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 감사합니다. 저희 일행은요?”
“마을에 전승되는 마법을 배우고 계십니다. 베로니카 양? 이라는 분이 특히 열정적이시더군요.”
“아, 왜인지는 알겠습니다.”
이동 마법진의 분석이나 재현에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다나야 뭐 문신하기 싫어서 고향을 나왔다니까 딱히 관심 없을 것이다. 프랑이랑 라리루라는 적성 이전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말해봤자 입만 아프겠지.
“헌데…… 족장님께서는 어쩐 일로 저희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별로 좋지 않은 예감을 느끼면서 말했다.
아직 점심 때도 아닌데 우리 파티원들을 가르치다가 굳이 찾아왔다는 건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나도 아직 신 기술의 연구와 오러의 습득에 시간을 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족장의 마법 교육이 끝났을 것 같진 않았다.
“……네. 일단락되는대로 제 집으로 와 주시길 바랍니다.”
내 생각대로 족장은 떫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플루스미러 마을에서 또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일단 스텔라랑 헤어진 나는 마을로 돌아갔다.
전사장이란 사람이니까 외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바쁘겠지. 창을 들고 족장의 집을 향하자 마침 나를 기다리는 듯 하던 다나를 만났다.
“오, 남편놈 왔냐? 어디 배울 만은 하고?”
“누구 남편인데 당연하지. 감 잡아가고 있음.”
“새애끼, 빠르네. 우리 병신 칭찬해.”
“그걸 믿었음? 오딘킥!”
“믿긴 등신아. 내가 존나 구랄 줄 알았지.”
─아앙, 텁.
─우물우물.
농담을 하면서 다나의 뺨을 찔러보자 손가락을 물렸다.
뭐지? 고향이랑 좀 닮은 곳에 왔다고 야성이 돌아와 버린 것인가? 장모님 모유가 그리움을 암시?
“아니 이 여편네가 남편이 고생하고 있다는데 격려는 못할 망정 남의 손가락으로 입질을 해 싸네. 이거 안 놔?”
“씹새가 지가 병신이라서 알려줘도 모르는 건데 왤케 당당함?”
“그 병신한테 코 꿰인 호구가 옆에 있어서 글치 뭐.”
“시발아, 꿰인 거 아니거든. 내가 꿴 거거든.”
“뭐래, 선 넘네. 누나네 고향처럼 누나 몸에다가 판매 완료 문신을 새겨주는 수가 있음. 품절 유부녀 쉑.”
“새겨봐, 쫄보 새꺄. ”
다나가 자기 뺨을 내밀면서 이죽거렸다. 이 아줌마가 며칠 섹스 안 해줬다고 자궁이 큥큥거리기라도 하나.
“시발, 오늘 니 모세혈관 뒤졌다. 키스 마크 딱 대.”
“쿡쿡. 아, 쫌. 병신아.”
나는 그냥 우리 누나를 끌어안고 뺨에다가 마구 키스를 해댔고, 입으로는 욕하면서도 다나는 헤실거리는 걸 못 참고서 낄낄댔다.
잠깐 부부 간의 사랑을 나눈 우리는 표정을 바꾸고 족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런 빠르고 확실한 마인드 시프트는 프로의 기본 소양이니까.
[다들 모이셨군요.]
족장은 파티원들과 전사 계층의 사람들을 모아놓고서 그리 말했다.
찾아보니까 어제 나한테 맞았던 그들도 보였다. 눈이 마주쳐서 눈인사만 해 뒀다.
[오늘 아침, 저희와 교류를 계속하고 싶어하시는 분들께서 찾아와 마을의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족장의 말이었다.
마을에서 일어난 피해를 전해주러 왔다니. 그렇다면 저쪽 사람들도 생각과는 달리 진심으로 그들을 의심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소리일까?
내가 그리 생각하고 있자 족장이 미간을 좁혔다.
[다만, 이 상황이 오래 가면 사람들의 분위기를 뒤집지는 못할 거라시더군요.]
[뒤집지 못하면 뭐 어떻게 한답니까?]
전사로 보이는 남자가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안 될 거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로마니아에서 집행관과 이단 심문관이 오겠죠.]
하지만 그의 표정은 족장의 말이 돌아오자 머쓱해졌다.
약간 굳은 것 같기도 하다. 하긴, 로마니아의 살인교단이 지 집을 노크한다는데 차분할 새끼가 어딨겠는가.
[그래서, 오늘 저는 에린의 후예를 이끄는 몸으로써 선포하겠습니다.]
그 걱정은 족장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그녀는 눈을 감고서 좌중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오늘부로, 일의 원흉을 처단합시다.]
족장의 말에 가장 빨리 대답한 것은 스텔라였다.
[벌써 말인가?]
[벌써라뇨? ‘이제야’라고 해야죠. 저희가 망설이는 사이에 ‘벌써’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플루스미러 마을의 피해자까지 더하면 7명이에요.]
날카로운 반박에 스텔라는 눈을 찌푸렸다.
