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그대여. 잘 왔다.”
수의대 중퇴생의 고집으로 산 냥이밥을 멕이던 베로니카는 고양이를 안아들었다.
“우리 테레사가 외출했다가 왔는데 발이 꽤나 더럽더구나. 닦아주려고 해도 도망을 치니 그대의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되겠느냐?”
“어. 델꼬 있어봐.”
나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냥이는 무섭지도 않은지 하품을 하고 나를 꼬라봤다. 하도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니는 새끼라서 그런가. 집에서 보는 건 좀 오랜만이다.
“<정화(Clean)>.”
바람이 고양이의 발을 닦고 지나갔다.
자주 생각하는 건데, 이 <정화(Clean)> 마법도 상당히 사기 마법이다.
산책갔다 와서 강아지 발 닦아주기 귀찮은 애견인들이라면 부러워서 죽어버리지 않을까.
솔직히 이제는 핵폭탄 같은 한방갑 대량살상병기를 제외하면 일상생활 등에서는 이세계의 기술력이 지구보다 뛰어난 게 맞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나 없을 때는 이 놈이 마당이나 바깥을 나갔다 올 때마다 네가 닦아줘?”
“그렇다만? 힘들게 닦아주자마자 마당으로 나가버리면 가슴이 찢어질 듯 하더구나.”
“아니 이 새끼가 우리 아내를 귀찮게 해?”
나는 고양이의 육구를 주물러대면서 성을 냈다.
참고로 베로니카는 바람 속성에는 적성이 없다. 그 수준은 나보다 심해서 <정화> 마법의 습득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냐아? 으니양 뇨뇨냐냐냐낭? (너 신발 신으면 안 되냐?)”
“냐아아샤. (싫은뎅.)”
“시팔냥. (시팔년.)”
좆냥이 새끼 도도한 것 보게.
역시 말이 통한다고 대화가 통하는 건 아니로군. 물론 우리 베로니카가 좋다니까 내가 이 녀석더러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테레사가 뭐라고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너무 혼내지는 말거라. 이래봬도 착한 아이다. 사냥감들을 잡아서 나한테 갖다주기도 한다.”
“그거 짬처리다? 근데 눈앞에서 버리면 삐진다더라.”
그보다 갑자기 걱정되네. 이 새끼 좆냥이답게 새나 들쥐를 물어죽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고양이는 인간이나 범고래처럼 배가 고프지 않아도 취미로 사냥을 하는 동물이다.
육식동물 중에서도 드문 타입이다. 내가 이세계에 온 뒤에 학설이 수정됐다면 몰라도, 일단 내가 배운 내용은 그랬다.
“새끼, 사냥놀이는 적당히 해라? 대신 쥐는 잡아도 됨.”
남의 집에서 기르는 새나 전서구를 족치면 곤란하니까 말로 타일러 놨다. 집에 쥐가 창궐하기 전에 족쳐 놓는다면 칭찬해 주마.
베로니카는 심도 깊은 고민을 하는 것처럼 물었다.
“그대여. 허면 테레사가 가져온 사냥감은 어찌하면 좋지? 눈앞에서 버리면 안 된다니, 거기까진 몰랐다.”
“하지 말라고 하든가 안 볼 때 치워야지.”
내 친가에서 기르던 고양이는 간식을 줘서 시선을 돌렸다고 한다.
근데 그걸 반복하다 보니까 사냥감을 갖다 주면 츄르 섭취 씹가능이라는 공식을 습득해버린 좆냥이 때문에 고생했다나 뭐라나.
내 말에 베로니카는 안심한 것처럼 말했다.
“다행이로구나. 나는 또 먹어야 하나 했다.”
“아니 이 말딸 마누라야. 쥐나 비둘기를 요리해다 먹는 건 너무 야생 그 자체 아니냐?”
“이상한 생각 말거라. 나도 제대로 된 요리가 아니면 싫다.”
그런 농담을 하고 있자 2층에서 다나가 내려왔다. 잠을 좀 설쳤는지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하아암……. 시발, 너희들은 아침부터 뭔 징그러운 얘기를 하고 있냐? 우리 고향에 나오는 켈피 전설도 아니고.”
