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공영역(絕對天空領域).】
오딘의 망령이 명명해준 주문을 외우자, 폭풍의 눈이 펼쳐졌다. 나는 그곳에 서서 창을 바닥에 찍은 자세 그대로 적의 공격을 기다렸다.
번개 기둥에서 팔다리의 실루엣이 팔을 들었다.
푸른 기둥 속에서 검은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꼴은 분명 신이라고 할 만한 위엄이 있었다. 천둥 소리가 육성을 가지고 말하는 듯한 포효로 놈이 외쳤다.
【──뇌신의 분쇄추(Þunras Mjöllnir)!!!!!!】
신화에서, 묠니르는 투척도끼였다. 그렇기에 엔리르의 필살기도 동일한 망치 투척이었다.
허세를 부리자면, 그것까지는 예상했다.
단지 그 위용은 내 상상을 까마득하게 넘었다. 유성처럼 날아든 번개 망치는 낙뢰의 꼬리를 그리면서 내 반경을 휘감은 폭풍과 격돌했다.
격돌해서── 멈췄다.
【──막았다고?!】
번개의 권화처럼 변한 엔리르가 경악성을 내질렀다.
뭘 놀랄 게 있겠는가. 신은 자연재해 같은 힘을 다루지만, 폭풍은 자연재해 그 자체다.
엔리르의 마나만 채운 묠니르는 자연재해를 불러일으키고 컨트롤하는 마법과 길항했다.
번개의 망치가 두른 뇌전이 사포에 갈리는 돌처럼 폭풍에 깎여나갔다. 내 주변을 도는 폭풍의 구름에 전류가 흘렀다.
좆도 상관 없다.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폭풍에 사로잡힌 이 번개는 내 공격에 힘을 보태줄 테니까.
─콰아아앙!!!
폭풍에 밀려난 묠니르가 튕겨나갔다. 저게 제대로 된 진품이었더라면 저렇게 날아가는 것은 내 상반신이었겠지.
하지만 없는 건 없는 거고, 현실은 현실이다.
격돌의 끝에 가짜 뇌신의 망치는 내가 다루는 폭풍에 패배했다.
【파쇄추, 접속.】
번개의 폭풍을 창날에 모았다.
엔리르는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게 된 꼬라지로도 인간미 넘치게 묠니르를 불렀다. 그 다급함을 보면서도 나는 초조해 하지 않았다.
창날에 모인 적란운은 내 창끝에서 황금의 망치가 되었다.
그야말로 골디언 해머.
나는 초월적인 힘이 깃든 망치를 한손으로 쥐고서 폭풍을 날려버리듯 고함쳤다.
【브링 미 토르──!!!!!!】
바람을 박차고 도약했다.
융해해서 무너져버린 시계탑보다 높이 뛰어오른 나는 남은 힘을 싹 다 끌어모아서 황금의 망치를 내려쳤다.
찰나지간의 길항!
그 다음, 공기가 폭발해서 소리가 사라졌다.
2개의 가짜 묠니르가 격돌하며 원자로 같은 번갯불을 마구 튀겼다. 하나는 진품의 흉내였으며 다른 하나는 근본도 없는 이세계인의 짝퉁이었다.
단지.
고고학자로서는 안타깝게도, 과거의 위용이 현 시대의 값어치를 말해주지는 않는 법이었다.
─파카아아앙!!!!!
진짜 힘의 극히 일부조차 되찾지 못한 번개 망치는 새로운 황금의 망치 앞에 흩어져서 형상을 잃었다.
신의 망치가 부숴지고, 번개의 갑옷이 흩어지고, 마지막으로 아무런 방비도 없는 인간의 맨살에 그 망치가 닿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쿠구구구구구……!!
흩어졌던 바람을 밀어내며 번갯불이 엔리르의 몸에서 튀겨나왔다. 안구에서도 입에서도 귀에서도 자기가 뿜어냈던 뇌격을 그대로 방출하면서 말이다.
【너, 너어어어……!! 나에게,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칠공에서 번개를 뿜는 끔찍한 모습으로 엔리르는 내 창대를 붙잡았다.
【나는 <인신(人神Humanum Dei)>의 7석차, 엔리르다!! 저 하늘의 신좌에 오를 뇌신 토르의 후계자다!!
그런 내가, 다음 세대의 신이 될 내가 이딴 시시한 상회의 풀밭에서 죽을까 보냐!!!】
【신이든 인간이든 뒤질 때는 의외로 허무한 법이지.】
나는 맨틀까지 부숴버릴 심산으로 망치에 힘을 불어넣었다.
【──지옥에 오딘이 있다면 전해줘라!! 내 아내들 인생에 축복이나 내려주라고!!!】
【그만, 그마아아아안──!!】
자칭 신의 비명을 불태우면서 나는 외쳤다.
