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1화 (301/1,009)

다나는 고른 물건을 나한테서 숨기면서 물었다. 그러자 좀 쑥쓰러워 보이는 하이로메인이 대답했다.

“네. 앨리스가 상처 회복에 좋은 아이템을 골라줬어요.”

“그거라면 피부 탄력에도 좋을 걸! 아, 그리고 난 이걸로.”

욕망에 충실한 민달팽이 유니콘쉑은 목걸이를 가리켰다. 난 아무 생각 없이 그걸 쳐다봤다가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오리할콘이다. 존나 이 창고에 오리할콘 목걸이가 있었다!

목걸이의 재질을 알아본 나, 프랑, 베로니카가 동시에 펄쩍 뛰었다.

“족장님! 저거 안 됩니다! 저거 존나 비싼 거에요!”

“은인에게 줄 선물을 가격으로 고르는 법은 없어요.”

아니 씹, 정론이긴 한데 저렇게 막 줘도 되는 물건이 아니라니까? 나는 얼탱이가 나갔지만 족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오리할콘이라. 놀랍군요. 저는 바다 쇠로 만든 목걸이라고 들었는데…… 와전이라도 됐는가 봅니다.”

이 사람 저게 얼마나 하는 건지 모르는 거 아냐? 너무나도 침착한 족장의 모습에 우리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애1미. 나도 저걸로 고를 걸.’

옆구리에 낀 건틀렛이 알게 모르게 시려웠다. 시발.

“끝나셨습니까?”

창고를 나온 우리에게 말을 건 건 행상인 빅투아르였다.

아마 우리가 족장한테 불려가 있는 동안 이 마을에서 팔 만한 물건을 사 들인 모양인지 짐이 약간 늘어난 모양새였다.

그의 말에 하이로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저희끼리 출발하면 될 것 같네요. 다른 분들은 이 근처에서 할 일이 남았다니까요.”

“아이고, 드디어! 상하지 않는 짐들로 챙겨와서 다행히지, 하마터면 장사 망할 뻔 했습니다!”

간드러지게 감사를 표하는 그를 무시하고 앨리스는 족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물론 내 귀에는 전부 들렸지만 말이다.

“있지. 준다니까 받기는 하겠는데, 이렇게 막 줘도 돼? 이 물건들이 네 선조 것들은 아니더라도 역사의 일부이기는 할 것 아냐.”

고고학 대학원생(진)다운 질문이었다.

자기가 보수를 더 달라고 하긴 했지만, 유니콘인 그녀가 오리할콘의 가치를 모를 리도 없으니까 말이다.

‘아니 뭐, 까놓고 말해서 나도 얼마나 가치있는 물건인지는 실감 못 하고 있긴 한데.’

우리가 가진 오리할콘 기둥이 헨네시스 영주 저택보다 값이 더 나갈 거라는 얘기는 들었다. 우리 집 전세 20배 분량이다. 시발 실감이 확 오네.

미안해, 어린 왕자. 나는 이제 돈으로밖에 물건의 가치를 정하지 못하는 못난 어른이 돼 버렸어…….

“상관없어요. 저희는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하는 에린의 후예니까요.”

족장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바깥과의 교류를 시작하자마자 산통을 겪었지만 제 뜻은 바뀌지 않았어요. 누켈라비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여러분 같은 이방인 분들의 힘을 빌린 덕분이었는걸요.”

─팔랑. 그녀는 자기가 입은 옷을 살짝 들었다가 놓았다.

얼스터 인들이 외국의 문화와 타협해서 선택한 얇은 옷을 말이다.

“저희가 같은 곳에만 머물러도 시대는 바뀌어요. 저는 이번 일이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런 교훈을 주었길 바랍니다.”

“흐응.”

그 시대의 흐름에 고향이 무너져버린 유니콘은 이상하다는 듯 족장의 미소를 쳐다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나쁘지 않네. 자신이 변하든 변하지 않든 세상이 우릴 내버려두진 않는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때그때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게 행복한 삶 아니겠어?”

“후후.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미래만큼 허무한 말도 없거든~? ……뭐, 참고는 해 둘게.”

앨리스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족장과 떨어졌다. 이제 작별할 시간인 것이다.

“감사했습니다, 족장님. 또 뵙는 날이 오길 빌죠.”

“네, 하이로메인. 다음에는 꼭 평화로운 나날 중에 다시 만나요.”

하이로메인이 특이한 동작으로 인사를 했다. 족장이 같은 동작으로 받아치는 걸 보면 얼스터의 인사법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마차에 오르는 교수와 대학원생에게 물었다.

“바로 떠나실 겁니까?”

“네. 누켈라비의 위협은 없어졌고, 여러분과 달리 저희가 이 마을에 왔던 목적…… 에린의 주술은 배웠으니까요.”

새로 새긴 문신을 가리키는 하이로메인.

그 뒤로는 행상인 빅투아르가 손가락을 빨고 있다. 보수로 받은 보물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현찰 얘기는 들어버린 모양이다.

