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뢰를 맡아주신다면── 저, 마리아 헨네시스가 다나 베르베이아 님의 후원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후원자.
내가 고고학 석사라는 걸 모르는 영애라도 우리 눈나가 내 아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건 누워서 떡치기일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점에는 놀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목줄을 채우는 듯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동등한 입장으로서 아내 분의 연구를 후원하되, 더 좋은 후원자가 생기신다면 새로운 연을 찾아가도 좋습니다.”
존나게 후한 조건이었다.
갑을관계도 없고 이직도 자유라니? 후원하는 서민을 못난 자식의 첩으로 넣어서 하이브 마인드를 만드려는 귀족들한텐 상상도 못 할 대우였다.
게다가 이 영애가 영주의 자식으로서 다음 대의 헨네시스 영주가 된다는 걸 고려하면, 이 제안의 가치는 2~3배는 더 오를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과분한 제안일 듯 하군요. 시기상조인 것도 사실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시다면 연구소에 대한 후원이라면 어떻습니까? 영지의 발전을 위한 기금이라는 명목이라면 뒤탈은 없으시겠죠.”
자기 제안의 문제를 눈치챈 것처럼 말을 정정하는 영애.
와 나 시발, 눈치 존나 빠른 것 봐. 이 사람이랑 얘기할 땐 진짜 긴장해야겠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시니 거절하기도 어렵군요. 저희 아내와 상의해 보고 좋은 대답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진력하겠습니다.”
후원자라고 덥석 물면 곤란하다. 왜냐면 지금 영애가 가진 생각이 몇 년 뒤에도 이어질 거라고는 말 못하잖은가.
시시때때로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다. 정치인은 말을 바꾸는 게 주 업무이기도 하고 말이다.
영지민 수천 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랑 우리 눈나한테 엿을 날릴 수도 있다. 성군일 수록 더 그럴 확률이 올라간다.
군주론에서도 그랬잖은가. 뛰어난 군주는 약속을 어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게다가 이미 후원자가 생기면 다른 후원자가 생기기도 어렵잖어.’
헨네시스 영주와 척을 질 생각이 없는 귀족이 아니라면 일부러 우리 눈나한테 후원하려는 사람은 안 나올 것이다. 그건 남의 구단을 돈으로 빼앗는 수준의 만행이거든.
헨네시스 영애한테 당장 그럴 생각이 없어도 앞일은 모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연구소에 운영자금을 대준다는 얘기는 아주 좋은 제안이다.
쌈마이하게 말해서 쇼부를 잘 본 것이다.
“제안에 대한 답변은 다음 호출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영애는 얘기를 마친 것처럼 일어섰다. 나도 따라 나서면서 인사를 박았다.
“물론입니다. 당신도 안녕히 가시길. 다시 한 번 결혼 축하드립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영애는 떠나갔다.
호위병들이 그녀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갔다.
나는 영업을 끝마친 기분이 되면서 어깨를 풀었다. 쓰벌, 실력이 늘어나면 이런 귀족 계층을 대응하는 일도 늘어날려나. 조따 피곤하겠군.
후딱후딱 아내들한테 돌아간 나는 프랑한테 뺨을 비볐다.
“으으. 프랑, 미안해. 좋은 날에 일이나 하고 와서…….”
“잘 했어. 오늘 힘들었지? 역시 우리 노르가 최고야.”
똑같은 공치사라도 우리 아내한테 듣는 거랑 남들한테 듣는 건 느낌이 천지차이였다.
거기에 립 서비스(키스)까지 해 주는 프랑. 그래 시발, 이게 사는 거지. 이래야 고생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기분이 째져서 헤벌쭉 웃는 나에게 다나가 물었다.
“그래 뭐, 솔직히 오늘은 니가 수고 많긴 했지. 영애님께서 뭐라시냐?”
“의뢰를 받아주면 눈나 물주가 돼 주시겠대. 윈윈인 제안이기는 했는데,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 준다니까 기다리자.”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귀갓길에 올랐다.
설명 정도야 언제 해도 되는 일이다. 티르시가 걱정되긴 하지만 저 만릿길 밖에 있는 사람을 걱정해도 어쩔 수 없었다.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
‘혼자서 위험한 곳에 머리를 내밀 사람은 아니니까.’