“굿모닝, 마눌님.”
“굿모닝이다, 다나.”
인사하는 우리. 고양이 테레사는 눈치를 보다가 베로니카의 품에서 내려갔다. 나 때랑은 다르게 베로니카한테는 배려를 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나는 장비칸에 앞치마를 장착하면서 말했다.
“기다려. 오늘은 내가 프랑을 위한 개존맛 아침밥을 만들 거니까. 스윗한 남편의 요리 솜씨를 보여주마.”
“오? 개꿀. 오늘 식사당번 나였는데.”
“무슨 착각을 하는 것이지? 당연히 다음 주 내 당번이랑 교대하는 것인데?”
“이 시발 처녀따개 새끼가 당직을 교대 때리고 사후보고를 하네? 님 맞을래요?”
“남편놈한테 코 꿰인 눈나가 참어.”
“우리집 축생 중에서 니가 제일 양심 터졌어 쌍놈아. 닌 내 눈에서 콩깍지 벗겨지면 진자 디졌다.”
암묵적으로 자기 눈에 내가 존나 멋지게 보인다는 인증을 해 버리는 우리 눈나였다.
아무튼 이렇게 밑밥을 깔고 당일날 아침에 일어나서 미리 아침을 해 두면 우리 눈나도 감동을 먹을 것이었다. 이 새끼 나랑 당번을 교대한다더니? 어맛 로맨틱해! 하고 말이다.
‘아아, 이건 빌드업이란 것이다. 깜빡하면 좆 되는 것이지.’
몰래 노트에 적어둬야겠다.
─송송송송.
─탕탕탕탕.
나는 앞치마를 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먹고 다시 자도 더부룩하지 않을 메뉴와 허기지면 손이 가도 될 적당하게 가벼운 메뉴다.
내 요리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
가게에 나오면 별로라고 욕하면서도 그냥 쳐먹을 만한 정도라는 평가다.
‘하지만 프랑이 쟁여둔 재료를 꿍쳐 쓴다면 어떨까?’
그렇게 한다면 남자의 자취방 술안주에서 밀키트 수준으로 레벨이 오른다!
‘미스터 피코크, 백 선생님……!! 내게 힘을 빌려줘……!!’
나는 후각과 촉각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프랑이 만들어 놨던 소스와 조미료를 레시피대로 조합하면 실수는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요리실력을 인정받아 간부 식당 취사병으로 닷지했던 선임 밑에서 3개월 동안 취사보조로 갈고 닦은 실력을 목도하라.
“존버 ON.”
냄비에 불을 얹고 잠깐 숨을 돌리러 나왔다.
물을 잘 안 마시는 나여도 사랑의 액기스로 아침햇살 1.5L 페트병 여러 병을 만들고 수분 섭취를 안 할 수는 없었다. 1컵 가득하게 물을 채워서 꼴깍거리면서 산책하는 나.
베란다에 나와서 마당을 구경나왔다. OK. 날씨 좋고.
“냥~ 냥~.”
우리집 고양이 테레사가 길냥이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쓰벌.’
테레사가 우리가 출장 나간 사이에 일대 고양이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건가? 혹시 저 새끼들 우리 집에 밥 달라고 모인 건 아니겠지?
캣맘 노릇도 생각해 볼 일이군. 나는 앞치마를 매고 마당에 나갔다.
“흐미 시원한 거.”
겨울이라서 날이 춥긴 춥군. 물론 이 정도로는 마나로 강화되고 사계절이 존재하는 나라 꼬리안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사르가디스의 겨울 따윈 좆밥이지.’
노예 시장에서 추위에 떨던 병신은 이제 세상에 없다.
사실 브리타니아는 가을이나 겨울이나 비슷하게 춥다. 빨리 추워지는 대신에 겨울에 그렇게까지 추위를 타진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냐앙냥~♡”
근데 시발, 고양이 무리에 길냥이 치고는 조따게 커다란 생물이 한 마리 있네. 라리루라는 고양이들이랑 놀다가 잠이 덜 깬 것처럼 나한테 손을 파닥거렸다.