【묠니르, 싼닷(Thunder)──!!!!】
──꽈직!!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번개로 지켜지던 엔리르의 몸은 번개에 굴했다.
설탕공예가 풍화되는 과정을 빠르게 재생한 것처럼 인간의 몸은 불타 없어지고, 황금의 망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놈의 빈 자리를 두들겼다.
망치의 여력은 정원의 지반을 들쑤시면서 불태우고, 지각 변동처럼 지진을 일으키며 바위를 곧추세웠다.
그렇게, 나는 눈치챌 수가 있었다.
이 폭풍. 해방한 다음에는 컨트롤 못 하는구나.
─후와아아아아악!!
압축되었던 폭풍의 여파가 내 몸을 띄웠다.
그렇게 나는 예상을 훨씬 추월한 추진력으로 반괴된 상회의 벽까지 발사되었고, 부딪혀서 내 몸통만한 나무 판자를 튀기면서 엎어졌다.
나를 따라서 날아온 창이 나를 병신 취급하듯 내 머리 옆에 꽂혔다.
좆 같은 창 새끼. 오줌 지릴 뻔 했네. 주인님이 좀 험하게 굴렸다고 이러기 있냐? 나는 대자로 엎어져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어서 가서 우리 아내들 도와줘야 했다.
제이드 놈이 호위인 엔리르만큼 세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다. 내가 누워있는 동안에 아내들이 다치거나 하면 어떡하란 말인가.
하지만 죽기 직전의 데미지를 입고도 마지막 힘까지 짜냈던 탓일까. 내 몸은 움직이려고 해도 꿈쩍도 안 했다.
그렇게 마치 죽기 전에 뇌수를 포르말린에 절여서 의식만 남겨놓은 듯한 기분으로 비몽사몽한 의식을 붙잡고 있을 때였다.
【여기다!! 여기에 수상한 인물이 날아왔다!!】
【체포해!! 체포해서 무슨 소란인지 들어야 한다!!】
나 보고 엿 돼 봐라는 듯이 중무장을 한 드워프 경비병들이 내가 파묻힌 방으로 달려들어왔다.
【고, 공격!! 여기서 뭐가 움직였다!!】
【제, 제압해!!】
경비병들이 도망도 못 가고 숨어있던 쥐를 쑤셔죽이는 걸 보면서 나는 합죽이가 되었다.
하긴, 번개와 폭풍이 몰아치는 곳에 투입된 것이다. 자기들 수준에 안 맞는 일이라는 자각은 있겠지.
그래서인지 그들은 시야에서 뭐가 움직이기만 해도 손에 쥔 창으로 찔러버릴 듯이 눈이 충혈돼 있었다.
나는 훵하니 뚫린 천장으로 달밤을 올려다보며 참회했다.
‘……오딘님. 제가 님 친구 후계자 쳐죽였다고 이러시는 건 아니죠?’
이미 뒤져서 암것도 못한다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오지는데.
【쥐, 쥐였네 쓰벌?】
【여, 여기닷!! 여기 돌무더기에 누가 묻혀있다앗!!!!】
【주, 죽여!! 아니, 제압햇!!】
살려줘요 시발.
나는 드디어 내 차례인가 하는 생각에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천만다행인지 아닌지 그들이 발견한 건 다른 사람이었다.
─푹푹!! 퍽퍽!!
우리 전투에 휘말려서 죽은 것으로 보이는 상회의 경비가 걸레짝이 되었다.
딱 봐도 어깨가 넓은 게 깍두기 조폭 새끼로밖엔 안 보였으니 죄책감은 없었다.
그런데 저런 식으로 가면 앞으로 몇 분 정도면 나도 몸에 구멍이 송송 나든가, 잡혀가서 이세계판 코렁탕을 쳐먹게 될 것이었다.
【……베로니카? 들려?】
텔레파시를 쏴 봤는데 대답이 없었다.
엔리르의 번개 세례에 룬이 날아가버린 듯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진짜 얼마 없었다.
‘시발……!! 빨리 와라, 빨리……!!’
나는 다급하게 사태의 변화를 기다렸다.
몸에 힘도 없고, 가지고 온 포션도 다 부숴졌거나 증발했을 게 뻔했다. 내가 살아날 구멍은 하나 뿐이었다.
슈와아아악──!!
바라던 변화는 그때 찾아왔다.
천장을 뚫고 쏟아지는 마나! 나는 잔해 무더기에 파묻혀서 환호했다.
‘왔다!!’
엔리르가 가지고 있던 마나가 내게 흡수되었다.
바이콘 족의 정원섬에서 거인을 잡았을 때와도 비교가 안 되는 양이었다.
나는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낼 뻔 했다.
‘씨이, 발……!! 생각보다 많은데……!!’
마나의 법칙 그 첫 번째. 지나친 마나는 몸에 해롭다.
나는 구신의 마나가 몸을 빵빵하게 채워가는 것을 눈을 꾹 감고 참았다.