티르시라면 안전의 마지노선 정도는 챙길 것이다.
그리고 사실, 결혼식 날에 외간 여자 얘기 함부로 하는 건 못할 짓이기도 하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작은 뒤풀이 파티를 했다.
식탁을 거하게 차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결혼식에서 먹을 게 동나지 않게 예비 물자로 남겨둔 과일이나 햄은 돌아가는 길에 받을 수 있다고 하길래, 그걸 받아와서 대충 깔았다.
남이 입을 댄 음식이 아니라, 식탁에도 안 올라갔던 새삥 음식이라서 위생 걱정도 없다.
─짠!
안주에 맞는 음식을 깔고 짠 하는 우리.
이번에도 미성년자 라리루라는 음료수였는데, 프랑도 오늘만큼은 음주를 삼갔다. 마시고 싶어하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취하는 걸 피하려는 듯 했다.
‘술이야 비조페스트로 잔뜩 즐겼으니까.’
성묘를 다녀온 뒤에 브리타니아로 돌아오기 전에 며칠 쯤 여유가 있었다.
그때 온갖 나라의 맥주를 시음하면서 마셨으니 오늘은 좀 자제하려는 거겠지.
……사실 그때 프랑은 부모님 생각에 맛을 즐기기보다는 취하려고 마셔댔어서, 결혼한 뒤에 기분 좋게 웃으면서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더 보기 좋기도 했고.
“선배……? 꽃다발 챙겨갈 거니까 버리지 말아요……?”
새벽 2시까지 달린 탓일까. 술빨도 없이 버틴 라리루라는졸린 듯 손님방으로 갔다. 다나랑 베로니카도 하품을 하다가 방으로 올라갔고 말이다.
“……다들 가 버렸네.”
술도 안 마셨는데 눈에 졸린 기미가 전혀 없는 프랑은 그리 말했다.
웨딩 드레스는 벗은지 오래고 화장기도 지웠기에 이빨 닦고 자도 문제가 없겠지만, 초롱초롱한 파란 눈은 굿나잇 키스를 바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지친 나를 배려해서 먼저 적극적인 태도로 나오지는 않는 듯 했는데, 이럴 때는 눈치가 빠른 게 곤란하기도 하다.
‘하긴, 못 알아차리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이 좋은 날에 프랑이 술을 입에 안 댄 이유가 뭐겠는가.
나는 남은 술을 털어마시고 프랑한테로 가서 허리에 손을 감았다.
“프랑. 졸려?”
“……노르가 안 졸리면, 나도 안 졸려.”
부끄러운 것처럼 얼굴을 가리는 프랑.
시발, 진짜 우리 프랑이 시도 때도 없이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
생물은 죽기 전에 번식본능이 강해져서 성욕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아마 나는 과로사 하기 직전에도 쥬지가 팔팔해서 울 아내들이랑 섹스하다가 복상사 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주의 해야지.
나는 프랑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
“내 방으로 와. 기다릴게.”
“……………응.”
프랑은 손가락을 꼬면서 쭈뼛거리다가 내 입술에 풋풋하게 키스했다.
생각할 일도 할 일도 밀린 겨울이지만.
우리 부부한테는 다행히도, 12월의 밤은 무척 길었다.
─똑, 똑.
방에서 기다리고 있자 준비를 한 프랑이 찾아왔다.
나는 내 방에 딸린 샤워실에서 씻었고, 1층의 샤워실에서 씻은 프랑은 옷을 갈아 입으러 자기 방에 갔다 왔다.
방문을 열었다. 가운을 입은 프랑이 멋쩍게 웃었다.
“기다렸지? 미안해, 준비하는데 좀 걸렸어.”
“기다리긴. 날이 좀 추운데, 머리는 잘 말렸지?”
“응. 만져볼래?”
“사양 않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려 봤다. 매끈매끈한 게 잘 말랐다.
나는 안심하고 프랑을 방에 들였다. 그런데 프랑의 커다란 찌찌의 그늘에는 옷 봉투 같은 게 보였다.
“프랑? 무슨 옷을 가져온 거야?”
