들은 냉기에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다가 기절했다.
그렇게 나는 의뢰주로 보이는 남자와 마주 섰다.
타이틀 매치를 벌이는 챔피언과 챌린저처럼 말이다.
【……조금 얕봤나 보군. 내 눈도 녹슬었어.】
터번과 가면을 쓴 남자는 그리 말하면서 검을 2자루 뽑았다.
【쌍검충인가. 멋을 아는 남자로군.】
나는 놓았던 창을 불러들였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쌍검이란 씹 빠요엔들이나 쓰는 고인물 전용장비라고 한다.
【하지만 실력이 안 되는 놈들이 뽕에 취해서 배운 쌍검은 이도저도 아닌 아리랑 춤사위에 지나지 않아.】
나는 말만 그렇게 해 놓고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도발은 도발이고 실전은 실전이다. 저 새끼의 기술에 네페르티티가 쓰던 《사막의 뱀》이라는 채찍술이나 【게르튀르】와 같은 특수한 변칙성이 존재하면 위험할 수 있다.
【게르튀르】의 회전풍차방어처럼 보통 무술이랑은 차원을 달리하는 기술이 껴 있다면?
‘근접전은 피하자.’
자고로 무술이란 격투 게임보다 더한 ‘모르면 죽어야지’ 메타를 신조로 삼는 것이니까. 쌍검 터번남은 이죽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지? 내 애검을 비웃더니 갑자기 겁이라도 났나?】
【세로.】
【으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