보수로 받은 금액도 충분한 듯 해서 원래라면 그에게도 적당히 나눠주는 게 예의겠지만, 빅투아르는 별로 한 것도 없으니까 따로 챙겨줄 생각은 없었다.

보따리 상인쉑 불만 있어요? 그럼 바다로 가십시오. 너도 누켈라비 잡아오면 원시 고대 야만족 장비 줄 수 있다.

“자, 계도자님. 이거 받으세요.”

그딴 생각이나 하고 있자 앨리스가 갑자기 뭔가를 건넸다. 대충 받아든 나는 이번엔 또 뭔가 싶어서 그걸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오리할콘 목걸이였다.

“……머임?”

“그거, 우리 목숨값이에요.”

“목숨값?”

나는 순간 알아듣지 못하고 꺼벙하게 되물었다. 앨리스는 내 놀란 얼굴이 웃기기라도 했는지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원하시는 것 같으니까 드릴게요. 오리할콘이고 뭐고, 저랑 잔느의 목숨보다는 쌀 것 아녜요.”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걸까. 앨리스는 자기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남들 앞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게 기쁜 듯 했다.

“솔직히 욕심이 앞서서 눈치채자마자 집어버리긴 했는데, 저는 그런 과분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다가 잔느가 다치는 게 더 싫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계도자님이 가지세요.”

“……준다면 고맙게 받으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걸 베로니카에게 건넸다.

쓸모를 찾아봐야겠지만, 석판에 넣고 다니면 되겠지.

그리고 계도자라는 말에도 반박은 않기로 했다.

나는 언젠가 바이콘 족의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우리 베로니카에게 맹세하지 않았는가. 그 점을 생각하면 앨리스의 말도 맞았다.

“저희 일족이야 이미 망해버려서 세상 곳곳에서 저처럼 막 살거나, 나쁜 짓이나 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저랑 다르게 후손을 남기는 애들이 있다면, 그 애들도 다른 종족의 매력을 알아줬으면 하거든요.”

앨리스는 성스러운 신수(神獸)답게 선량한 웃음을 띄웠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이세계에서 처음으로 편견 그대로의 종족을 만난 기분이었다.

엘프, 드워프, 바이콘, 신…….

그런 이종족들 중에서 나랑 교류가 많았던 자들은 전부 다 판타지의 국룰을 무시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저 순박한 처녀성애자 유니콘은 꽤 평범한 축에 끼지 않을까.

“앗! 그렇네요. 좋은 생각이 났어요.”

아무튼 대충 그렇게 나쁘지 않은 느낌으로 작별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짐을 실은 하이로메인이 손가락을 딱 튕기고서는 말했다.

“저기, 다나 양? 제가 사실 여기서 겪은 일을 꼭 논문으로 써서 제출하고 싶은데, 대학에서는 돈 안 되는 연구를 계속할 거면 연구비를 끊어버린다고 협박 받고 있어서요.”

그러고는 순수하게 웃는 하이로메인.

“괜찮으면 누켈라비에 관한 논문, 다나 양의 이름으로 내 주지 않을래요?”

“………………네?”

나는 그 말을 조용히 곱씹어 보았다.

고민하고, 생각하고, 내가 잘못 들었나 의심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니까 시발, 교수가 대학원생에게 논문을 주겠다고?’

아니지. 다나는 이제 대학원생도 연구원생도 아니긴 한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은가.

‘……교수가 논문을 빼앗는 게 아니라, 주겠다고?’

진짜 저건 이 세상 교수가 아니다. 랩실 망령이지.

존나 가슴이 웅장해진 나머지,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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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논문을 제 명의로 내라구요?!”

하이로메인의 파격적인 행보에 다나가 비명을 질렀다.

우리 누나 치고는 드문 일인데,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세상에 시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도 남의 논문을 뺏는 교수는 이해가 가지만─용서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반대로 제 학부생도 아닌 남한테 자기 논문을 준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다.

‘이게 말이 되나?’

교수가 지가 쓴 논문을 남한테 준다고?

이건 시발 사실상 우주의 모순이 아닐까?

자신의 이론에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면서 우주상수를 만든 아인슈타인의 기분이 이러했으랴.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에 공포마저 느꼈다.

“아,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나도 도와줄게!”

상식을 벗어난 하이로메인의 제안에 뭐가 신나는지 물개박수를 쳐대는 앨리스.

나는 이제 이 연구에1미친 여교수와 사랑에1미친 동성애 대학원생 사이에서 모종의 소우주적인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당연히 내 안의 교수 슬레이어도 대혼란에 빠졌다.

구신의 마나가 요동치는 게 진짜로 느껴진다. 시발, 영혼의 배탈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가는가? 나도 알고 싶지 않았던레후.

난 아직도 이 이세계의 끝을 알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교수님 논문을 뺏어서…….”

그런데 놀랍게도 다나는 사양의 제스쳐를 취했다.

않이!! 교수한테 논문을 뜯어낼 수 있는데 웨 사양하는데!!

논문이 복사가 된다고!! 상황이 이해가 안 돼? 나는 마음이 급해졌지만 다나는 싸늘한 눈빛만 보내왔다.