[냉정하게 생각한 게 맞나? 누켈라비를 포위할 머릿수가 더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도 놈의 서식지를 완전히 둘러싸는 건 힘들어.]
[제가 민물을 불러서 진형의 한쪽을 커버할 겁니다.]
자주 쓰는 말이라서 그런지 훨씬 유창하고 현명해 보이는 스텔라였다는데, 족장은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스텔라는 미간의 골이 더 깊어졌다.
[족장, 제정신인가? 너는 족장이다.]
[그리고 당신은 전사장이죠.]
그녀들 사이에 눈싸움이 벌어졌다. WA! 강 건너 불 구경!
문제는 시발 강 건너라기엔 좀 많이 가깝다는 거다.
말귀를 알아먹는 나도 가시방석인데 다른 파티원들은 어떻겠는가. 다나랑 하이로메인을 빼면 눈치를 보기도 바빴다. 거 존나 손님 불러놓고 집안 싸움 하지 맙시다.
[족장이 그만한 물을 일으킬 수는 있나?]
[저기 계신 하이로메인의 협력이 있다면요.]
뜬금없는 지목에 전사들의 시선이 모이자 하이로메인은 딸꾹질을 할 뻔 했다. 갑자기 자길 쳐다보면 그럴 만도 했다. 앨리스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말이 1마리 없어지고 의문의 이방인이 늘어난 것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했나 몰라.
[……이해했다. 그렇게 하자.]
그때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민하던 스텔라가 말했다.
그녀는 그러고서 보란 듯 한숨을 쉬었다.
[아휴. 족장 머리에서 핏기가 마를 때까지는 내 고생길도 훤하다.]
[납득해 주신 건 감사하지만, 그거야말로 피장파장이죠. 자, 이제 전사 여러분도 재전을 준비하도록 하세요.]
족장은 즐거운 것처럼 웃고서 회의를 끝냈다.
아무래도 작전 실행일은 내일로 정해진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러든 뭐든 해내고 나서 싸우고 싶긴 한데, 우리도 여유를 부릴 수는 없는 입장이긴 했다.
티르시가 실종된지도 2~3달이었다.
며칠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따위의 후회는 하기 싫었다.
전사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우리는 자리에 남았다. 사전에 그렇게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가까이로.”
우리는 족장이 시키는대로 가까운 곳에 가 앉았다. 그녀가 말했다.
“저희 말로 이야기를 나눠서 죄송합니다. 다른 분들은 브리타니아 말을 거의 못 해서요.”
“아뇨, 뭘. 이해합니다. 말씀하신 내용도 앞서 들었던 거랑 큰 차이 없던걸요.”
우리는 외지인이기에 상황을 따라갈 수 있게 대충 설명을 들었었다.
‘누켈라비는 민물을 무서워한댔나.’
강처럼 흐르는 물을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유? 이유까지는 모르겟소요.
그래도 지금 활동하는 놈한테서도 그런 경향은 보였댄다.
작물을 말리고 바다에서 기어나오는 새끼가 왜 물을 무서워하냐고?
누켈라비는 ‘바다 어미’라는 신에게 끌려가서 잡혀있다가, 여름이 끝나면 탈출하는 악령이기 때문이라신다. 진짜인진 모르지만 일단 전승은 그렇다.
어쩌면 민물을 타고 바다로 끌려가는 게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나타난 녀석들도 마을의 주술사가 땅에 흐르는 물줄기를 만들자 그걸 우회했다고 한다.
“내일이 되면 저와 하이로메인이 누켈라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장소의 동쪽을 민물로 덮겠습니다.”
족장은 마을에서 만든 듯한 어설픈 지도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거리가 있긴 해도 서쪽에도 강이 존재하기 때문에, 동쪽 방면을 제압하면 누켈라비의 이동 진로는 한정되죠.”
“북쪽 아니면 남쪽이군요.”
“예. 그리고 여러분들께는 제 호위나 서쪽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동쪽 아니면 서쪽. 민물이 있는 안전지대다.
족장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이방인인 여러분께 목숨을 걸어달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놈의 본체를 퇴치하는 건 스텔라나 저희 마을의 전사들이 할 일입니다.”
“족장님께선 저희에게 목숨을 맡기실 수 있으십니까?”
“……제 뜻은 어쨌든 마을에서 반대할 것 같네요. 양해를 받을 수 있다면 서쪽을 맡아주시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아뇨, 저희야말로.”
그렇게 우리는 찾아올 싸움을 대비하고자 밖으로 나왔다.
물론 걱정스럽진 않았다. 좀 전에 했던 표현을 재탕하게 되겠지만 이번에도 우리의 역할은 강 건너 불 구경이었다.
진짜 말 그대로 서쪽에 있다는 강 건너편에서 누켈라비가 오는지 감시하면 되는 것이다. 위험도는 가장 적은 위치니까 거북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내 불행 체질을 생각하면 걍 손 놓고 있는 것도 불안하다. 싸울 준비는 해 두자.
그리 생각한 나는 하이로메인을 돌아봤다.
