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9화 (279/1,009)

그래서 나는 라리루라의 축가가 일단락 됐을 때 단상에 올라섰다.

“제가 여러분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던, 정말로 기쁜 결혼식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리면 아쉽겠죠. 하여서, 제 고향의 문화를 끝으로 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자 합니다.”

결혼식의 마무리는 이게 적당하겠지. 종교적인 허가는 미리 취해 놨다.

나는 식장 아무데나 장식돼 있던 꽃다발을 들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는 부케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결혼식 날, 신부가 던진 꽃다발을 받은 사람은 다음으로 결혼할 수 있다는 문화죠.”

내 말에 식장 여기저기에 있던 여성들이 눈빛이 바뀌었다. 잘 된 일이다. 호응이 안 좋으면 어쩌나 했네.

“관심이 있는 여성분은 오른편에 가서 대기하여 주십시오. 준비가 끝나면 저희 아내가 던질 겁니다.”

─와르르르. 말이 끝나자 곧장 이동하는 여성들.

근데 내가 좀 생각을 못 했다. 여기는 일처다부도 가능한 세상이었지.

그래서인지 40대 아줌마들께서 부케를 받겠다고 모여드는 촌극이 펼쳐졌다.

에들린아. 또 남자를 홀리고 싶으냐.

“더, 던지면 돼?”

프랑은 뒤에서 느껴지는 귀기에 쫄면서 질문했다.

웨딩 드레스의 마력이 노처녀와 역하렘 마스터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모양.

“응. 편하게 던져. 받는 건 어차피 경쟁이니까.”

내 말에 여성들은 허리를 낮추면서 마나까지 끌어올렸다. 시발, 이 사람들 존나 진심이네.

“아, 경쟁이라곤 했지만 방해는 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폭력행위는 금지입니다.”

아예 마법 같은 건 쓰지 말라고 말리고 싶었는데, 그러면 전사-마법사 간의 밸런스 패치가 불가능해진다.

그냥 주최자로서 사상자가 안 나오기만 빌도록 하자.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돌아가는 분위기를 눈치챈 라리루라가 무대에서 BGM을 깔아줬다. 알아서 그에 맞춘 연주를 해주는 합주단 여러분.

“야, 얍!”

팁이라도 드려야 하나 생각했을 때였다. 프랑이 압박감을 못 견딘 것처럼 부케를 날렸다.

하늘을 나는 하얀 꽃다발! 허리를 낮춘 아줌마와 처녀들이 누가 먼저 움직일지를 판가름 지으려는 듯 눈빛을 교류하면서 투지를 끌어올렸다.

바로 그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탓!!

마이크 같은 매직 아이템을 던져버리고 점프하는 핑크머리 서커스 걸.

모여 있던 사람들은 허를 찔렸다. 자기들 뒤의 무대에서 BGM을 깔던 주크박스가 젊은 처녀라는 걸 잊어버렸던 게 그녀들의 패착이었다.

─착!!

플라잉-주크박스는 치마 속이 보이지 않게 누르면서 공중제비를 2번 돌았다. 부케를 낚아채서 착지하는 그녀.

떨어지는 마이크도 간단하게 낚아챈 라리루라는 그 부케로 얼굴을 감췄다.

“후후훗, 아핫♡!”

물론, 그래도 그 꽃다운 나이의 얼굴에 띄운 미소는 감추지 못했지만 말이다.

“결혼 축하드려요, 선배♡!”

세상 기뻐하는 라리루라를 보고 나는 이마를 탁 쳤다.

그래. 누가 너를 말리겠니.

해가 저물기 전에 결혼식은 파장했다.

이것도 결혼식의 예의 중 하나라고 한다. 결혼식 중에 해가 지면 안 좋은 징조라고 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재빨리 물러나 주는 하객들이었다.

그들에게 감사를 담아서 작별 인사를 한 나는 프랑한테로 다가갔다.

“프랑, 피곤하지?”

“헤헤. 안 그래. 해냈다는 느낌이라서 기분 좋기만 한걸?”

헤실거리면서 웃는 프랑. 나는 그 뺨에 뽀뽀를 해 줬다.

프랑은 간지러워 하면서 웃었다. 다나랑 베로니카도 꾸몄던 머리를 풀었다.