왠지 모르게 무슨 뜻의 눈짓인지 알겠다.

─지는 교수한테 논문을 뺏기면 끼에엑 거리는 새끼가 남의 논문을 뺏는 건 괜찮냐?

대충 그런 뜻이 아닐까? 눈빛을 보면 맞는 것 같다. 저런 100% 찐퉁 경멸의 눈초리는 진짜 오랜만이다.

좆 됐 다!

‘이 시발! 이러다 우리 눈나한테 밉 보이겠다!’

물론 다나가 실제로 저렇게 생각하는지는 제쳐두고, 틀린 말은 아니다. 내로남불은 꼴마초가 할 짓이 아니기는 하니까.

그래서 나는 빠르게 말을 주워섬겼다.

[이 띨띨한 누나야! 생각을 해 봐! 누나가 그 논문을 안 받았다간 하이로메인이 언제 같은 주제로 논문을 낼지 몰라! 그러다가 저 사람이 <편찬대대>에 찍히거나 하면 어쩌려고!]

[……아.]

[논문을 받고 나서 제출하든 말든 생각하면 되잖아! 조금 머리를 쓰면 <편찬대대> 새끼들을 유인하는 함정으로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2~3번째 이유를 대자 다나도 안색이 바뀌었다.

그야 제일 가는 이유는 교수한테서 논문을 뜯는다는 업적 트로피를 따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2~3번째 이유도 무시할 수 없긴 하다.

핑계 아닌 핑계다. 어떤 의미로 핵심을 찌르고는 있다.

‘이러나 저러나 이건 받아야 돼!’

박사쯤 되면 익명으로 논문을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회에서 강연이 있을 때 신분을 숨겨서 제출하고, 어디 한적한 곳에서 묵다가 우릴 찾아온 놈을 족친다든가 하자.

그렇게만 되면 지들이 절대 갑인 줄 아는 새끼들이 희희낙락 찾아온 걸 역으로 족쳐서 정보 자판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었다.

물론 누켈라비의 논문이 <편찬대대>의 발작 스위치를 누를 안건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만약 누켈라비 어쩌구 하는 내용이 저 이세계 홍위병들을 빡치게 만들 내용이라면, 그 논문을 하이로메인이 내게 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설득하자 다나도 허겁지겁 말을 꺼냈다.

“교, 교수님? 그, 꼭 부탁드릴게요! 물론 성과금이 나오면 교수님한테 보내드릴게요!”

“후후, 그러실 것 없어요. 아! 공동 저자에서 제 이름은 빼 버려 주세요? 저, 끽 하면 학장님한테 혼난답니다?”

내가 봤을 때 하이로메인이 가난한 건 얼스터 연구가 돈이 안 돼서가 아니다. 성격이 평생 손해만 보며 살 타입이라서 그런 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에 나는 베로니카에게 다시 손짓을 했다.

【야, 앨리스. 들리냐?】

【네? 아, 네.】

【긴 말 않는다. 니 쮸인님 크게 다치는 꼴 보는 게 싫으면 똑똑히 들어.】

나는 베로니카의 룬으로 심념을 재연결해서 간략하게 <편찬대대>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앨리스는 얼굴이 굳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스터 연구는 안 위험한 거에요?】

【어. 아마도.】

내가 야수회귀 관련 논문을 내고, 하이로메인의 연구가 꽤 유명해졌는데도 별 일 없지 않은가.

적어도 에린이라는 고대문명 국가는 그 씨발것들의 관할 밖인 듯 했다.

【그래도 조심해라. 교수님한테 알려줄지 말지는 네가 잘 생각해보고 정하든가 하고.】

【……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르는 척 넘어가기엔 모든 고고학자들이 알게 모르게 품는 위험성이다.

<편찬대대>도 다짜고짜 죽이진 않겠지만, 고고학자만큼 어디 애먼 유적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도 없다. 증거 인멸이 손쉬운데 살인을 피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다나랑 주소를 교환한 하이로메인은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완성되면 보내드릴게요. 그러면 여러분! 정말 감사했어요!”

“잘들 계세요!”

“안녕히 계십셔!”

히힝─!

빅투아르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마차는 떠나갔다.

세상 모순적인 기괴한 교수, 세르잔느 하이로메인.

그리고 그녀의 유니콘 앨리스.

그들과의 만남은 내 안에 있던 교수와 대학원생에 대한 관점에 크나큰 격변을 낳았지만, 그래도 저들의 성격과 행동은 틀림없이 선량했다.

언젠가 이 이세계에도 저런 교수와 대학원생만이 가득한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저 그 날을 꿈꾸며 학위 등급을 올릴 뿐이다.

‘존나 시발, 나도 석사 은장이라도 달고 싶네.’

아무튼 그렇게 하이로메인 일행과 바이바이한 우리는 숲의 마법진을 찾으려 갈 준비를 했다.

위치는 내가 알아냈으니까 잠깐 시간이나 떼우다가 가면 될 것이다. 나는 기지개를 한 번 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고 다나를 불렀다.

“눈나. 이리 좀 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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