“그런데 교수님은 괜찮으십니까? 위험하실 텐데요.”
“에린의 후예 분들께 인정받는 일은 늘 위험한 일이랍니다. 뭐, 오우거를 사냥해 오라는 것보다는 낫네요.”
맞다 참. 이 사람도 현장직 학자였지.
이세계 학자는 전투직이다. 현장직이면 더 그렇고 말이다. 그야말로 마도학자다.
마도학자 하이로메인은 픽 웃었다.
“거기에 믿을 수 있는 동료도 늘었구요. 여행의 말벗이던 아이가 이제 정말로 대화를 주고답을 수도, 저랑 같이 싸워줄 수도 있게 됐잖아요?”
“그래! 앞으로는 내가 일 하는 것도 도와줄게!”
앨리스는 손을 번쩍 들면서 밝게 외쳤다. 내가 본 말딸들 중에서 제일 쾌활한 녀석다웠다.
하지만 쟤는 아직 인간 세상을 모르는 모양이다.
축하합니다! 자가용 말(은)는 대학원생이(가) 되었다!
유니콘 대학원생이라니, 누가 알았겠는가. 설마하니 저주가 풀리자마자 그런 가시밭길을 택할 줄이야.
‘저 새끼 20년 쯤 있다가 미쳐갖고 유니콘 교수나 헤니르 따까리가 되면 어쩌지.’
그저 아니길 빌자. 나는 묵묵히 성호를 그었다.
하이로메인은 이동 수단을 잃은 대신에 돈 많고 월급도 안 줘도 되는 랩실 노예를 구해버린 게 아닐까?
사랑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어쩐지 남일 같지가 않아서 다나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난생 처음 보는 해맑은 미소가 돌아왔다. 이 시발 사랑스러운 아내님 같으니. 뭘 쪼개는 것이지?
나는 네 노예가 되지 않는다! 가정의 주인이 될 것이다!
“어머? 기대되네. 그치만 날 도와주려면 글부터 배우자?”
“배우면 되지! 내가 도와주면 밤에 잘 수 있는 날도 늘어날 거라구!”
앨리스의 당찬 포부에 하이로메인은 쿡쿡 웃었다.
단 둘 밖에 없는 늦은 밤의 랩실, 아름다운 여자 교수님과 새벽의 랑데뷰라.
관점에 따라서 호러와 로맨스를 오가는 장르다.
현직인 나한테는 5D 호러고, 순박한 유니콘에게는 꿈꾸던 로맨스인가 보다. 나는 그녀들의 앞길에 행운이 있도록 신께 기도했다.
고난이 대수랴. 기꺼이 걸어가는 것이 사랑의 길.
‘취집 축하한다, 앨리스.’
랩실에서도 강하게 살아가렴.
사람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후자였다. 그렇게 싫은 건 아닌데 뭐 짬날 때 자진해서 운동하진 않는 타입이다. 지구에 있을 때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세계에 온 다음에 브람마톤 교수님의 헬창 쇠질 코스를 조졌을 때부터였을까? 나는 어느새 쇠질에도 맛을 들여가고 있었다.
운동을 싫어하던 사람도 빵빵해지는 근육을 보면서 헬스에 맛을 들리지 않던가.
쇠질 중독에 걸려서 가정도 등한시하고 주말에 헬스장에 출근하는 마초들!
어느샌가 나도 그 경지에 한 발을 걸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내일 위험한 싸움이 있는데도 하루 종일토록 오러와 신 기술 훈련을 했다.
그러고도 피곤하지 않고 개운하니, 이게 헬창이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그것도 회사의 명운을 건 프로젝트 전날에 쇠질을 한 셈이나 다름없는 일인데.
하지만 오랜만에 땀을 흘리면서 훈련에 몰두하니 기분이 꽤 쌍쾌하군.
“웨이트 기구랑 바람 X스 해 버렷!! 원반 2~3개만 붙여도 마누라들보다 무겁다니 인생 절반 손해봤어!!”
당연하지만 웨이트 기구가 없는 이세계이기에 내가 한 건 내 최애창 미미쨩과의 발리 댄스 뿐이었다.
창과 물아일체가 되라는 무협식 조언을 실천하고자 쌩쑈를 해 본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
뭐 얻은 건 없었다.
그냥 맨날 하는 【게르튀르】 연습을 오래 한 기분이다. 고급 난이도의 후반부 초식 말고 간단한 휘두르기와 찌르기 연습이었지만 말이다.
하루 연습했다고 오러가 나오거나 하면 누가 오러맨이 못 되겠는가.
나도 자타공인 미스릴급이 되고 싶은데, 지금은 골딱 이상 미스릴 이하 정도에 불과했다.
‘내 평균 실력은 플래티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궁극기만 맞추면 마스터 급도 잡을 수는 있는데 선딜이 좀 길어서 혼자서는 못 쓸 것 같다. 폭주 상태는 논외로 두고서라도 말이다.
나는 달밤 아래에서 남은 시간을 신 기술의 착상과 시행착오에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