“아하~ 선배다♡ 선배 안녕~♡?”
“후배 안녕. 머리 오지게 뻗쳤네.”
“어, 거짓말? 진짜요?”
내 말에 정신이 확 들어버린 것처럼 머리를 빗어대는 라리루라.
잠깐 동안 노숙도 했으면서 뭘 이제 와서 그런 걸로 부끄러워 하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저 나이 때는 언제나 예뻐 보이길 원하는 법이니까.
“아우, 으아앗……. 어, 어때요? 저 이제 좀 볼 만 해요?”
“볼 만이야 언제든 하지. 근데 너 고양이도 좋아하냐?”
내 칭찬에 얼굴을 붉힌 라리루라는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도, 동물은 다 좋아하는데요~? 성장환경이 환경인지라.”
하긴 서커스단이면 평소부터 동물들이랑 부대끼고 살겠지. 납득이 가는 이유다.
“케흠, 케흠. 나중에는 선배랑 저랑 베로니카 언니랑 같이 서커스단을 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서커스단? 뭐, 전업 서커스단은 힘들어도 가끔씩 하는 것 정도는 재밌겠네.”
“그렇죠? 그렇죠? 선배가 동물들을 설득해서 훈련시키고, 베로니카 언니가 변신쇼를 선보이면, 제가 피날레 공연을 펼치는 서커스 쇼에요♡! 이름하야 라리리카 서커스단☆!”
“야. 서커스단 이름에 내 비중이 1도 없다?”
“그러면 라리리카노 서커스단☆!”
“라리리카노에서 노는 빼 주세요.”
왜냐하면 노는 조금… 들러리 같으니깐.
‘고양이들은 얌전하군.’
다행히 가만히 지켜보니까 나더러 밥을 달라고 징징대는 새끼는 없었다. 내가 존나 쎄다 보니까 야생의 감이 그렇게 깝치게 시키지 않는 모양이다.
‘마나라는 게 지진파나 전자기장처럼 동물들이 감지할 수 있는 면이 있으니까.’
동물은 영감이 세다는 얘기는 지구에서도 들었었던가.
사람도 길거리에서 곰이나 호랑이를 만나면 지려버리는 것처럼, 저 고양이들도 야생동물답게 까불면 안 될 상대를 알아보는 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드루이드의 카리스마다.
그럼 쟤들한테 나는 밥을 나눠주는 사자 같은 느낌일까?
‘고양인 인간을 덩치 크고 모자란 동족으로 본다는 얘기도 있었지.’
그래서일까. 테레사는 고양이들 사이에서 보스한테 인정을 받은 오른팔 정도로 여겨지는 듯 했다.
우리 집, 다시 말해서 보스인 내 나와바리에 얹혀사는 걸 허락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걸 좋은 기회라고 느꼈다.
‘마침 적절하군.’
안 그래도 도시에 있는 캣-드론들의 중심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오늘 본 예르나네 조직도 그렇고, 세상에는 우리 가족을 위협하는 집단이 더럽게 많았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정체가 포착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시간문제일 건 확실해.’
외국에 나가 있을 때는 괜찮다. 타지에서는 24시간 경계를 하고 있다.
‘그래도 집에서까지 적을 경계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야.’
야생의 감으로 강한 자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보고를 때릴 연락체계가 필요했다.
그건 그냥 먹이 좀 뿌려서 가능한 게 아니다. 카리스마가 있는 우두머리의 명령이 동반되야 가능한 것이었다.
나도 가능은 하겠지만 내 몸은 하나 뿐이다. 분신은 일단 논외로 두고, 바쁜데 매번 얘네들을 감시하고 부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테레사는 고양이 치고는 의리가 있는 녀석이지.’
헤이스벤트의 사건에서 반쯤 죽어가면서까지 나한테 얘기를 전해주기도 했고, 그때 목숨을 구해준 베로니카한테도 은의를 느끼고 있다.