“얼씨구. 아주 깨가 쏟아지시네.”

“으음. 인간족의 결혼식은 독특하구나. 인간 여자들이 결혼식에 로망을 가질 만도 하다.”

“아뇨아뇨? 제가 불려가 봐서 아는데, 보통 결혼식은 이런 화려한 느낌이 아니니까요? 서커스단에서 출장 나온 광대가 곡예쑈를 해도 위화감이 없는 동네 잔치 느낌이니까요?”

차별대우는 이해 바라겠다. 오늘의 주역은 프랑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그리 대화를 하던 나는 도우미들이 정리를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끝까지 남아서 기다리던 헨네시스 영애가 날 불렀다.

나는 다시 프랑의 뺨에 키스를 했다.

“프랑. 잠깐 일 얘기만 하고 올게.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

결혼식 날에 신부를 냅두고 떨어지는 건 못할 짓이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오늘 결혼 자체가 힘들었을 거니까.

나는 교회의 독대실에 들어갔다. 무표정한 수녀가 나를 보고 인사했다.

“어서오십시오, 노르드.”

“예.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아뇨. 저야말로 아내 분으로부터 당신의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말투도 오만하지 않을 정도로만 겸허하다.

그것도 당연했다. 나와 그녀로는 신분 차이가 그만큼 났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고 정식 수녀가 되었어도 그녀가 귀족의 여식이 아니게 된 건 아니니까.

나는 축하연 때 배운대로 예의를 갖추었다.

“이렇게 결혼식의 주례를 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애.”

“아니오. 지명 의뢰의 보수였으니 개의치 않습니다.”

지명 의뢰.

내가 한사코 인맥들의 제안을 거절해야 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미 선불로 보수를 땡겨받아 버렸고, 일을 떼먹을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로서는 거절할 수도 없는 의뢰였다.

“그러면 간략하게 끝내죠. 실버 클래스 모험가 노르드. 당신께 다시금 비공식적으로 의뢰하겠습니다.”

내가 의자에 앉자, 1달 전 마법사 길드에서 재회한 헨네시스 영애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내 소중한 친구를── 티르시 아르마슈나스를 찾아주세요.”

결혼식 당일로부터 대략 1달 전.

나는 티르시에게 청첩장을 돌리고 대답을 기다렸었다.

그녀는 내가 결혼식 준비를 시작했을 때 가장 편하게 청첩장을 쓸 수 있었던 상대였다. 자기과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친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답장이 안 왔었지.’

포션 연금술사는 겨울에 한가롭다.

가을처럼 농지에 뿌릴 포션을 대량 발주 받는 시기도 아닌 데다가, 겨울엔 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맨다. 한가로울 텐데 답장이 없는 게 이상해진 나는 마법사 길드를 찾았었다.

크롬웰을 만나서 복귀했다는 얘기를 전하고 연금술 학파의 랩실을 찾았다.

하지만 티르시는 그곳에 없었다. 우리가 출장을 나간 동안 겨울 휴가를 받아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얘기였다.

티르시의 고향.

다름 아닌 로마니아로 말이다.

“티르가 의미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갔을 리가 없어요.”

수녀의 베일을 벗으면서 헨네시스 영애는 말했다.

‘티르’라는 건 티르시의 애칭이었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여가며 대꾸했다.

“그녀의 과거사라면 저도 본인으로부터 얼추 들었습니다.”

“……그게 당신께 의뢰를 드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저는 티르와 가끔씩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만, 티르는 당신을 상당히 신뢰하는 듯 하더군요.”

“함께 사선을 넘으면 마음의 벽이 낮아지는 법이죠. 저도 그녀에게라면 제 목숨을 맡길 수 있습니다.”

약간 과장을 더한 발언이었다.

그래도 마냥 구라는 아니었다. 사느냐 죽느냐인 상황에서 그녀를 믿고 목숨을 걸 정도로는 신뢰하고 있다. 인품과 실력 둘 다 말이다.

영애는 풍요신의 성표를 만졌다.

“당신이 아내 분을 보던 눈빛을 봤습니다. 믿도록 하죠.”

“과분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티르시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편지의 답장이 없어서라셨나요?”

등이 가려워질 만큼 쑥스러워지는 평가라서 대충 화제를 되돌리는 나.