“으, 그게…… 잠깐만 돌아서서 기다려 줄래?”
“응? 아,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프랑이 해달라니까 그렇게 했다.
내가 등지고 서자 프랑은 입고 온 가운을 벗었다. 조용한 방에 울리는 옷감 스치는 소리가 꼴렸다. 이것만 듣고도 쥬지드라가 팬티의 봉인을 뚫고 나오려고 했다.
─사락, 사락.
─꾹.
“……다, 다 됐어. 돌아봐두 돼.”
돌아서고 있어도 알 만큼 긴장한 듯한 프랑이었다.
뭐길래 저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섰던 나는 나의 엉성한 마음가짐을 후회했다. 이건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절을 한 다음에 배알해야 하는 종류의 신성함이었다.
웨딩 드레스의 코르셋과 속옷만 입은 프랑이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어, 어때?”
자세가 어색했는지 자기 쇄골을 쓰다듬는 프랑. 그 동작에 브리타니아에서 제일 가는 찌찌가 끝내주게 뭉개졌다. 나는 천박한 진심을 100% 숨김 없이 드러낼 뻔 했다.
‘시발. 개따먹고 싶다.’
우리 프랑은 하얀색으로 통일한 코르셋에 긴 장갑, 스타킹, 베일만 입은 것이었다.
그야말로 교미용 웨딩 드레스!
신성불가침의 새 신부 같던 낮의 결혼식 모습에서 드레스 한 벌만 벗은 모습인데, 정말로 섹스만을 위해서 입은 듯한 옷이 돼 버렸다.
이건 다 우리 프랑의 몸매가 자지를 화나게 하는 천재라서 그런 것이다. 터질 듯한 코르셋과 웨딩 베일의 조합이 너무 변태적이다.
가리는 의미도 없는 팔이랑 다리만 스타킹으로 꽁꽁 싸매 놓으니까 배덕감이 2배는 올랐다.
스타킹과 팬티를 연결하는 가터벨트에는 감동의 눈물까지 나오게 생겼다.
이건 존나 늘 생각하는 건데, 이번에도 말해야겠다. 나는 차원이동 기술이고 지랄이고 일단 사진기부터 만드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프랑의 모습을 내 어설픈 기억 속에만 남겨야 한다니 진짜 잔인한 일이었다.
“아니, 그……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굉장하긴 한데, 프랑 너 그 옷 괜찮아?”
웨딩 드레스를 입고 섹스라니, 존나 꼴리는 건 맞다. 진짜 지금 당장 침대에 눕혀서 덮쳐버리고 싶다.
‘그런데 이런 건 그 뭐냐, 성욕이랑은 좀 방향성이 다른 거 아닌가?’
좋은 추억이 괜히 남편놈 성욕을 돋구기 위한 코스프레로 더럽혀 지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으로 한 질문에 프랑은 당황한 듯 자기 몸을 확인했다.
“어? 뭐, 뭐가? 어디 이상해?”
프랑이 허리를 비트는 동작에 맞춰서 앙증맞은 엉덩이가 얼굴을 비춰댔다. 그 폭력적인 가슴은 코르셋 따위로는 감당이 안 된 것처럼 좌우로 무빙을 쳤다.
“흐미 씨불쟝…….”
나는 턱을 프랑의 거유로 얻어맞은 충격과 함께 쿠퍼액을 지려버렸다.
유혹하는 것처럼 살랑거리는 골반에 매혹적인 엉덩이에 가슴까지!
풍만한 여체의 궁극적인 도달점이 눈앞에서 아양을 떠는 것처럼 움직여대니까 남자의 성욕에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다.
‘아 시발, 몰라. 못 참겠다.’
이걸 참으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엉덩살을 보여주면서 저 거유를 흔드는데 발정나지 않으면 프랑의 남편으로 살 자격이 없는 것이었다.
“와와와, 왓……. 노르 숨 무지 거칠다…….”
내가 눈이 돌아가서 접근하자 프랑은 어색해 하면서 말을 버벅거렸다.
반응이 좋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흥분할 줄은 몰랐다는 듯한 분위기다. 나는 억울한 피해자처럼 프랑의 손목을 잡고 호소했다.