‘옥새는…… 멀쩡한가!’
다행이다. 옷은 걸레짝이 됐지만 다행히 가져온 오우거의 옥새는 크게 손상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옥새에 흡수한 구신의 마나를 채워넣었다.
그러면서 여기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룬을 습득했다.
ᚲ(Kenaz)의 룬은 악수(惡手)다. 기척이 없어지거나 인상이 흐릿해져도 모습은 잘 보일 테니까 체포를 피할 수 없다.
‘골라야 하는 룬은 ᛒ(Berkanan)밖에 없어!’
내가 변신 마법에 적성이 별로 없을 거라는 상상은 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작은 동물 같은 걸로 변신해서 자리를 떠야 했으니까.
나는 마나를 써서 룬을 습득하고 변신 마법까지 해금하기 위해서 참된 깨달음까지 얻었다.
그러고도 꽤 많은 구신의 마나가 남았는데, 양을 제대로 확인하기에는 상황이 좀 좋지 못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창에 손을 뻗고 주문을 외웠다.
【ᛒ(Berkanan)…….】
최소한의 볼륨으로 영창하자, 다행히 변신은 성공했다.
내가 작은 쥐로 변하자 나를 덮던 나무 판자가 무너졌다.
【뭐, 뭐야!!】
【저쪽이다!! 1부대 집합!!】
소란을 피우는 경비병들!
나는 저들이 쥐새끼 한 마리 놓쳐주지 않는다는 걸 목격한 직후였기에, 끙끙 앓으면서도 쫓기는 개처럼 초조하게 몸 상태를 점검했다.
‘시발……! 변신해도 데미지가 없어지는 건 아닌가……!’
4발짐승이 된 나는 힘없는 몸을 어색하게 움직였다.
가지고 있던 장비나 물건들은 변신의 범주에 들어갔다. 베로니카가 변신할 때마다 물건이나 옷을 바꾸는 거랑 같은 원리인 듯 했다.
거기다가 내 예상대로 나는 변신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
‘아마 룬 스톤의 버프로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중이겠지.’
변신 마법에 적성이 없는 내가 베로니카가 준 룬 스톤의 룬 마법 버프 덕분이다.
마치 존나 낑기는 바지를 입고 다리 찢기를 하는 느낌.
좀만 거칠게 움직이면 인형옷을 찢으면서 안에 있는 내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록 위화감이 강해져서 굉장히 좆같았다.
‘그래도 마냥 잡혀가는 것보단 낫다.’
변신 상태와 본체의 데미지는 연동되는 모양인데, 그래도 인체보다는 작은 쥐의 몸이 더 움직이기 쉬운 걸까? 나는 그 어색함에 적응 못 하면서도 경비병들을 피해서 움직였다.
“크르르르르……. 컹컹컹컹!!!”
그렇게 상회의 건물을 빙 돌자 깨어난 경비견들이 나한테 짖어대기 시작했다.
나랑 엔리르가 맞다이 뜰 때는 쫄아갖고 나오지도 않더만, 쥐새끼한테는 겁을 안 먹는다 이거지. 꼴받은 나는 깜찍한 포메나리안으로 변신했다.
“커엉? (머임?)”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비견! 하얀 포메라니안이 된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살기를 뿜었다.
“케르릉 캥캥 알아르르!! (포션 어딨어, 개스키!!)”
“──케에에엥!!!!”
─벌러덩!
짐승의 본능은 살기 한 방에 상하관계를 각인시켰다.
배를 까뒤집으면서 복종한 경비견들은 포션이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경비견으로 쓸 만큼 머리가 좋은 견종이었던 건지, 착오도 없이 나를 태우고 포션이 있는 창고로 가는 경비견들.
나는 그 새끼들을 쫓아내고 힘들게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뱀으로 변해서 문틈 아래로 기어 들어가고, 거기서 변신을 해제했다.
뒤질 것 같은 몸으로 선반의 회복 포션을 집었다. 벌러덩 누워서 대충 샤워하듯 포션을 몸에 뿌렸다.
─콸콸콸.
─치이이이익.
씹창이 된 상처부위가 흉터를 남기면서 회복되었다. 나는 기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면서 머리를 쓸어넘겼다.
‘염병. 칼 맞은 상처는 깐지라도 나지.’
감전된 흉터는 보기 흉했다. 나중에 돈 좀 써서 치료하든가 해야겠지. 우리 아내들이 섹스할 때마다 눈갱 당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체력이 돌아오는 걸 느끼면서 근처의 상자를 대충 부쉈다.
야수회귀의 손톱으로 손질하고 눈 구멍을 뚫었다. 상자에 있던 끈으로 묶자 어설픈 가면이 완성되었다. 나는 거기에 룬을 더해서 얼굴에 썼다.
“우가우가.”
그렇게 상반신 누드에 가면을 쓴 창 든 야만인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