1달 전에 마법사 길드에서 우연히 영애님과 만나서 냅다 무릎부터 꿇었던 나는, 그대로 접견실에 끌려가서 티르시의 실종에 관한 얘기를 들었었다.

“그래요. 부아가 치미게도 제 앞으로 로마니아에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편지만 남겨두고 떠나버렸죠. 목적지도 적혀져 있었고요.”

말하다가 빡친 것처럼 눈을 반개하는 헨네시스 영애.

“그런데 제가 화를 내면서 적은 편지에는 답장을 해 놓고, 그 뒤로부터는 답장이 뚝 끊기더군요. 사르가디스와 로마니아 사이를 일주일만에 오가는 특급 전서구를 썼는데도요.”

“……편지가 중간에 유실되었을 가능성은요?”

“여러 번에 나눠서 보냈고, 특급 전서구의 담당 청구에서 제대로 도착했다는 소식도 거듭 들었습니다. 티르가 편지를 아예 수령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까지 말이에요.”

“마법사 길드에 보냈는데도 말입니까?”

─끄덕. 헨네시스 영애는 내 말을 긍정했다.

이상한 얘기였다. 마법사에게 마법사 길드는 집 앞 편의점과 다이소와 공짜 여관의 삼중 복합 시설 같은 곳이다.

거기 묵고 있다면 당연히 편지는 티르시의 방까지 갈 것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티르시가 카운터에 가기만 하면 님 앞으로 편지가 와 있어요 하는 소식을 듣겠지. 메세지 알림(물리)다.

그렇게 받기 편한 편지인데 수령 기록이 전혀 없다니.

나한테는 티르시가 숙소를 떠나서 단 하루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아버님 몰래 조금 권력을 남용해서 조사를 해 봤습니다. 제 포켓 머니로 수습되는 범위였죠.”

헨네시스 영애의 말이었다. 대화를 엿듣던 나한테 무언의 관수를 날리던 행동력은 어디 안 가는군.

“티르는 마법사 길드에서 탐험에 유용한 물건을 구매하고 종적이 끊어졌어요. 그것도 1달 가까이요.”

“……걱정되는 소식이군요.”

“네. 하지만 저도 그 이상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타국의 길드에 너무 손을 뻗었다가는 자칫 내정간섭으로 여겨질 수 있죠.”

씁쓸해 하는 영애. 브리타니아 안, 특히 사르가디스에서는 권도를 휘두를 수 있는 그녀도 로마니아에서는 딴나라 귀족 나리 B에 불과했다.

그 왜, 그런 말도 있잖는가. 큰 힘에는 큰 뭐시기가 따른다.

귀족인 그녀가 남의 나라 길드를 건드리다가 선을 넘으면 국제문제다. 자유롭게 딴나라에 건너가서 일해도 되는 모험가 새끼랑은 입장이 다르다.

그리고 그게 이유였다.

헨네시스 영애가 내게 비공식적인 지명 의뢰를 던진 이유.

“제가 로마니아까지 가서, 티르시의 안전을 확인해 주시길 바란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프리랜서 모험가에게 부탁하기 적절한 의뢰였다. 믿음직한 상대에다가 티르시와 개인적인 친분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내가 뽑힌 건 당연한 결과라고 해도 좋을 것이었다.

“당장 가 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현지의 사람을 부려서 수사 중입니다. 다음번 보고에서도 께름칙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 다시금 호출을 드리도록 하죠.”

“……모험가 길드를 통하지 않으면 사적인 청탁이 됩니다. 그 점은 이해하고 계십니까?”

보수를 더 내놓으라는 듯한 협박으로 안 들리게 조심하며 물었다.

중간 업체를 빼놓고 일처리를 할 때의 폐해는 입 아프게 말 않겠다. 그런데 우리 좆소둠라를 끼워넣으면 기록이 남는다. 몰락 귀족을 두둔하는 행위는 영애에게 부담이 된다.

‘어쩌면 영주가 컷 해버릴지도 모르지.’

문제 소지가 될 일이니만큼 킹능성 있는 예측이다.

세습제 공무원인 영주가 딸내미 친구 때문에 외국한테서 님 도르신? 전쟁 콜?? 같은 소리를 들을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잘못하면 꼬리 자르기 당할 사안이다.