“프랑. 이건 전적으로 니가 나쁜 거야. 몇 시간 전에 결혼식이었는데, 그때 입은 옷을 가지고 이런 꼴리는 차림을 하고 왔잖아.”
“으, 응. 우리 노르가 이렇게 좋아하니까 나두 야한 몸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다…….”
이번 건 진짜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입에서 말이 안 나왔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던 나는 맛이 간 라디오처럼 중얼거렸다.
“와. 아니, 와……. 프랑 너, 진짜…….”
“또, 또 왜? 나 뭔가 이상한 거 말했어? 보, 보통으로 야한 말 아니었나?”
“…………아, 그만 됐어. 이건 프랑 니가 자초한 거야.”
방금 건 절대 교미용 웨딩 드레스를 입고 해도 될 멘트가 아니었다. 시발 차라리 내 목에다가 발정제를 꽂지 그랬니.
“키스할게. 얌전히 있어.”
“네, 네엣!”
정색하고 말하자 놀라서 끄덕이는 프랑. 나는 다 제쳐두고 그 얇은 허리에 손을 감고서 혀부터 섞었다.
결혼식 날의 밤일이니까 무드를 좀 잡아볼 생각이었는데, 프랑이 분위기를 다 초쳐놓지 않았는가.
아니 진짜로 그랬다. 내가 로맨틱한 무드를 잡기도 전에 섹스만을 위한 복장을 입고 와서는 다짜고짜 야한 말부터 해 버리지 않았는가. 여기서 어떻게 분위기를 잡아.
“휴으…… 츕♥”
가장 골때리는 건 프랑의 반응도 평소보다 좋았다는 거다.
우리는 서서 키스하다 보면 내가 프랑을 잡아먹는 것처럼 돼 버린다. 키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프랑은 까치발을 들고 내 목에다가 손을 감고서는 혀에서 느껴지는 감촉에만 몰두하고 있을 지경이다.
완전히 발정 상태였다. 애무도 안 했는데 몸에 열기가 차 오른 게 내 손에 전해졌다.
‘이 변태 신부 같으니.’
어이가 없는데 꼴리기는 또 미치도록 꼴렸다.
입술을 비벼대면서 혓바닥을 얽히는 솜씨는 첫날밤을 치룬 날의 아무 것도 모르던 처녀 프랑과는 일변한 뒤였다.
그런 모든 음란한 치태가 내 손으로 가꿔낸 결과라고 생각하자 벌써부터 사정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무아지경으로 음란 신부의 입술을 탐했다.
영역표시를 해대는 발정난 짐승도 이만큼 철저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프랑의 몸을 붙잡고 분홍색 입술을 속절없이 휘저어댔다.
“……읏♡? 푸앗…. 노, 노르? 언제까지 키스만… 읍♡”
재잘대는 입을 입술로 다물게 했다.
청초하고 신성한 신부 복장을 이렇게 바꿔 입어놓고, 방을 나오면서도 섹스할 생각만 가득했던 음란한 아내에게 원하던 것 이상의 농후한 교미를 밀어붙였다.
─흠칫, 흠칫.
열기가 땀샘으로 새어나오면서 팔에 감긴 골반이 겁 먹은 강아지처럼 뒤로 빠졌다.
느끼고 있다. 키스만으로 허리가 빠져버릴 정도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남자의 좆이 움찔대는 것을 억누를 수 없듯이 프랑의 몸은 솔직하게 반응했다.
프랑의 팔이 내려갔다. 나는 허리를 붙잡고 아예 프랑을 들어올렸다.
까치발을 서던 발가락 끝이 바동거리면서 허공에 1cm 쯤 올라갔다. 발끝이 닿았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음란한 움직임을 보이던 혀까지 멈춰버렸다.
“후읍, 하웃…♡ 츄르르릅, 쪼오옥.”
그렇게 숨도 못 쉬게 몰아붙였다가 드디어 입을 뗐다.
“하으, 흐으, 헤엣…♡”
프랑은 내 허리를 안고서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요염한 쇄골 라인이 코르셋에 감춰져 있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흰 옷감인데도 티가 날 정도로 젖은 보짓살과 엉덩이 골이 훤히 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