죽어가는 길냥이를 치료해서 기르자 애교 많은 갓냥이가 되었다는 얘기는 지구에서도 자주 들어봤다.
저 녀석한테 동족의 우두머리 겸 내 오른팔을 맡기는 것도 좋은 한 수일 듯 했다. 드루이드 만만세다.
‘위험해 보이는 인물을 발견하면 얘기가 내 귀에 전해지게 해 둬야겠어.’
아까 말한 나와바리라는 얘기의 연장선에서 말하면, 도시의 분위기를 예민하게 느껴줄 정보망은 존나 중요했다.
‘그래서 사르가디스 영애라는 뒷배랑 인맥을 만들어 두는 것도 상당한 가치가 있지.’
봉건제 국가에서 영주의 딸은 공주라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무소불위까지는 아니어도 자기가 가진 권력이나 실력도 꽤 되는 모양이고.
뿌우….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나는 초인의 오감으로 그걸 감지했다. 라리루라도 냄새로 눈치챈 건지 눈을 깜빡거렸다.
“앗. 오늘 선배가 밥 하세요♡? 와아! 저 기대해 버릴게요!”
“와 시발. 존나 어케 눈치챔? 소름.”
“네에~? 그야 선배가 한 밥 냄새인데 알아보죠~♡”
“개코구만 아주.”
혀를 내두르면서 주방으로 돌아갔다. 요리에 간을 하고서 테이블에 음식을 차렸다. 식사 준비는 이제 끝이다. 나는 안방으로 직행했다.
프랑은 아기처럼 등을 말고 푹 자고 있었다. 깨우기 미안할 정도다.
“프랑. 일어나 볼래?”
베개맡에 엎드려서 소곤거리면서 귓가에 말을 걸었다. 룬 마법의 수면 시간은 끝났다. 프랑이라면 조금만 소리를 내도 일어날 것이다.
“으음……. 노르야……?”
내 생각대로 프랑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가져온 옷이 웨딩 코르셋이랑 가운 밖에 없었기에 잠을 자다가 풀린 가운이 미끄러졌다. 웅장한 대자연의 빅 찌찌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아침부터 눈이 호강하네.
“응. 아침밥 만들어 뒀는데 어쩔래? 졸리면 여기서 한숨 더 잤다가 점심에 먹어도 돼.”
“음…… 노르가 해 줬다면 먹을래.”
그리 말한 프랑은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뜻 같았다.
시발, 우리 신부님 존나 귀여워. 나는 프랑을 냅다 안았다. 프랑은 빅 찌찌가 거짓말인 것처럼 깃털 같이 가벼웠다. 근육 빵빵 마초의 러브 파워다.
“헤헤헷.”
프랑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 목에 팔을 감고 뺨을 비볐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꿈은 거꾸로 이뤄진다던데, 호접몽도 그런가 보다.
기분이 더러워지는 꿈을 꾼 것 치고는 마음이 아늑해지는 좋은 하루였으니까 말이다.
식사는 다행히 프랑의 입에 맞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차린 것 치고는 풍족한 식탁에 모여앉아서 즐거운 식사를 했다. 프랑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에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식기를 치우고 나서, 설거지를 한 나는 파티원들을 다시 거실에 모았다.
“……헤니르?”
내가 꿈 얘기를 꺼내자 다나는 이상한 이름이라는 것처럼 그리 중얼거렸다.
“어. 꿈에서 나온 예르나네 조직의 보스 같더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꿈에서 본 광경을 설명했다.
설명을 할 수록 우리 파티원들은 점점 인상을 찌푸려갔다. 이해한다. 예르나의 과거를 캐내서 나온 내용은 그럴 만한 내용이었으니까.
다나는 얘기가 끝나자 골치가 아프다는 것처럼 관자놀이에 주먹을 굴렸다.
“……하. 이제는 기어이 신까지 나왔구만. 이름만 가져다 쓴 가짜일 가능성은 없냐?”
“일단 본인은 지가 신이라고 믿으면서 다른 신들의 기억을 떠올리던데? 진짜가 아니라면 자기가 신인 줄 아는 정신병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