말이 꼬리 자르기지, 싹둑 잘려나가는 꼬리 입장에서는 걍 시발 모가지였다. 그것도 단두대식 모가지다.

다행히 공식 의뢰를 빼놓고 내가 나가면 그럴 위험은 없다.

이 대화가 외부에 유출되도 친구의 친구한테 얘기를 듣고 나가본 거라고 말하면 국제문제가 될 확률은 0%다.

‘주례사를 해 줬으니까 뭔가 더 얻어낼 생각은 없는데…….’

그리 생각하고 있자 헨네시스 영애가 손가락을 들었다.

뭐지 시발? 지건의 선딜 모션인가?

수녀데스빔이라도 날아오려나 했는데 영애는 참회실의 장식장을 가리켰다.

“오늘 결혼식의 절차는 제가 로마니아에서 배운 방식이었습니다. 브리타니아의 고유 문화는 대전쟁 이후로 많이 유실되었기에 로마니아의 영향을 크게 받았죠.”

갑자기 화제가 바뀌었나? 아니, 이건 서론이겠지. 나는 대충 맞장구를 쳐줬다.

“사르가디스의 목욕탕도 비슷한 이유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저희 서민들로서는 영주님의 자애에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그건 제가 로마니아에서 겪은 경험을 아버님께서 정책에 반영하신 결과입니다. 제가 교단에서 세례를 받은 것 자체가 넓은 세상을 보라는 아버님의 배려의 일환이었죠.”

아아, 그랬던 건가.

아마 로마니아 귀족이었던 티르시와 친분을 쌓은 것도 그 유학 시절의 일일 것이었다.

“문화와 전통은 중요하죠. 국민의 힘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옵니다. 그 자부심을 뒷받침하는 것이 문화건만, 저희 나라는 그 전통을 잊어가고 있는 것이 실상입니다.”

영애는 청산유수로 말했다. 아마 평소부터 품고 있던 생각인 모양이다.

‘이세계인들은 지역 감정이 좀 쎈 편이니까.’

버젓하게 신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옛날 일이지만 신앙심이 별로 없고 소심한 프랑조차 우리 도이치 짝눈신이 로마니아의 우라누스보다는 낫지 않나? 하는 논쟁을 벌이지 않았던가.

국뽕 컨텐츠는 어디에서도 통하는 법!

거기에 두유 노 김치까지 더한다?

시발 못 참지. 자기 나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나 아쉬움이 생겨나는 것도 필연이었다.

남의 나라랑 비교까지 당하면 더 그렇겠지. 한국 프로게이머가 일본인한테 스타크래프트로 좆발린 것처럼 피가 거꾸로 솟겠지.

‘결혼 문화만 해도 그래.’

현대에서는 전통 방식의 연지곤지 결혼식을 치루자고 하면 인상을 쓰겠지만, 이세계에서는 고향의 결혼식 방식을 원하는 건 보수적인 게 아닐 것이다.

‘프랑이야 따로 집착이 없었지만, 다나나 베로니카는 로마니아 식으로 결혼하면 싫어할지도 모르지.’

특히 베로니카는 일족에 대한 애착이 큰 만큼 더 그럴 듯 했다.

기독교 신자한테 명절에 절 하라고 강요하는 정도의 반응은 나올지도 모른다.

‘아내들이 싫다는데 내 입맛대로 강요하기는 싫은데. ’

아무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나는 영애에게 딸랑딸랑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훌륭하신 식견이십니다. 영지의 후계자이신 영애님께서 이토록 총명하시니, 사르가디스는 앞으로도 백 년의 평화를 보증받은 셈이군요.”

“예. 그런 의미에서, 아버님을 설득하여 둘째 아내 분의 연구소의 설립 허가를 내린 것도 저입니다. 로마니아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만 가는 현재의 브리타니아가 아쉬운 마음에 한 일입니다만, 노르드 당신과는 의외의 접점이 되었군요.”

“……그렇군요. 무척 도움이 됐습니다.”

다나의 연구소 얘기인가. 서론에서 이어지는 화제에 조금 놀라긴 했는데, 대충 영애가 꺼내려는 말의 본론이 보였다.

영애가 말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